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논리학 - 말과 글을 단련하는 10가지 논리도구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구판절판


"입구가 좁은 병 속에 팔을 집어넣고 무화과와 호두를 잔뜩 움켜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지 생각해보라. 그 아이는 팔을 다시 빼지 못해서 울게 될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과일을 버려라. 그러면 다시 손을 빼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너희의 욕망도 이와 같다." (에픽테토스)-29쪽

시계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라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고, 어떤 지성적 존재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명체는 시계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더욱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엄청난 지성을 가진 창조자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엄청난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페일리의 '지적설계설' 요약)-30쪽

토론에서도 이 방법은 유용하게 쓰인다. 이른바 'yes-but 화법'이다. 토론을 할 때 상대의 주장을 먼저 부정한 다음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는 'no-because 화법'은 좋은 화법이 아니다. 우선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데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yes-but 화법'은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느 정도 동조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100쪽

연역법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주고, 귀납법은 '개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가추법은 '이미 일어났지만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홈스는 가추법을 '거꾸로 추론해 나가기'라고 불렀고, 퍼스는 '귀환법'이라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죽고 A가 사람이면, 'A는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연역법은 알려준다. 그리고 귀납법은 A,B,C,D......가 죽고 그들이 사람이면, '아마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추법은 다르다. 사람은 모두 죽는데 A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죽었다면 'A는 아마 사람일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듯 가추법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밝힌다. -147쪽

아리스토텥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정의는 어떤 것의 전체다"라고 규정했다. A는 B고 동시에 B는 A일 때, 오직 그럴 때만이 'A는 B다'라는 문장이 정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이다'는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다'는 옳지만 '동물은 인간이다'는 그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는 정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뿐만 아니라, '이성적 동물은 인간이다'가 옳기 때문이다. -181쪽

타당한 논증이란 '형식적으로' 올바른 논증, 곧 추론의 규칙을 따른 논증을 말한다. 따라서 타당한 논증에서는 전제가 참일 때 결론도 참이 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비가 왔다. 그러므로 땅이 젖었다.' 라는 논증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건긍정식'이라고 하는 추론의 규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185쪽

건전한 논증이란 '타당하고', '전제들이 모두 참'인 논증을 뜻한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올바른 논증이다. 예를 들어 '모든 포유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고래는 포유류다. 그러므로 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라는 논증은 건전하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삼단논법을 따라서 타당할 뿐 아니라, 전제들이 모두 참이기 때문이다. -186쪽

세상의 관심을 끈 것은 논리학의 이런 형식적 발전보다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에서 이룬 논리철학적 발전이었다. <논고>의 본래 이름은 <논리-철학적 논고>다. 철학자 러셀이 추천사를 쓰고 윤리학자 조지 무어가 제목을 붙인 영어판 <논리-철학적 논고>가 1922년에 출간되었을 때 전 세계 철학계는 열광했다. 특히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그랬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 법이다. 이유가 있었다.

<논고>에는 논리학적으로 그리고 또 철학적으로 중요한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다. 우선 '신은 죽었다'처럼 우리가 경험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명제들을 철학에서 간단하게 내쫓아버릴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거짓이 아니라 "비의미하다"고 규정했다.(<논고>, 4.003) '의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당연히 참과 거짓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고>,7)-190쪽

"모든 참된 요소명제들이 주어지면, 세계는 완전히 기술된다. 모든 요소명제들이 주어지고, 그에 덧붙여 그것들 중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주어지면, 세계는 그것에 의해 완전히 기술된다."(<논고>,4.26)-195쪽

"그대가 결혼한다면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가 결혼하지 않ㅎ는다면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는 결혼하든 안 하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웃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울어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어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지 말아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한 여인을 믿든 안 믿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아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지 말아보라.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든 안 매달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제군이여,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생 지혜의 진수다."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망아의 연설')-203쪽

"한 인격은 절대로 한 인격이 아니다. 그의 생각은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바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방금 태어난 다른 자아에게 말하고 있는 바다. 누구나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가 설득하려는 대상은 바로 비판적 자아다."(찰스 샌더스 퍼스)-205쪽

"오직 존재가 있고, 비존재가 없다고 인식하고 말해야만 한다."(파르메니데스)

"듣는 사람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그것은 철학이다."(볼테르)-278쪽

칸트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정신에 나타난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대상 그 자체를 '물자체'라 하고, 우리의 정신이 나타난 대상을 '현상'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물자체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오직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에게서 얻은 정보를 우리의 정신이 자신의 선천적인 규칙들에 의해 구성한 현상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칸트의 구성주의 인식론의 핵심이다.

