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 달콤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2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월
구판절판


"어떤 생각이 참인지 아닌지는 생각이나 말만 가지고 따질 것이 아니라, '실제적 결과'에 따라 판정되어야 한다." (퍼어스) -25쪽

"도덕이 한 인간과 그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마치 보행이 다리와 물리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즉, 보행의 성격은 다리의 힘과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보행은 또한 진흙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포장된 도로를 걷고 있는가에 따라서도 좌우되며, 양옆에 안전보도가 있는 길인가 아니면 위험한 자동차 사이를 걸어가야만 하는 길인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듀이, <인간본성과 행위>)-29쪽

"우리는 당신이 어떻게 선택해야만 하는가를 보여줄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 당신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당신은 이러한 최종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결단은 최종적으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이성은 그것이 결단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여러 가지 대안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이성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보여 줄 논의를 제공해 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폴 테일러, <윤리학의 기본원리>) -45쪽

"삶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진심으로 나는 삶이란 아무 것도 아니며, 그저 텅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을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거북한 존재다. 어느 누구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모든 존재가 저마다 혼란한 마음과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스로를 '남아도는 불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장 폴 사르트르, <구토>의 앙투안 로캉탱의 말)-67-68쪽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

"인생이 살 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기에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진리다." (알베르 카뮈)-74쪽

이렇듯 더 이상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지 않고, 마치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매 순간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로서 살아가는 것을 철학에서는 '실존한다'고 부른단다. 그러니까 '실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자기로서 산다"라는 뜻이야. -86-87쪽

"자신의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면서 자유스러워 질 때에만이 우연히 들이닥치는 여러 가능성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하이데거) -93쪽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반항이다." (알베르 카뮈) -97쪽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들이 이 목적을 위해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을 통해 얻은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여성이 특히 즐겨 이용하는 방법은 몸을 가꾸고 옷치장을 통해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또 남녀가 공동으로 애용하는 한 가지 매력 전술은 유쾌한 태도와 흥미 있는 대화술을 익히고 윤으하고 겸손하고 둥글둥글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135-136쪽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 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뒤로 물러난다. 이러한 태도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대상만을 고르면서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면 언제든 아름답게 그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와 비교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 -139쪽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 -140-141쪽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인간의 욕구는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에 무한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본성이 비뚤어지지 않은 한, 그것은 제한되어 있다는거야. 예를 들어 인간의 자연적 식욕은 위장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느 정도의 음식을 먹고 나면 채워진다는 거지. 하지만 욕망이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한이 없다는 거야. -160쪽

예를 들어 갈증, 식욕, 성욕 등은 객관적이고 생리적인 욕구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만족'이라고 불렀어. 하지만 욕망이란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는거야.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채워지는 것을 '쾌락'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은 대개 목이 말라서라기보다는 '외롭다'든지, '화가 난다'와 같은 정신적 조건에서 나온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든지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싶어 하는 것은 생리적 욕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불안이나 억압에서 온다는 거지.
정신적으로 억압당했거나 불안한 사람은 자신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타인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과시하기 위해 호화로운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든지,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싶어 한다든지, 심지어는 애인을 여럿 두려고 한다는 거야.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찾는 인간>을 김용규가 해설함) -161-162쪽

"우리는 쾌락이 행복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쾌락을 우리가 타고난 첫 번째 선이라고 인식하며, 선택하고 기피하는 모든 행동을 쾌락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63쪽

"쾌락은 망해 가는 연속이다. ...... 우리는 쾌락이 머무는 동안에는 더 큰 쾌락을 원하기 때문에 만족을 못하고, 사라지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때문에 행복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 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고,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경험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들은 쾌락주의 또는 쾌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헛되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증거다."
(프랜시스 허버트 브레들리, <윤리적 학습>)-164-165쪽

"수 세기 동안 서구 사회는 풍요한 물질이라는 성배로부터 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은 참으로 흥미로웠던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가치 있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 밖의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다른 사람보다 부유하게 된다는 것, 그전보다 더 부자가 된다는 것 이외에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물질적인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일단 목적을 이루고 나면 자신들이 그토록 얻고자 노력해왔던 것들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 물질적인 부를 통한 행복 추구는 착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 이익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때, 행복한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피터 싱어) -175쪽

