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큰 기대 않고 집었다가 든든해져서 덮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역자의 말대로, 크건 작건 나를 변화시키고, 무언가를 결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중간점검 계기 삼기 좋은 책이다. 자신만의 방법론을 개선하는 데 소용되는 대목을, 어딘가에서는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가 책에 소개된 일본 정보처(기관, 웹사이트, 지역)에 대응되는 한국 정보처를 주석으로 달아둔 점도 칭찬하고 싶다(2009년 당시로서는 최선의 정보였겠으나, 간혹 웹사이트 등이 없어지거나 주소가 바뀐 경우도 눈에 띈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지, 아직 재고가 소진되지 아니하였다. 후루룩 읽어 치우고 '청어람'하시길...

 

  여담이지만, 그의 책(『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을 15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지금껏 그의 이름을 다치'나바' 다카시로 잘못 읽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일본어에 무지했던 탓이다. 立花(ばな) 隆 혹은 橘(たちばな) 隆志이다. たちなば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한국어 사이트 중에 같은 오류를 범한 페이지가 '아주 많이' 발견된다.

 

  그의 저작들 중 번역된 것은 다음과 같다. 최근(2017. 1. 18.)에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立花隆の書棚)』가 648쪽짜리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출간일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에 따라 대략적으로 분류해 보았다. 청어람미디어의 책이 많다. 표지 이미지를 구하지 못하였지만, 신한출판사에서 나왔던 『뇌사』라는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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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홍신 엘리트 북스 6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 지음, 최규남 옮김 / 홍신문화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25시.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메시아가 강림한다 하더라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구체적 인간을 추상적 범주로 전락시키는 서구 기술 문명과 그 몰락.

 

  번역이 매끄러워 몰입이 수월하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트라이안이 나치에 항거하는 의미로 수용소 규정을 위반하여 철조망을 향해 다가가다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25시』는 2000년대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주도한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의 목록에 들지 못하면서 깨끗이 잊힌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은, 1952년 한국에 소개된 이래, 1980년대까지 스테디셀러였다. 1999년 한겨레에서 전문가 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세기 걸작'에서 13위에 선정되었고(아래 표 및 "독자와 함께 정리하는 20세기 20대 뉴스 7. 세기의 걸작 '모던타임스', '예스터데이' 첫손", 『한겨레』(1999. 11. 19.), 17면  참조. 전문가 명단은 위 링크에서 1999. 11. 12. 기사 18면 참조), 2000년 KBS영상사업단이 <TV문화기행, 문학편 6: 게오르규, 25시의 증언>을 제작·방영하였을 정도로 적어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회자되었다.

 

순위 제목 작가 장르
 1 모던 타임스 찰리 채플린 영화
 2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미술
 3 예스터데이 비틀스 대중가요
 4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문학
 5 1984 조지 오웰 문학
 6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
 7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
 8 이방인 알베르 까뮈 문학
 9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문학
11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문학
12 시민 케인 오손 웰스 영화
13 25시 비르질 게오르규 문학
14 굿모닝 조지 오웰 백남준 미술
15 피아노협주곡 2, 3번 라흐마니노프 클래식
16 변신 카프카 문학
17 마이웨이 프랭크 시내트라 대중가요
18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문학
19 로미오와 줄리엣프로코피에프 클래식
20 황무지 T. S. 엘리엇 문학

 

  『25시』는 원래 게오르규가 루마니아어로 써두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1949년, 프랑스 Plon 출판사에서 Rita Eldon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루마니아어로는 2004년에야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1950년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송이 전란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번역한 일본어 중역본이 1952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다음과 같은 번역본들이 이어졌다(국가자료종합목록에 따라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 위 목록 자체에 입력상 오류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 반드시 망라적이라거나 정확한 자료라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김인환의 번역본은 수없이 많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또 나왔다; 알라딘에서도 검색되는 것은 53번 이후의 것들이다.