중략

아인슈타인도 칸트처럼 우리의 경험 속에 주어지는 것은 '세계의 본성'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간 의식의 자료'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지적으로 구성'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지식은 '실재에 대한 지식'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정신이 지어낸 환상'도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지어낸 개념(또는 이론)과 실험 및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들의 대응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물리학 개념들은 우리의 감각과 대응관계를 유지한다."라고 표현했다. -316-317쪽

"우리는 사유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장에서도 대응의 개념을 버려야 하며, 문장들이 존재의 세계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장들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리처드 로티)-325쪽

로티는 실용주의와 패러다임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 묶었다. 그 결과 그에게 진리란 단지 '한 사회가 인정하는 유용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참'과 '거짓'의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유용한 것'과 '덜 유용한 것'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그는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지동설을 믿는 이유는 단지 천문학과 우주여행이 주는 이익이 천동설을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논문 <상대주의 : 발견하기와 만들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의 신념에 관한 질문은 그것이 실재에 관한 것이냐 현상에 관한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충족하기에 가장 좋은 행동 습관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아는 어떤 신념이 '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밖의 어떤 대안적 신념도 우리가 아는 한 더 나은 행동 습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328-329쪽

참석자 질문 : 아이들을 가르칠 경우 '저건 달이고 이건 금성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대응이라는 개념을 가정하고 그것을 활용해 가르침으로써 교육도 하고 또 우리들끼리 의사소통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로티의 대답 : "... 아이들 교육에서 동일한 사물에 동일한 이름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재와의 대응이라는 관념과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재에 대해 일관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사회적 실행을 견지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 우리는 '다른 사람이 모두 그렇게 부르니까 너도 그렇게 불러라' 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329-330쪽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진리와 윤리는 구분되었다. 진리는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타당한 말이다. 진리가 세계로부터 '발견해내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면 그 책임도 전적으로 우리가 져야 한다. 진리는 더 이상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윤리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벼워진 진리가 져야 할 무거운 짐이다.-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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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리학은 어려워요.
'비트겐슈타인'은 그사람의 행동(behavior)이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그의 지성은 저에게는 일종의 벽이더군요.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8-01-29 10:12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은 제가 아직 제대로 접하지 못한 철학자랍니다. 학부에서도 다룬 적이 없고, 대학원에서는 윤리학이니 더더욱 다룬 적이 없고. 이 책을 통해 맛을 본건데 관심이 많이 가네요. 작년에 꽤 많이 번역된거 같은데 하나씩 골라서 봐야겠습니다.

비로그인 2008-01-29 10:45   좋아요 0 | URL
오.. 그러셨군요.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서 러셀과 상호 연구결과를 주고 받았지요.
20세기의 천재들일 것입니다.
초기에는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을 인정하고 끌어주는 쪽이었지만
나중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연구결과가 러셀을 추월하는 경지에 이른 듯합니다.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 철학을 내 것으로 만드는 "생각 교과서"!
김민철 지음 / 그린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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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란,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그와 관련된 상황이 주어질 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지식을 그 원리에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따져묻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원조격인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다.-25-26쪽

시민 개개인은 자신의 양심에 의거해 어떠한 법이 '악법'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개개인의 판단이 올바른 것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공개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쳐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시민 불복종 운동이란, 다수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특정한 법에 대해 다시 한번 심의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를 가리킨다.-58쪽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개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주장이나 이론이 나와도 거기에 비판과 반론, 그리고 종합이 필연적이라면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그로부터 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전제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완벽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접근해 나갈 뿐인 것이다.-64-65쪽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 (<대학>에서는)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라"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은 앎에 속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은 행동에 속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면 이미 스스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본 후에 좋아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아니다." (왕양명)

김민철 曰 "양명은 논변 과정에서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 한 가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은 과연 행동에 속하는가? 대화자 스스로가 이른바 '언어적 입법자' 노릇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감정'이고, 감정은 행동의 영역보다는 심리상태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행동'이라고 정의내려 놓고 논변을 하자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68쪽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유한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영혼, 혹은 이성은 이 세계의 유한성을 벗어난 신의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해 왔다.

