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리처드 앨런 포스너 지음, 정해룡 옮김 / 산지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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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성 숭배'는 시공간적 맥락에 종속된 '경제현상'이다(102쪽).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표절'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13쪽).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은 제목이나 플롯은 물론이고, 대사 가운데 수천 행을 다양한 자료들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혹은 거의 흡사하게 베끼고 있다. 작가는 그런 사실을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고, 관객들도 그가 다른 작품을 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그에 관심이 없었다. 당대에 '창의성(creativity)'이란, 독창성(originality)'이라기보다는 '개량(improvement)' 혹은 '창조적 모방(creative imitation)'을 의미했다(75~80쪽). 즉, 과거의 예술가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료들을 개작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을 가치 있는 작업으로 여겼다(12쪽). 현대에 와서도 공공연한 표절은 비판받지 않는다. T.S.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이전 문학들의 (대개는 출처표시 없는) 인용으로 짠 피륙과도 같지만, 오히려 원본의 가치를 더 높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엘리어트는 자신의 기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15, 81~84쪽).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쳐온다. 나쁜 시인은 자기가 가져온 것을 훼손하지만 좋은 시인은 그것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 아니면 적어도 다른 것으로 바꾼다. 좋은 시인은 도둑질해온 것을 용접하여 독특한 감정으로 통합하기 때문에 가져오기 이전의 원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 반면 나쁜 시인은 그것을 함부로 쑤셔 넣어 아무런 통일성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좋은 시인은 시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관심도 다양한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기꺼이 빌려오고자 한다." - T.S.엘리어트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를 인용하여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라고 말하곤 했다. 엘리어트의 위와 같은 논급은 이를 연상시킨다. 스트라빈스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원조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다음 페이지를 참조. http://quoteinvestigator.com/2013/03/06/artists-steal/ ) 

 

  저명한 법경제학자인 포스너 판사는 '표절'을 정의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베끼기는 범죄행위이고 무조건 나쁘다'거나 '독창성이 없는 지적 상품은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다. 포스너는 훌륭한 예술이 전적으로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존 작품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아무리 독창적인 작품이라도 작품의 가치가 없을 수 있다(13~14쪽). 즉, '창의적'이라는 규범적 판단으로까지 자동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굳이 구분하자면) 도덕적 개념에 가까운 '표절(plagiarism)'과 법적 개념인 '저작권 침해(copyright infringement)'도 구별되어야 한다. 저작권이 만료되면 저작물은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속하게 되어 누구든 법적 책임을 질 위험없이 자유롭게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에 있는 저작물을 복제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여전히 표절로 간주될 수 있다(14쪽). 그 점에서 표절의 핵심은 '베끼기'보다는 오히려 '숨기기'이다. 표절은 표절자와 표절된 작품을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게 만드는, 즉 소비자(독자, 관객, 감상자)를 오인·혼동시키는 '상표권 침해'에 가깝다. 그러나 출처를 굳이 표시하지 않는 '패러디', 교과서, 판결문의 경우에서 보듯 '표절은 숨기기'라는 명제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루벤스, 앤디 워홀의 작업형태나 성경의 경우처럼 작가와 저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저자(author)는 인준(authorize)하는 사람이다(41~53쪽).

 

  표절 여부 판단에는 표절자가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가 섬세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표절을 한 학생, 교수, 작가는 동료들이나 다른 작가들에게 돌아가야할 높은 성적이나 교수직, 평판을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표절 문제에 형법이라는 비용이 만만찮은 무거운 기계를 동원하는 것은 낭비적이다(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국역본의 제목은 이상과 같은 포스너의 논지와는 거리가 있다. 역자는 '보론'으로 '윤리적 글쓰기의 가이드라인'을 실었는데, 책 후반부의 보론만을 대표할 수 있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보론도 물론 가치가 있다). 번역본 편집·출간 과정에 포스너의 법경제학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 책 내용을 포괄하는 보다 상세하고 심도 있는 논의는 다음 책을 참조할 수 있다. 통념을 깨는 질문들을 많이 던지고 있어 '두뇌가 풀가동'되고 '눈의 비늘이 벗겨지는' 걸작이다.

