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1989)

역자 서문

이 책이 처음 발간된 1989년은 서양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지배력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사망선고를 내리고 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연구하여 문화변동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I부에서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를, II부에서는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이라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III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IV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 (5)

서: 하비의 특장은 맑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적 토대의 중요성을 전제하면서도, 상부구조의 변모양상을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구조와 정치-경제학적 토대를 매개하는 것으로서 ‘공간 및 시간 경험’에 대한 분석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치-경제학적 토대 분석과 상부구조의 변모양상을 주의깊게 서술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대단하다. 모범적인 ‘맑스주의적’ 연구자.

물론 이 ‘공간 및 시간 경험’이 과연 ‘매개’가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이는 정치-경제학적 토대의 상층부나, 상부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지나지 않느냐는 판단은 하비를 읽어나가면서 판단해야할 몫이다. 이 ‘공간 및 시간 경험’은 건축과 통신, 교통 시설의 발달의 문제이다. 이는 일상 생활의 문제이며, 세계인식의 문제이다. 이것이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반영된다는 것, 일반인의 세계경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법과 같은 다른 상부구조에도 ‘근본적’으로 반영되는 것일까. 이것은 의문시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정치-경제학적 토대와 상부구조 관계에 대한 원활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으로서의 ‘공간 및 시간 경험’이라는 매개항이다. 어쨌든 얼마나 폭넓은 시야와 자료를 토대로 한 연구인가!

1. 현대문화: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 가는 길

1.1 도입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비의 특장이자 전공은 ‘도시-건축’이라는 매개로 정치-경제학적 토대와 문화, 예술 등의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에 이 책의 목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주장되는 문화형태가 ’보다 유연한 자본축적양식의 출현, 그리고 자본주의의 조직에 있어 ‘시 공간 압축’이라는 새로운 국면 사이에 일정한 유형의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것과, 이것이 단지 자본주의의 표면형태의 변화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하비의 이러한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포스트모던’자체의 기원을 보통 건축양식의 변화에서부터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정치 경제적 배경’에 대한 검토작업(다소 단순화된 방식으로)을 거친 뒤에, 자본주의 역사 지리 발전의 역동성과 문화생산 및 이데올로기적 전환의 복잡한 과정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고리(원문은 one singularly important mediating link 하나의 남다르게 중요한 매개하는 연결) 역할을 하는 ‘공간 및 시간 경험’을 보다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12)

1장에 도입에서는 도시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견해를 보이는 J. Raban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물질적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합리화된 자동화시스템 아래 도시가 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는 ‘기호와 이미지의 생산에 주로 관련’된다고 하며, 도시가 ‘직종과 계급에 따라 촘촘하게 성층화된다는 테제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사회적 구별의 기호가 주로 「개인의」 소유물이나 겉모습에 의해 부여되는 개인주의와 기업가주의’로 도시적 문화를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라는」 백과사전은 형형색색의 조각들이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아무런 결정적 합리적 또는 경제적 체계 없이 가득 차 있는 편집광의 스크랙북’이다.

이러한 Raban의 주장에 대해 하비는 이것은 ‘포스트모던한 시점이 닥쳤다는 지적’으로 파악한다. 이를 ‘서론’으로 제시하며 결국 ‘포스트모던한 것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서 유일하게 합의되는 사항이라고는 모던한 것과의 암묵적 관계밖에 없으므로’ ‘우선 모던한 것들의 의미’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1.2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이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하나의 용어지만 두 가지 구조 즉, ‘찰나적 일시적 우연적 측면과 영원불변한 측면’ 사이에서 동요한 역사이다. 우선 ‘모더니티는 그 이전의 모든 역사적 상황과의 가차 없는 단절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단절행위와 분절화 과정을 그 특성으로 삼는다.’

이 모더니즘은 그 동요라는 측면에서 모순적이다. ‘모더니즘은 미래주의와 허무주의, 혁명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특이하게 결합된 것이다.’

그럼 이를 왜 ‘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불러야 하는가? ‘모던’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오세영 선생님은 ‘모더니즘’은 영미식 모더니즘과 대륙식 아방가르드가 결합한 것이라 하며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후예라 규정한다. 이러한 분절적 이성은 명쾌해 보인다. 그래도 결국 '모던/근대/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어쨌든 1848년 이후 계몽주의가 도전을 받으며 ‘오직 하나의 재현양식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20세기 초에 그 유명한 프루스트, 조이스, 로렌스, 만, 파운드의 미래파 선언 등이 등장한다. 미술에서 마티즈, 피카소, 칸딘스키 등, 음악에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언어학에서 소쉬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테일러 주의와 포드주의 등이 발생한다. 모두 20세기 초 1910년부터 1915년 사이 쯤에!

이는 모든 재현방식과 지식들이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킨 것이며, 이는 ‘필연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고 ‘계몽사상의 범주적 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이 시기 모더니즘은 ‘민주화 정신과 진보적 보편주의의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는 ‘복잡하면서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배후 실재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해 다각적 원근법주의(multiple perspectivism)와 상대주의(relativism)을 인식론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가 맞는가? 이에 대해 하비의 서술은 모호하지만 세계 대전 이후와 20세기 초를 구분하고 있기는 하다.) ‘세계대전의 참상과 이에 대한 정치적 지적 대응들은 보들레르 정식의 이면에 자리잡은 ’모더니즘의 영원성 본질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고려를 불러 일으켰다. 인간의 완전무결함에 대한 계몽적 확신이 사라져 버렸으니 모더니티에 적합한 새로운 신화를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51) 그런데 신화화되는 대상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이 시기 즉 ‘영웅적 모더니즘’ 시대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문제였다.