경험과 관찰을 초월해 있는 것을 선험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다 보니, 현실성이 전혀 없는 주장이라도 논리적인 모순만 없다면,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그럴싸하기만 하다면 형이상학적인 이론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황금으로 뒤덮인 산이나 뿔 달린 말인 유니콘이 논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서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104쪽

'객관적'과 '보편적'의 의미는 영어로 풀이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객관적'에 해당하는 'objective'는 '사물, '대상'을 의미하는 'object'의 형용사이다. 따라서 '객관적'이란 '대상적'이라는 뜻이다. 파란색으로 보이는 물체가 있다고 하자. 보는 사람이 파란색 안경을 끼었기 때문에 그것이 파란색으로 보인다면 그것을 객관적인 관찰이라고 할 수 없다. 대상의 성질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 자체에 파란색이 있다면 누가 보더라도 그 대상은 파란색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빨간색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상의 객관적 성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이란 '보는 사람과 무관하게 누가 보더라도' 라는 의미를 가진다.-108쪽

'보편적'이란 말에 해당하는 'universal'은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형용사이다. 중국의 고대 문헌 가운데 하나에서는 '우주'(宇宙)에 대해 "상하사방(上下四方)을 우(宇)라고 하고, 고금왕래(古今往來)를 주(宙)라 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풀이대로라면 '보편적'이란 '동서고금의 어느 누가 보더라도'의 뜻이 된다. 역시 '객관적'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절대적'은 영어보다 한자로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絶對'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對을 끊다(없애다)'로, '비교할 상대가 없다'라는 뜻이다. 무림의 고수에게 상대할 자가 없다면 그를 '절대지존'이라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을 '절대평가'라 한다. 따라서 어떤 주장에 대해 아무도 그에 상대할 만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어야 절대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08쪽

자비의 원칙이란 토론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대방의 의도를 비판할 때는 그가 상상 가능한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자비의 원칙은 토론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상대방을 비난할 목적으로 그 의도를 날조하려 한다면, 비난 못할 행동이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토론에 임한다면 올바른 토론이 이루어질 리 없다. 편견을 배제한 열린 마음이야말로 공정한 토론의 필수조건이며, 자비의 원칙은 그러한 태도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118-120쪽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는 세 종류의 관념을 가진다. 첫째는 외부의 사물에 의해 촉발되는 외래관념(外來觀念)이다. 소리나 빛, 추위, 고통 등이 그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인어나 도깨비, 유니콘처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위관념(人爲觀念)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외적인 요인이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순수한 지성(知性)의 작용으로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나는 관념이 있다. 자아에 대한 관년ㅁ, "X와 Y가 같고, X와 Z가 같다면 Y와 Z는 같다"와 같은 수학적 공리와, 앞의 신 존재 증명에서 언급한 바 있는 "원인은 언제나 결과 이상이다."라는 철학적 공리(公理),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 등이 그것이다. 이를 본유관념(本有觀念)이라고 부른다.-168쪽

언어도 사회생활의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도 존재할 수 없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타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인간은 언어를 습득할 수 없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문화적 산물인 지식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설사 자연인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220-221쪽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결국 '세계관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통도 기쁨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기쁨이나 고통이 모두 부질없이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다시 본다면 이 세상이 바로 극락일수 있는 것이다.-274쪽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사공이 원하면 배가 산 아니라 땅 속으로라도 가야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배가 산으로 가면 곤란한 이유를 잘 설명해줌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무지로 인한 비자발적인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286쪽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적인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민주사회의 시민일 수는 없다. 데모크라토피아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마땅히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태어날 때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 기회를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그 역할은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하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복지국가인 것이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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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2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2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절판


10대 때에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자꾸 비추어보고
자꾸 흉내내고

그러다 20대쯤 되면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지냅니다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버리던가
스스로 깨어지던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나이에 'ㄴ'이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쯤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답답함
재미없음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모두들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김광석)-356-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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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01-2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이건 김광석 앨범에서 들었던 이야긴데요?
'서른 즈음에' 부르기 전에 김광석이 읊조렸던 이야기...

마늘빵 2008-01-21 00: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 이런 것도 어떻게 기억하고.