 

1. 김송 역, 『25시』, 동아문화사, 1952; 김송 역, 『25시』, 청춘사, 1952~1960 (일본어 중역본)

2.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정음사, 1959

3. 『세계문학선집 5: 게오르규』, 합동, 1964

4. 『세계전후문학전집 3: 불란서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6

5.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⑦ 二十五時」, 『명랑』(1966. 11.)에 발췌 소개.

6. 원응서 역, 『25시』, 창구사, 1967~1970

7. 『세계문학전집 4』, 삼성출판사, 1969~ (김동리, 양병탁, 이어령 등이 편집위원으로 관여)

8. 이군철 역, 『게오르규 25시/오오웰 1984년』, 동화출판(공)사, 1971~1977 (영어 중역본)

9. 한용우 역, 『25시』, 흥문도서, 1972~1978

10. 김송 역, 『세계명작장편소설 二十五時』, 성공문화사, 1972~1989 (위 1번 참조)

11. 김인환 역, 『세계전쟁문학대전집 3: 25시,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삼진사, 1972 (프랑스어 번역본, 하인리히 뵐은 곽복록 역)

12. 『세계의 문학대전집 32: 25시』, 동화출판사, 1972~1981 (임인규 편)

13. 『세계명작 순례』, 관동출판사, 1972 (천병식 편)

14. 『세계문학명저 100』, 청산문화사, 1973

15. 『세계문학전집 25』, 삼성출판사, 1974

16. 강인숙 역, 『25시, 키랄레싸의 학살』, 삼성출판사, 1974~1977 (프랑스어 번역본)

17. 원응서 역, 『25시 상/하』, 삼중당문고, 1975~1993 (위 6번 참조)

18. 김인환 역, 『25시/고원의 사랑, 선로지기 티일』, 삼진사, 1976~1977 (루이제 린저는 이영구, 하우프트만은 지명렬 각 번역)

19. 『신선세계문학전집 17: 25시』, 삼진사, 1976

20. 김인환 역, 『25시』, 동서문화사, 1978~1987

21. 강인숙 역, 『25시』, 문학당, 1978 (위 16번 참조)

22. 김병걸 역(?), 『25시』, 대산, 1978~2006

23. 김인환 역, 『25시』, 태극출판사, 1980

24. 김인만 역, 『25시』, 한영출판사, 1981

25. 백승철 역, 『25시』, 지성출판사, 1981~1982

26. 이상근 역, 『25시』, 서한사, 1981

27. 윤형복 역, 『25시』, 백양출판사, 1982~1989

28. 한용우 역, 『25시』, 삼육출판사, 1982~1989 (위 9번 참조)

29. 김병린 역, 『25시』, 문학당, 1982

30. 김병린 역, 『세계문학대전집 25: 25시』, 삼성당, 1982~1993

31. 이상근 역, 『25시』, 민들레, 1983~1984 (위 26번 참조)

32. 김인환 역, 『25시』, 학원출판공사, 1983~1985

33. 백승철 역, 『25시』, 시대문화사, 1983 (위 25번 참조)

34. 강인숙 역, 『25시/마닐라 로우프』, 삼성출판사, 1985~1992 (위 16, 21번 참조, 베이요 메리는 이인웅 역)

35.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 1986~1994

36.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중앙문화사(중앙미디어), 1987~2006

37. 이광식 역, 『설국/25시』, 교육문화사, 1988~1990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윤정국 역)

38. 김인환 역, 『25시/변신, 유형지에서』, 중앙문화사, 1988 (카프카는 곽복록 역)

39. 최명 역, 『한 권의 책: 25시』, 학원사, 1988~1990

40. 김인환 역, 『학원세계문학전집 30: 아Q정전/봇짱/나생문/25시』, 학원출판공사, 1988~1996(루쉰 이가원, 나쓰메 소세끼 김영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김선영 각 번역)

41. 『25시』, 자유문학사, 1989

42. 김인환 역, 『벨라주 세계문학대전집 29: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영신?)문화사, 1990 (위 35번과 같은 것?)