전간기 모더니즘 또한 ‘영웅적’이었지만, 점점 이 중 일부는 파시즘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러한 파시즘은 계몽사상의 취약함으로부터 연유된 측면이 강하다. 이 heroic이라는 것은 '영웅적'으로 번역되기 쉬운데 뭔가 초월적인 가치를 찾는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1945 이후는 ‘보편적’ 또는 ‘본격’ 모더니즘이라 명명된다. 이는 ‘사회내 지배적인 권력중심들’에 ‘편안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진보나 인간해방을 위한 발전구상인 계몽 프로젝트가 기업자본가적으로 수정되어 압도적인 정치 경제적 지배력을 얻게 된 사회에서 본격 모더니즘의 예술, 건축, 문학 등은 기성예술이 되었다. 지식 및 생산의 조건이 표준화된 상황에서 ’단선적 진보, 절대적 진리, 그리고 이상적 사회질서에 대한 합리적 계획‘에 대한 신념은 유난히 강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모더니즘은 ’실증주의적, 기술중심주의적, 합리주의적‘이었으며 동시에 고급 취향을 지닌 계획가, 예술가, 건축가, 비평가, 기타 후견인들의 엘리트 아방가르드 작품에 표현되었다.’ (57) 본격 모더니즘의 실질적 이면에서는 기업관료적 권력과 합리성에 대한 은밀한 예찬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는 인류의 모든 열망을 실현시키기에 충분한 신화로서 효율적 기계에 대한 표면적 숭배에 대응하는 것임을 가장하고 있었다. (58) 계몽예술과 고급문화가 지배엘리트층의 배타적 전유물이 되어버려서 그 틀 속에서의 실험적 움직임들(예컨대 원근법주의의 새로운 형태들)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 기성예술과 고급문화는 기껏해야 기업이나 국가권력 또는 ‘아메리칸 드림’을 자기지시적 신화라는 형태로 기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듯했다. (60)

이에 대항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출된다.

기업이나 국가, 기타 제도화된 권력 등 거대한 단일체를 이룬 세력들(관료화된 정당이나 노동조합도 포함됨)이 만들어 놓은 기술적 관료적 합리성은 ‘과학적’이라는 미명 아래 서슴 없이 압제를 휘두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대항문화들은 독특한 ‘신좌파’ 정치를 통해 반전체주의적 입장이나 반전통, 일상생활 비판을 포용함으로써 개별적인 자아실현 영역을 개척했다. (....) 1968년의 운동은 뒤이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선회를 알린 문화적 정치적 전초병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리하여 1968년에서 1972년 사이 언제쯤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반모던운동의 껍질을 벗고서 여전히 일관되진 못하나마 전면적인 움직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60-61)

그렇다면. 20세기 초 포드주의 시기에 나타났던 ‘영웅적 모더니즘’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비의 서술을 읽다보면, 굳이 왜 이를 모두 ‘moderism'이라 이름 붙여야 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오세영-주의자 여서 그러한가?) 똑같은 물적 조건 하에서 다른 식의 모더니즘이 돌출된다. 그렇게 ’모더니즘‘으로 모두 이름붙일 수 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모더니즘이 아닌가? 물적 조건의 급격한 변모 때문에 이것을 ’포스트‘라고 붙여야 하는가? (하비의 주장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모던‘한 것이라는 것? )

1.3 포스트모더니즘

하비의 서술을 읽어가면서 재미가 있어진다. 이번 절은 포스트모더니즘도 명확하게 특성화할 수는 없지만 여러 이론가들에 대한 서술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구분하는 정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란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소설은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변화했다. 모더니스트들은 복합적이면서도 단일한 실체의 의미에 집착했다면, 매우 다른 실체들이 서로 공존하고 충돌하며 상호 관입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를 전면화시키는 쪽으로 변동이 일어났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세계에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지, 그 세계에 어떻게 맞서야 할는지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고 한다. (64 참조)

포스트모더니즘은 1.2절에서 살핀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 가운데 한 쪽 측면, 즉 순간성, 분절성, 불연속, 혼돈을 전면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 사실에 대한 대응은 보들레르와 달리, 이 사실에 맞대응해 넘어서고자 애쓰지 않으며, 심지어 그 배후에 깔린 ‘영원불변’한 요소들을 밝혀보고자 하지도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그것이 전부인 듯 ‘분절성과 변화의 무질서한 흐름’ 속에서 헤엄치며 심지어 이에 탐닉한다. (68참조) 결국 ‘현상-본질’이라는 근대적 인식은 폐기된다. 차연들로 가득차서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질 뿐이고 현상의 배후를 묻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현상만이!

우리는 더 이상 개인들이 고전적 맑시즘의 주장처럼 소외되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소외되었다는 말에는 소외의 대상이 될 자아에 대한 의식이 분절적이지 않고 일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리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일정 시간을 두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현재나 과거보다 뚜렷하게 나은 미래 건설에 매달리기 위해서는, 이처럼 개인적 정체성에 바탕하는 길뿐이다. 비록 미래 목표의 끊임없는 좌절이 편집증을 불러일으키곤 했을지라도 모더니즘은 보다 나은 미래의 추구에 아주 많은 부분을 바쳤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신분열 상황에 치중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대부분 내던지고 만다. 이때, 창의적 전략의 생산은 말할 것도 없고, 전혀 새로운 급진적 형태의 미래를 조리 있게 그려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분절화나 불안정성(언어의 불안정성도 포함)에 의해 정신분열 상황이 만들어진다. (....) 포스트모던 미학에서 ‘주체의 소외가 주체의 분절화로 대체되었다’고 평가할 근거는 넉넉하다. (80-81)

과거를 배경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와 마주하는 것으로서의 견고한 ‘자아’는 폐기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의미도 전혀 변해버렸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순간의 욕망을 따르고, ‘쥬이상스’를 추구하면 되는가. 미시적 권력관계 분석을 통해, 이제 앞으로는 미시적 장들에서의 저항만이 가능한가. 이제 ‘순간’만이 존재하는가.