 

 

  포스너 판사가 미국 법/경제학계에 차지하는 위상에 비하여 볼 때, 국내에는 그의 작업이 충분히 소개되어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자유기업센터에서 나온 『법경제학 (상/하)』는 1973년 처음 출간된 포스너 판사의 저명한 교과서 『Economic Analysis of Law』 5판이나, 이미 2014년에 9판이 나왔다. 이외에도 번역되어야 할 책들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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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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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큰 기대 않고 집었다가 든든해져서 덮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역자의 말대로, 크건 작건 나를 변화시키고, 무언가를 결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중간점검 계기 삼기 좋은 책이다. 자신만의 방법론을 개선하는 데 소용되는 대목을, 어딘가에서는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가 책에 소개된 일본 정보처(기관, 웹사이트, 지역)에 대응되는 한국 정보처를 주석으로 달아둔 점도 칭찬하고 싶다(2009년 당시로서는 최선의 정보였겠으나, 간혹 웹사이트 등이 없어지거나 주소가 바뀐 경우도 눈에 띈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지, 아직 재고가 소진되지 아니하였다. 후루룩 읽어 치우고 '청어람'하시길...

 

  여담이지만, 그의 책(『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을 15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지금껏 그의 이름을 다치'나바' 다카시로 잘못 읽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일본어에 무지했던 탓이다. 立花(ばな) 隆 혹은 橘(たちばな) 隆志이다. たちなば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한국어 사이트 중에 같은 오류를 범한 페이지가 '아주 많이' 발견된다.

 

  그의 저작들 중 번역된 것은 다음과 같다. 최근(2017. 1. 18.)에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立花隆の書棚)』가 648쪽짜리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출간일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에 따라 대략적으로 분류해 보았다. 청어람미디어의 책이 많다. 표지 이미지를 구하지 못하였지만, 신한출판사에서 나왔던 『뇌사』라는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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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홍신 엘리트 북스 6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 지음, 최규남 옮김 / 홍신문화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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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시.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메시아가 강림한다 하더라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구체적 인간을 추상적 범주로 전락시키는 서구 기술 문명과 그 몰락.

 

  번역이 매끄러워 몰입이 수월하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트라이안이 나치에 항거하는 의미로 수용소 규정을 위반하여 철조망을 향해 다가가다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25시』는 2000년대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주도한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의 목록에 들지 못하면서 깨끗이 잊힌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은, 1952년 한국에 소개된 이래, 1980년대까지 스테디셀러였다. 1999년 한겨레에서 전문가 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세기 걸작'에서 13위에 선정되었고(아래 표 및 "독자와 함께 정리하는 20세기 20대 뉴스 7. 세기의 걸작 '모던타임스', '예스터데이' 첫손", 『한겨레』(1999. 11. 19.), 17면  참조. 전문가 명단은 위 링크에서 1999. 11. 12. 기사 18면 참조), 2000년 KBS영상사업단이 <TV문화기행, 문학편 6: 게오르규, 25시의 증언>을 제작·방영하였을 정도로 적어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회자되었다.

 

순위 제목 작가 장르
 1 모던 타임스 찰리 채플린 영화
 2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미술
 3 예스터데이 비틀스 대중가요
 4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문학
 5 1984 조지 오웰 문학
 6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
 7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
 8 이방인 알베르 까뮈 문학
 9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문학
11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문학
12 시민 케인 오손 웰스 영화
13 25시 비르질 게오르규 문학
14 굿모닝 조지 오웰 백남준 미술
15 피아노협주곡 2, 3번 라흐마니노프 클래식
16 변신 카프카 문학
17 마이웨이 프랭크 시내트라 대중가요
18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문학
19 로미오와 줄리엣프로코피에프 클래식
20 황무지 T. S. 엘리엇 문학

 

  『25시』는 원래 게오르규가 루마니아어로 써두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1949년, 프랑스 Plon 출판사에서 Rita Eldon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루마니아어로는 2004년에야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1950년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송이 전란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번역한 일본어 중역본이 1952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다음과 같은 번역본들이 이어졌다(국가자료종합목록에 따라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 위 목록 자체에 입력상 오류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 반드시 망라적이라거나 정확한 자료라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김인환의 번역본은 수없이 많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또 나왔다; 알라딘에서도 검색되는 것은 53번 이후의 것들이다.

 

1. 김송 역, 『25시』, 동아문화사, 1952; 김송 역, 『25시』, 청춘사, 1952~1960 (일본어 중역본)

2.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정음사, 1959

3. 『세계문학선집 5: 게오르규』, 합동, 1964

4. 『세계전후문학전집 3: 불란서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6

5.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⑦ 二十五時」, 『명랑』(1966. 11.)에 발췌 소개.