네꼬 2008-01-24 17:11   좋아요 0 | URL
내가 먼저 얘기할걸. (아프님이 깐따삐야님 기억력 칭찬한 거 맞죠?)
 
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9월
절판


영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규율 해이와 무단결석이 문제 되고 있지만 한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무기력이 더 문제다. 학교와 학원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파리하게 시들어 가는 대부분의 중고교 학생들은 어서 빨리 19세를 넘겨서 이 지긋지긋한 '교실 감옥'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은 학교 규율은 그냥 따라 주는 척 하면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동시에 지식에 대한 호기심, 사람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한 기쁨, 자기 능력을 발견해 나가는 경외감에서 자신을 완벽히 차단한 채 무기력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으로 스스로를 은닉한다. 책상 위에 엎드려 청하는 '잠'이 소극적 무기력이라면, 동료 학생들에게 휘둘러 대는 거친 '욕'과 '집단 따돌림'은 적극적 무기력이다. (옮긴이의 말 중)-18-19쪽

(여기서부터 본문)

우리 교육 체제에서 유급 제도의 부재와 상대평가의 결합은, 단순히 학업 실패를 방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업 실패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구조적으로 학업 실패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는 교육 체제를 만들어 관리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도리어 학업 실패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이 같은 구조적인 경향이 만들어 낸 학업 실패로 인해, 아이들만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진로에서의 좌절을 맛보고 있다.-264-265쪽

네덜란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 단위의 교육 예산을 지급하지만,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기본 단위의 1.25배를 지급한다. 또 선원의 자녀는 1.4배, 이민자나 부랑자의 자녀들은 1.7배, 교육을 받지 못한 소수 인종의 자녀들은 기본 단위의 1.9배를 받는다. 여기에는 지역 차이도, 시스템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예외도 없다. 이것이 교육 예산의 핵심을 이룬다. 이에 더하여 중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보다 직업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원한다. 그들이 사용핳는 실습실을 청소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중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135만 원의 교육비를 투자하는 반면,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많아야 40만 원 정도의 교육비만 지원하고 있다. -265쪽

우파들은 필요에 따른 재정 지원 방식을 혐오한다. 그런 정책은 한 개인의 학업 실패를 공적 자금으로 보상하는 것이며, 나아가 공부를 잘하는 중산층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할 돈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협상을 통해 그런 정치적인 격랑을 헤쳐 왔고, 이제 교육 소외가 세대를 거듭하며 세습되는 현상을 극복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아 기본 단위의 1.25배의 재정을 지원받은 수혜 대상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265-266쪽

영국의 낡은 선발 체제는 학생들을 특정한 과정에 붙잡아 두는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과정 사이를 옮겨 다니도록 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학업에 실패한 아이들을 직업 교육 과정을 통해 학교에 끌어들여 자기 수준에 맞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한 다음, 좀 더 높은 수준의 과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는 것이다.-268쪽

무엇보다, 낙인 효과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은 학습자의 필요에 바탕을 둔 교육 정책에 있다. 즉 직업 교육과정에 더 많은 재정을 지원한 것인데, 이를 통해 직업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 더욱 강한 자기 존중감을 심어주고 성공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주며, 그 결과 학부모와 기업체 고용주들 모두가 직업 교육 과정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교육부 장관은 학력이 가장 낮은 두 과정을 통합하고, 학생이 원할 경우 더 많은 인문 교과를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학생들의 자기 존중감을 더욱 높여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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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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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는 때가 있다"면서 아이들이 휴학하거나 대학 가는 것을 미루는 일을 못 견뎌 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그때의 '때'란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을 때'가 아닐까? 국가 고시 시대에서 말하는 '머리가 굳기 전의 때'는 아닐 것이다. 졸업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는 지났고, 24세에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때도 지났다. 사실은 평생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무기력의 시대, 불안과 혼돈의 21세기에 기성 세대가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시키는 대로 살고 싶어하는 수동적 인간' 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인간'을 양산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강조하건대 이 시대에 맞는 '배움의 때'란 바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때'이다. 그때를 놓쳐 버리면 아이들은 배움의 재미를 잃게 되고 평생 배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벌써 통찰력 있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네 꿈을 미루지 마"라며 조언을 주고 받는다. 이때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48-49쪽