43. 김인환 역, 『25시』, 어문각, 1991~1994

44. 김지원 역, 『25시』, 고려출판문화공사, 1992

45. 김인환 역, 『25시 외 4』, 동서문화사, 1992

46. 김인환 역, 『25시』, 마당, 1993~1997

47. 김인만 역, 『25시』, 나나, 1993 (위 24번 참조)

48. 김병걸 역, 『25시』, 여명출판사, 1994 (위 22번 참조)

49. 김지혁 역, 『25시』, 삼성기획, 1995

50. 김인환 역, 『25시/인간의 대지/어린왕자/좁은문/말테의 수기』, 학원출판공사, 1995~1997 (생텍쥐페리 안응렬, 지드 이휘영, 릴케 염무웅 각 번역)

51. 김병걸 역, 『25시』, 현대출판사, 1995~1996 (위 22, 48번 참조)

52. 김병걸 역, 『25시』, 삼성당, 1996~2002 (위 22, 48, 51번 참조)

 

53. 김양순 역, 『25시』, 일신서적, 1986~1994

54. 최규남 역, 『25시』, 홍신문화사, 1992~2012 (필자가 가진 책은 1992. 4. 30. 1판의 1995. 2. 10. 6쇄)

55. 김인환 역, 『25시』,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1992~1997

56. 김지혁 역, 『25시』, 육문사, 1995~2008 (위 49번 참조)

57. 나희영 역, 『25시』, 청목, 1993~2004

58. 이선혜 역, 『25시 상/하』, 효리원, 2006~2007

 

  게오르규는 한국에서, 앤써니 퀸이 주연한 영화의 흥행에다(극장에서 4번 넘게 상영되었고,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되었다), 1974년, 1976년, 1984년, 1987년 방문 당시의 '립서비스'("서구와 달리 조화의 덕을 갖춘 한국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초가지붕, 분묘 예찬과 홍익인간, 화랑, 흰옷, 선비, 태극기, 도자기에 관한 언급, 석굴암·불국사 방문) 등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친한파 지식인으로 추앙되었다. 게오르규도 한국을 십분 활용하였다. 그는 첫 방한 때부터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공표하였고, 그 덕분에 호감을 사 위와 같이 여러 번 초청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에서 입지까지 다질 수 있었다(이어령과 문학사상사는 '세계지성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기획하여 게오르규를 초청하는 등 그를 '루마니아의 양심'으로 밀었다. 창비의 백낙청은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을 내세웠다). 민중진영에서도 게오르규를 '약소민족의 양심적 지식인, 저항작가'로 이해하여 반정부적 참여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일찍이 김수영은 이어령과의 순수참여논쟁 무렵, "24시간 중 단 한 시간이나 단 10분만이라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적과 맞설 수 있다."는 글을 썼고{「시의 '뉴 프런티어'(1961)」,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241}, 영화 <25시>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하였다{「삼동유감(1968)」,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130~131}. 김성한은 1982년 『바비도』를 내면서 소설 「난경」의 제목을 「24시」로 바꾸었다. 시인 배태인은 「내 25시적 삶」, (신경림 외), 『작가의 편지』, 어문각, 1983, 176~177을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 루마니아를 침공한 소련뿐 아니라, 연합군과 미국까지도 기계적 관료주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그의 작품과는 달리, 게오르규 자신은 루마니아 파시스트 정권의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극렬한 반공주의는 독재와 부정부패의 폐해를 직시하는 눈을 흐렸고, 기계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산업화 경쟁을 상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소련보다는 독재가 낫다'면서 어용적 발언을 쏟아냈는데,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일컬어 "동양의 현인"에 "위대한 군인"이며, "정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격찬하였는가 하면, 『한국찬가』에서는 자신이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까닭은 그 군대 때문"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누군가의 조종으로 맹목적으로 동원된 소요사태'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게오르규의 뜨악한 발언은 87년 항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엉망진창인 그의 삶 탓에,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별점을 주기가 주저된다).