패션, 팝아트, 텔레비전 및 기타 매체 이미지 형태들의 동원, 그리고 다양한 도시 생활양식들은 자본주의하에서 일상생활의 요체가 되었다. 그 개념을 어떤 식으로 다루든지,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떤 자율적인 예술 흐름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상생활 속으로 내린 뿌리는 자신의 가장 분명한 액면 그대로의 모습이다. (93)

때문에 이제 하비는 다음 절에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시 디자인에서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는지를 살펴 그 상세한 그림을 덧붙’임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더 가시화하여 보여준다. 결국 하비의 특장이란,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건축, 도시’와 같이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분석을 매개로, 상부구조와 토대 사이의 관련성을 (이번 경우에는 ‘포스트모던적’) 설명해 내는 데에 있다.

1.4 도시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도시 디자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 공간관에 있어 모더니스트들과 크게 다르다. 모더니스트들은 공간을 사회목표에 따라 형성되는 어떤 것으로 여겼기에, 이것이 사회적 프로젝트의 실현에 뒤따를 뿐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공간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어떤 것으로 보고서, 그 어떠한 전반적 사회목표와도 필연적 연관이 없는 심미적 목적이나 원리들에 따라 공간이 형성된다고 여긴다. 단, 시간을 초월하는 ‘무심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일은 하나의 즉자적 목표로서 예외일 것이다. (94)

순간성이나 혼돈 같은 느낌들과 한결같이 뒤섞여 있는 허구와 분절화, 꼴라쥬, 절충주의는 아마도 오늘날의 건축 및 도시 디자인 관행을 주도하는 주제들일 터이다. 예술이나 문학, 사회이론, 심리학, 철학과 같은 다른 영역의 실천과 사고들도 이와 상당부분 엇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지배적인 분위기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까? 어떻게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자본주의적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평범한 실재들을 낱낱이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통해, 사회생활의 재생산에 있어 이런 허구와 분절화의 기능을 설명해줄 단서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밝혀내야만 한다. (131)

1.5 근대화

모더니즘은 근대화라는 특수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모더니티의 조건들에 대한 미학적 대응으로서,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개념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을 적절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근대화의 본질을 파악해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포스트모더니즘이 변함없는 근대화 과정에 대한 하나의 또다른 대응인지, 아니면 이른바 ‘탈산업’ 사회 또는 심지어 ‘탈자본주의’ 사회의 일종을 지향하여 근대화의 본질 그 자체가 급격히 변동한 것을 반영하거나 혹은 그 징조를 보여주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132)

명확하고 올바른 접근.

맑스는 아마도 ‘타인을 꿰뚫어 볼 수 없음’을 신조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물신성의 표출형태에만 표면적으로 집착할 뿐, 그 배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비난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134)

물신성이라는 것. 맑스가 상품을 분석하면서, 상품의 사회적 관계망을 은폐시키고 상품 자체의 성질로 가치를 파악하는 그 ‘전도’를 의미함.

기의보다는 기표가, 그리고 메시지(사회적 노동)보다는 미디어(화폐)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관심이 기능보다는 허구를, 사물보다는 기호를, 그리고 윤리보다는 미학을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보면, 맑스가 묘사한 화폐의 역할이 변모되었다기보다 더욱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5)

결국 포스트모던 사회는 모던 사회의 연속성을 더욱 강화한 것이고, 포스트모던적 현상은 이러한 것에 대한 미학적, 사상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각 용어의 층위가 다르지만) 대응 또는 상응이 아닌가? 그러니까 왜 ‘포스트모던’이라고 해야 하는가. 왜 ‘post'인가. 이 또한 자본주의가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야 하기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야 하기에, ’학문‘이라는 장에 새로 도출된 흥미로운 새 장난감(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자기 자신의 세계사 속에서 끊임없이 혁명적인 뒤집기의 동력이 확보되어야만 자기유지가 가능한 사회체계가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만약 ‘모더니티에 있어 유일하게 안정된 것이라곤 불안정성뿐’이라면, 그 불안정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밝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맑스는 이러한 모든 혁명적 봉기와 분절화, 그리고 끊임없는 불안정성의 토대를 굳히고 그 틀을 잡는 원리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원리는 그가 말한 최고의 추상 수준인 ‘운동하는 가치’에 있거나, 또는 더 간단히 말해 새로운 이윤추구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자본의 순환에 있다. (141)

결국 이 ‘토대-상부구조’의 은유를 하비는 받아들이고, 이를 설명해내기 위한 매개로서 ‘시간과 공간 체험’을 설정한다. 독자로서, 우리는, 이제 이것이 설득력이 있는지를 주의깊게 살피며 그를 따라가야 한다.

맑스가 그리고 있는 것은 사회 변동의 위기개재적 역학뿐만 아니라, 개인주의, 소외, 분절화, 순간성, 혁신, 창조적 파괴, 투기적 발전, 생산과 소비(필요 및 소요) 방식의 종잡을 수 없는 변천, 시 공간 경험의 변동을 일으키는 자본주의하에서 작용하는 사회과정이다. 만약 이러한 자본주의 근대화 조건으로부터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나 문화생산자들이 자신의 미학적 감각이나 원리, 실천 등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맥락이 생겨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선회는 사회적 조건의 근본적 변동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은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사고 방식을 벗어 던졌음(그런 것이 만약 있다면)을 뜻하거나, 아니면 최근 자본주의의 작동방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든 맑스의 자본주의 설명은 (만약 옳다면) 그러한 조건들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은 근대화와 모더니티, 그리고 미학적 운동들 사이의 일반적 관계를 고찰하는 데 매우 탄탄한 기초를 제공해준다. (147)

하비를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은,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거대함’(또는 ‘정통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끌어들여오는 자료들의 전방위성일 터이다. 이러한 하비의 기본 인식틀 자체가 ‘포스트모던’스럽지 않다.

