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력
다카이 노부오 지음, 은미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04년 4월
품절


3분력이 의미하는 스피드란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쓰라는 것이다. 일처리를 반듯하게 하면, 오히려 시간적인 면에서 여유가 생기고,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근 '슬로 푸드'운동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사고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일에 관해서는 신속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일에 미치고 나면 늦잠을 자든 게으름을 피우든 상관없다. -25쪽

"자신감이란 누가 인정해줘서 생기는게 아닙니다. 나무에 물을 주듯 스스로를 격려해야지요. 성공을 해서 자신감이 있는게 아니라 자신감이 있어서 성공한 겁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41-42쪽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혹은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음직 한 말로는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원하는 바를 제대로 챙길 수도 없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명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61쪽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야기의 초반을 매우 느린 리듬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이 집중하고 이야기가 고조에 이르면 빠르게 이끌어간다.
이처럼 이야기의 시작을 천천히 꺼내는 것은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지 못하면 자연히 말을 더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듣는 이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말머리를 천천히 꺼내는 것은 대단히 유리하다. -69쪽

사이를 두는 사람 앞에서는 억지로 말을 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좋다. 손가락 끝이나 눈앞에 있는 커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뜻이고, 시선을 피하거나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뜻이다. 전자라면 조금 더 기다려주고, 후자라면 "다음에 이야기할까요?"라고 얘기를 매듭지어주는 것이 좋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다음 대화에 오히려 신뢰감을 줄 수 있다. -72쪽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와 같은 자만심이다. 혹 상대보다 지식이 뛰어나거나 학력이 앞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에게도 그만의 인생이 있다. 그것은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일수 있다. 내가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자긍심은 그런게 아니다. "나는 뭐든 잘 안다", "나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지, 세상 물정이 어떤지를 전혀 모른다는 증명 밖에 되지 않는다. -132-133쪽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이 같은 증세는 하나의 질환으로까지 취급되고 있다. 이른바 '끄덕끄덕 신드롬'과 '질의응답 마비 증후군'이 그것이다. 끄덕끄덕 신드롬은 지식을 얻고 싶은 욕구보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강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서, 세미나 또는 대화 중에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나와도 마치 자신이 잘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질의응답 마비 증후군은 회의나 세미나에서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주체할 수 없는 긴장감에 압도되어 아무말도 못 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134쪽

누군가를 막힘없이 설득하고 싶다면,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길 일이다. "약삭빠른 말과 꾸미는 얼굴에는 군자의 근본인 인이 깃들기 힘들다"라는 말이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막힘없는 말솜씨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46쪽

"세계 역사는 네 종류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시대, 반대로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대, 지식인 등 일부 계층만이 지식을 갖고 뽐내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대중 사이에서 자기 지식에 회의를 느끼는 인텔리 지식층의 시대가 그것이다."
(버틀란트 러셀, <인생에 대한 단장>)-171쪽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하나의 혀를 선사했다. 인간은 말하는 것의 두 배 만큼 들을 의무가 있다."(제논)-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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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품절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숫자나 기호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통해서만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손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상식적인 단계에서 시각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 화가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서 그려야만 한다. 손이 그린 것을 눈이 보면서 생각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손의 도움 없이 눈만으로 나아가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자꾸 손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글머리에 中)-14쪽

누군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하자고 제안하면 나는 깜짝 놀란다. 얼마나 나를 믿었으면 하필 나를 공범자로 찍었을까. 그런 제의를 받으면 무섭기도 하지만 선택되었다는 기쁨과 나를 완벽하게 믿어주었다는 희열과 성취감에 취해서 내가 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힘들게 나쁜 짓을 제안한 친구가 무안할까봐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좋다, 하자!" 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 행동의 밑바닥에는 짙은 허무가 깔려 있었다. 좋은 일은 무의미하고 나쁜 일은 더 허무하고......-41쪽

누더기를 입은 거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누더기가 아니라 거적을 두른 거지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있던 사람은 당연히 그를 무시했다. 밥을 주기는커녕 웃어주지도 않고 물도 안 주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거지는 집 안을 둘러보다가 마당 한쪽에 토끼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토끼에게로 다가갔다. 옆에 있던 풀을 토끼에게 주었다. 토끼는 풀을 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토끼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행복이다. (김점선의 어릴적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中)-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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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2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이런 책도 있군요.
세상은 넓고 책은 많습니다 ^^;; (근데 벌써 2시이옵니다...)

