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milla Elliott, Rethinking the NOVEL/FILM DEB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p 31~56
2. Prose Pictures (산문 그림)
오늘날까지 산문과 삽화에 대해 범주적 구분은 이어져오지만, 이 장은 이러한 논의(담론)가 무시하고 있는, 산문을 그림으로 삽화를 논평으로 말하는 유비적인 interart 수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1 Prose Painting/Illustration Commentary (산문 그림/삽화 논평)
19세기 영국문학에서 소설을 그림에 대해 유비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이 시기 평론은 그림에 대한 개념으로 산문에 대해 논했다. 소설을 캔버스로, 산문 스타일을 그림 기법으로, 작가를 화가로. 작가들의 실재적이고 시각적이고 경험적인 재현의 방식에 대한 열망이 이러한 유비에 기반이 된다고 비평가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interart 수사와 이론은 당대 지배적인 과학 이론들을 종종 따른다. 19세기 초 interart 유비는 당대 과학 이론인 유기적인 힘의 개념에서 비롯한 상상력의 공유라는 낭만적 이론에 기반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윈이즘에 영향을 받아서 예술이 같은 영역을 놓고 경쟁하는 긴밀히 연결된 종들이라고 인식되었다. 19세기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산문과 그림을 유비로 부착시킴으로써, 소설에서 삽화를 제거하는 것을 정당화시켰다. 산문을 보다 높고 고급한 회화 예술과 연결시킴으로서, 비평가들은 더 낮은 형태의 예술인 삽화의 위로 산문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이러한 비평가들은 삽화를 “논평”으로 만드는 (counter)유비를 야기했다. 이러한 유비와 대항유비는 삽화가 그림적, 서술적 여분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출판에서 삽화를 제거하는데 일조했다.

작가-삽화가 관계에 대한 19세기 두 극단의 예를 살펴보자. 하나는 1827년에 출판된 것으로(35p 그림 4) 작가와 삽화가는 책의 첫머리에 한 책상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면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작가의 위상이 좀 더 높음을 책 표지에 작가의 이름이 더 크게 쓰여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반면에 1890년에 출판된 그림(36p 그림 5)에서 작가와 삽화가는 동등하게 서로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으로(다윈이즘) 그려져있다. 이러한 작가-삽화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William Makepeace Thackeray의 “Vanity Fair”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로 한다. 이는 작가와 삽화가가 동일인이고, 상대적으로 일찍 출판되었으며, 대중성과, 1847년부터 1899년까지의 다양한 판본이 있으며, 수십년에 걸친 다기한 독자의 코멘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산문과 삽화에 대한 태도의 변화, 삽화의 패션, 이론, 기술의 변화를, 산문이 그대로인 것을 통해(산문은 그대로이고 삽화만 시간에 따라 변화했음) 더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덧붙여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문자와 그림 기호 사이의 범주적 구분과 유비에 대해서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2.1.1 Penning the Pencil: Prose Criticism of Illustrations (‘그림’에 대해 쓰기: 삽화에 대한 산문 비평)
“Vanity Fair”에 대한 19세기 초 비평들을 보면, 소설과 그림에 대한 유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Vanity Fair”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빅토리안 소설들 일반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유비는 소설 삽화를 논의하는 언어에 영향을 주고, 제한을 가한다. 즉 소설 서사를 논할 때는 미술(fine arts)의 개념을 쓰고, 소설의 삽화를 논의할 때는 기술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들을 사용한다. 삽화에 대한 평은 그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기술적인 재생산(얼마나 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삽화가 진정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평자의 눈에는 서사에 부수적인 것으로 억압된다. 반면에 서사는 그것이 ‘미술’이 아님에도, ‘미술’과의 긴밀한 유비 속에서 논해진다. 결국 이 책은 산문-미술 논쟁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하면서, 소설-영화 관계의 기원을 파고들면서, 그 관계를 논쟁사를 통해서 재정립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삽화에 대한 생각에는 당대 삽화가 그림(painting 채색)될만한 가치가 있는 구성이라고 당대인들이 생각한 데에서, 삽화와 그림 사이에는 위계적인 질서가 있다는 관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의 “Vanity Fair”에 대한 평론은, 그의 삽화를 산문보다 더 높게 가치평가하거나, 대부분은 동등하게 협력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평론가들은 산문과 삽화의 대립을 부각시킨다. 산문과 삽화의 대립을 통해 산문을 높이고, 삽화를 낮춘다. 삽화가는 고용된 ‘기능공’이 되고 작가는 ‘사상의 기원’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는 19세기 말에 산문과 삽화의 관계에서 산문의 위치를 보여준다. (*소설에서의 산문과 삽화의 관계는 결국 유비적으로 영화에서 화면과 서사의 관계로 대치되고, 결국에는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소설의 우위성으로 연결되는 것? 그러나 영화에서 화면과 서사는 분리되기 쉽지 않다. 화면의 구성이 바로 서사 아닌가? 미장센)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1850년대 후반과 1860년대에 영국 삽화의 황금기가 되어 삽화의 성격이 변했다.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이 평론적 뒷받침을 갖게 된 것은 시간이 쫌 더 지나서였기 때문에, 1860년대 초는 아직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의 평론들은 “Vanity Fair”의 삽화들을 비난했다. 이에 따라 후대에 편집된 “Vanity Fair”은 황금기 스타일의 삽화나 19세기 말의 모방적이고, 실재적이고, 사진과 같은 스타일의 삽화들로 원본 삽화를 대체했다.