1.6 포스트모더니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주관성, 성, 인종과 계급, 시간적(감수성의 판도) 공간적인 지리적 입지와 탈입지의 차이로부터 출현한 다양한 형태의 타자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148)

결국 폭력적 동일화로서의 계몽에 대한 거부.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의 발전(?)된 또는 전개된 형식이 아닌가.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 경제 정치적 행위들의 반영 혹은 모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행위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반영 모방한 것이기에 아주 다양한 모습들로 나타난다. 많은 포스트모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세계들(이 세계들 사이에서는 그 공존의 틈 속에 비의사소통적 ‘타자성’들이 가득차 있다)의 중첩은 영국과 미국의 도심 불량주거지에서 늘어나는 게토화, 무력화, 빈곤층과 소수민족들의 고립과 섬뜩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포스트모던 소설을 런던, 시카고, 뉴욕 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분절화된 사회적 경관과 하위문화들과 의사소통의 지역적 양식에 대한 은유적 단면으로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사회지표들을 보면 대부분 1970년 이후 실질적 게토화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므로, 포스트모던 소설들은 그러한 현상에 대한 반영 모방이라고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148-149)

이 부분은 쫌 나이브하게 말하고 있다. 문학이라는 텍스트 구조의 상대적 자율성. 이를 부정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조금 후에 가서 하비는 이러한 자신의 언술을 뒤집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 경제 사회생활에 대한 심미적 개입이라기보다는 단지 모방일 뿐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모방과 미학적 개입을 결합시킨 폭넓은 측면을 살펴보아야 포스트모더니즘의 폭넓은 영역을 이해할 수 있다. (150)

포스트모더니즘은 스스로를 훨씬 더 단순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예상되는 모더니즘의 병폐들을 극복하기 위한 집요하고도 혼돈스러운 운동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보며 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대충 묘사한 채 EJ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50)

모더니즘의 역사 전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운동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연속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속에 일어난 특정 종류의 위기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보들레르 정식 가운데 분절적이고 순간적이고 혼돈된 측면(맑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총체의 일부임을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을 강조하고 영원불변한 것을 사유하고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모든 특정한 처방에 대해 깊은 회의를 보이는 것이 곧 포스트모더니즘이다. (152)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대목! 152 후반부터

가장 나쁜 것은 포스트모던 사상이 타자들의 목소리의 신빙성을 인정함으로써 진보적 전망을 열어 보이면서도, 곧바로 그 타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보편적인 권력의 원천으로 옮겨가는 것을 봉쇄한다는 사실이다. 타자들의 목소리들을 난해한 타자성 속에, 즉 이러저러한 언어게임들의 특수성 속에 가두어버린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 사상은 불균형적 권력관계의 세계에서 타자의 목소리들의 권한을 박탈한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는 정치 경제의 실재와 범지구적 권력의 상황에 맞서기를 회피하고 있기에 위험스럽다. (...) 가장 단호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조차 결국에는 보편적 입장을 갖게 되고 말거나, 또는 데리다처럼 완전히 정치적 침묵으로 빠져들게 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이론이 없을 수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손쉽게 매장해 버린 메타이론이 이제 지하에서 하나의 ‘무의식적 영향력’(제임슨)으로서 계속 기능하고 있다. (153)

만약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둘 다 분절화나 순간성, 혼돈스러운 흐름의 구체적 현상들과 맞서 투쟁을 벌임으로써 자신들의 미학을 얻어낸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매우 중요해진다. 왜 그러한 구체적 현상들이 경험 속에서 그처럼 오랜 기간동안 그렇게 널리 팽배해 있어야 했는가? 왜 그러한 경험의 강도가 1970년 이후 그처럼 크게 솟구쳐 올랐는가? 모더니티에 대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단 하나가 불확실성이라면,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적 동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부터 살펴보게 될 것이 바로 이 사회적 동력이다. (II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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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3-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턴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을 읽는 중인데 요긴한 도움이 되는군요.
저도 곧 서평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할텐데요. 개강을 하니 좀 분주합니다.
근무 잘 서세요! ^^

기인 2007-03-0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대학원 시작하신 거죠? ㅎ

나비80 2007-03-0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뭐. 시작부터 마사오 미요시의 여행기 번역에 당첨(?)되어 지금 죽을 맛입니다. ^^

기인 2007-03-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생산적인 일 하시니까 좋네요 :) 저도 대학원 시작할 때 사이드 글 번역 맡아서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끝내고 나면, 매우 보람차니, 열심히 재미있게 하시길 :) ㅎㅎ
 
 전출처 : 전호인 > 석류가 여자에게 좋은 이유

여성의 과일로 주목받고 있는 석류의 주효한 효능은 석류속에 특히 많이 함유된 고유의 성분에서 알 수 있다. 즉 당질, 아미노산, 비타민, 산류 외에 풍부한 칼륨과 펙틴, 탄닌 성분 등의 작용이 수렴, 정혈, 항산화 작용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석류의 성분은 지구상의 어떤 식물보다 인체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과 구조가 거의 동일한 에스트라디올, 에스토론으로 불려지는 에스트로겐 계열의 호르몬이 석류종자 1kg당 10-18mg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논문에서 발표되었다.