"연회에 초대된 사람은 너무 일찍 자리를 떠나 주인을 섭섭하게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게 떠나 주인에게 폐가 되어서도 안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들의 사랑을 받도록, 그리고 죽을 때는 그들이 슬퍼하도록 하라." (세네카)-189쪽

프롬이 말하는 '건전한 사회'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목적이 되는 사회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란 각 개인이 자아를 자발적으로 실현시키며 살아가는 삶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그는 자유라고 불렀다. 이 자유는 어떤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소극적 자유'가 아닌 스스로를 창조해 간닫는 '적극적 자유'다. 이러한 자유가 넘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따라서 자유야말로 프롬 사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본개념인 것이다. -190쪽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어떤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를 위해 선택하는 단 하나의 목표다." (아리스토텔레스) -196쪽

"어느날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경우, 어떤 사람은 "지금 비가 오고 있다. 지붕 위에서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무수한 작은 도랑들이 재잘대며 흐른다. 공기는 빗물에 씻겨서 한층 산뜻하고 구름은 아름답게 뜯어 놓은 솜을 닮았다." 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할 수도 있다는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는 추수를 망쳐놓고 온통 흙탕물을 만들어 놓으며 풀밭에도 못 앉게 한다"라고 투덜거릴 수도 있다는거지.
(알랭의 <행복론>을 김용규가 해설하며)-210쪽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해 주길 기다리는 왕자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 하지만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 나에게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를 만들어가야 한다." (알랭, <헹복론>) -214-215쪽

"비관주의는 감정에 속하고, 낙관주의는 의지에 속한다." (알랭) -217쪽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이 자기를 속이거나 피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행복에 대한 말이라면 그 말은 사실이다. 얻어지는 행복이란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드는 행복은 절대로 그 사람을 속이거나 피하지 않는다." (알랭, <행복론>) -227쪽

"우리가 현재에 대해 의미있게 말한다면 그 현실은 바로 실재하는 것이며, 누구도 그 현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의 양자물리학자 폰 바이체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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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매콤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1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월
구판절판


"모든 사람의 자발적인 행위의 목적은 자신에 대한 어떤 선이다." (홉스) -35쪽

"따져보지 않은 삶은 무가치하다" (소크라테스) -46쪽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은 적은 내 생애에 한 번도 없었다."
(몽테스키외)-47쪽

"만약 도덕법칙에 조금이라도 예외를 인정해 버린다면, 의무의 법칙은 동요되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칸트)-70쪽

키케로는 첫째, 자신에게 극단적인 불이익이 돌아올 경우, 둘째, 상대방에게 역시 극단적인 불이익이 될 때, 셋째, 약속이 사기나 폭력으로 맺어졌을 경우, 넷째, 상대방이 불성실할 경우에는 약속을 어길 수 있다고 했어요. -75쪽

"이것들(자신의 저서)은 단지 복사본에 불과하며, 커다란 수고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단지 전해 오는 풍부한 말들을 거기에 적어 놓았을 뿐이다." (키케로)-76쪽

"공익 증진을 의도적으로 목적할 때보다도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 (스미스 <국부론>)-89쪽

니체도 마찬가지로 이타주의를 부정하고 이기주의를 옹호했다. 니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마치 노예가 그 주인에게 사랑을 바침으로써 먹고 입을 것과 잠잘 곳을 얻는 것처럼, 단지 자신이 허약하기 때문에 상대에게서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사라을 통해 얻어내려는 얄팍한 이기주의적 수법이자 노예근성이라고 보았다. -89-90쪽

돈벌이란 원래 가정에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은 목적이 가진 본래의 의미인 '가정의 행복'에 의해 제한받아야 한다는 거야. 바꾸어 말하자면, 가정의 행복이라는 목적에 어긋나는 돈벌이는 옳지 못하다는 말이지. 그런데 세상엥는 돈벌이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해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즉 어떤 사람은 돈벌이가 가정 운영의 목적 그 자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재산을 모으거나, 적어도 재산을 잃지 않는 것이 인생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여 가정의 행복을 깨뜨린다는 거지.
마찬가지로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온갖 기술과 재능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거야. 그들은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은 이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거지. 그 결과 가정의 행복도, 자신의 기술과 재능도 모두 잃고 만다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저자의 서술)-105-106쪽

"이기주의와 자기사랑은 일치하기는커녕 정반대다. 이기주의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자기를 찾는 인간>) -108쪽