 

  한국문단은 이러한 사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했다. 1990년대에도 많은 이들이 그와의 인연, 추억을 회고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겉으로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애환을 공유한다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서구의 권위에 굴종하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덧. 이상은 이행선, "게오르규의 수용과 한국 지성사의 '25시' -전후문학, 휴머니즘, 실존주의, 문명비판, 반공주의, 어용작가-", 한국학연구 제41집(2016. 5.), 9~41을 크게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다.

"1938년 저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헝가리의 루마니아인 수용소에, 1941년에는 독일에 있는 헝가리인 수용소에, 1945년에는 미군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에 다하우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13년간의 수용소 행활을 끝내고 나는 열여덟 시간 동안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로 끌려왔습니다... 이것이 1938년부터 오늘까지 지내온 길입니다. 수용소, 수용소, 수용소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 요한 모리츠(389쪽)

"진보의 최후 단계에 접어든 서구문명은 개인의 존재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마련이오. 문명이 개인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라오. 이 사회는 개인이 지닌 약간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않거든. 개인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은 이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요. 죄없이 갇혀 있는 당신이나 그밖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 그들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단 말이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카테고리의 무한히 작은 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지. 예를 들면 당신은 독일 영토 내에서 체포된 한 사람의 적국 시민에 지나지 않소. 바로 이것이 서구의 기술사회를 한결같이 똑같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특질이지. 또한 바로 그것이 그들 앞에 당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전부인 거요. 이 사회는 당신을 그러한 특징으로밖에 인정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곱셈, 나눗셈, 뺄셈, 덧셈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소속된 그룹 전체로서의 당신을 대우하는 것뿐이오. 당신은 루마니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 작은 분자가 붙들린 셈이지. 체포된 원인-또는 죄-은 당신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데 있소."

(이어서) "서구사회는 인간을 기술의 견지에서 보고 있소. 즉 살과 뼈를 가진 인간, 기쁨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중략) 그래서 누군가를 체포한다든가 죽이는 경우에도 이 사회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을 체포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관념을 처벌하는 거요."

- 트라이안 코루가(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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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별점 다섯 개를 주러 왔다가 책 표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보고 별 네 개를 거둔다. 출판사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http://www.amazon.com/The-Valley-Masks-Tarun-Tejpal/dp/9350290464/ref=sr_1_1?ie=UTF8&qid=1346113053&sr=8-1&keywords=the valley of masks

 

  한국에서 변사자에 대한 부검은 판사의 영장을 받아, 검사의 지휘 하에, 주로 경찰관이 위임을 받아 집행한다. 이들은 모두 비전문가들이다. 검시에 참여하는 의사마저 법의부검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영미법계에는 검시를 전담하는 직책인을 두는 이른바 '전담검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시관(coroner)을 두고, 미국에서는 선거로 선출하는 법의관(medical examine)을 둔다. 미국에서 일반의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에 한하여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고,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법의관에게 사체를 넘긴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검시교육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실을 개설한 대학은 불과 5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207쪽).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특정 직종의 공무원이 검시업무를 겸임하는 '겸임검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법제도 측면에서는 (일본을 통하여)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의학 교육 측면에서는 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당시의 시찰단은 미국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없는 것을 굳이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교육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바람에 우리는, 미국과 같은 법의관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된 법의학 교과가 없는 채로 6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2012년 책 출간 당시 43개 의과대학 중 12개 대학에만 개설). 그 사이 억울한 죽음들도 수없이 묻혀 보냈다(단적으로, 몇몇 유명 연예인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을 보라).