석류속의 여성호르몬은 화학호르몬이나 합성호르몬에 비교하면 수용성이며 인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거의 흡사하므로 몸안의 수용체가 받아들이기가 용이하며 필요량을 소모하고 나면 잔량이 몸에 축적되지 않고 배설되기 때문에 안전할 것으로 본다.

이밖에도 석류속에 함유된 에라그산은 탄닌과 결합한 에라그탄닌이 가수분해되면 에라그산이 되는데 강한 항암작용이 있음이 마우스시험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에라그산은 항산화 작용, 산의 분비 억제 등에 효과가 있으며 영국에서는 HIV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해 에이즈 치료에도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호르몬의 기능과 관련하여 노인성 치매 알츠하이머 남성 전립선염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류에는 풍부한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무기질로는 나트륨, 칼슘, 인, 마그네슘, 아연, 망간, 철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영양적 측면에서도 단백질, 탄수화물과 사이아민(비타민 B1), 리보후라민(비타민 B2), 나이아신, 알카로이드, 페르체엘렌과 베룰르산 우르로르산도 석류 잎에는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현대인에게 부족한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고루 함유된 석류는 특히 여성에게 효과적인 과일이라고 본다.

한방에서의 석류의 효능은 신을 보하는 약제로 볼 수 있는데, 석류의 신맛이 수렴작용이 강해서 몸안에 물을 가두어 신진대사를 보다 원활히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석류꽃을 구내염, 후두염, 편도선염 등 구강염증에 쓰거나 껍질을 구강과 장의 질환, 복통, 구충제로 스기로 하며 잎을 구토방지나 식욕증진에 쓰기도 한다.

석류의 성분 중 포타시움(칼륨)을 이용하여 가죽을 무두질할 때 수렴작용 용으로 써왔고 또한 양택풍수 사상에 의하면 집안에 석류나무 다섯 그루만 있으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했는데 이는 여성호르몬의 기능을 경험적으로 우리조상이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

조물주가 현대인의 특히 갱년기 전후 여성을 치유할 목적으로 이 지구상에 석류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향유하고 그 효능과 효과를 누릴 권리가 있다.

석류의 효능

고대 페르시아에서 "샘영의 과일", "지혜의 과일"로서 귀중히 여겨온 석류는 천연호르몬 에스트로겐을 함유 하고 있다.

석류열매에 포함되어 있는 에스트로겐은 인체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동일한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모로오카 고지 1997)

석류과일은 수용성 당분(수분, 포도당, 과당)이 절반을 넘게 포함되어 있으며, 포도당 분해를 족진하는 구연산, 에너지 대사를 활발하게 하기 위한 수용성 비타민(B1, B2, 나이아신) 생리작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다.

에스트로겐의 역할은 자궁의 발육, 내막의 증식, 유선의 발달, 제 2차 성징등을 담당하는데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감소하면 여성의 생리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석류종자 1Kg안에는 10~18mg의 에스트로겐이 함유 되어 있다.(E, 헤프만 박사.1996)

석류는 식물이면서 인간 생명 활동에 작용하는 여성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으며 살균작용이 뛰어나다. 특히, 피부미용과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안면홍조, 피부건조, 구내염, 심계항진, 불면, 우울증, 성교통, 관절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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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헌법 다시 보기

* 한국일보(2007. 2. 26)  / 학계·시민운동가 15명 '헌법 다시 보기'출간


“개헌에 권력구조 뿐 아니라 여성·환경 등 의제 반영해야”


1987년 헌법을 개정하자는 시민사회의 논의가 처음 책으로 묶여 나왔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이 2년간의 준비를 거쳐 출간한 <헌법 다시 보기>(창비 발행)가 그것. 헌법학과 정치학을 비롯해 철학 사회학 여성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의 학계 인사와 시민운동가 15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시민행동 정선애 정책실장은 “개헌을 권력구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의를 담아내는 큰 틀로 바라보고자 했다”고 책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박명림(연세대) 교수는 민주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탈당, 여소야대 등 권력 왜소화 현상이 반복되는 책임을 현행 헌법체제에 묻는다. 박 교수는 “87년 헌법은 시민사회가 배제된 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치세력 간 정략 협의로 개정된 근시안적 헌법”이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주기가 어긋나는 것이 단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기 헌법에는 사회적 의제가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면서 논의 시작단계부터 시민사회 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3단계 개헌 방식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그 진의야 어떻든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서 개헌을 제안한 것”이라 평가하면서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로 하고, 대선에 정ㆍ부통령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을 전공한 홍윤기(동국대) 교수는 사법 권력의 비대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 교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정책을 일순간에 뒤집는 막강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를 ‘헌법쇼크’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안으로 헌재는 물론,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 기구와 정책 조직에 ‘시민 심의’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홍 교수는 “폐쇄적 국가 정체성에 기반한 현행 헌법은 지구화ㆍ정보화ㆍ생태화 등의 사회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조항의 주어를 ‘국민’ 대신 ‘시민’으로 바꿀 것 등을 주장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헌법 주체인 ‘국가’가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누구든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에 대해 정씨는 “여성 장애인 등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방법을 정하지 않아 이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개정을 촉구했다.

NGO 전문가 김상준(경희대) 교수는 시민사회가 공공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의회’ 제도를 헌법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헌법 전문가로 집필에 참여한 정태호(경희대) 교수는 “헌법학의 틀 속에서 개헌 문제를 보다가 다양한 관점을 접해보니 헌법이 반영해야 할 의제들이 다양함을 새삼 느꼈다”며 이번 작업의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행동 오관영 사무처장은 “좋은헌법만들기국민운동, 대화문화아카데미 등에서도 시민사회 차원의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라면서 “정치권의 개헌 논란에서 한발 비켜서 장기적 관점을 갖고 중지를 모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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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안 그래도 애인이 헌법 공부해야 됬는데 잘 됬다 ^^

2007-03-03 0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Ritournelle > * 강남 논술의 종말?