마늘빵 2006-01-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맥주 한잔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이러고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가는군요. 리뷰는 내일 써야겠어요. 이 책 간단히 말하면, 정말 최곱니다. ㅋ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최종길 지음 / 밝은세상 / 2005년 10월
품절


사실 인간의 감정만큼 쉽게 변질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을 두고 영원을 약속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을 때까지'라는 유통기한을, 그래서 일단 한번 결혼하면 실제 내용물이 싱싱하든 변질됐든 무조건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한다.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36쪽

나는 아이의 손을 끌어 품에 안으며,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면 울게 된단다. 그러니깐 우는건, 살아있다는 증거인거야."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아직 죽음을 모르고, 죽음을 모르기에 삶이 절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울기만 하는 엄마가 밉고 짜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혜영이의 울음은, 의식은 다른 세계에 가 있을망정 몸만은 여기 있다는, 살아서 우리 곁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185쪽

때로는 나도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책임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부부니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좋든 싫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은 일생을 같이한다는 약속이 되는 것이고, 일생을 같이한다는 건 진 날과 마른 날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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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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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없으면 잊혀지는구나, 잊혀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대로 가까이 있으면 그 존재는 싫어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41-42쪽

우리의 '인생'은 아직 멀었다. 적어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들의 '인생'은 시작되지 않았는다. 암묵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진학 고교라는 꼬리표가 붙은 상자에 들어가 있는 지금은 모든 점에서 대학진학 준비가 기본이 되며, '인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조금 밖에 없다. 기껏해야 그 궁핍한 빈시간을 변통하여 '인생'의 일부인 '청춘'인지 뭔지를 맛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인생'을 그 얼마 안되는 빈 시간의 메인으로 삼아버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64쪽

"아마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우리 무척 교만했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우리 커플은 환상적이라고 믿었어. 물론 그는 멋있었고 좋은 점도 많아 거기에 끌렸지만, 우린 좋은 점이 많은 멋진 상대에게 걸맞는 자신을 자화자찬하고 있었을 뿐이야. 우리 정말 멋지지, 하고 함께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을 뿐이라고."-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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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읽으시는구나

마늘빵 2006-01-1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다 봤어요. ^^ 리뷰쓰려는 중이에요.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품절


전화를 끊으려는데 수화기 저쪽에서 민준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홍...... 나 보고 싶지 않니?"
나 보고 싶었어? 얼마만큼? 언제? 라고 나도 물었던 적이 있다. 아마 내가 준고와 사랑에 빠졌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자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인지, 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나 자주 보고 싶었느냐고 묻는지...... 나는 민준을 두고 그가 나를 사랑할까, 라든가 그가 나를 보고 싶어할까, 라든가 하는 궁금증을 가져 본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민준은 친구인 나를 두고 사랑에 빠져 것인지, 나는 당황스러워졌고 그래서 그저 응, 이라고 말해버렸다.
"보고 싶으냐는 물음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으냐는 물음에 응이라고 대답한 건 대체 무슨 뜻이니?"
민준은 하하, 웃었다. -72-73쪽

"엄마는 아빠를 아직도 사랑해?"
내가 물었다. 내가 빰을 대고 있는 엄마의 등이 잠시 굳어졌다.
"......사랑은, 하지. 그런데 좋아하지는 않아."
나는 엄마의 등에 계속 얼굴을 댄 채로 엄마가 틀어 놓은 개수대의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랑은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엄마, 나 민준일 좋아하고 있어. 참 보기 드문 훌륭한 남자라는 것도 알고 있어. 엄마 맘에 들고 아빠 맘에 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엄마가 행주질을 멈추고 허리를 감고 있는 내 손을 떼어 놓은 다음 나를 돌아보았다. 왠지 나는 엄마를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훌륭한 남자라고 해서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77쪽

