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품절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적인 소득을 기입하듯 해와 달과 날을 기록하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첫장에 자기 이름을, 공책에 빌려갈 사람의 이름을 적고 난 연후에야 책을 빌려주곤 한다. 공공 도서관처럼 도장을 찍고 소유자의 카드를 꽂아놓은 책들도 본 적이 있다. 책을 잃어버리는걸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반지나 시계, 우산 따위를 잃는 편이, 다시는 읽지 않더라도 낯익은 제목만으로도 우리가 과거에 누렸던 감정을 일깨워주는 책 한권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낫다.-17쪽

애서가로서 우리는 친구들의 서가를 심심풀이로 염탐하곤 한다. 읽고 싶지만 수중에 없는 책을 발견할까 해서, 또는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짐승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의 동료들은 혼자 응접실에 있게 되면 분명 책장 앞에 서성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18쪽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 없이 모아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38쪽

"당신은 그저 책들이 서가에 모여서 저절로 불어나는 것 같겠지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런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서가의 주인이 특정한 주제를 선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게 더 나은 비유일 수도 있겠네요. 말하자면 우리는 흔적이 남는 하나의 여행을 마치는 셈이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이 들어있어요. 가장 먼저, 가지고 있지 않은 책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구하게 되면 그 책에서 다음 책에 대한 지시를 얻습니다. 아참, 내가 무척 느리게 읽는 애서가라는 점을 밝혀야겠군요. 나는 인용문의 출처까지 모두 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모든 상념의 의미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해본답니다. 그러니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는 늘 스무 권의 책들을 주위에 놓아두게 되지요. 때로는 한 챕터를 읽기 위해 그러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몰두하는 일이 나에겐 상당히 매혹적이지요."-38쪽

책읽기란 완전한 침묵에 잠기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가 악보를 연주하듯이 목소리는 읽는 행들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는 눈으로 읽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단어와 문장들에서 음과 멜로디를 이끌어내는 거지요. 그래서 낮게 음악을 깔아주면 고막 안 깊은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온 음악의 조화로운 화성이 이루어집니다. 이때 음악이 몇 데시벨만 더 커져도 목소리를 압도해 텍스트를 침묵하게 만들거나 망가뜨리고 맙니다. 조악한 산문을 읽을 때도 좋은 음악을 곁들이면 느낌이 좀 괜찮아지지요.-60-61쪽

며칠 뒤, 나는 신간에 대해서 무관심해졌다. 또한 할인된 가격에 파는 책들의 그 모든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먼 외국에서 보내온 것까지 포함해 내게 도착한 책들을 거의 읽지도 않은 채 도서관에 기증해버렸다. 나는 내가 어떤 책 한권에라도 흥미를 느낄까봐, 그래서 그걸 집으로 가져가 점점 손쓸 겨를 없이 불어나는 책들의 거대한 식민지에 추가하고, 그 책들이 벽을 따라 쌓이고 복도로 넘쳐날까 봐 지레 겁이 났다.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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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자들 -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 열대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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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쾌한 철학자들>은 철학을 하지 않는 이들도 쉽게 접해본 철학의 거장들의 사생활 이야기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하라"고 가르친 칸트, 변증법 아래 철학의 체계를 굳건히 세운 헤겔, 또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 "너 자신을 알라"하고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깨달음을 준 소크라테스, 또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또 그의 제자 칸트, 염세주의 철학의 대표주자이며 말년에 미쳐 고생했다는 니체 등등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모두 익숙하다.

 
  철학강의를 통해 대학에서 접하는 그들의 난해하고 딱딱한 이론들, 도통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 없는, 한 학기 동안 몇장 나가지도 않았는데 학기가 끝나고 배운 거 하나 없는거 같은, 오히려 약간의 지식에서 무지로 회귀하는 이런 신기한 현상을 빚는 그런 철학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아마도 짐작컨대 이 책은 도서 분류목록에서 '철학서'로 분류될 것이다. 제목에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갔고, 내용도 철학자를 다루고 있으므로. 하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그냥 잡서다. 그 대상이 철학자일 뿐 이 책은 유명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황색저널리즘과 다른 점은 거짓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그토록 찾던 책이었고, 매우 만족스럽다.
 