* 뉴스메이커(2007. 3. 2)  / [커버스토리]강남논술의 종말






학생들이 논술시험을 치르고 있다.


논술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정형화 된 벼락치기 암기형 글쓰기 입시서 외면당해

믿던 ‘강남논술’에 승부 걸었던 학부모·학생들 허탈


서울대학교는
2007년 정시모집 논술시험에서 대한민국 교육1번지인 서울 강남에서 공부한 학생들보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군(群)지역, 이른바 시골 학생들의 논술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또 논술시험 전부터 서울대 핵심 입시관계자는 “서울대가 학원식 논술에 철퇴를 가할 것”이라며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 학생들은 절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며 논술학원 다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려대학교는 논술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데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해 2008학년도 입시부터 논술시험의 비중을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다. 올해 연세대학의 논술 채점을 담당했던 한 교수는 ‘누가 잘 썼는가보다 정형화된 강남 논술학원 답안을 가리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산골에서까지 서울로 논술 유학을 오게 만들고 TV 광고까지 할만큼 ‘학원재벌’로 부상한 강남 논술학원의 신화가 무너지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유치원 논술교육까지 시장이 확대되고 패스트푸드나 미용실처럼 프렌차이즈학원까지 만든 강남의 논술학원이 이렇게 허물어지는 이유는 뭘까.
서울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강남 논술학원들의 교육법이 도마에 올랐지만, 수험생과 교사·학부모들은 각 대학이 제시한 논술문제나 채점의 공정성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전국을 광풍으로 몰아넣은 대입논술, 과연 강남 논술학원의 신화는 막을 내릴지, 논술시험 출제와 채점을 담당했던 교수들은 어떤 입장인지 곳곳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정준호씨(51·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요즘 잠을 못 이룬다. 학교 성적도 좋았고 착실해서 그의 자랑거리였던 외동딸이 올해 대학입시에서 완전히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연·고대는 너끈히 들어갈 것으로 믿었던 딸아이는 가나다군 가운데 안전장치로 응시한 시시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내신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특히 아이가 다니던 논술학원에서는 딸애의 논술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며 대학생이 되면 조교로 채용하겠다고까지 했어요. 논술로 승부를 보자며 수능 공부보다는 논술에 치중했죠.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꽝’이었어요.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딸아이는 울고불고 재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내년부터는 입시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니 선뜻 재수를 권하기도 힘들어 일단 등록은 했어요. 아이가 그동안 써둔 논술을 봤더니 그게 가장 전형적인 강남형 답안지라는군요. 왜 하필 올해부터 강남형 논술답안이 수모를 당하냐구요….”

땅이 꺼지듯 한숨 쉬는 정씨의 우려대로 2008년도 입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대학입시제도가 달라져 수능만이 아니라 내신과 논술의 비중이 높아져 내신·수능·논술의 3중고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논술의 경우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는 대학이 늘면서 그동안 논술고사를 보지 않던 자연계 학생들은 물론 문과학생들조차 어떤 입시전략을 짜야 하며 논술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게다가 ‘강남논술학원’이 배척당하는 분위기여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대입논술 ‘강남형 답안지’에 철퇴

서울대 측은 논술시험 전부터 “강남 논술학원 유형의 답안을 쓰면 손해볼 것”이라고 호언을 했고 실제로 특목고 및 서울 강남지역 고교 졸업생들의 대입 논술 점수와 일반 고등학교 졸업생들 사이의 논술 점수 격차가 크지 않다는 분석 결과도 줄줄이 나왔다.

고려대는 2007학년도 정시 인문계열 합격생 1112명의 논술 점수를 분석한 결과 외국어고 졸업생들이 평균 97.51점을 받아 서울 일반고 졸업생(97.37점), 지방 일반고 졸업생(97.21점)에 비해 불과 0.3점 높은 점수를 받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지역별 일반고 졸업생들의 논술 평균 점수는 충북(97.52점), 대구(97.51점), 울산(97.48점)이 외국어고(97.51점)와 비슷하거나 높았다. 부산(97.01점), 광주(96.99점), 경북(96.83점) 학생들의 점수도 외국어고 졸업생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서울 강남(97.45점)과 강북(97.30점) 학생들의 평균 점수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영어 지문 금지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2006학년도부터 논술 변별력이 현저히 낮아졌다”며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논술 최고점과 최저점 차이를 좁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달에 수십만 원, 족집게 논술 과외의 경우 수천만 원씩 지불해가며 논술지도를 받아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학원재벌의 신화, 논술광풍의 주인공인 강남 논술학원이 이처럼 왕따, 혹은 배척당하게 된 원인은 뭘까.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성개발원 연구원으로 일하다 논술학원 명강사로 변신한 서영준씨는 “각 대학의 자존심, 학부모들의 조급함, 학원들의 상술이 결합되어 진정한 논술시험이 아니라 벼락치기 식 암기형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제시문에 따라 기계화된 모범답안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배경으로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가는 논술은 하루아침에 실력을 키울 수 없다. 또 현행 교육조건에서 학생들은 내신성적을 관리하기에도 벅차 다양한 독서를 할 여유도 없다. 그러나 각 대학은 ‘서울대 식 논술’ ‘고려대 스타일’ 등 자기 대학의 자존심을 내걸고 온갖 고전과 철학자들의 글을 동원해 어떻게 하면 더 어렵고 난해한 제시문을 낼까만 경쟁하고 있다. 학부모 역시 아이에게 평소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시사문제를 토론하기보다는 ‘논술학원’에 보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논술학원 역시 수능시험을 치르고 온 학생들에게 한두 달 정도 각종 제시문이나 주제어에 어울리는 학자와 저서, 인용문 등을 복사해두고 글쓰기 훈련만 집중적으로 시킨다. 학생들 역시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미셸 푸코,
들뢰즈 등 학자나 공자, 맹자 등의 인용문만 암기하고도 자신이 유식해진 듯한 착각에 빠져 ‘제시문’을 받아들면 반사적으로 인용부터 시작하는 ‘강남형 논술답안’을 쓰게 된다는 것.