"언젠가 많은 것을 말해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니체)-116쪽

따라서 공리주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공리'가 '정의'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공리주의자들은 "공리의 원칙을 만족시키는 것은 정의의 원칙도 만족시킨다."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벤담은 "류마티스에 걸린 왕"이라는 논법을 제시했따. 즉, 류마티스에 걸린 왕은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아도 행복할 수 없듯이, 분배가 평등하지 않으면 최대 다수의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에는 이미 평등의 원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밀도 "사회 정의나 분배적 정의는 공리의 의미 바로 그 속에 내포되어 있거나, 혹은 최대 행복의 원리에 함축되어 있다"라며 이에 동조했다. -179쪽

"바다는 악을 원치도 않고 선을 원치도 않는다. 물결은 바람과 달에 따라 일어난다. 내가 돛을 펼치면 바람은 각도에 맞추어 돛을 밀어 준다. 인간은 바람의 힘으로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면서, 자기의 돛을 조종하고 방향키에 의지한다." (알랭)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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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사랑, 그리고 평화를 향한 참지식인의 길 청소년 철학창고 10
묵자 지음, 박영하 옮김 / 풀빛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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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는 유교의 지나친 형식주의와 지배자 위주의 논리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인 사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유학의 최대 적수이자 반대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는 수신의 내용은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은 천자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인 데 반해, 묵자가 말하는 수신은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언리로 제시되고 있다.
(풀어쓴 이 생각) -26쪽

나라에는 일곱가지 재앙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성곽이나 해자(垓子, 방어를 위해 성벽 안에 판 연못)로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궁궐만 크게 짓고 치장하는 것이다.
둘째 적국의 군사가 국경에 이르렀는데도 사방에 있는 어느 이웃나라에서도 지원군을 보내 구해 주지 않는 것이다.
셋째 백성들의 힘을 쓸데 없는 일에 다 써버리고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 그리고 손님을 접대하느라 나라의 재물을 다 써버리는 것이다.
넷째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고 패거리를 지어 교제하는 데만 힘쓰고, 군주는 법을 함부로 고쳐서 신하를 질책하고, 신하는 군주가 두려워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 군주가 자신을 스스로 지혜로우며 성인답다고 여겨서 나라 일을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여 나라를 수비하지 않으며, 이웃 나라들이 침략을 도모하는데도 이를 모르고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 군주가 믿는 사람들은 충성스럽지 않고, 충성스런 사람들은 군주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 생산된 식량이 백성들이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고, 대신들이 군주를 섬기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며, 백성들에게 상을 내려도 상을 받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며,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어도 벌이 합당하지 않아 죄지은 사람을 제압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라에 이러한 일곱 가지 재앙이 있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아무리 성을 지키고 방어한다 해도 적이 공격해 오면 그 나라는 반드시 적에게 넘어갈 것이다. (七患 中)-28-29쪽

오늘날 성대한 장례와 삼년상을 주장하는 사람의 뜻대로 정치를 한다고 해보자. 군주와 부모, 아내, 큰 아들이 죽으면 모두 3년 동안 상을 치르게 되고, 그 다음으로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형제, 작은 아들이 죽으면 모두 1년 동안 상을 치른다. 또한 가까운 친족이 죽으면 5개월, 고모, 누이, 조카, 외삼촌 등이 죽으면 3개월로 애도하고 슬퍼해야 하는 기간이 제도로 정해지게 된다. 그러면 결국 상을 당한 사람의 얼굴은 야위고 검어지며, 눈과 귀는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고, 손과 발은 힘이 빠져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또한 높은 사대부가 상을 당했을 경우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일어설 수 있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생활을 3년이나 해야 하니 배고픔에 시달리고 힘이 없어 무기력한 의존하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겨울이면 추위를 견딜 수 없고, 여름이면 더위를 견딜 수 없어 병에 걸려 죽는 사람들의 수는 이루 헤어릴 수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출산을 위한 남녀 관계도 크게 방해받을 것이니 이렇게 하고도 인구를 늘리려는 것은 마치 사람을 칼날 위에 엎드려 있게 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인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나라는 가난해지고 백성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며, 형벌과 행정은 문란해질 것이다. (節裝 中) -119-120쪽