 

  초동수사에서부터 법의학 전문가가 개입하도록 하는 검시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비전문가인 수사기관이 보는 외관만으로는 결코 범죄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부검은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범죄에 의한 사망일 때 비로소 실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반대로, 전문가가 부검을 통하여 사인을 명확히 규명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범죄성이다. 법의학 전문의를 충분히 양성하여야 하고, 법률가들 역시 법의학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여야 한다. 범죄수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검시 외에도 전염병 사망, 행려 사망, 사인불명의 병사, 신생아 및 임부의 사망 등과 같이 보건정책상 필요한 부검에 대하여 '행정검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우리 법과 연계성이 높은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끝으로,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두벌주검'에 대한 인식 전환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환자가 생존 시 앓고 있던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였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와 같은 것은 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 시정과 개선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학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다른 나라 통계를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법부검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로막히기 일쑤이다. 유럽에서는 늦게는 18세기 초경까지도 '용의자가 진범이라면, 자신이 가해한 피해자의 사체를 보거나 접촉하는 순간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거나, 해당 용의자의 얼굴 표정과 몸의 거동이 달라진다'는 식의 '관법 棺法 Baarrecht'에 의거한 검시가 이루어졌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이미 1438년(세종 20년)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책 20쪽에 따른 것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동일하나, 두산백과 등에는 1440년(세종 22년) 출간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1456년(세종 38년) 『심리록 審理錄』이 간행되고, 1792년(정조 16년) 앞의 책을 증보한 『증수무원록 增修無寃錄』을 편찬하는 등 수백 년을 앞선 과학적 검시기술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미 법의학을 다룬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들만 최근작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미술작품과 연계한 저서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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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대우고전총서 33
제러미 벤담 지음, 강준호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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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이 책이 거의 읽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가 서문에 쓴 것처럼, 공리주의는 그것이 사상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서양 사상 전반에 대한 탐구가 고르게 진척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서양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본격적 음미는 생략된 채 그에 대한 비판론만 유행처럼 잔뜩 소개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 쪽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정작 공리주의의 본류인 벤담은 갖은 억측과 편견 속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다. 흔히 벤담과 밀을 양적/질적 공리주의자로 구분하는 교과서적 도식이 통용되고, 그리하여 벤담은 쳐다볼 가치도 없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공리주의자로 치부되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벤담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낸 결론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명분'과 '의리'가 논쟁의 구도를 항상-이미 왜곡하여 그 어떤 합리적 대화와 타협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국내의 논의 지형에서, 쉬운 결론을 내지 않고 개념들 간의 이동(異同)을 엄밀하게 구별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제를 수학적 혹은 과학적 태도로 차근차근 추려나가는 벤담의 방법론과, 그 근저에 깔린 영국적 경험주의는, '균형잡기' 차원에서라도 적지 않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윤리철학적 인상을 강하게 주는 책의 제목과 달리, 『서론』은 오히려 '형법총론' 교과서에 가깝다('행위론'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벤담의 구상은 도덕과 법 사이의 경계, 나아가 다른 법들, 특히 민사법과 형법 사이의 경계선을 찾는(긋는)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서론』에는 마지막 장인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작은 단초만이, 그것도 주로 각주에나 제시되어 있고, 벤담 스스로도 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끝내 얻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영미법 이론의 발달·전개 양상을 바탕으로, 그 결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감히 단언컨대, 벤담이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일차적 목표는, 그보다 조금 앞선 체사레 베카리아와 마찬가지로, (도덕과 민사법으로도 충분하여) '불가피하지 않고 불필요한 형벌의 최소화'였을 것이다. 