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주제에 관해, 한 작가에 대해 파고들다보면 요즘 책이 아닌 옛날 것들을 찾게 되는 때가 있는데, 새 책을 선호하는 나는 다른데 다 없으면 일단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고 - 가장 오래된 대형서점이 아닐까 - 거기에도 없으면 헌책방을 뒤진다. 다행히 얼마전 알게된 헌책방 검색 사이트를 통해서 일일히 모든 헌책방 사이트를 들어가 검색하는 불편을 제거할 수 있었는데, 이 검색에도 걸리지 않으면, 그 다음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오프라인 헌책방 발품팔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막연하고 있을 가능성도 거의 없으므로 '군대식 삽질'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렇다면 책을 '소유'하는건 포기하고, '열람'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결국 모든 곳에서 찾아 없는 책을 보기 위한 최종 목적지는 도서관이다.

  그런데 만일, 도서관에도 갔는데 그 책이 없다면 어쩐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 나도 예전에 어디선가 봤는데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 어딘지 기억 안나 - 가 2000년 이후 10번 미만으로 대출된 책들을 1차로 걸러내 폐기 대상 목록에 올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책은 계속 늘어나고 도서관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삼풍백화점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책을 걸러낼 밖에. 그런데 대학들을 보면 일년 삼백육십오일 공사 중이던데 왜 도서관은 세우지 않을까. 맨 IT니, 전자공학이니, 경영관이니 하는 것들만 지으면서 왜 도서관은 짓지 않을까. 다른거 지을 돈은 있고, 지을 공간은 있어도 도서관 추가할 돈과 공간은 없단 의미일까? 도서관과 책은 대학에게 관리하기 귀찮은 부산물일까. 있는 것도 귀찮은데 차라리 없으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걸까.

  소설가 이기호씨가 한국일보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에서 말한 바와 같이, 헌책을 버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대학들은 대학 도서관이 무슨 동네 비디오 가게인줄 아나보다. 10번 이상 대출한 책 - 최소한도의 인기를 유지했다 - 만 소장/보관하고 최소한도의 인기 요건을 채우지 못한 녀석들은 퇴출시키겠다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 정말. 당신네 대학 도서관에서 카프카와 까뮈와 사르트르와 볼테르와 정약용과 이이 등등의 책들을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10년간 다녀간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특정 책을 빌리지 않았음에서 미래에 들어올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그 책을 빌리지 않는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또, 앞으로 10년 동안, 20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라 하여 '버려야 할' 기본조건이 더 충족된다고 볼 수도 없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책을 대하는 이들이 대학에 있다는 것이 화가 난다. 이기호씨의 말마따나 이들은 사람도 차별할 것만 같다.   

  최근 몇몇 절판본을 찾고 있는데 아무데도 없다. 책을 '소유'하고 싶어 대학 도서관은 아직 검색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도서관엔 있겠지. 근데 만약 대학 도서관에 갔는데도 없다면 원하는 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방법이 없다. 저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아마도 우리는 세상이 '허락하는' 한도 내의 책들만 읽어야 할 것이다. 그건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Jade 2007-08-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포크너의 "음향과분노" 읽으려고 찾아봤더니 - 저희 학교 도서관이 원체 책이 별로 없어서 얼마전 나온 개정판은 목록에도 없고, - 사실 개정판이 오타가 장난 아니라고 들어서 그 이전에 나온거 보려고 한건데 - 예전책들은 대출불가/실종 이더라구요 -_-;; 그나마 한권 있는건 70년대에 나온 문고판이었는데 상권은 없어지고 하권만 -_-;;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뭐 이런 책들은 열몇권씩이나 있던데.. 공간이 문제가 된다면 파일같은걸로 만들어 보관해도 좋을텐데 말예요~

마늘빵 2007-08-09 11:28   좋아요 0 | URL
파일로 보관하는 것도 귀찮아하지 않을까 몰라요. -_- 언제 다 스캔하고 있겠어요. 음 그 책은 처음 듣는데 - 워낙 편식하는지라 - 저는 서울대 철학과 황경식 교수의 책 한권을 헌책방에서 겨우 찾아 주문하고 오늘 받아봤는데 완전 책이 먼지에 찌들어서 갈색이 되었어요. 근데 86년판인지라 한자의 압박. 흡. 편히 읽진 못하겠더군요. 최근 절판된 책은 다 한글로 되어있을텐데.

2007-08-09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09 11:34   좋아요 0 | URL
음 그렇군요. 국회도서관이나 국립도서관에는 있다고 해도 행동의 제약이 심하죠.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장거리 이동할수도 없고. 최소한 대학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책들만큼은 계속 보존해야된다는 생각입니다. 보존하냐 마냐의 문제도 그렇지만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일단...

보석 2007-08-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는 사람이 없으니 처분한다라..참 단순한 사고군요.

마늘빵 2007-08-09 11:4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_- 그러니 지원자가 적은 학과는 폐지하고, 듣지 않으려 하는 강의는 없애겠죠. 대학들이 아주 뚜렷하고 일관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BRINY 2007-08-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교 때 [설마 이런 책이 여기!!!]하고 놀랐던 책을 도서관에서 찾은 적이 있었어요. 영국 원서였는데, 100년도 더 된 책이었죠. 19세기 어떤 귀족 여성이 개인적인 문학 연구 성과로 그런 책을 낸 적이 있다는 걸, 다른 영국 학자의 전기에 언급된 내용을 통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설마 그 책이 한국의 대학 도서관에 있다니! 미군이 기증한 책으로 되어 있던데, 그 책이 대출될 일이, 혹은 검색되어질 일이 있을까요...제가 그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대학 도서관이 전산화되기 직전이었는데, 대출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찾을 이 없을 거 같은데...순간 그 책을 갖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었는데, 지금 그 책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하네요.

