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홍신 엘리트 북스 6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 지음, 최규남 옮김 / 홍신문화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25시.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메시아가 강림한다 하더라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구체적 인간을 추상적 범주로 전락시키는 서구 기술 문명과 그 몰락.

 

  번역이 매끄러워 몰입이 수월하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트라이안이 나치에 항거하는 의미로 수용소 규정을 위반하여 철조망을 향해 다가가다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25시』는 2000년대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주도한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의 목록에 들지 못하면서 깨끗이 잊힌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은, 1952년 한국에 소개된 이래, 1980년대까지 스테디셀러였다. 1999년 한겨레에서 전문가 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세기 걸작'에서 13위에 선정되었고(아래 표 및 "독자와 함께 정리하는 20세기 20대 뉴스 7. 세기의 걸작 '모던타임스', '예스터데이' 첫손", 『한겨레』(1999. 11. 19.), 17면  참조. 전문가 명단은 위 링크에서 1999. 11. 12. 기사 18면 참조), 2000년 KBS영상사업단이 <TV문화기행, 문학편 6: 게오르규, 25시의 증언>을 제작·방영하였을 정도로 적어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회자되었다.

 

순위 제목 작가 장르
 1 모던 타임스 찰리 채플린 영화
 2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미술
 3 예스터데이 비틀스 대중가요
 4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문학
 5 1984 조지 오웰 문학
 6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
 7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
 8 이방인 알베르 까뮈 문학
 9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문학
11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문학
12 시민 케인 오손 웰스 영화
13 25시 비르질 게오르규 문학
14 굿모닝 조지 오웰 백남준 미술
15 피아노협주곡 2, 3번 라흐마니노프 클래식
16 변신 카프카 문학
17 마이웨이 프랭크 시내트라 대중가요
18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문학
19 로미오와 줄리엣프로코피에프 클래식
20 황무지 T. S. 엘리엇 문학

 

  『25시』는 원래 게오르규가 루마니아어로 써두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1949년, 프랑스 Plon 출판사에서 Rita Eldon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루마니아어로는 2004년에야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1950년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송이 전란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번역한 일본어 중역본이 1952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다음과 같은 번역본들이 이어졌다(국가자료종합목록에 따라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 위 목록 자체에 입력상 오류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 반드시 망라적이라거나 정확한 자료라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김인환의 번역본은 수없이 많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또 나왔다; 알라딘에서도 검색되는 것은 53번 이후의 것들이다.

 

1. 김송 역, 『25시』, 동아문화사, 1952; 김송 역, 『25시』, 청춘사, 1952~1960 (일본어 중역본)

2.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정음사, 1959

3. 『세계문학선집 5: 게오르규』, 합동, 1964

4. 『세계전후문학전집 3: 불란서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6

5.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⑦ 二十五時」, 『명랑』(1966. 11.)에 발췌 소개.

6. 원응서 역, 『25시』, 창구사, 1967~1970

7. 『세계문학전집 4』, 삼성출판사, 1969~ (김동리, 양병탁, 이어령 등이 편집위원으로 관여)

8. 이군철 역, 『게오르규 25시/오오웰 1984년』, 동화출판(공)사, 1971~1977 (영어 중역본)

9. 한용우 역, 『25시』, 흥문도서, 1972~1978

10. 김송 역, 『세계명작장편소설 二十五時』, 성공문화사, 1972~1989 (위 1번 참조)

11. 김인환 역, 『세계전쟁문학대전집 3: 25시,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삼진사, 1972 (프랑스어 번역본, 하인리히 뵐은 곽복록 역)

12. 『세계의 문학대전집 32: 25시』, 동화출판사, 1972~1981 (임인규 편)

13. 『세계명작 순례』, 관동출판사, 1972 (천병식 편)

14. 『세계문학명저 100』, 청산문화사, 1973

15. 『세계문학전집 25』, 삼성출판사, 1974

16. 강인숙 역, 『25시, 키랄레싸의 학살』, 삼성출판사, 1974~1977 (프랑스어 번역본)

17. 원응서 역, 『25시 상/하』, 삼중당문고, 1975~1993 (위 6번 참조)