형벌도, 벤담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므로, 필요 최소한도의 비례적 수준을 넘는 모든 형벌은, 악(惡)이고 잉여이다. 벤담은 이에 대한 합의를 설득력 있게 이끌어 내기 위하여,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차곡차곡 끈덕지게 쌓아올리고 있다. 벤담의 저작 전체를 들여다 보지는 못하였지만('벤담 전집'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파놉티콘』에 관한 리뷰 http://blog.aladin.co.kr/SilentPaul/9084684 참조), 논의의 전개 속도와 벤담이 서문에 밝힌 야심찬 출판 계획[민사법-사적 분배법, 형법, 절차법(민·형사소송법의 통합), (공용수용과) 보상, 헌법-공적 분배법, 국회법과 정당법(헌법 문제의 절차법), 국제법, 재정학(재정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정치경제학(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법학의 용어와 방법에 대한 일반이론 등을 망라하고 있다]에 비추어 볼 때,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 단지 『서론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 만큼(이 책은 벤담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보우링 전집의 첫 권에 놓인다), 그리고 고작 '형법전' 입안의 기초가 될 만한 내용만을 다루는 데 그쳤을 만큼, 벤담의 계획은 방대한 것이었다(일생을 '파놉티콘' 구상과 실행에 바치느라 그 계획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양극화'와 '위험사회화'로 인한 '배타주의'의 영향으로, 함무라비 법전 시절에 이미 극복한 과격하고 원시적인 '응보주의'가 다시금 가장 유력한 형벌이론이 되어가고 있다.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서론』은,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벤담은 오해의 근원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명제만으로 노예제와 사형제 철폐, 여성의 투표권과 이혼청구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같은 진보적인 개혁안들을 이미 19세기 초에 도출해 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벤담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자의 인권이 얼마든지 무시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인 결론을 낸 적이 없었다(시대의 한계 탓인지, 벤담의 위법행위 목록은 여전히 상당히 도덕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벤담은 오히려, 언뜻 내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어떻게 나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숙고하게 하고, 설득하려 했다. 벤담의 논증 방식은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목이 많다. 벤담주의는 어쩌면, 전 지구적 우경화와 인민주의의 파고를 헤쳐 나가는 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은 더 많이 번역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벤담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변호사이고 법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용어는 기본적으로 법률용어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서들은 모두 철학 전공자들에 의하여 번역되었다. 그러다 보니, 법학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용어 구사가 간간이 눈에 띈다. 벤담의 진의가 보다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더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벤담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업을 소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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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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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담은 자신의 이상을 실험하기 위하여, 프랑스 혁명으로 개방된 개혁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영국의 관습적 보수주의와는 대조되는 '거대한 전환'에 매혹되었다. 벤담은 다양한 주제에 관한 논평과 조언을 담아, 프랑스 제헌의회에 많은 편지를 보냈다. 이 책이 번역한 『파놉티콘』 프랑스어 판도, 벤담이 영어로 쓴 파놉티콘에 관한 여러 글들의 핵심을, 1791년에 친구인 에티엔 뒤몽 Pierre Étienne Louis Dumont과 함께 축약·번역하여 프랑스 국민의회에 보낸 것이다. 그와 같은 열정적 노력에 대한 응답으로, 벤담은 1792년 프랑스 명예시민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벤담은 이내 프랑스혁명에 대한 지지를 거두게 된다. 그는 '자연적 정의'라는 것의 논리적 토대가 약하다고 보았다. 그는 '공리의 원칙' 이외의 다른 어떤 원칙들, 예컨대 금욕주의, 공감(반감)의 원칙과 같은 것들은(벤담에 따를 때, '정의'는 공감원칙의 변형에 불과하다), 자칫 '지배자 한 사람의 최대 행복, 혹은 지배계급의 최대 행복'에 복무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파놉티콘 이야기로 돌아와서, 벤담은 감옥을 사회 개혁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1786년부터 1813년까지, 강박적이라 할 정도로 파놉티콘의 구상과 실현에 집착하였다. 아버지의 유산까지 모조리 쏟아 부었지만, 결국 사업은 실패하고 그는 파산하였다. 영국 정부까지 파놉티콘보다는 완벽한 개인별 분할 수용을 위주로 하는 미국 펜실베니아 모델을 채택하기에 이르고, 벤담도 파놉티콘에서 손을 떼게 된다. "나는 더 이상 파놉티콘에 관한 서류에 눈을 돌리기가 싫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숨겨놓은 서랍을 여는 것과 같다."