마늘빵 2007-08-09 12:27   좋아요 0 | URL
흠. 진귀한(?) 책을 찾으셨군요. 저는 -_- 아직까지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워낙 책과 인연을 맺은지 오래지 않은지라. 미래의 어느 순간의 단 한명을 위해서라도 모든 책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twinpix 2007-08-0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도서관 건물을 하나 세우는 게 좋을 텐데요. 책을 폐기한다는 기사가 충격적이었어요.

마늘빵 2007-08-09 23:02   좋아요 0 | URL
책을 넣을 자리가 없으면 책을 폐기할게 아니라 도서관을 세워야지 이런 사고 방식이라니. 그죠.

비로그인 2007-08-0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소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마늘빵 2007-08-09 23:03   좋아요 0 | URL
-_- 그건... 원하는 사람들이 못 보잖소. 개인이 소장하게 되면 더더욱.

nada 2007-08-0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좋은 글에 왜 추천이 없죠?
도서관의 사고방식이 정말 황당하네요. 자기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계신 듯.

마늘빵 2007-08-09 23:04   좋아요 0 | URL
대학은 대학의 본연의 역할이 있고, 도서관은 도서관의 본연의 역할이 있는데, 이게 아무리 사회가 변화되어간다고 해도 '그러지 말아야 할 것'까지 함께 딸려 들어가니 영 못마땅합니다.

비로그인 2007-08-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찾지않았다고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이 안찾을거란 근거는 정말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렇게 보관을 안하니까 나중에 절판된 책을 찾느라 난리인데 말이죠. 쯧쯔쯔...차라리 어디 도서관에 기증을 하고, 기증했다는 기록을 연관시켜서 그걸 찾는 사람에게 전산정보를 제공하는게 나을터인데. 그냥 폐기 내지는 줘버리고 말다니.

마늘빵 2007-08-09 23:06   좋아요 0 | URL
아니면 정 공간이 없다면 파일로 만들어서 보관을 해도 괜찮을거 같고, 파일로 만들더라도 원본은 따로 보존을 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다못해 너무 낡아빠진 책이라면 일반 서고가 아닌 보존용 창고 같은 곳을 만들어서 보관해도 될테고요.

Kitty 2007-08-0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학관이나 경영관은 기업들이 돈을 대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거야 졸업생들 빼가려는 속셈이라서...
졸업생이 나올리가 없는...(...) 도서관은 누가 투자를 하나요..쩝.

마늘빵 2007-08-09 23:08   좋아요 0 | URL
그쵸. 공학관이나 경영관은 참 잘도 투자해요. 그만큼 투자하고 많이 빼먹겠다는건데, 도서관은 기업체가 투자해주길 바라는건 꿈도 못꾸고 국가차원에서 지원이 들어와야할텐데 말이죠.

코코죠 2007-08-0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댓글달기) 엄워 이기호님이 칼럼을 쓰고 계셨군요! 이런 좋은 정보를! 감사해요 아프님 잇힝

마늘빵 2007-08-09 23:4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잘 모르는 분인데 좋아하시나봅니다. 칼럼까지는 아니고 한국일보 오피니언 작은 란에 짧은 글을 자주 쓰시더라고요. :)

2007-08-10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10 00:15   좋아요 0 | URL
속닥님 / 네. 그런 식으로라도 보존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원본도 함께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디지털화는 당연하고. 어떤 기사를 보니 어떤 대학 교수분들은 공동보관소를 만들어야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더군요.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확실히 세월이 갈수록 예전에 강조되었던 대학의 역할과 도서관의 역할이 퇴색하는 것 같습니다. 인기나 경제논리만으로 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으니.

마노아 2007-08-1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이 찾는 책 제목은 뭔데요? 전에 가을산님은 책을 수소문하니 어떤 분이 갖고 있다고 보내주시기도 했는데^^;;;

마늘빵 2007-08-10 08:27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찾는건 몇 권 있는데 급한건 아니라 그냥 이러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건 아니고 보고 싶은데 없는 그런 책이에요.

꼬마요정 2007-08-1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학교 도서관을 뒤졌어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 찾으려구요.. 분명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거에요~ 물어봤더니 결국 분실/실종 뭐 이렇게 되더라고요.. 결국 못보고 있다가 얼마전에 스트렐라님께서 연락 주셔서 인터넷 헌책방에 책 올라온 거 잽싸게 샀죠... 너무 안타까워요.. 대학이 점점 '공장'이 되어가는 듯 하네요..ㅜㅜ

마늘빵 2007-08-10 18:51   좋아요 0 | URL
네 대학이 기업체가 되어가고 있어요. 돈벌이에 눈이 멀고 편리/편의 위주로 돌리고, 영어로 강의를 하려고 하고. 실제로 또 하고 있고. 대학이 大學 다워야할텐데 말이죠. 저 대학 1학년 때 교양으로 '논리학' 들으려고 신청했는데, 당일날 갔더니 두 명 앉아있더라고요. 저랑 한명. -_- 곧 조교가 오더니 폐강이래요. 이런거 수강인원 적어도 다 보호해줘야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대학 1학년 이었을 때가 꽤 지났으니 지금에야 오죽하겠습니까. '도서관'이야기에서 좀 벗어났습니다. :)

참 저도 구하는 책 있는데, 존 롤즈의 <만민법>. 아무데도 없더군요. 소장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