18. 김인환 역, 『25시/고원의 사랑, 선로지기 티일』, 삼진사, 1976~1977 (루이제 린저는 이영구, 하우프트만은 지명렬 각 번역)

19. 『신선세계문학전집 17: 25시』, 삼진사, 1976

20. 김인환 역, 『25시』, 동서문화사, 1978~1987

21. 강인숙 역, 『25시』, 문학당, 1978 (위 16번 참조)

22. 김병걸 역(?), 『25시』, 대산, 1978~2006

23. 김인환 역, 『25시』, 태극출판사, 1980

24. 김인만 역, 『25시』, 한영출판사, 1981

25. 백승철 역, 『25시』, 지성출판사, 1981~1982

26. 이상근 역, 『25시』, 서한사, 1981

27. 윤형복 역, 『25시』, 백양출판사, 1982~1989

28. 한용우 역, 『25시』, 삼육출판사, 1982~1989 (위 9번 참조)

29. 김병린 역, 『25시』, 문학당, 1982

30. 김병린 역, 『세계문학대전집 25: 25시』, 삼성당, 1982~1993

31. 이상근 역, 『25시』, 민들레, 1983~1984 (위 26번 참조)

32. 김인환 역, 『25시』, 학원출판공사, 1983~1985

33. 백승철 역, 『25시』, 시대문화사, 1983 (위 25번 참조)

34. 강인숙 역, 『25시/마닐라 로우프』, 삼성출판사, 1985~1992 (위 16, 21번 참조, 베이요 메리는 이인웅 역)

35.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 1986~1994

36.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중앙문화사(중앙미디어), 1987~2006

37. 이광식 역, 『설국/25시』, 교육문화사, 1988~1990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윤정국 역)

38. 김인환 역, 『25시/변신, 유형지에서』, 중앙문화사, 1988 (카프카는 곽복록 역)

39. 최명 역, 『한 권의 책: 25시』, 학원사, 1988~1990

40. 김인환 역, 『학원세계문학전집 30: 아Q정전/봇짱/나생문/25시』, 학원출판공사, 1988~1996(루쉰 이가원, 나쓰메 소세끼 김영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김선영 각 번역)

41. 『25시』, 자유문학사, 1989

42. 김인환 역, 『벨라주 세계문학대전집 29: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영신?)문화사, 1990 (위 35번과 같은 것?)

43. 김인환 역, 『25시』, 어문각, 1991~1994

44. 김지원 역, 『25시』, 고려출판문화공사, 1992

45. 김인환 역, 『25시 외 4』, 동서문화사, 1992

46. 김인환 역, 『25시』, 마당, 1993~1997

47. 김인만 역, 『25시』, 나나, 1993 (위 24번 참조)

48. 김병걸 역, 『25시』, 여명출판사, 1994 (위 22번 참조)

49. 김지혁 역, 『25시』, 삼성기획, 1995

50. 김인환 역, 『25시/인간의 대지/어린왕자/좁은문/말테의 수기』, 학원출판공사, 1995~1997 (생텍쥐페리 안응렬, 지드 이휘영, 릴케 염무웅 각 번역)

51. 김병걸 역, 『25시』, 현대출판사, 1995~1996 (위 22, 48번 참조)

52. 김병걸 역, 『25시』, 삼성당, 1996~2002 (위 22, 48, 51번 참조)

 

53. 김양순 역, 『25시』, 일신서적, 1986~1994

54. 최규남 역, 『25시』, 홍신문화사, 1992~2012 (필자가 가진 책은 1992. 4. 30. 1판의 1995. 2. 10. 6쇄)

55. 김인환 역, 『25시』,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1992~1997

56. 김지혁 역, 『25시』, 육문사, 1995~2008 (위 49번 참조)

57. 나희영 역, 『25시』, 청목, 1993~2004

58. 이선혜 역, 『25시 상/하』, 효리원, 2006~2007

 

