1년 만인가.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이후 한국을 방문해 한 차례 강연을 한 바 있다. 이 날 누군의 말에 따르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인구 수로 보자면 한참 차이가 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부정의한 행태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대한 결핍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하버드대 간판과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사는 사람들의 구매 패턴도 무시 못할 것. 


  이번 책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김영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판권을 사올 때에는 매우 싸게 들여왔다고 했는데, 샌델 인기가 높아진 이후 그의 판권은 얼마나 비싸졌을까. 한 예로 무라까미 하루끼의 "1Q84" 판권을 최근 문학동네에서 큰 돈 주고 들여왔다는 이야기(선인세를 준 만큼 팔기는 했지만 수익이 많이 남진 않았다고 들었다), 또 스티븐 잡스의 자서전을 민음사에서 큰 돈 주고 사왔다는 이야기(민음사에서는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등을 참조해봤을 때-이 때문에 한국으로 들여오는 판권의 가격대가 무척 높아졌다고 들었다-, 이번 건은 과연 얼마일까 궁금하다. 


  강연 행사는 아산재단과 연세대, 와이즈베리가 주관했다. 와이즈베리는 신생 출판사임에도 샌델의 판권을 따올 수 있었던 건, 미래엔이라는 큰 회사에 소속된 출판 브랜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 달 전부터 신청자를 받았고, 듣기로는 초대장이 만오천 장 발송되었다고 했다. 연세대 노천 극장의 수용 인원은 만 명이다. 신청하고서 안 오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더 많이 초대한 것 같은데, 이 날 강연장에서 관계자가 샌델 강연의 티켓이 온라인에서 3~4만 원에 거래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냥 버려지는 티켓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만 명인지 만오천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날 노천 극장은 빼곡히 찼다. 


  개인적으로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 보다는 교통편이 더 편리했고, 대학 정문부터 강연장까지의 거리도 경희대보다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노천 극장 계단 입구부터 사람들이 가득 줄을 서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인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고, 줄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 대단한 열기. 경희대 강연 때와 같은 뜨거운 인기를 실감한다. 노천 극장이고, 계단에 앉아야 했기에 경희대 보다는 불편했지만, 샌델 식 토론 수업은 여전히 재밌었다. 그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발언하게 하고, 맞붙이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이끌어 나갔다. 


  처음에는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발언했는데, 샌델이 한국어나 영어 중 아무거나 상관이 없고, 자신에게 편한 것으로 말하라고 하자, 후반부로 갈수록 용기를 낸 사람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하거나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발언자 중에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도 있었고, 초등학교 교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도 있었다. 경희대 때와 이번 강연을 봤을 때, 영어로 말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감에 넘쳤고, 한국어로 말하는 이들은 약간은 주눅들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영어권 강연자를 앞에 놓고 있어서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묘한 풍경이다. 분명 통역자와 자막 번역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청자가 모두 한국인인 점을 감안하면, 발언자는 한국어로 발언했어야 했다. 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청자가 아닌 샌델을 배려한 걸로 보이진 않는다. 

  

  경희대 때보다 샌델은 느리게 말을 했고, 자막 번역자는 그때와 동일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타가 훨씬 적었다. 사실, 경희대 강연 때 번역자가 오타를 내면서라도 발언 내용을 번역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 강연을 재밌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는데. 이번 번역자는 오타는 줄었고, 샌델의 말을 어조를 살려 잘 번역해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번역자는 강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손이 바빴겠지만, 샌델의 통역자는 한국어로 발언하는 이들이 나온 후반부 때에서야 비로소 일을 좀 했을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연과 이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강연의 패턴은 같았고, 샌델은 자신이 책에 쓴 내용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요한 부분을 위주로 토론을 이끌었다. 즉, 강연은 책의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다. 발언자들이 책을 읽고 왔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샌델은 책에서 다룬 부딪히는 주장들을 발언자들에게서 직접 끌어내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추가로 발언하게 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 그는 강연 도중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사회가 부정의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으며, 올바른 행동을 이끌기 위해 돈으로 보상하거나 유인하는 방식이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찬성한다는 통계 자료 결과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 통계는 강연에 앞서 아산재단과 미국의 서베이가 각각 천 명 이상의 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것이다. 


  샌델이 출연한 시점을 기준으로, 강연은 일곱시 반 정도에 시작하여 아홉시 반 정도에 끝났으니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샌델을 보냈다. 노천 극장을 빠져 나오며 입구에 마련된 와이즈베리의 책 판매대에서 책을 구입하는 중년 아저씨도 있었다. 청자의 나이대는 주로 20대가 많았고, 어린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했다. 아무래도 평일 일곱시라는 시간의 제약, 연세대 노천극장이라는 거리의 제약으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 근거리에 있는 나도 퇴근하고 택시타고 바로 갔는데. 그의 강연은 그 스타일이나 내용, 청중의 분위기 등 이곳까지 와서 들을 가치가 있었다. 


  오늘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다. 샌델은 이후 박원순 시장과 만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들렀다고 한다. 그는 행동으로 끝나지 않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샌델의 근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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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강연소식 듣고 아프님 거기 갔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들었네요. 잘 읽었어요.

마늘빵 2012-06-03 13:11   좋아요 0 | URL
네, ^^ 경희대가 초큼 더 재밌었어요. 열기는 여전했고.

글샘 2012-06-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쌍용차...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죠...
돈으로 얻을 게 있는 넘들과의 싸움... 거긴 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없는... 괴물들이 살죠.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