6. 원응서 역, 『25시』, 창구사, 1967~1970

7. 『세계문학전집 4』, 삼성출판사, 1969~ (김동리, 양병탁, 이어령 등이 편집위원으로 관여)

8. 이군철 역, 『게오르규 25시/오오웰 1984년』, 동화출판(공)사, 1971~1977 (영어 중역본)

9. 한용우 역, 『25시』, 흥문도서, 1972~1978

10. 김송 역, 『세계명작장편소설 二十五時』, 성공문화사, 1972~1989 (위 1번 참조)

11. 김인환 역, 『세계전쟁문학대전집 3: 25시,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삼진사, 1972 (프랑스어 번역본, 하인리히 뵐은 곽복록 역)

12. 『세계의 문학대전집 32: 25시』, 동화출판사, 1972~1981 (임인규 편)

13. 『세계명작 순례』, 관동출판사, 1972 (천병식 편)

14. 『세계문학명저 100』, 청산문화사, 1973

15. 『세계문학전집 25』, 삼성출판사, 1974

16. 강인숙 역, 『25시, 키랄레싸의 학살』, 삼성출판사, 1974~1977 (프랑스어 번역본)

17. 원응서 역, 『25시 상/하』, 삼중당문고, 1975~1993 (위 6번 참조)

18. 김인환 역, 『25시/고원의 사랑, 선로지기 티일』, 삼진사, 1976~1977 (루이제 린저는 이영구, 하우프트만은 지명렬 각 번역)

19. 『신선세계문학전집 17: 25시』, 삼진사, 1976

20. 김인환 역, 『25시』, 동서문화사, 1978~1987

21. 강인숙 역, 『25시』, 문학당, 1978 (위 16번 참조)

22. 김병걸 역(?), 『25시』, 대산, 1978~2006

23. 김인환 역, 『25시』, 태극출판사, 1980

24. 김인만 역, 『25시』, 한영출판사, 1981

25. 백승철 역, 『25시』, 지성출판사, 1981~1982

26. 이상근 역, 『25시』, 서한사, 1981

27. 윤형복 역, 『25시』, 백양출판사, 1982~1989

28. 한용우 역, 『25시』, 삼육출판사, 1982~1989 (위 9번 참조)

29. 김병린 역, 『25시』, 문학당, 1982

30. 김병린 역, 『세계문학대전집 25: 25시』, 삼성당, 1982~1993

31. 이상근 역, 『25시』, 민들레, 1983~1984 (위 26번 참조)

32. 김인환 역, 『25시』, 학원출판공사, 1983~1985

33. 백승철 역, 『25시』, 시대문화사, 1983 (위 25번 참조)

34. 강인숙 역, 『25시/마닐라 로우프』, 삼성출판사, 1985~1992 (위 16, 21번 참조, 베이요 메리는 이인웅 역)

35.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 1986~1994

36.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중앙문화사(중앙미디어), 1987~2006

37. 이광식 역, 『설국/25시』, 교육문화사, 1988~1990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윤정국 역)

38. 김인환 역, 『25시/변신, 유형지에서』, 중앙문화사, 1988 (카프카는 곽복록 역)

39. 최명 역, 『한 권의 책: 25시』, 학원사, 1988~1990

40. 김인환 역, 『학원세계문학전집 30: 아Q정전/봇짱/나생문/25시』, 학원출판공사, 1988~1996(루쉰 이가원, 나쓰메 소세끼 김영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김선영 각 번역)

41. 『25시』, 자유문학사, 1989

42. 김인환 역, 『벨라주 세계문학대전집 29: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영신?)문화사, 1990 (위 35번과 같은 것?)

