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냉이꽃
하늘은 무슨 땡볕을
그리 달구어 내리쬐이던지
땅은 또 떡시루를 연 듯
뜨거운 입김을 뿜어 올리던
한여름 그 밭고랑에 나가 앉으시던
어머니, 바로 그맘때쯤인
신사년 윤유월 스무사흘 새벽
내몰라라 잘도 삭히셨던
가시방석보다 더 쓰리고 아픈
망백의 세월 훌훌 털어버리시고
언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는
지아비를 찾아 당신은 떠나셨습니다
저 조선왕조를 한몸으로 지키려던
거유 면암*의 문하에서도
으뜸이던 장후재학사의 셋째딸로
타고난 복을 누렸을 만도 한데
어쩌다 나라 빼앗긴 세상을 만나
지아비 섬길 날도 모두 빼앗기고
한시도 마를 날 없는
슬픔의 긴 강을 건너오셨습니다
텃밭에서 이른봄부터 늦여름까지
당신의 손끝에 무수히 뽑히던 냉이꽃풀
그것들은 당신의 얼굴에서 내리던 것이
땀방울인 줄만 알았겠지요
이 못난 아들도 알아채지 못해쓰니까요
누군가 당신의 빈소에 와서
냉이꽃 할머니가 돌아가셨네요
짧은 한 마디에
당신은 고향집 텃밭에 앉아 계셨습니다
*면암: 최익현의 호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