이인규 교사의 글을 빌리면 학급 붕괴 양상의 원인은 상당히 분명해진다. 1. 교사와 학생 간의 세대차, 기존 학교 체제에 더 이상 적응할 수 없는 학생들의 감수성 등으로 사제간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유용성을 상실하여 교사들은 가르칠 맛을 잃고 학생들은 배울 의욕이 없다. 3. 여전히 학교에서 교사들이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그것은 교육적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4.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벗어나기만을 희망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60쪽

이 두 세대는 정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판이하게 다르다. 정보와 지식이 과소했던 시대를 산 구세대들에게 책이 있고, 정보가 있는 학교는 ㄱ도 '생명줄'이었으며, 책은 사두기만 해도 뿌듯한 보물이었다. 그러나 정보 홍수 속에 사는 신세대에게 학교는 뒤처진 정보를 가르치는 후진 곳이다. 새로운 지식이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으려 했던 구세대에 비해 신세대들은 정보 홍수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정보 앞에서 몸을 사리며 취사 선택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고등 교육만 받으면 대우를 받고 취직이 보장되던 시대를 살았던 구세대가 공교육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갖는 데 비해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신세대는 학교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86쪽

건강한 문화를 가진 사회란 개인이 구조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 체제, 도구적 합리성이 일상성을 지배하지 않는 체제, 구성원들의 감수성과 상상력과 분석력이 현실을 바꾸어 가는 데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체제이다. 한국의 미래 교육은 당장 문화 산업 역군을 배출해야 하는 급박함을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심하게 식민화된 일상성을 회복해낼 문화적 주체들을 배출해야 한다. 갈수록 거대해지는 기술력과 자본력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힘을 관리해낼 수 있는 문화적 주체들을 길러 내야 한다는 것이다. -121쪽

이제 더 이상 학생을 배움의 시기에 있는 '어른 이전의 존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 어른이 살던 시절에는 배우는 나이가 정해져있었고, 교육 기회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학교는 학생을 유인하기 위해 광고를 해야 하는 서비스 업종이 되었고,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평생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어른들이 직장인이면서 학생이듯이, 학생들 역시 학생이면서 소비자이며, 때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노동자이며, 자기 발언의 권리를 가진 문화적 주체로서 확실한 자기 위치를 갖는 것이다. -134쪽

"우리는 인류대 합격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 선배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절대 정숙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모의 수능 점수 향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학습의 지표로 삼는다. 적당한 학습지와 믿을 만한 과외로 사탐과 과탐을 외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어문계열 지망의 꿈을 계발하고 우리의 방학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밤샘의 힘과 침묵의 정신을 기른다. 자기 반의 이익을 앞세우며 위선과 이유 없는 반항을 묵인하고 불신과 비난이 어색하지 않는 사제 관계의 전통을 이어받아 공감대 없고 타성에 젖은 수업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내신과 수학 능력을 바탕으로 학교가 발전하며 학교의 융성이 곧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육성회비와 등록금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학교의 운명을 좌우하는 막강한 배후로서의 학부모 정신을 드높인다. -149-150쪽

(이어서)

'반A고'(경쟁하는 학교 이름) 정신에 투철한 '愛석차 愛통계'가 우리의 삶의 길이며 대명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배에 물려줄 영광된 고합격률 대명의 앞날을 내다보며, 이기심과 욕심을 지닌 근면한 학생으로서, 전교생의 '죽어지낸 3년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합격률을 창조하자. (3학년 7반 허은영. '대명'이라는 학교 이름은 가명)

(1996년 고3학생이 국민교육헌장을 풍자해 쓴 글) -150쪽

경제주의 사회에서 부모 자식 관계는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져 왔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돈을 버느라 바빴던 부모들은 부모 노릇을 자녀의 학비를 대고 피아노를 사주고 생일 파티를 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의 능력은 자녀가 원하는 것을 소비할 수 있게 자금을 대는 능력에 비례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계속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한다. 충분히 돈을 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과 충분히 돈을 줄 수 있는 경우에는 존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괴로워한다. 자녀들은 지금까지 "공부만 잘해 달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부모를 위해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 그 공부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속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마음 깊이 원망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 청소년들은 지금 사회에게도, 학교에게도, 부모에게도 전혀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선 그 동안 지속된 경제 성장은 문제가 표현화되는 것을 돈으로 막아 왔다. 살고자 하는 동기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은 아이들은 돈 쓰는 재미로 나름대로 견뎠던 것이다.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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