기독교의 하느님 개념은 인간과 만물의 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이자 인간을 주재하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서의 하느님, 즉 의인화된 하느님이다. 이에 비해 중국 고대의 하늘이란 천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창조자라는 측면은 비슷하나 인간과 유사한 존재는 아니다. 여기서 하늘은 생명력의 근원,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죽는 과정 뿐만 아니라 사계절과 해와 달, 땅과 별의 운행을 주재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다만 유가에서는 인간이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존재이므로 스스로를 갈고 닦으면 하늘과 통하는 존재, 즉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비해 묵자는 하늘이 인간의 잘잘못을 가려 상벌을 내리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측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풀어쓴 이 생각)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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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지식인마을 3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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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교육을 통해 주례(周禮)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것을 권고했다. 모든 사람이 서(恕)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학습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사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덕목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학의 이론을 내재화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22쪽

분명히 공자는 양을 훔친 잘못보다는 효의 정신을 높이 사고있다. 이것은 그가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더 강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공자가 법질서를 폐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은 훨씬 더 깊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애로움으로 표현되는 가족질서가 회복된다면, 가족 안의 어떤 구성원도 법질서를 어기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결국 공자는 가족질서로 대변되는 예만 회복한다면 가족 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들도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셈이다. 이와는 달리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형벌만을 긍정했던 한비자는 공자와는 대립되는 입장을 보인다. -32-33쪽

위대한 공자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다. 그 하나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피지배층, 즉 '소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육체적 관계를 통해 자식들을 낳는 '여자'다. 공자에게 있어 바로 이 소인과 여자가 서(恕)의 윤리원칙에 손쉽게 적용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타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절대적 규범인 예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57-58 쪽

배우기(學)만 하고 생각하지(思) 않으면 얻는 바가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의혹이 생길 것이다.
(논어, 위정편)

측은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수오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공경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시비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며,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며,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는 외부에서 나에게 새겨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다만 그것을) 생각하고(思)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구하면 그것을 얻고 버리면 잃을 것이다.
(맹자, 고자편) -80쪽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예를 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성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순자는 그것을 인위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예를 외재성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과거의 성인들은 주체적인 의지와 노력, 즉 인위에 의해 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외부에 만들어져 있는 객관적 규범으로서의 예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학습해야만 했다. 결국 순자가 본성의 영역과 인위의 영역을 구분했던 이유 역시 예의 외재성을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0쪽

분명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했을 때의 '선'은 윤리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나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했을 때의 '악'은 전혀 윤리적인 의미를 띠고 있지 않다. 맹자에 의하면 존경하는 어른을 만났을 때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사양지심'은 선한 감정이다. 당연히 이 감정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본성도 선한 것이다. 그러나 순자는 사양지심과 같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인위를 통해 내면화된 감정이라고 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윤리적인 선악의 의미가 전혀 없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순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본성을 눈이 볼 수 이쓴 것과 귀가 들을 수 있는 상황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본성이란 선악과는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눈과 귀의 역량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순자의 본성은 분명히 윤리적인 선악의 문제를 벗어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인성론을 비도덕적인 주장쯤으로 쉽게 깎아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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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는 모호한 '天命'대신 눈앞의 현실인 '효와 제'를 유가 윤리의 근간으로
내세웠지요.
맹자가 유가 윤리의 바탕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사단으로 좀더 심화, 체계화했지만
공자와 맹자 두 분 공히 본성 본능등 자연적 질서를 범주가 다른 인간 윤리의 근거
로 삼았다는 점에서 유가의 윤리체계에 근원적으로 문제가 많은 셈이지요.
하지만 2500년전의 공자의 고심, 고뇌를 단순한 논리로 쉽게 볼 수는 없겠지요..

현대 동물학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는 고등동물의 '이타적 behavior'의 근원으로 그 동물에 내재된 본능을 지적하곤 합니다.
맹자의 성선설의 의미를 새겨볼만한 논리이지요.

 
동굴 밖 이데아를 찾아 플라톤의 국가 Easy 고전 5
박규철 지음, 이강훈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절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고자 하는 대상에는 진리를 제공해 주고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과 진리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알려질 수 있는 그러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지식이나 진리와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들보다 더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빛과 시각을 태양과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으나, 태양으로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식이나 진리를 좋음의 이데아와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으나, 그것들 중의 어느 것도 좋음의 이데아와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보다 더욱더 귀중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스테파누스 페이지 508-509)-77쪽

우리는 항상 윗길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신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리고 승리한 운동선수가 돈을 거두어들이듯 우리가 올바름의 상을 받을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한 그 천 년 동안의 여정에서도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테파누스 페이지 621)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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