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의 감정만큼 쉽게 변질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을 두고 영원을 약속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을 때까지'라는 유통기한을, 그래서 일단 한번 결혼하면 실제 내용물이 싱싱하든 변질됐든 무조건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한다.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36쪽
나는 아이의 손을 끌어 품에 안으며,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프면 울게 된단다. 그러니깐 우는건, 살아있다는 증거인거야."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아직 죽음을 모르고, 죽음을 모르기에 삶이 절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울기만 하는 엄마가 밉고 짜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혜영이의 울음은, 의식은 다른 세계에 가 있을망정 몸만은 여기 있다는, 살아서 우리 곁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185쪽
때로는 나도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책임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부부니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좋든 싫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은 일생을 같이한다는 약속이 되는 것이고, 일생을 같이한다는 건 진 날과 마른 날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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