  책의 앞 부분에는 꽤 많이 각각의 철학자들과 관련된 그림과 이에 대한 해설로 장식되어 있다. 앞에 나와 있는 사진과 그림과 글들은 뒤에 언급할 철학자들의 사생활 이야기를 간략하게 맛만 보여주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살짝살짝 호기심을 증폭시킨다고나 할까. 그럼 더 읽고 싶어지잖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의 사생활을 주제별로 분류해보자면,
  첫째, 과거로부터 시대별로 철학이 어떻게 대우를 받아왔는지, 또 철학자들은 뭘 먹고 살며 생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둘째, 위대한 철학자들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승이다. 그들의 제자는 과연 어떤 놈팽이였는지, 아니면 어떤 현자였는지를 언급해주며,  철학자들의 실패한 교육을 이야기한다. 꽤나 재밌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위대한 스승이 될 수는 없으며, 설사 위대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막무가내 놈팽이를 다룰 재주는 없었다.
 
  셋째, 그들에게 있어 철학은 어떤 의미였는가.
 
  넷째, 철학자와 여인들 그리고 연애사건. 끝까지 독신을 지키며 살아간 철학자도 있지만,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온갖 사건들을 만들며 살아간 철학자들도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아우구스티누스와 여인, 마르크스와 예니 또 헬렌, 니체와 루 살로메, 루소와 테레즈, 콩트, 알랭, 데카르트와 헬렌, 소크라테스와 그의 부인 크산티페, 키에르케고르와 레기네, 하이데거와 크라테스의 아내들, 또 특정 여인이 아닌 이런저런 매춘부들과 관련된 이야기들.
 
 다섯째, 철학강의의 스타일. 철학이 대학에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며, 철학교수라는 직함이 생긴 것도 칸트에 있어서 처음이라 알고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의 강의 스타일과 인기도를 살펴본다.
 
  여섯째, 늦잠, 빈둥거림, 게으름의 철학자들. 시간을 꼬박꼬박 지키며 바쁘게 살아간 칸트와 같은 철학자도 있지만,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뜨고 뭉기적뭉기적 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걸핏하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일어나 책을 읽고, 또 자고 하는 데카르트와 같은 이도 있다.
 
 일곱째, 계시받은 철학자. 니체, 데카르트, 루소, 바그너, 칸트 등 계시를 받은 철학자와 그렇지 못한 철학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예로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으로부터 소리를 듣고 행동의 지침을 삼았다고 하지. 그러다가 결국 법정에서 그의 죄목 중 하나로 국가가 섬기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다라고 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지만.
 
  여덟번째, 철학자의 마지막 순간. 누구는 미쳐죽고, 누구는 감기걸려 죽고, 누구는 시간맞춰 죽고, 누구는 거룩하게 죽으려다가 비참하게 죽고, 누구는 살려준다는데 죽음을 택하고, 누구는 쇠똥 속에 갇혀 죽고, 누구는 화형당하고, 누구는 소화불량으로, 또 바다속에서 수영하다 죽었다. 참 죽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죽음까지 위대할 순 없나보다. 한 예로, 거룩하게 소크라테스와 같은 죽음을 시도하려다 뜻대로 안돼 여러번의 시도 끝에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으니 세네카. 소크라테스가 쓴 독약을 준비해뒀지만 이미 김이 다 빠져나가 쓸모가 없어지자 동맥을 끊으려는데 이런 끊어도 죽지 않자 심장마비를 일으키려고 한증막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죽고 싶어도 함부로 죽을 수 없는게 우리네 인생이구나 싶다.
 
