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철학자들 -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
프레데릭 파제스 지음, 최경란 옮김 / 열대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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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뛰쳐나온 거장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쾌한 철학자들>은 철학을 하지 않는 이들도 쉽게 접해본 철학의 거장들의 사생활 이야기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하라"고 가르친 칸트, 변증법 아래 철학의 체계를 굳건히 세운 헤겔, 또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 "너 자신을 알라"하고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깨달음을 준 소크라테스, 또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또 그의 제자 칸트, 염세주의 철학의 대표주자이며 말년에 미쳐 고생했다는 니체 등등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은 모두 익숙하다.

 
  철학강의를 통해 대학에서 접하는 그들의 난해하고 딱딱한 이론들, 도통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 없는, 한 학기 동안 몇장 나가지도 않았는데 학기가 끝나고 배운 거 하나 없는거 같은, 오히려 약간의 지식에서 무지로 회귀하는 이런 신기한 현상을 빚는 그런 철학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아마도 짐작컨대 이 책은 도서 분류목록에서 '철학서'로 분류될 것이다. 제목에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갔고, 내용도 철학자를 다루고 있으므로. 하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그냥 잡서다. 그 대상이 철학자일 뿐 이 책은 유명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황색저널리즘과 다른 점은 거짓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그토록 찾던 책이었고, 매우 만족스럽다.
 
  책의 앞 부분에는 꽤 많이 각각의 철학자들과 관련된 그림과 이에 대한 해설로 장식되어 있다. 앞에 나와 있는 사진과 그림과 글들은 뒤에 언급할 철학자들의 사생활 이야기를 간략하게 맛만 보여주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살짝살짝 호기심을 증폭시킨다고나 할까. 그럼 더 읽고 싶어지잖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의 사생활을 주제별로 분류해보자면,
  첫째, 과거로부터 시대별로 철학이 어떻게 대우를 받아왔는지, 또 철학자들은 뭘 먹고 살며 생계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둘째, 위대한 철학자들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승이다. 그들의 제자는 과연 어떤 놈팽이였는지, 아니면 어떤 현자였는지를 언급해주며,  철학자들의 실패한 교육을 이야기한다. 꽤나 재밌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위대한 스승이 될 수는 없으며, 설사 위대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막무가내 놈팽이를 다룰 재주는 없었다.
 
  셋째, 그들에게 있어 철학은 어떤 의미였는가.
 
  넷째, 철학자와 여인들 그리고 연애사건. 끝까지 독신을 지키며 살아간 철학자도 있지만,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온갖 사건들을 만들며 살아간 철학자들도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아우구스티누스와 여인, 마르크스와 예니 또 헬렌, 니체와 루 살로메, 루소와 테레즈, 콩트, 알랭, 데카르트와 헬렌, 소크라테스와 그의 부인 크산티페, 키에르케고르와 레기네, 하이데거와 크라테스의 아내들, 또 특정 여인이 아닌 이런저런 매춘부들과 관련된 이야기들.
 
 다섯째, 철학강의의 스타일. 철학이 대학에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며, 철학교수라는 직함이 생긴 것도 칸트에 있어서 처음이라 알고 있다. 각각의 철학자들의 강의 스타일과 인기도를 살펴본다.
 
  여섯째, 늦잠, 빈둥거림, 게으름의 철학자들. 시간을 꼬박꼬박 지키며 바쁘게 살아간 칸트와 같은 철학자도 있지만,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뜨고 뭉기적뭉기적 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걸핏하면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일어나 책을 읽고, 또 자고 하는 데카르트와 같은 이도 있다.
 
 일곱째, 계시받은 철학자. 니체, 데카르트, 루소, 바그너, 칸트 등 계시를 받은 철학자와 그렇지 못한 철학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예로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으로부터 소리를 듣고 행동의 지침을 삼았다고 하지. 그러다가 결국 법정에서 그의 죄목 중 하나로 국가가 섬기는 신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다라고 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지만.
 
  여덟번째, 철학자의 마지막 순간. 누구는 미쳐죽고, 누구는 감기걸려 죽고, 누구는 시간맞춰 죽고, 누구는 거룩하게 죽으려다가 비참하게 죽고, 누구는 살려준다는데 죽음을 택하고, 누구는 쇠똥 속에 갇혀 죽고, 누구는 화형당하고, 누구는 소화불량으로, 또 바다속에서 수영하다 죽었다. 참 죽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하여 죽음까지 위대할 순 없나보다. 한 예로, 거룩하게 소크라테스와 같은 죽음을 시도하려다 뜻대로 안돼 여러번의 시도 끝에 죽음을 맞이한 이가 있으니 세네카. 소크라테스가 쓴 독약을 준비해뒀지만 이미 김이 다 빠져나가 쓸모가 없어지자 동맥을 끊으려는데 이런 끊어도 죽지 않자 심장마비를 일으키려고 한증막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죽고 싶어도 함부로 죽을 수 없는게 우리네 인생이구나 싶다.
 
  이 책은 참 여러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철학자의 사생활을 캐낸다. 알아먹을 수 없는 그네들만의 언어로 쓰여진 위대한 저서를 낸 이들의 삶도 일반 평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참 독특한 인생을 살다간 이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사고방식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달랐고, 여자관계에 있어서도, 죽음에 있어서도, 강의방식에 있어서도, 그들은 모두 각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책을 찾아왔다. 철학자의 순수 1차서적이 아닌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 책들을. 그래서 <지식인의 두 얼굴>, <지식인의 죄와 벌> 과 같은 책을 구입했다. 이 책도 그들의 뒷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다른 두 책과 다를 바는 없지만, 분명히 다른 것은, 그들 책만큼 심각하지 않고, 웃으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유쾌한 철학자들>은 그래서 철학자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음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남의 잘못과 실수를 보고 웃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웃긴걸 어쩌랴. 특히나 철학자들과 여인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재밌을 것 같아, 또 궁금해서 그 장까지 참을 수 없어, 미리 들춰보고 말았다. 니체와 루 살로메,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여지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독특한 연애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산 그러나 부유한 집안 여식과 결혼을 한 마르크스, <에밀>이라는 뛰어난 교육에 관한 저서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이지만 아이를 낳는대로 다 내다버린 루소 등등 역시 이런 뒷이야기는 너무나 재밌다.
 
  어느 장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유쾌한 철학자들>. 철학자들의 딱딱하고 지루하고 고루한 말과 글에 지친 그대여, 그들의 사생활로 풍덩 빠져들어 볼까. 그들의 사생활을 알고 그들의 철학서를 접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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