토론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도 마찬가지. 토론을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준비를 해야 하지만 학생들은 준비 없이 그 수업시간에 수다를 떨고 논술강사가 중간에 개입해 정정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렵게 글쓰기보다야 재미있지만 체계적인 지식이 쌓일 수가 없다. 또 ‘정형화를 탈피한다’ ‘자기 주장만 강하게 하면 된다’는 식의 역발상 논술법을 지도하는 학원도 있다. 이들은 무조건 거꾸로 생각하라고만 지도받아 논리적인 전개보다는 억지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기교만 훈련받는다.

올해 연세대에 합격한 변수인양은 “논술학원에서 준 모범답안으로 공부한 탓인지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라는 논제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는 1위다’ ‘자살’ 하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등의 연상이 기계적으로 따라와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 출제위원이나 채점 교수들도 사교육형 논술을 ‘척 보면 안다’고 자신했다. 9년 간 채점위원으로 참여해온 서울대의 한 교수도 “논술 사교육을 받은 수험생의 답안에는 ‘정의’만 나오면 영국 철학자 존 롤즈의 ‘정의론’ ‘무지의 베일’이 등장한다. 모두 천편일률적”이라고 비판했다. 출제위원들이 지적하는 사교육 답안지의 치명적 약점은 학생 스스로 소화할 수 없는 ‘라캉·
니체·데카르트’ 등의 어록을 줄줄이 인용하는 습관이다.

“강남 논술 죽지 않는다” 예견도

연세대의 한 교수는 “강남 논술학원들은 386세대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운동권 출신이어서 사물이나 사건을 극단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 또 철학과·국문과 대학원 출신의 논술강사들이 출제 의도보다는 현학적인 개념, 어휘, 철학자의 구호를 알려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맞지 않는 큰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전국에 프랜차이즈를 가진 대형 학원들의 경우는 물론 소규모 학원들 역시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돈벌이임이 확실하다. 학생들에게 각 대학 기출제 문제를 보여주고 모범답안과 인용문구를 주고 외게 하거나 글쓴 것을 첨삭지도하는 것이 수업방식이다. 첨삭지도도 대학원 박사과정 등의 수준급 보조원이 아니라 대학 1, 2학년들에게 1건당 1000~2000원씩 주며 ‘착취’하듯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곳도 많다. 그러니 제대로 된 읽기나 쓰기, 혹은 바로잡기가 힘든 게 당연하다.

이렇게 문제가 많아도 강남 논술학원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예견하는 이들이 많다. 당장 내년도부터 시행되는 통합논술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나 방법을 알고 대비하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아이나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강남 논술학원의 명강사 서영준씨는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학교에서는 글쓰는 시간을 늘리고 대학은 난해한 제시문보다 고교과정에서 배운 것들로 논술시험을 내면 된다”면서 “그러나 절대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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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한국번역비평학회 출범

내일 아침신문을 미리 훑어보려니까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우리 출판문화에서 번역서 갖는 비중(인문서의 경우 거의 절반 이상이지 않나 싶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뒤늦은 감이 들 정도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번역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필요한 첫걸음이 내디뎌지기를 기대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번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개선되고 번역 업적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찾아보니, 지난달초에 담비에도 소개기사가 게재되었었다.

   

한국일보(07. 03. 02) "번역 업그레이드” 학술적 비평 첫 시도

국내 발행 도서 중 번역서 비중이 30%를 훌쩍 넘었지만 번역의 질을 담보할 장치는 아직 미비하다. 최근 몇몇 교수와 연구기관이 국내의 낮은 번역 수준을 비판했고 일부 네티즌은 오역 사례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대체로 산발적·개인적 차원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번역 비평을 표방한 첫 학술 단체인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 고려대 교수)가 3일 창립학술대회를 열고 본격 출범한다.

◆ 단순한 오역 비평을 넘어

어문학 교수들이 주축을 이룬 번역비평학회는 번역학 체계 정립과,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반의 번역물 평가기준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번역 실무나 통번역 교육에 초점을 맞춘 기존 번역학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학회 이사인 이영훈 교수(고려대)는 “지금까지 번역은 학문적 활동보다 기술적 작업으로 평가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해묵은 오역시비의 덫에 걸린 번역비평 방법을 다양화·체계화해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회는 번역자의 주체적 해석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번역 이론 발표를 맡은 전성기 고려대 교수는 “번역자는 원텍스트를 정보 차원에서 읽는 것을 넘어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며 작품을 재구축하는 번역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 번역가이자 또 다른 발표자인 정혜용 박사는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가독성은 더 이상 번역의 규범이 될 수 없다”면서 “작품마다 지닌 고유한 논리를 읽어내 자신의 모국어로 되살리는 존재가 번역가”라고 주장했다.