  이 책은 참 여러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철학자의 사생활을 캐낸다. 알아먹을 수 없는 그네들만의 언어로 쓰여진 위대한 저서를 낸 이들의 삶도 일반 평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참 독특한 인생을 살다간 이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사고방식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달랐고, 여자관계에 있어서도, 죽음에 있어서도, 강의방식에 있어서도, 그들은 모두 각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책을 찾아왔다. 철학자의 순수 1차서적이 아닌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 책들을. 그래서 <지식인의 두 얼굴>, <지식인의 죄와 벌> 과 같은 책을 구입했다. 이 책도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다른 두 책과 다를 바는 없지만, 분명히 다른 것은, 그들 책만큼 심각하지 않고,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유쾌한 철학자들>은 그래서 철학자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음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남의 잘못과 실수를 보고 웃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웃긴걸 어쩌랴. 특히나 철학자들과 여인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재밌을 것 같아, 또 궁금해서 그 장까지 참을 수 없어, 미리 들춰보고 말았다. 니체와 루 살로메,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여지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독특한 연애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산 그러나 부유한 집안 여식과 결혼을 한 마르크스, <에밀>이라는 뛰어난 교육에 관한 저서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이지만 아이를 낳는대로 다 내다버린 루소 등등 역시 이런 뒷이야기는 너무나 재밌다.
 
  어느 장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유쾌한 철학자들>. 철학자들의 딱딱하고 지루하고 고루한 말과 글에 지친 그대여, 그들의 사생활로 풍덩 빠져들어 볼까. 그들의 사생활을 알고 그들의 철학서를 접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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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자들 -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 열대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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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에 대를 잇는 철학자는 없다. 철학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혈통과 절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쪽

아벨라르는 그녀에게 접근해 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이 촉망받는 아가씨의 교육을 심화하기 위하여 얼마간의 개인지도가 필요하다며 폴베르를 설득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개 해서 늑대는 양의 우리로 들어갔다. 그 순간의 육체적 폭발, 너무나도 오랫동안 억눌러진 체액의 해일, 그들의 육체적 결합의 격렬함을 묘사하는 데에는 '첫눈에 반하다'라는 표현은 충분치 않다. 누가 누구를 이끄는가? 책들이 구겨지고, 성가대 악보 받침대가 엎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글귀 위에 떨어지는 정액! 참으로 대단한 주해가 아닌가! -202쪽

엘로이즈는 지상에서 가능한 모든 부드러움과 모든 육체적 쾌락을 맛보았다. 애무뿐 아니라 구타까지 당하였다. 20년이 지난 훗날까지 엘로이즈는 아직도 식지 않는 감동에 복받쳐 무릎을 떨면서 지난날의 스승이자 연인인 아벨라르에게서 당했던 짜릿한 구타와 타박상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203쪽

"본질을 수호하고, 국가 내에서 우리 국민의 내적인 힘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 각자의 내부에서 한없이 커져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여러분의 존재의 규칙이 하나의 독단적 교의나 사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 그 분 한 분만이 독일의 현재와 미래의 현실이며, 독일의 법률이다. 항상 보다 깊이 깨닫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차후 모든 일은 결단을 요구하며, 모든 행동은 책임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히틀러 만세!" (하이데거) -220쪽

"나는 눈물과 슬픔이 단지 여자들에게만 속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데카르트)
"책을 읽을 때면, 그 책에 대한 경탄감이나, 적어도 몇몇 구절이 주는 감동이 번번이 눈물로 나타난다."(알랭)
"종종 나는 내 자신의 몸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를 각성하게 된다"(알랭) -226-227쪽

사상가에게 죽음은 작업의 일부이다. 그것은 그가 남기는 마지막 저서의 마지막 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임종의 순간을 망치거나, 그의 죽음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우리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죽어가는 철학자로부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떤 스타일 또는 어떤 고귀함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 순간에 철학자가 재치를 과시할 기분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면, 픽하고 쓰러지기 전에 후대에 선사해 줄 근사한 한 마디 말까지도 우리는 기대해본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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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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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에 이어서 이 작가 한번 파보자, 하고 나에게 찍힌 두번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코엘료 만큼이나 그녀의 저서들도 많은지라 한꺼번에 구입해서 읽기는 경제적 부담감의 압박이 다가오고, 몇몇 끌리는 책들을 선정해서 곁에 두고 하나하나 꺼내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최근작 <불륜과 남미>를 괜찮게 봤고, 두번째로 <하드보일드 하드럭>을 집어들었다. 무엇 보다 그녀의 다른 책들보다 이 책이 내게 간택(?)받은 이유는, 표지 때문이다. 아 이 귀엽고 깜찍한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 보이는 시선과 슬픈 분위기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분명 순진하고 귀여운 아기인데 표정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저주와 분노도 읽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모두 짧다. 짧은 여러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책을 이룬다. 이야기가 있고, 사건이 있는 긴 소설을 선호했던 나로서는 처음에 적응이 안됐지만, 오히려 지금은 짧고 간결하게 농축되어 있는 이와 같은 소설들이 좋아졌다.

