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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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강의를 신청한 사람도,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알라딘과 출판사 측은 많은 사람들이 오리라 예상하고 연세대 안의 대강의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강의실은 1/3 정도가 찼을 뿐이었다. 평일이고 연세대 안 깊숙이 있다 보니 시간에 맞춰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 등도 작용했을 것.
한 방향 강의 형식이 아닌 곽정수 한겨레21 기자, 장석준 전 진보신당 창준위, 그리고 책의 저자 김상봉 샘 이렇게 세 분이 함께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대를 바라보는 자리에는 꾸리에 출판사 대표, 알라딘 인문 엠디, 도서 커뮤니티 리더스가이드 대표, 레디앙 마케터 등이 보였다. 강의 전 어떤 분께서는 김상봉 선생님께 사인을 받기도 했는데, 뒤에서 듣기로는 번역가였다.
이 책은 김상봉 선생님의 젊은 시절부터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의문. 이 물음은 다시 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전개되었다. 다음은 김상봉 선생님의 말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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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누가 답할 수 있는가? 궁금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기업은 기업을 소유한 주주들의 도구일 뿐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업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도, 동산도 아닌 것이다.
철학 앞에 어떤 단어를 붙이면 철학의 종류가 성립이 되는데, 경제 철학은 없다. 헤겔 이후의 철학은 무가치한 것, 잡다한 철학이다.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다루는 것이 형이상학인데, 그 대상에는 주식회사도 포함된다.
주식회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자 어떤 활동을 위해 결속한 단체이다. 소유할 수 없고, 소유주가 있을 수 없으며, 대표자가 있을 뿐이다. 대표자는 활동을 대표할 때에만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현재는 돈을 내는 사람들이 주식회사의 주주나 대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닌 활동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활동가인 노동자는 사물화되어 있고, 자본은 인격의 이름을 달고 이 사람들의 공동체인 주식회사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의 이건희는 주식의 1%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는 70여 개의 삼성 계열사 법인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개인 기업, 가족 기업, 동업자 기업이 주식회사로 넘어가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닮았다. 자본주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의 의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한국의 학자들에게 기대할 순 없기 때문에-그들은 외국의 경제학자 이론에 기대고 있다-해외에서 발표한 뒤 논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한국에서 내놓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왜 kbs, mbc 의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가? 왜 방송사의 노동자들이 뽑으면 안 되는가? 삼성, 현대 뿐만 아니라 공기업들도 해당한다. 공기업에서부터 이 운동(노동자 경영권)을 시작해볼 수 있다.
“진리의 빛은 한 번 밝혀지면 꺼지질 않는다.”(김상봉) 가장 설득력 있는 진리의 기준은, 네가 말한 그 개념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설계도가 되느냐(스피노자)라고 묻는 것. 그게 된다면 막을 수 없다. 모든 제국, 모든 절대 권력은 그렇게 붕괴해왔다. 현실적 가능성 여부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상상 속에서 정합성을 가진다면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된다.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인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디비디를 틀어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선물받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함으로 얻은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경제의 민주화를 말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