반면에 “Vanity Fair”의 원본 삽화와 그 삽화가 따르는 Hogarthian 학파에 대한 옹호가 그들의 회화적 가치를 비난했던 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옹호는 산문-그림 유비에 대한 대항 유비를 지니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원본 삽화들은 그 그림적 속성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적 개념을 통해 살아나고, 이들을 ‘구절’로 만들게 된다. 물론 이러한 대항유비는 산문과 삽화를 동등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삽화에 해당되는 유일한 가치는 문학과 언어에 대한 유비를 통해서만이다. 그들의 미술적 가치는 무시된다. 20세기 평론가들도 이러한 생각을 따른다. 그들에게 원본 삽화는 텍스트의 ‘의미’에 핵심적인 것이다. 이는 그들의 의미론을 중요시 한 것이지, 그들의 미술적 효과를 중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독해는 삽화를 유사-문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산문을 미술에 유비하는 것과, 삽화를 문자적 서사에 유비하는 것이 협동하여 삽화적 패션과 기술을 바꾸었고, 어른을 위해 쓰인 소설에서 사실상 삽화를 추방시켰다. “Vanity Fair”를 살펴보면 어떠한 삽화는 산문과 모순되기도 한다. 이는 미술-문자 서사에 부조화를 가져온다. (삽화 7 - 산문에서는 조가 어떻게 죽는지 말하지 않고 베키가 논의 중에 집 밖에 있는데, 그림에서는 베키가 논의 중에 칼을 들고 커튼 뒤에 음흉하게 서 있다) 이러한 부조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이 해석들은 모두 원본 삽화가 그의 산문을 단지 장식하고 보충하고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고 갈등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황금기 삽화는, 후대의 사진적인 실재 삽화와 마찬가지로 수사적 기능보다 미술적 기능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이러한 삽화들을 서사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따라서 20세기에 “소설”은 순수하게 산문으로 재정의된다. 마치 소설 안에는 삽화가 없었고, 삽화가 소설의 구성요소가 아니었다는 듯이. 따라서 어떠한 소설의 이론도 삽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동 문학이나, 논픽션 책들, 백과사전, 포스터, 광고, 잡지 등등에는 모두 그림이 살아있는데 왜 소설에는 그렇지 않을까?
interart 유비와 adaptation에 대해 반대한 평론들은, 문자와 시각적 예술을 갈라놓으려는 노력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었다. (* 소설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격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소설>이 보인다. 이는 산문과 삽화로 구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각각의 ‘구역’나눔의 과정에서 산문>삽화로 규정되었고, 이것이 나아가 <산문>이 순수이고 <삽화>가 비순수로 규정된다. 데리다 컴백.)

이러한 산문 유비에도 불구하고, 산문은 삽화와의 미술 싸움에서 지고 있다. 1890년대 인쇄 기술의 발전은 사실적인 삽화들로 가득 찬 인쇄된 책들로 넘쳐났다. 한 때 산문 ‘미술’에 비해 삽화가 ‘스케치’로 나타났다면, 이제 산문 ‘미술’은 삽화의 사진적 스타일에 비해서 ‘스케치’로 드러났다. 또한 많은 유명한 미술가들이 책 삽화에 뛰어들면서, 책 삽화를 고급 예술화하게 했고, 심지어 산문을 저급 예술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산문이 완전하고 독립적이게 재현한다는 주장에 대해, Blackburn은 삽화는 단어들이 표현하기 실패하는 지점에서 또는 단어들이 정확한 의미를 소통하기 실패하는 지점에서 비롯한다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문자에 대한 도움으로서 미술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론에서 삽화의 등장은, 산문의 재현적 힘과 자족성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말에, 종종 산문은 삽화에게 밀린다. 특히 대중적인 선물 도서 등에서. 여기서는 제본과 삽화가 중요하다. 이러한 책들은 문자적 서사가 아니라 시각적인 가공품으로서 수집된다. 그림은 ‘illustrate'하지 않고 오히려 단어들을 가린다. 이러한 문맥에서 헨리 제임스 같은 저자-평론가가 소설은 오직 산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설=미술‘이라는 유비가 완전하다고 하였다. 이는 일방향적인 것으로서, 삽화가 산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산문은 미술의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제임스는 산문 미술 유비의 승리를 주장하며, 산문은 삽화가 전혀 없이도 충분히 ’미술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산문-미술 유비를 소설에서의 삽화의 제거를 위해 논의한 것은, 순수한 산문의 미학으로 나아가게 했다. 1930년이 되자 어른 소설에는 거의 삽화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소설 삽화가 줄어들면서, 산문-미술 유비도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는 20세기에 재출간되는 19세기 소설은 문자적 “illustration"이 시각적 삽화를 대신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898년 “Vanity Fair”의 자전적 판은 저자에 의한 삽화와 저자의 초상이 들어있다면, 1943년과 그 이후판은 주석과 서문 비평들이 들어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5장에서 삽화와 평론이 문학에 영화 적용에 대한 연속성을 이론과 실재에서 더 탐구한다.) 삽화를 소설에서 내쫓은 수사가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논의할 때 다시 나타난다, 특히 문학적 영화 수용에 관한 담론에서.