국내 정상급 번역가들도 학술대회에 초청된다. 황보석(영어) 김난주(일본어) 이인숙(불어) 권미선(스페인어) 등 각 언어권 작품에서 손꼽히는 번역가들이 ‘번역 환경과 해결방안’ ‘번역의 어려움’ 등을 주제로 발표하고 참석한 학자들과 토론한다. 평소 번역 환경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던 박상익 우석대 교수와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도 참석한다. 이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번역비평의 대상인 일선 번역자들에게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현장의 여건과 애로사항부터 살피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 번역비평 무크지 발행

학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11월2~3일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어·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는 일찍이 번역 이론과 실무가 발달했고, 특히 퀘벡은 번역비평 부문에서 가장 선구적인 지역이다. 또 학회는 올해부터 1년에 두 차례 정도 번역비평 무크지를 펴낼 계획이다. 학술이사인 조재룡 성균관대 교수는 “번역 관련 대담, 번역비평 에세이 등 딱딱하지 않은 내용으로 꾸밀 예정”이라며 “유명 고전작품의 여러 번역본을 비교 평가하고 신간 번역서를 비평하는 코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현장 일각에서 학회가 공언한 비평 활동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난주씨는 “번역가의 언어 선별은 병아리 감별사의 작업과 닮았다”며 “번역가 개인의 감각적 역량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표정훈씨도 “학계에서 번역을 진지하게 다루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향후 학회의 비평 활동이 열악한 번역현장 여건을 도외시한 채 이뤄진다면 오히려 번역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훈성기자)

담비(07. 02. 05)  번역비평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

번역과 비평이 만난다? 늘 쏟아졌던 번역물이지만, 지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 교양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다. 번역은 반드시 오역논란을 부른다. 번역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불성실하게 이뤄진다는 증거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가는 느낌이다. 출판계의 대필관행과 학계의 표절관행으로 우울한 이 시점에 번역비평을 본격적으로 표방하는 학자들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오는 3월 3일 한국번역비평 학회가 공식 창립되면서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한국문학번역원, 고려대학교 언어문화연구원, 한국학술진흥재단 번역인문학 프로젝트 연구팀과의 공동 개최로 진행될 3월 3일 학술대회는 1부 ‘번역 이론’, 2부 ‘번역 실천’, 3부 ‘번역 현장’으로 구성되어, 국내 번역 현황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아가 번역이론의 필요성과 출판 현황 전반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회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학술원 회원이신 원로불문학자 정명환 교수와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된다. 번역이론 정립을 위하여 마련된 1부에서는 다년간 번역문법과 번역학 정립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전성기 고려대 교수와 파리 통번역대학원 박사로 번역 이론 및 실천에 왕성한 활동을 보여온 정혜용 박사의 발표가 마련되어 있다.

‘번역 실천’을 주제로 마련된 2부에서는 황보석, 김난주, 이인숙, 권미선 등,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번역의 경험과 어려움을 함께 논한다. 한편 3부에 발표가 마련된 표정훈 출판평론가와 박상익 교수는 정확한 진단과 날카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번역 전반의 문제점을 숙고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논객들이다. 이와 아울러 분과별 발표가 진행되기 전, 한국불어불문학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받는 정명환 교수와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의 기조연설, 번역비평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축사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에서는 학술대회와 동시에 학술발표회의 원고들을 수합하여 전문 무크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대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소장학자들의 번역전반에 관한 성찰을 중심으로 무크지를 운영할 것이며, 국내를 대표할 수 있는 번역가들과 번역이론가들의 대담도 기획 중에 있다.

11월 2일-3일 열리는 학술대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주관하여 국제학술대회로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다. 인문학 위기 타개와 번역 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해 10월 고려대학교에서는 번역인문학 국제 학술대회가 개최된 바 있으며,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열리는 11월 국제 학술대회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다 폭넓고 다양한 국ㆍ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 자리에 모을 예정이다.(리뷰팀)

학술대회 세부 일정

09:30-10:00 : 접수

1부 : 개막 행사 (10:00 - 11:20)  사회 : 한대균(청주대)
10:00 - 10:10 : 개회사 - 황현산(번역비평학회장, 고려대)
10:10 - 10:40 : 기조강연 1 - <번역에 관한 몇 가지 고찰>, 정명환(학술원회원)
10:40 - 11:10 : 기조강연 2 - <번역의 정치성>,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
11:10 - 11:20 : 휴식

2부 : 번역이론 (11:20 - 12:40)   사회 : 이영훈(고려대)
11:20 - 12:00 : <번역문학비평을 위하여>, 정혜용(서울대 불문과)
   토론자 : 김윤진(한국문학번역원)
12:00 - 12:40 : <인문학번역과 번역문법>, 전성기(고려대 불문과)
   토론자 : 송태효(고려대 레토릭연구소)

* 12:40 - 14:00 : 중식 (고려대 국제관 1층 교직원식당)

3부 : 번역 실천 (14:00 - 16:40)  사회 : 김재혁(고려대)
14:00 - 14:40 : <우리 번역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 황보석(미국문학 번역가)
   토론자 : 정혜윤(기독교방송국 PD)
14:40 - 15:20 : <일본 문학번역의 함정들>, 김난주(일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유숙자(일본문학 번역가)
15:20 - 15:30 : 휴식
15:30 - 16:10 : <한국문학 프랑스어 번역의 난점들>, 이인숙(한․불문학 번역가)
   토론자 : 고봉만(한길사 기획위원)
16:10 - 16:50 : <스페인어 문맥의 함축적 성격과 번역의 어려움>,
       권미선(스페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송상기(고려대)
16:50 - 17:00 : 휴식

4부 : 번역 출판과 현장 (17:00 - 18:20)  사회 : 조재룡(성균관대)
17:00 - 17:40 : <번역자의 조건들>, 박상익(번역비평가)
17:40 - 18:20 : <출판제도 안에서의 번역>, 표정훈(출판평론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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