  <하드보일드 하드럭>은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죽었다. 그녀의 기일이 되자 여러가지 묘한 일들이 발생하고, 오싹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이 소설, '하드보일드'. 한 여름밤 불 다끄고 스탠드 하나 켜놓고 보면 딱이건만 때를 잘못 만났다. 또 하나의 소설은 나머지 '하드럭'. '하드럭'은 '불운'이다.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언니, 보내줘야 한다. 결국 언니는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떴다.

  두 소설 모두 쉽게 줄거리가 와닿거나 하진 않는다. 짧은 글 속에 하고픈 이야기를 농축시켜 담다보니 서사 위주로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읽는데 애를 먹었다. 아직 내가 바나나의 소설에 적응이 덜 된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딱 처음 이 책의 표지를 접했을 때의 그 느낌과 동일하다. 어쩜 저렇게 표지 그림을 딱 떨어지게 선정했는지.

  순수하고 마냥 귀여울 것만 같은 어린아이의 눈빛 속에 담긴 분노와 저주, 두려움과 슬픔은 두 소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소설은 절대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내용을 보면 분명 슬퍼야 하는데, 눈물도 흘려주는게 맞는 거 같은데 절대 눈물 뚝 떨어지지 않는다. 이 슬픔은 너무나 슬퍼서 눈물 조차 낼 수 없는, 가슴에 모든 슬픔을 담아낸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는 다르다. 정말 슬프지 않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가슴속에 담아두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슬픔을 드러낼 뿐인데, 나의 가슴 속 감정을 드러낼 뿐인데, 슬프지 않다. 너무나 건조해서 감정이 있는 사람들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울지 않을 뿐, 눈물을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절제된 슬픔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저 멀리 고요한 넓은 바다 저편에서 밀려오는 보이지 않는 파도처럼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 무섭고, 오싹하면서, 한편으로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아 뭐 이런 감정이 다 있어, 하겠지만 정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난 표지그림 속 저 아이가 된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죽음이란 몸이 부서져 없어졌을 뿐, 기억으로, 추억으로, 꿈으로, 그리고 부재의 인식으로 영원히 남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없음이 있음으로 함께하지 않나 싶습니다." 라는 옮긴이의 말은 요시모토 바나나가 이 소설에서 그려내는 죽음에 대해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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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3-0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바나나 전작주의자가 되려 하시는군요.^^
전 바나나 책들을 80% 정도 읽은것 같아요.
<키친>이랑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가 젤로 좋았고,
개인적으로 "NP"가 젤로 싫었어요.
아프락사스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키친>은 정말 귀여워요. 읽어보시길...^^

마늘빵 2006-03-0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몸은... > 그거랑 이거 밖에 안봤어요. 아직. ^^; <키친>이 제일 많이 팔린걸로 알고 있는데 이거 집어들고 조금 보다가 필이 안와서 다시 놔두고 요골 집어들었어요. 표지그림은 언제봐도 넘 귀여워요.

구름의무게 2006-03-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나나 책 전 정말 다 좋았어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이죠. 민음사에서 나온 책은 몇해전 묶음으로 싸게팔때 구입한 뒤로 새로 나올때마다 야금야금 사모아서, 다 갖고 있어요. 정말 좋아해요! ^^ 꼭 다 읽어보세요. ^^

마늘빵 2006-03-0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전집으로는 묶어져 있는데 절판이라고 나와요. 그래서 따로 따로 야금야금 사고 있어요. 다들 바나나가 좋다고 해서 저도 코엘료의 아픔을 딛고 바나나 걸 전부 읽어보려고요.
 