"엄마가 말이야. 아빠를 사랑하기는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는대...... 그건 어떻게 다른 걸까 내내 생각해 봤어. 사랑하면 말이야. 그 사람이 고통스럽기를 바라게 돼. 다른 걸로는 말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통스럽기를, 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조금 만 더 고통스럽기를..... . 오래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나는 너를...... ."
-95쪽

친구들은 꽃잎이 지듯 하나 둘씩 미혼 딱지를 떼었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결혼이라는 것만큼 이미 해본 사람은 하지 말라 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기어이 하고 마려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그토록 꼼꼼히 리뷰들을 챙기면서 결혼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의 리뷰도 신경쓰려고 하지 않는다.-104쪽

헤어짐이 슬픈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109쪽

"그런데 지희야, 혹시 사람에겐 일생 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난 그걸 그 사람한테 다 쏟아버린 것 같아...... 그리고 내 표정이 아무리 이상해져도 앞으로도 늘 이렇게 말해줘.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줘. 부탁이야."-119쪽

"여자들은 말이야, 너무 매사를 사랑에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있어.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거기에 모든 걸 거는 순간, 남자는 떠나가는거야. 남자의 본성은 사냥꾼이거든. 잡아 놓은 짐승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도망 다니는 언덕 위의 날랜 사슴을 쫓아가고 싶어하거든. 우리 여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그런 본성을 인정하고 쿨해지는 거야. 그래야 남자들의 사냥 본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125쪽

'지금 울고 있느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고통과 불안이 사랑이라고 믿는다면 아프리카로 떠나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널려있다.' -127쪽

'사랑이 깨어지는 방식은 이래.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다. 대개는 남자가 먼저지. 그러다가 여자가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이 익숙해질수록 여자는 사랑을 조금씩 더 많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는 슬슬 여자가 지겨워지고 새로운 사람에 흥미를 느낀다. 여자는 더 집착하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 떠나고 싶어하고, 그럴수록 여자는 더 집착한다. 그리고 끝. 속편은 이거야. 여자는 친구를 붙들고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나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지. 마지막은 긴 눈물과 중무장한 분노, 그리고 냉소지. 하지만 어느 날인가 또다시 여자를 흥미있게 생각하는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되고 이렇게 끝도 없이 다시 시작되는거야.'-146쪽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사각거렸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나는 기도했다.
'비가 오게 해주세요. 가방이 두 개라 우산을 못 들어요. 너무 무거워서 한 손으로 다 잡을 수도 없어요. 그런데 눈물이 날테니까, 많이 날 테니까 가려 주세요. 빗물인 줄 알게 가려 주세요.'
다음날은 비가 내렸다. 그 다음날도 내렸다. 나는 그렇게 일본을 떠났다. -209-210쪽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니?"
낮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미안해."
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민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랑한다고 십오 년 동안이나 널 바라보기만 하면서 기다린 사람한테, 결혼을 약속하자는 사람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자가 세상에 너 말고 또 있을까?"
민준의 목소리가 그렇게 격앙된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나는 또 그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늘 어른스러웠고 그래서 나는 늘 철부지 같았다.
"...... 민준아."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흘러내린 눈물이 어둠 속에서 반짝 하고 빛났다. -222쪽

'후회하지마. 부끄러하지도 마. 너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의 편이고, 행복한 사람들의 편이야...... 왜냐하면 네 가슴은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나날들의 꽃과 별과 바람이 가득할테니까. 쓸쓸한 생은 많은 사람에게 그런 행복한 순간을 허용하지 않는데, 너는 한때 그것을 가졌어...... 그건 사실 모든 것을 가진 거잖아.'-228쪽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사람이라는 이야기고 살아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상처 입고 살아 있기에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죠. (지은이 후기)-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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