2.2 Prose at the Pictures (그림에 대한 산문)
삽화에 대해 반대했던 헨리 제임스는 사진이 소설을 묘사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는 사진은 산문과 가능한 한 다른 미디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진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하면서 사진이 엄밀하게 소설이나 이야기와 경쟁하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 이미지는 항상 단지 시각적인 상징이나 반향이어야 하고, 텍스트에서 특정한 것을 표현하면 안 된다. 이렇게 삽화를 ‘시각적 상징’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그 미술적 성질을 그 상징적 기능에 부수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반향’이라는 것은 음성적인 산문의 사후에 파생되는 청각적 여파로 만드는 것이며, 텍스트 안에서 특정한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반향은 점차 사라진다. 이러한 삽화보다 사진에 대한 선호는 제임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였다. 사진은 자연과 이의 재현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이었다. 사진에 비하면 모방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도 스케치로 나타날 뿐이었다. 그러나 제임슨이 사진이 산문 소설이 시각 예술보다 미술적 우월성을 유지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단시안적이었다. 산문이 책 삽화와의 대결에서 이겼을지 몰라도, 사진과 긴밀한 관계에 있고 후예인 영화는 산문의 미술적 주장에 대해 심지어 더 만만찮은 라이벌이 될 것이었다. 움직이는 사진과 편집의 통사론은 영화에게 산문과 라이벌인 서사적 능력을 더해주었다. 영화 초창기의 평론들은 문학과 영화 사이의 서사적 라이벌 관계를 확인시켜준다. 20세기 초에 문학을 영화한 것들이 삽화가 든 책들을 대체하였다. 심지어 필립 제임스는 단지 문학을 영화한 것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가 삽화가 든 문학을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초창기 영화 평론가들은 삽화가 든 소설과 연극을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론들은 문학을 단어로 영화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세 개의 혼합된 서사적 예술 형식으로 보았다. 삽화가 든 소설, 공연되는 연극, 자막 달린 영화.
1920~30년대 산문 작가들은 1900~10년대 작가들이 삽화가 산문을 위협한다고 느꼈던 것처럼 영화가 소설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30년대에 피터제랄드는 이러한 위협을 인식하면서, 영화는 이미지에 단어들이 복속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단어를 이미지에 복속시키고, 소설은 이미지를 단어에 복속시킨다. 이러한 영화를 모더니스트 산문 작가들은 자신들의 글쓰기에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미술적 영감을 버리는 것으로 영화의 우월한 미술적 능력을 받아들였다. 소설은 외부적 행동에서 내부적 생각으로, 플롯에서 캐릭터로, 사회적 실재에서 심리적 실재로 나아갔다. Esrock은 문학이 이제는 심지어 심리적 이미지마저도 벗어나서 산문의 추상적인 재현적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평적 경향은 고급 근대 소설은 영화화될 수 없다는 널리 퍼진 주장과 함께 간다. 이는 소설과 영화의 독립적인 영역을 만든다. 소설은 미술적이고 연극적인 영감에서 물러나서,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 (* 박형서의 소설로? 혹은 돈없고 빽없는 옛날 이창동으로?)


이에 버지니아 울프는 “미술”에서 기존 산문 미술 전통에 반대하고 서사적 미술 전통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그는 문자와 미술적 측면의 분리를 요구한다. 그녀는 또 다른 글인 “영화”에서 영화를 시각적 예술 전통에 위치시키고, 산문 소설과 대비하고 대조한다. 그녀는 시각적 예술을 본질적으로 뇌와 떨어진 눈 기능과 동일시한다. 영화 관객들은 20세기의 야만인으로서 눈으로 스크린을 핥으며 뇌는 잠자고 있다. 미술적 효과를 바라는 작가는 다리가 없는 사람이고, 서사적 효과를 열망하는 미술은 우스꽝스러운 공연하는 개라면, 울프에게 영화는 불구인 사람과 훈련된 동물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녀는 문학을 영화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문학은 뇌에 해당하지만 영화는 눈에 해당하여, 관객은 문학을 영화한 것을 볼 때는 이 둘 다를 쓰려고 하다가 찢어지고 만다.