 

  생전에 저술을 정리하여 출판하는 데까지 신경쓰지 못했던 벤담은 영국 정치가이자 가까운 동료였던 John Bowring(1792~1872)에게 자신이 쓴 원고의 편집과 출판을 일임했다. 보우링이 편집한 『The Works of Jeremy Bentham』(Edinburgh: Tait, 1843)은 11권짜리이다. 위 책 148쪽에는 13권짜리라고 써있으나, 의문이다. 위 전집은 http://oll.libertyfund.org/titles/bentham-works-of-jeremy-bentham-11-vols에서 원문 전체를 편리하게 볼 수 있다. 일부는 구글북스에도 전체 공개되어 있다. 그 중 4권에 「파놉티콘 혹은 감시의 집 Panopticon or the Inspection-House」(1787, 단행본 링크는 https://books.google.co.kr/books?id=NM4TAAAAQAAJ&dq=inauthor%3A%22Jeremy%20Bentham%22&pg=PP3#v=onepage&q&f=false. 뒤에 설계, 건축 설비와 기술 등에 관한 대단히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두 편의 후속편postscript이 실려 있다), 「Panopticon versus New South Wales: or the Panopticon Penitentiary System and the Penal Colonization System, Compared」(1802)가 수록되어 있고, 8권에 파놉티콘의 '학교' 판 확장모델이라 할 수 있는 '크레스토마시아'에 관한 글 「Chrestomathia: Being a collection of papers, explanatory of the design of an institution proposed to be set on foot under the name of the Chrestomathic day school, or Chrestomathic school, for the extension of the new system of instruction to the higher branches of learning, for the use of the middling and higher ranks in life」(1816)가 수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벤담의 저작 다수를 누락한 Bowring 판 전집에 대한 대안으로(보우링의 아마추어적 편집 실력에 대해서는 악평이 무성하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Bentham Project'에 기반하여 J. H. Burns(1961-79), J. R. Dinwiddy(1977-83), F. Rosen(1983-94), F. Rosen and P. Schofield(1995-2003), P. Schofield(2003-)가 편집자로 참여하고 있는 『The Collected Works of Jeremy Bentham』(London: Athlone Press/Oxford: Clarendon Press, 1968-)를 참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설명은 다음 위키피디아 링크도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The_Collected_Works_of_Jeremy_Bentham). 1968년 1권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4권이 출간되었고, 총 80권 정도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 낭비를 혐오하였던 벤담답게, 규모가 엄청나다. 벤담은 20대 후반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7만여 장, 하루 평균 15쪽 분량의 글을 썼다. 이들은 University College London 도서관에 상자 채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애초에 축약본을 번역한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간접적으로 다룬 정도를 넘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물론 양자의 초점은 다르다. 벤담이 파놉티콘을 사회개혁의 도구로 삼고자 하였다면, 푸코는 파놉티콘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훈육 이면에 깔린 권력 기제를 폭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벤담의 선의(善意)가 너무 자주, 쉽게 폄훼되었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기독교와 칸트의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여기에 유교주의가 더하여져서. 국내에는 벤담의 방대한 작업 중에서, 위 책과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설』 정도가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벤담의 공리주의(현실주의)와 곧잘 대비되는 칸트의 도덕률이 법제도 설계에까지 전면적으로 적용·응용될 수 있을까. 세상에는 훨씬 더 저열한 도구주의가 판치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솔직하였던,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서로와 인류에 대한 '신의(信義)'보다는, 시스템과 제도, 강렬한 이기심에 터 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공공선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벤담의 개혁에 대한 이상과 열망을, 우리는 편견을 걷어내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덧1. 실학자들과 벤담을 비교하여 볼 필요성을 느낀다.

덧2. 책 뒤에 실린 '추가 독서 목록'이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되어 국내도서에 한하여 이 곳에도 소개한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살과 돌』은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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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6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열심히 공부한 노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글을 여러 편 본 적 있지만, 벤담에 관한 글은 정말 보기 어렵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묵향 2017-01-26 17:48   좋아요 1 | URL
아직 다 읽진 못하였지만,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설』도,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매우 유익합니다. 단, 한인섭 교수님의 『범죄와 형벌』 번역은 다소간 오역이 있고, 문장도 매끄럽지 않아 읽기가 힘이 듭니다. 정말 위대한 저작인데, 풍부한 해설을 덧붙이고 가독성을 높인 번역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yrus님 최근 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