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건, 자기평범성에 한 발짝 다가선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누가 말을 건네면 얼굴 빨개지며 치마 뒤에 숨던 그 꼬마 아이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별나고 독특한 존재라 생각했다. 공부도 잘했고, 친구들에 비해 남달리 자기자신이 똑똑해보였고, 어린 녀석이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며, 어느덧 주민등록증 발급받은 어엿한 대학생의 모습으로, 그리고 이제는 대학원 졸업생의 모습을 하고 있고, 더 이상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정말 내가 특별한 존재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별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독특함과 비범함은 순전히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아니, 그것이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깨달은 것은 사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어렸을 땐 나의 노력이 아니라 나의 재능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특별하다 인식했고 남들과 달리 보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애초 특별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을 뿐. 

  2007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또 올해의 첫 아침을 맞이한 것처럼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일년을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 일년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금처럼 될 것이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겠지. 앞으로 남은 해들도. 시간은 참 빠르다. 대학에 입학하며 대학의 낭만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지 얼마되지 않은거 같은데, 벌써 내 나이의 앞단위를 바꿔야할 때가 되었다니.

  스물에서 서른은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스무살엔 뭘해도 가능할 것 같고 뭘해도 나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순전히 내 마음과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 그치만 서른은, 그 사이 10년간 뭔가를 해놨어야 할 것 같고, 대략 나의 이후의 모습이 보여야만 할 것 같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이것저것 생각해봐야 할 것이 많은 두려운 나이이고, 지금 뭔가를 결정하거나 결단 내리지 않으면 다시 한번 앞단위가 바뀔 나이가 되었을 즈음 나는 내게 많은 실망을 안겨줄 것만 같은 그런, 그런 나이. 엷은 파동을 가진 잔잔한 호수가에 비친 내 모습처럼, 뚜렷하진 않아도 흐릿하게나마 내 삶이 보여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을 며칠 앞둔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평범성을 깨달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한 살씩 먹어갈 때마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걸 조금씩 깨달아갔고, 평범한 삶을 산다는게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일인지, 유지하기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평범성을 깨달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과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여건과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현실이 얼마나 평범한가를 깨달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그동안 내가 자신에게 부여했던, 특별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고, 평범함은 하나씩 늘어간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평범성을 깨달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해지려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특별한 삶을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고 그것을 스스로 포기해나가는 것인지도. 어젯밤 불을 끄고 이불 위에 누웠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인생은 평범해져가는 과정이라는. 모든 면에서. 나도, 주변의 특별해 보이던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져가고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인다. 마치 가까이에서 보면 각기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 위 헬리콥터나 높은 빌딩에서 바라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냥 사람'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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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7-12-2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함이 주는 익숙함도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모두 평범하지만 각자 특별하잖아요?

마늘빵 2007-12-26 23:15   좋아요 0 | URL
음, 평범하지만 각자 특별하긴 해도, 더 이상 그냥 특별하진 않다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중얼중얼.

다락방 2007-12-2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평범성을 깨달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한살씩 먹어갈 때마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걸 조금씩 깨달아갔고, 평범한 삶을 산다는게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일인지, 유지하기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맙소사, 아프락사스님!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꼈던 점을 아주 똑같이 느끼고 계시는군요.

저도 언제나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도 생각했었구요.그런데 고등학교때 한 친구가 제게 그러더군요.
"난 내가 보이는 곳만 지구가 돌고, 보이지 않는 곳은 지구가 돌지 않는줄 알았어. 사람들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줄 알았지."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저는, 제가 조금 더 평범해진것 같았어요.

그런데 서른이 되었을 때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너는 다른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는 평범하게 사는게 이렇게 어렵지?" 하고 말이죠.

그리고 남들처럼 사는게 조금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해요. 며칠만 있으면 저는 또 한살 먹어버리니깐요.

마늘빵 2007-12-26 23:15   좋아요 0 | URL
흐음, 저만 느끼는건 아니군요. 이 맘 때쯤 되면 한번씩 느끼고 단위를 바꾸는건가요. :) 에잇, 참, 나는 특별하대두. 중얼중얼.

웽스북스 2007-12-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렸을 때 제가 별나라 공주님인 줄 알았어요- 그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 혼나면 막 울면서 속으로 이를 갈고, 별나라로 돌아가면 친엄마이신 왕과 왕비님께 이를테야, 라고 다짐을 했었지요-

지금은 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특별함, 비범함을 알아보고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지요 ^^ 다행히 그런 능력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Mephistopheles 2007-12-27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는 정 반대셨군요..전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근데 왜 저만 보면 넌 참 희안해 독특해..요따구 말들을 할까요??

마늘빵 2007-12-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음, 흐흐. 저도 이불 속에서 막 울고 그랬었는데. 먼저 말걸어주지 않으면 계속 그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
메피님 / 음, =_= 그건 아마...도. 메피님이 아직.. 독특하기 때문일 겁니다. =333

도넛공주 2007-12-2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은,그 이불 동굴을 팍 밟아서 깨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행복하세요.

마늘빵 2007-12-27 14:33   좋아요 0 | URL
-_- 이불 안에 들어가있는데 밟으시면 아파요.

Jeanne 2007-12-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의 미래는 어떤 미래?
앞날이 환하니 밝나요? ㅎㅎ

(웬디양님 별나라 공주님 충격--

웽스북스 2007-12-27 13:17   좋아요 0 | URL
쫌 글킨 하죠- 아이큐가 좀 부족했나봐요 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요 ㅋㅋ

마늘빵 2007-12-27 14:33   좋아요 0 | URL
흐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너무너무.

BRINY 2007-12-2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논한다는 게 무의미해지는 거 같아요. 제 경우에는. 아, 물론 서른이 되는 고비는 좀 특별했고, 몸이 마음을 안 따라주는 점도 많아졌지만, 막상 서른 넘어도 뭐 그다지 달라지는 것도 없고 그러더라구요.

마늘빵 2007-12-27 14:34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그냥 신체나이만 하나씩 늘어나고 별로 달라지는건 없겠죠. 뭔지 모를 조바심과 그런 것만 늘어날듯.

향기 2007-12-2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나이의 앞단위를 바꿔야 할 때 ^ ^
요부분에서 빨리 서른이 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어요 ^~^

마늘빵 2007-12-27 18:26   좋아요 0 | URL
앗, 향기님은 몇살이신지... 아직 멀으셨나요? 빨리 서른 되서 뭐해요. 나이만 많이 먹는걸.

잉크냄새 2007-12-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의미인지 좋은 의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가치의 변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젊음,패기,꿈,낡음,풍화,연륜, 모두 삶의 중요한 가치잖아요.

마늘빵 2007-12-27 19:13   좋아요 0 | URL
가치의 변화. 음... 나이 먹으며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그러다보니. 주어진 환경 내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하는...

춤추는인생. 2007-12-2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는다는건. 자기 평범성을 깨달아 가는것이다.
그것말고도 나이먹는다는건 슬픈게 참많았는데 결정적인것이 빠져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마늘빵 2007-12-27 21:38   좋아요 0 | URL
춤인생님은 꽃다운 나이잖아욧!!! 버럭버럭버럭. 흥.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