43. 김인환 역, 『25시』, 어문각, 1991~1994

44. 김지원 역, 『25시』, 고려출판문화공사, 1992

45. 김인환 역, 『25시 외 4』, 동서문화사, 1992

46. 김인환 역, 『25시』, 마당, 1993~1997

47. 김인만 역, 『25시』, 나나, 1993 (위 24번 참조)

48. 김병걸 역, 『25시』, 여명출판사, 1994 (위 22번 참조)

49. 김지혁 역, 『25시』, 삼성기획, 1995

50. 김인환 역, 『25시/인간의 대지/어린왕자/좁은문/말테의 수기』, 학원출판공사, 1995~1997 (생텍쥐페리 안응렬, 지드 이휘영, 릴케 염무웅 각 번역)

51. 김병걸 역, 『25시』, 현대출판사, 1995~1996 (위 22, 48번 참조)

52. 김병걸 역, 『25시』, 삼성당, 1996~2002 (위 22, 48, 51번 참조)

 

53. 김양순 역, 『25시』, 일신서적, 1986~1994

54. 최규남 역, 『25시』, 홍신문화사, 1992~2012 (필자가 가진 책은 1992. 4. 30. 1판의 1995. 2. 10. 6쇄)

55. 김인환 역, 『25시』,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1992~1997

56. 김지혁 역, 『25시』, 육문사, 1995~2008 (위 49번 참조)

57. 나희영 역, 『25시』, 청목, 1993~2004

58. 이선혜 역, 『25시 상/하』, 효리원, 2006~2007

 

  게오르규는 한국에서, 앤써니 퀸이 주연한 영화의 흥행에다(극장에서 4번 넘게 상영되었고,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되었다), 1974년, 1976년, 1984년, 1987년 방문 당시의 '립서비스'("서구와 달리 조화의 덕을 갖춘 한국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초가지붕, 분묘 예찬과 홍익인간, 화랑, 흰옷, 선비, 태극기, 도자기에 관한 언급, 석굴암·불국사 방문) 등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친한파 지식인으로 추앙되었다. 게오르규도 한국을 십분 활용하였다. 그는 첫 방한 때부터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공표하였고, 그 덕분에 호감을 사 위와 같이 여러 번 초청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에서 입지까지 다질 수 있었다(이어령과 문학사상사는 '세계지성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기획하여 게오르규를 초청하는 등 그를 '루마니아의 양심'으로 밀었다. 창비의 백낙청은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을 내세웠다). 민중진영에서도 게오르규를 '약소민족의 양심적 지식인, 저항작가'로 이해하여 반정부적 참여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일찍이 김수영은 이어령과의 순수참여논쟁 무렵, "24시간 중 단 한 시간이나 단 10분만이라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적과 맞설 수 있다."는 글을 썼고{「시의 '뉴 프런티어'(1961)」,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241}, 영화 <25시>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하였다{「삼동유감(1968)」,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130~131}. 김성한은 1982년 『바비도』를 내면서 소설 「난경」의 제목을 「24시」로 바꾸었다. 시인 배태인은 「내 25시적 삶」, (신경림 외), 『작가의 편지』, 어문각, 1983, 176~177을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 루마니아를 침공한 소련뿐 아니라, 연합군과 미국까지도 기계적 관료주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그의 작품과는 달리, 게오르규 자신은 루마니아 파시스트 정권의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극렬한 반공주의는 독재와 부정부패의 폐해를 직시하는 눈을 흐렸고, 기계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산업화 경쟁을 상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소련보다는 독재가 낫다'면서 어용적 발언을 쏟아냈는데,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일컬어 "동양의 현인"에 "위대한 군인"이며, "정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격찬하였는가 하면, 『한국찬가』에서는 자신이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까닭은 그 군대 때문"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누군가의 조종으로 맹목적으로 동원된 소요사태'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게오르규의 뜨악한 발언은 87년 항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엉망진창인 그의 삶 탓에,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별점을 주기가 주저된다).

 

  한국문단은 이러한 사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했다. 1990년대에도 많은 이들이 그와의 인연, 추억을 회고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겉으로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애환을 공유한다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서구의 권위에 굴종하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덧. 이상은 이행선, "게오르규의 수용과 한국 지성사의 '25시' -전후문학, 휴머니즘, 실존주의, 문명비판, 반공주의, 어용작가-", 한국학연구 제41집(2016. 5.), 9~41을 크게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다.