후대의 논의들도 옛날의 문자/시각 라이벌을 영화에 대응시키려고 하며, 예술간 adaptation을 비난함으로서 interart 유비를 제거하려고 한다. 문학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공격은 소설 삽화에 대한 공격에 쓰였던 수사에서 비롯한다. Orr은 문학을 영화화 한 것을 ‘사진-책’이라고 하며 이러한 ‘사진-책’은 그 자신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힘을 도상적으로 보여줄 뿐이라고 한다. 이는 텍스트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힘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삽화가 든 책에 대한 역사가들은 산문을 파는데 삽화가 힘이 있음을 증명했다. 영화 원본 책의 판매도 유사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영화나 삽화가 소설과 경쟁해서 문학을 없애버릴 것이라는 작가의 우려와는 달리, 소비자들은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소비하고 싶어한다. 소비자들은 하나의 분리된 면에만 갇혀있지 않다, 오직 아카데미와 예술가들만 그러하다. 영화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림-책’이 아니라, 소설과 소설을 받아들이는 영화가 함께 ‘그림-책’을 구성하고, 소비자들은 예전에 삽화가 든 책들을 구입했듯이, 이를 구입한다. 영화를 소설화 하는 것에도 마찬가지 원칙이 통용된다.


연극에서 수용된 것들도 흥미로운 intertext를 형성한다. 19세기에는 소설을 연극화 한 연극의 사진이 소설 삽화를 종종 대체한다. 20세기와 21세기에는 영화와 티비 스틸이 소설 삽화를 대체하는 것처럼. 이러한 대체는 위와 같은 수용이 삽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산문의 자리는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내포한다. 또한 스틸은 연기와 움직이는 이미지를 고정시킨다. 이 스틸은 움직이는 배우들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대화를 침묵시켜서, 아이들로 하여금 산문에 고정시킨다. 역설적이게 이러한 출판 작업은 새로운 혼합을 만들면서도, 소설과 영화를 각각 단어와 이미지로 양분한다. 이들은 영화를 순수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소설에서 삽화를 제외하여 순수한 단어들로 만든다. 그들은 결코 영화의 단어들이나 소설의 삽화를 재현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이 단어로 축소되고 영화가 정적인 이미지로 변화되면, 예술 내적인 단어와 이미지 교환이 가려진다. 이러한 내부 예술의 동학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내부 예술의 단어 이미지 역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얻기 힘들다.
* 이러한 Kamilla Elliott의 분석은 흥미롭다. 우리가 지금 <소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실상은 삽화와 산문의 분리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의 배경이 되는 논쟁들을 재구성함으로서, 논쟁의 배경까지 추적하는 것.
기원 -> (논쟁) -> 현재 라고 할 때, 그 논쟁의 배경을 추적하는 작업. 이에는 분명 “작가”의 탄생과 문자가 그림보다 우월하게 인식되어진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존재한다. 근대국가형성과 문학이 긴밀히 연결되는 과정에서, 문자>그림이 조선의 경우 성립되었던 것일까? (황호덕 선생님의 책에 대한 리뷰랑 목차만 봤는데, 화폐-문학이 근대네이션 성립에 기능하였다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신소설 연재 당시부터 시작해서 20~30년대 문예지에 실렸을 때, 단행본에 실렸을 때에 대한 비교 작업이 요청된다.(이영아 선생님, 천정환 선생님이 잘 아실 부분^^) 우리는 또 문인화의 전통이 있었기에, 이것이 어떻게/왜 굴절되고 단절되고 변종되었는지 흥미로워 진다.

천정환 선생님 연구에서 얼핏 기억나는 것은, 근대의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가 ‘생식기 도해’같은 거였다는 점.(책장에서 찾기 귀찮아서 기억에 의존함 -_-;) 분명 ‘그림책/빨간책’이 많이 팔렸다. 대중이 ‘삽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교육에 의해 억압되는 과정.(분명 현대 분과과정에서도 연구하기 쫌 난감한 부분이 있다. 박태원 단행본 소설 삽화의 서사적 기능 연구? 이 또한 Elliott에 따르면 삽화를 ‘서사’로 축소-변질 시키는 것. 전체 ‘텍스트’(Elliott은 이것이 둘을 같은 것으로 환원해서 싫어한다고 하지만)연구라는 것.) 이것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등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