  게오르규는 한국에서, 앤써니 퀸이 주연한 영화의 흥행에다(극장에서 4번 넘게 상영되었고,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되었다), 1974년, 1976년, 1984년, 1987년 방문 당시의 '립서비스'("서구와 달리 조화의 덕을 갖춘 한국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초가지붕, 분묘 예찬과 홍익인간, 화랑, 흰옷, 선비, 태극기, 도자기에 관한 언급, 석굴암·불국사 방문) 등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친한파 지식인으로 추앙되었다. 게오르규도 한국을 십분 활용하였다. 그는 첫 방한 때부터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공표하였고, 그 덕분에 호감을 사 위와 같이 여러 번 초청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에서 입지까지 다질 수 있었다(이어령과 문학사상사는 '세계지성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기획하여 게오르규를 초청하는 등 그를 '루마니아의 양심'으로 밀었다. 창비의 백낙청은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을 내세웠다). 민중진영에서도 게오르규를 '약소민족의 양심적 지식인, 저항작가'로 이해하여 반정부적 참여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일찍이 김수영은 이어령과의 순수참여논쟁 무렵, "24시간 중 단 한 시간이나 단 10분만이라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적과 맞설 수 있다."는 글을 썼고{「시의 '뉴 프런티어'(1961)」,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241}, 영화 <25시>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하였다{「삼동유감(1968)」,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130~131}. 김성한은 1982년 『바비도』를 내면서 소설 「난경」의 제목을 「24시」로 바꾸었다. 시인 배태인은 「내 25시적 삶」, (신경림 외), 『작가의 편지』, 어문각, 1983, 176~177을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 루마니아를 침공한 소련뿐 아니라, 연합군과 미국까지도 기계적 관료주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그의 작품과는 달리, 게오르규 자신은 루마니아 파시스트 정권의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극렬한 반공주의는 독재와 부정부패의 폐해를 직시하는 눈을 흐렸고, 기계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산업화 경쟁을 상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소련보다는 독재가 낫다'면서 어용적 발언을 쏟아냈는데,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일컬어 "동양의 현인"에 "위대한 군인"이며, "정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격찬하였는가 하면, 『한국찬가』에서는 자신이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까닭은 그 군대 때문"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누군가의 조종으로 맹목적으로 동원된 소요사태'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게오르규의 뜨악한 발언은 87년 항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엉망진창인 그의 삶 탓에,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별점을 주기가 주저된다).

 

  한국문단은 이러한 사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했다. 1990년대에도 많은 이들이 그와의 인연, 추억을 회고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겉으로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애환을 공유한다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서구의 권위에 굴종하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덧. 이상은 이행선, "게오르규의 수용과 한국 지성사의 '25시' -전후문학, 휴머니즘, 실존주의, 문명비판, 반공주의, 어용작가-", 한국학연구 제41집(2016. 5.), 9~41을 크게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다.

"1938년 저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헝가리의 루마니아인 수용소에, 1941년에는 독일에 있는 헝가리인 수용소에, 1945년에는 미군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에 다하우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13년간의 수용소 행활을 끝내고 나는 열여덟 시간 동안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로 끌려왔습니다... 이것이 1938년부터 오늘까지 지내온 길입니다. 수용소, 수용소, 수용소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 요한 모리츠(389쪽)

"진보의 최후 단계에 접어든 서구문명은 개인의 존재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마련이오. 문명이 개인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라오. 이 사회는 개인이 지닌 약간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않거든. 개인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은 이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요. 죄없이 갇혀 있는 당신이나 그밖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 그들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단 말이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카테고리의 무한히 작은 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지. 예를 들면 당신은 독일 영토 내에서 체포된 한 사람의 적국 시민에 지나지 않소. 바로 이것이 서구의 기술사회를 한결같이 똑같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특질이지. 또한 바로 그것이 그들 앞에 당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전부인 거요. 이 사회는 당신을 그러한 특징으로밖에 인정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곱셈, 나눗셈, 뺄셈, 덧셈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소속된 그룹 전체로서의 당신을 대우하는 것뿐이오. 당신은 루마니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 작은 분자가 붙들린 셈이지. 체포된 원인-또는 죄-은 당신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데 있소."

(이어서) "서구사회는 인간을 기술의 견지에서 보고 있소. 즉 살과 뼈를 가진 인간, 기쁨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중략) 그래서 누군가를 체포한다든가 죽이는 경우에도 이 사회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을 체포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관념을 처벌하는 거요."

- 트라이안 코루가(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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