"1938년 저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헝가리의 루마니아인 수용소에, 1941년에는 독일에 있는 헝가리인 수용소에, 1945년에는 미군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에 다하우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13년간의 수용소 행활을 끝내고 나는 열여덟 시간 동안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로 끌려왔습니다... 이것이 1938년부터 오늘까지 지내온 길입니다. 수용소, 수용소, 수용소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 요한 모리츠(389쪽)

"진보의 최후 단계에 접어든 서구문명은 개인의 존재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마련이오. 문명이 개인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라오. 이 사회는 개인이 지닌 약간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않거든. 개인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은 이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요. 죄없이 갇혀 있는 당신이나 그밖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 그들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단 말이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카테고리의 무한히 작은 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지. 예를 들면 당신은 독일 영토 내에서 체포된 한 사람의 적국 시민에 지나지 않소. 바로 이것이 서구의 기술사회를 한결같이 똑같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특질이지. 또한 바로 그것이 그들 앞에 당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전부인 거요. 이 사회는 당신을 그러한 특징으로밖에 인정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곱셈, 나눗셈, 뺄셈, 덧셈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소속된 그룹 전체로서의 당신을 대우하는 것뿐이오. 당신은 루마니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 작은 분자가 붙들린 셈이지. 체포된 원인-또는 죄-은 당신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데 있소."

(이어서) "서구사회는 인간을 기술의 견지에서 보고 있소. 즉 살과 뼈를 가진 인간, 기쁨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중략) 그래서 누군가를 체포한다든가 죽이는 경우에도 이 사회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을 체포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관념을 처벌하는 거요."

- 트라이안 코루가(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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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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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별점 다섯 개를 주러 왔다가 책 표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보고 별 네 개를 거둔다. 출판사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http://www.amazon.com/The-Valley-Masks-Tarun-Tejpal/dp/9350290464/ref=sr_1_1?ie=UTF8&qid=1346113053&sr=8-1&keywords=the valley of masks

 

  한국에서 변사자에 대한 부검은 판사의 영장을 받아, 검사의 지휘 하에, 주로 경찰관이 위임을 받아 집행한다. 이들은 모두 비전문가들이다. 검시에 참여하는 의사마저 법의부검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영미법계에는 검시를 전담하는 직책인을 두는 이른바 '전담검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시관(coroner)을 두고, 미국에서는 선거로 선출하는 법의관(medical examine)을 둔다. 미국에서 일반의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에 한하여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고,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법의관에게 사체를 넘긴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검시교육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실을 개설한 대학은 불과 5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207쪽).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특정 직종의 공무원이 검시업무를 겸임하는 '겸임검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법제도 측면에서는 (일본을 통하여)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의학 교육 측면에서는 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당시의 시찰단은 미국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없는 것을 굳이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교육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바람에 우리는, 미국과 같은 법의관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된 법의학 교과가 없는 채로 6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2012년 책 출간 당시 43개 의과대학 중 12개 대학에만 개설). 그 사이 억울한 죽음들도 수없이 묻혀 보냈다(단적으로, 몇몇 유명 연예인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을 보라).

 