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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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유원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요새는 읽지 않고 있는, 하지만 몇년전에 빠져들었던 <한겨레21>의 뒷편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란 꼭지에서 강유원을 처음 접한 듯 하다. 이 사람의 사유가 참 맘에 든다, 라는 느낌으로 그 이름을 기억했고, 여러 곳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철학자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한 회사에서 웹에디터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들었다. 당시 <씨네21>에도 '철학자'가 아닌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그가 지금 회사를 그만뒀는지 어쩐지는 잘 모른다. 현재 출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고, 회사를 겸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적을 두고 있건, 그는 분명코 일반 강단 철학자들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직업이 되었을 때와 취미로 남았을 때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할 땐 부담 없이 즐기면 되지만, 생계의 수단으로서 할 땐 심한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스트레스와 압박에 못이겨 좋아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에 적용시켜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철학자'라는 직업(?)은 사실상 직업이라기엔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별다른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껏 '교수'라는 직함 정도가 '철학자'와 연계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유원은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꾸준히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철학을 해왔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그가 철학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결국 혼자만의 그 작업들은, 강단철학과 별개로 그가 철학하는 또다른 통로이고 방법이었으며, 오랜 사유를 통해 뽑아낸 흔적들은 책이란 매체를 통해 결과물로 탄생했다. <주제> <몸으로 하는 공부> <장미의 이름 읽기> <서양문명의 기반> <책> 등의 저서들은 그의 철학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따로'에서 '같이'로 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혼자만의 철학적 작업은 처음에 '따로'였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점에서 이제 책을 접하는 이들 모두가 '같이'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는 <책과 세계>를 쓴 목적에 대해서 밝히기를,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미리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고전읽기 대한 책이다. 

 책 좀 읽는다 싶은 사람들의 독서취향은, 보통 지금 당장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들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 하나요, 아주 오래된 쾌쾌묵은 먼지를 쓸어내며 끄집어낸 듯 익숙치 않은 문장들과 싸워가며 어렵게 읽어내는 것이 또 하나다. 강유원은 후자의 책 읽기에 대해 말한다. 이 얇은 책 한권으로 그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몇몇 두꺼운 고전을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있고, 먼저 책을 읽은 그가 풀어내는 고전의 내용과 한발 더 나아간 사색의 장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전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이며, <갈가메시 서사시>며, <갈리아 전기>, <논어> 그 어느 하나 쉽게 손댈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다. 본 책의 책장을 바로 넘기기는 두렵고, 하지만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요약본으로서, 혹은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서 가볍게 접할 수 있겠다.
 
  우리는 책을 왜 읽는가?
  우리는 고전을 왜 읽는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다. 20세기는 누군가의 말처럼 '극단의 시기'였고, 그것은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이론적 파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론적 파악의 출발점인 읽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극단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들을 자기 몸에 넣어보고, 다시 빠져나와보고, 다시 또 다른 것을 넣어보고, 또다시 빠져나와본 다음에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자아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텍스트를 손에 잡지 말아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어려운 고전을 읽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를 얻기 위해 책을 읽지만, 그것이 불확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책을 읽을 이유를 상실한다. 하나의 행동이 하나의 결과를 반드시 도출하지 않는다면, 굳이 힘든 이 길을 택할 자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고전을 읽는다. 그들은 왜 책을 읽는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책을 읽음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확실히'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없는 반면(아 이것도 단언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으면 '어쩌면'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가능성, 그것을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강유원의 말처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고전을 읽는다. 적어도 나를 찾기 위한 길을 탐색해 볼 순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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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0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사람 책,<몸으로 하는 공부>를 보고 진짜 돈 아까웠는데..
다른 파트는 그냥 무난한데,(또는 잡스럽기 그지없는) 05 <책 따로, 세상 따로> 는 어찌나 웃음만 나오던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참 우습게 분석하고 그러다가 글 읽기와 삶 읽기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무슨 초딩 겨냥한 것도 아니고 참으로 억지스럽게도 연결시켰더라구요. 뭐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왜 그런 책을 냈는지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6-03-0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강유원 책은 이게 처음이에요. 그것도 보관함에 있는데, 흠. 이 책도 사실 취지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좋았는데, 본문 내용은 별반 쉽게 와닿지도 않고 그저 그래요. 서문과 에필로그가 좋아서 별 네개를 준거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