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 시공 로고스 총서 26 시공 로고스 총서 26
피터 싱어 지음, 연효숙 옮김 / 시공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21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학부에 입학한 나로서는, 강의실에서 선생들이 헤겔을 논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선생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다는 것도 놀랄만 했다. 저 바깥에서는 맑스도 이미 오래전에 무시당하기 일수였는데, 헤겔이라니! 나는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 구절을 외우며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듣고는 했다.

그런데 맑스에 점점 매료되면서, 헤겔을 읽어볼 결심을 했다. 아마 학부 2학년때 쯤일 것이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국역 정신현상학이었다. (새로 나온 한길사판은 아직 없었다) 혼자서 읽어볼 생각을 했는데, 두통이 왔다. 말 그대로 '실재적'인 두통이 생긴 것이다. 문장들은 의미를 알 듯 말 듯 했고 엄청나게 길었다. 의미를 아예 모르면 몰라도, 무언가 의미가 잡히는 듯 하면서 안 잡혀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렇게 헤겔을 포기하게 되었고, 나는 학부를 졸업했다. 학부때 헤겔을 집어들게 된 것은, '개설서'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내가 다닌 대학에서 '개설서'를 읽는다는 것은 무언가 '사기'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 듯 하다. 교수들은 모두 '원전'을 강조했고, 그 '원전'이라는 것은 원어로 된 그 사람의 책을 의미했다. 철학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라틴어를 1년여 공부했고, 한문을 2년동안 공부했는데, 그렇게 되니 졸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운 후에, 불어와 독어를 공부하려고 했던 나는 전공 공부와 대학원 시험에 치여, 영어와 한국어로만 책을 읽게 되었다. 이제 석사논문도 쓴 입장에서, '개설서'에 대한 거리감이 오히려 줄었다. 뭐랄까, 본격적으로 헤겔을 읽기 전에 개설서라도 읽어보자고 마음 먹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무식(?)하게 돌진하기 보다는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이용하고 마음 편히 읽자는 마인드 ^^;

어쨌든 헤겔의 <법철학> 부터 읽고 <정신현상학>으로 (국역과 영역판을 참조하고, 독어를 잘하는 근대철학 전공자와 함께) 넘어가기로 결심한 나는, 이 피터 싱어의 <헤겔>을 집어 들었다. 로고스 총서는 꽤 괜찮은 개설서이다. 그리고 피터 싱어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당연히 개설서로 이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국역은 중간중간 읽기 힘든 구절들이 있었지만 이해할 만 했고, 피터 싱어의 서술은 헤겔의 사상을 쉽게 설명하는 것 같다. 앞으로 헤겔을 읽어나가는데 전체적인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피터 싱어의 '해석'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할테지만, 딱히 그의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들어간 부분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헤겔을 맘 먹고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또는 왜 이리 사람들이 '헤겔, 헤겔'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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