  초동수사에서부터 법의학 전문가가 개입하도록 하는 검시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비전문가인 수사기관이 보는 외관만으로는 결코 범죄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부검은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범죄에 의한 사망일 때 비로소 실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반대로, 전문가가 부검을 통하여 사인을 명확히 규명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범죄성이다. 법의학 전문의를 충분히 양성하여야 하고, 법률가들 역시 법의학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여야 한다. 범죄수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검시 외에도 전염병 사망, 행려 사망, 사인불명의 병사, 신생아 및 임부의 사망 등과 같이 보건정책상 필요한 부검에 대하여 '행정검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우리 법과 연계성이 높은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끝으로,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두벌주검'에 대한 인식 전환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환자가 생존 시 앓고 있던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였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와 같은 것은 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 시정과 개선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학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다른 나라 통계를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법부검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로막히기 일쑤이다. 유럽에서는 늦게는 18세기 초경까지도 '용의자가 진범이라면, 자신이 가해한 피해자의 사체를 보거나 접촉하는 순간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거나, 해당 용의자의 얼굴 표정과 몸의 거동이 달라진다'는 식의 '관법 棺法 Baarrecht'에 의거한 검시가 이루어졌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이미 1438년(세종 20년)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책 20쪽에 따른 것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동일하나, 두산백과 등에는 1440년(세종 22년) 출간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1456년(세종 38년) 『심리록 審理錄』이 간행되고, 1792년(정조 16년) 앞의 책을 증보한 『증수무원록 增修無寃錄』을 편찬하는 등 수백 년을 앞선 과학적 검시기술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미 법의학을 다룬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들만 최근작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미술작품과 연계한 저서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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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대우고전총서 33
제러미 벤담 지음, 강준호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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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이 책이 거의 읽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가 서문에 쓴 것처럼, 공리주의는 그것이 사상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서양 사상 전반에 대한 탐구가 고르게 진척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서양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본격적 음미는 생략된 채 그에 대한 비판론만 유행처럼 잔뜩 소개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 쪽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정작 공리주의의 본류인 벤담은 갖은 억측과 편견 속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다. 흔히 벤담과 밀을 양적/질적 공리주의자로 구분하는 교과서적 도식이 통용되고, 그리하여 벤담은 쳐다볼 가치도 없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공리주의자로 치부되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벤담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낸 결론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명분'과 '의리'가 논쟁의 구도를 항상-이미 왜곡하여 그 어떤 합리적 대화와 타협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국내의 논의 지형에서, 쉬운 결론을 내지 않고 개념들 간의 이동(異同)을 엄밀하게 구별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제를 수학적 혹은 과학적 태도로 차근차근 추려나가는 벤담의 방법론과, 그 근저에 깔린 영국적 경험주의는, '균형잡기' 차원에서라도 적지 않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윤리철학적 인상을 강하게 주는 책의 제목과 달리, 『서론』은 오히려 '형법총론' 교과서에 가깝다('행위론'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벤담의 구상은 도덕과 법 사이의 경계, 나아가 다른 법들, 특히 민사법과 형법 사이의 경계선을 찾는(긋는)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서론』에는 마지막 장인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작은 단초만이, 그것도 주로 각주에나 제시되어 있고, 벤담 스스로도 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끝내 얻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영미법 이론의 발달·전개 양상을 바탕으로, 그 결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감히 단언컨대, 벤담이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일차적 목표는, 그보다 조금 앞선 체사레 베카리아와 마찬가지로, (도덕과 민사법으로도 충분하여) '불가피하지 않고 불필요한 형벌의 최소화'였을 것이다. 형벌도, 벤담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므로, 필요 최소한도의 비례적 수준을 넘는 모든 형벌은, 악(惡)이고 잉여이다. 벤담은 이에 대한 합의를 설득력 있게 이끌어 내기 위하여,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차곡차곡 끈덕지게 쌓아올리고 있다. 벤담의 저작 전체를 들여다 보지는 못하였지만('벤담 전집'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파놉티콘』에 관한 리뷰 http://blog.aladin.co.kr/SilentPaul/9084684 참조), 논의의 전개 속도와 벤담이 서문에 밝힌 야심찬 출판 계획[민사법-사적 분배법, 형법, 절차법(민·형사소송법의 통합), (공용수용과) 보상, 헌법-공적 분배법, 국회법과 정당법(헌법 문제의 절차법), 국제법, 재정학(재정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정치경제학(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법학의 용어와 방법에 대한 일반이론 등을 망라하고 있다]에 비추어 볼 때,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 단지 『서론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 만큼(이 책은 벤담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보우링 전집의 첫 권에 놓인다), 그리고 고작 '형법전' 입안의 기초가 될 만한 내용만을 다루는 데 그쳤을 만큼, 벤담의 계획은 방대한 것이었다(일생을 '파놉티콘' 구상과 실행에 바치느라 그 계획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양극화'와 '위험사회화'로 인한 '배타주의'의 영향으로, 함무라비 법전 시절에 이미 극복한 과격하고 원시적인 '응보주의'가 다시금 가장 유력한 형벌이론이 되어가고 있다.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서론』은,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벤담은 오해의 근원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명제만으로 노예제와 사형제 철폐, 여성의 투표권과 이혼청구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같은 진보적인 개혁안들을 이미 19세기 초에 도출해 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벤담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자의 인권이 얼마든지 무시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인 결론을 낸 적이 없었다(시대의 한계 탓인지, 벤담의 위법행위 목록은 여전히 상당히 도덕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벤담은 오히려, 언뜻 내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어떻게 나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숙고하게 하고, 설득하려 했다. 벤담의 논증 방식은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목이 많다. 벤담주의는 어쩌면, 전 지구적 우경화와 인민주의의 파고를 헤쳐 나가는 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은 더 많이 번역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벤담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변호사이고 법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용어는 기본적으로 법률용어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서들은 모두 철학 전공자들에 의하여 번역되었다. 그러다 보니, 법학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용어 구사가 간간이 눈에 띈다. 벤담의 진의가 보다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더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벤담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업을 소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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