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지식인마을 3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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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교육을 통해 주례(周禮)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것을 권고했다. 모든 사람이 서(恕)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학습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사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덕목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학의 이론을 내재화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22쪽

분명히 공자는 양을 훔친 잘못보다는 효의 정신을 높이 사고있다. 이것은 그가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더 강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공자가 법질서를 폐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은 훨씬 더 깊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애로움으로 표현되는 가족질서가 회복된다면, 가족 안의 어떤 구성원도 법질서를 어기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결국 공자는 가족질서로 대변되는 예만 회복한다면 가족 내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들도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셈이다. 이와는 달리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형벌만을 긍정했던 한비자는 공자와는 대립되는 입장을 보인다. -32-33쪽

위대한 공자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다. 그 하나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피지배층, 즉 '소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육체적 관계를 통해 자식들을 낳는 '여자'다. 공자에게 있어 바로 이 소인과 여자가 서(恕)의 윤리원칙에 손쉽게 적용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타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절대적 규범인 예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57-58 쪽

배우기(學)만 하고 생각하지(思) 않으면 얻는 바가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의혹이 생길 것이다.
(논어, 위정편)

측은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수오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공경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고, 시비지심은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며,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며,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는 외부에서 나에게 새겨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다만 그것을) 생각하고(思)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구하면 그것을 얻고 버리면 잃을 것이다.
(맹자, 고자편) -80쪽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예를 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성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순자는 그것을 인위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예를 외재성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과거의 성인들은 주체적인 의지와 노력, 즉 인위에 의해 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외부에 만들어져 있는 객관적 규범으로서의 예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학습해야만 했다. 결국 순자가 본성의 영역과 인위의 영역을 구분했던 이유 역시 예의 외재성을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0쪽

분명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했을 때의 '선'은 윤리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나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했을 때의 '악'은 전혀 윤리적인 의미를 띠고 있지 않다. 맹자에 의하면 존경하는 어른을 만났을 때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사양지심'은 선한 감정이다. 당연히 이 감정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본성도 선한 것이다. 그러나 순자는 사양지심과 같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인위를 통해 내면화된 감정이라고 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윤리적인 선악의 의미가 전혀 없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순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본성을 눈이 볼 수 이쓴 것과 귀가 들을 수 있는 상황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본성이란 선악과는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눈과 귀의 역량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순자의 본성은 분명히 윤리적인 선악의 문제를 벗어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인성론을 비도덕적인 주장쯤으로 쉽게 깎아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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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는 모호한 '天命'대신 눈앞의 현실인 '효와 제'를 유가 윤리의 근간으로
내세웠지요.
맹자가 유가 윤리의 바탕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사단으로 좀더 심화, 체계화했지만
공자와 맹자 두 분 공히 본성 본능등 자연적 질서를 범주가 다른 인간 윤리의 근거
로 삼았다는 점에서 유가의 윤리체계에 근원적으로 문제가 많은 셈이지요.
하지만 2500년전의 공자의 고심, 고뇌를 단순한 논리로 쉽게 볼 수는 없겠지요..

현대 동물학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는 고등동물의 '이타적 behavior'의 근원으로 그 동물에 내재된 본능을 지적하곤 합니다.
맹자의 성선설의 의미를 새겨볼만한 논리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