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대우고전총서 33
제러미 벤담 지음, 강준호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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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이 책이 거의 읽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가 서문에 쓴 것처럼, 공리주의는 그것이 사상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서양 사상 전반에 대한 탐구가 고르게 진척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서양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본격적 음미는 생략된 채 그에 대한 비판론만 유행처럼 잔뜩 소개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 쪽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정작 공리주의의 본류인 벤담은 갖은 억측과 편견 속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다. 흔히 벤담과 밀을 양적/질적 공리주의자로 구분하는 교과서적 도식이 통용되고, 그리하여 벤담은 쳐다볼 가치도 없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공리주의자로 치부되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벤담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낸 결론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명분'과 '의리'가 논쟁의 구도를 항상-이미 왜곡하여 그 어떤 합리적 대화와 타협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국내의 논의 지형에서, 쉬운 결론을 내지 않고 개념들 간의 이동(異同)을 엄밀하게 구별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제를 수학적 혹은 과학적 태도로 차근차근 추려나가는 벤담의 방법론과, 그 근저에 깔린 영국적 경험주의는, '균형잡기' 차원에서라도 적지 않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윤리철학적 인상을 강하게 주는 책의 제목과 달리, 『서론』은 오히려 '형법총론' 교과서에 가깝다('행위론'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벤담의 구상은 도덕과 법 사이의 경계, 나아가 다른 법들, 특히 민사법과 형법 사이의 경계선을 찾는(긋는)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서론』에는 마지막 장인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작은 단초만이, 그것도 주로 각주에나 제시되어 있고, 벤담 스스로도 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끝내 얻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영미법 이론의 발달·전개 양상을 바탕으로, 그 결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감히 단언컨대, 벤담이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일차적 목표는, 그보다 조금 앞선 체사레 베카리아와 마찬가지로, (도덕과 민사법으로도 충분하여) '불가피하지 않고 불필요한 형벌의 최소화'였을 것이다. 형벌도, 벤담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므로, 필요 최소한도의 비례적 수준을 넘는 모든 형벌은, 악(惡)이고 잉여이다. 벤담은 이에 대한 합의를 설득력 있게 이끌어 내기 위하여,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차곡차곡 끈덕지게 쌓아올리고 있다. 벤담의 저작 전체를 들여다 보지는 못하였지만('벤담 전집'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파놉티콘』에 관한 리뷰 http://blog.aladin.co.kr/SilentPaul/9084684 참조), 논의의 전개 속도와 벤담이 서문에 밝힌 야심찬 출판 계획[민사법-사적 분배법, 형법, 절차법(민·형사소송법의 통합), (공용수용과) 보상, 헌법-공적 분배법, 국회법과 정당법(헌법 문제의 절차법), 국제법, 재정학(재정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정치경제학(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법학의 용어와 방법에 대한 일반이론 등을 망라하고 있다]에 비추어 볼 때,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 단지 『서론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 만큼(이 책은 벤담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보우링 전집의 첫 권에 놓인다), 그리고 고작 '형법전' 입안의 기초가 될 만한 내용만을 다루는 데 그쳤을 만큼, 벤담의 계획은 방대한 것이었다(일생을 '파놉티콘' 구상과 실행에 바치느라 그 계획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양극화'와 '위험사회화'로 인한 '배타주의'의 영향으로, 함무라비 법전 시절에 이미 극복한 과격하고 원시적인 '응보주의'가 다시금 가장 유력한 형벌이론이 되어가고 있다.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서론』은,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벤담은 오해의 근원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명제만으로 노예제와 사형제 철폐, 여성의 투표권과 이혼청구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같은 진보적인 개혁안들을 이미 19세기 초에 도출해 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벤담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자의 인권이 얼마든지 무시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인 결론을 낸 적이 없었다(시대의 한계 탓인지, 벤담의 위법행위 목록은 여전히 상당히 도덕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벤담은 오히려, 언뜻 내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어떻게 나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숙고하게 하고, 설득하려 했다. 벤담의 논증 방식은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목이 많다. 벤담주의는 어쩌면, 전 지구적 우경화와 인민주의의 파고를 헤쳐 나가는 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은 더 많이 번역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벤담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변호사이고 법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용어는 기본적으로 법률용어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서들은 모두 철학 전공자들에 의하여 번역되었다. 그러다 보니, 법학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용어 구사가 간간이 눈에 띈다. 벤담의 진의가 보다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더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벤담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업을 소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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