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곤 하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야.

 

왕가위 , 아비정전 中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산문적이라면, 왕자웨이는 운문적이다. 베르톨루치는 설명하고, 왕가위는 속삭인다.

 

속삭인다. 속삭임은 의미가 아니라도 좋다. 누군가 팔베개를 해 주고 귀에 무슨 말인가 속살거리면, 내용이야 뭐라도 좋지 않은가. 그래서인가. 사실주의에 입각한 비평가들은 왕가위의 영화에 내러티브가 빈곤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에게 왕가위는 꿈을 헤매는 몽유병 환자처럼 보인다.

 

 

아비의 독백처럼,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발 없는 새를 닮았다. 통 현실에 내려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왕가위는 매번 고심해서 홍콩의 가장 은밀한 골목을 섭외하지만, 누가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던가. 아비정전의 아비와 선원도, 해피투게더의 보영과 아휘도, 화양연화의 모완과 수리첸도, 떠났거나, 떠나거나, 떠나고 싶어 안달을 할 뿐. 카메라가 종종 백타산처럼 골목이 아닌 곳을 비추면 대개 그곳은 맞설 수 없는 현실에서 달아나 스스로를 유폐시킨 장소에 불과하다.   

 

골목을 홍콩의 메타포로 본다면,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이유도 명확해진다. 뭔가 거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은유의 기저를 파헤쳐 홍콩의 중국 귀속 증후군의 냄새를 맡았다. 심증은 중경삼림에서 통조림의 유통기한에 ‘51이 찍혀있을 때 확고해졌다. 홍콩의 반환일은 ‘71이었다.

 

  

정해진 운명의 시간을 향해 초침이 째깍거리며 임박할 때, 다만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허무한 발버둥이라도 쳐 볼 것인가. 9771일 이전의 왕가위는 후자를 택했다. 9771일 이후의 왕가위는 차라리 특정할 수 없는 모종의 공간(2046)으로, 먼 타국의 골목(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으로, 무림의 저 끄트머리로(일대종사) 달아난다. 그의 여린 감성은 중국이라는 강압적인 질서에 배치될 수 없는 보색이다. 수업 시간에 창밖의 세계를 공상하는 소녀처럼 현실에서 눈을 돌리자, 세계는 아름답고 슬픈 꿈으로 가득했다. 나도 그랬다.

 

이제, 왕가위의 맞은편에 베르톨루치를 가만히 놓아본다. 굳이 이해를 구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나 혼자 즐기는 인형놀이다.

 

 

#. 2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너도 세상의 일부라는 걸 알아야지

 

베르톨루치 , 몽상가들

 

베르톨루치는 달변가다. 단단한 현실의 바닥에 서사를 새긴다. 그의 배우들은 암막을 찢고 바로 그 시대에서 뛰어나올 태세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이태리의 사회상을 담은 ‘‘1900’’(1976), 파리에서 시작해 파리로 녹아드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대기를 담은 마지막 황제’’(1987). 시간과 장소와 인물이 엉켜 뒤섞이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그의 대표작으로 파마탱이나(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애널섹스 장면이 나온다. 말론 브란도가 검지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마리아 슈나이더의.. 암튼, 그는 이 영화를 만들고 두 달간 구속된 바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BGM이 인상적인 마지막 황제를 꼽곤 한다. 하지만 나의 베스트는 순응자’(1970). 코엔형제는 새 작품을 만들기 전에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하는 양 스태프들과 이 영화를 나눠본다.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 무솔리니 시기. 비밀경찰이 된 주인공은, 반독재투쟁을 하고 있는 과거의 스승 콰드리를 척살하는 임무를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에 도착한 주인공은 콰드리의 아내를 만나고 그녀의 미모에 연심을 품게 된다. 영화가 무슨 곰탕이라고 오이디푸스 신화를 또 우려먹냐. 하지만 이 케케묵은 전략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콰드리가 정말로 그의 영화적 아버지인 고다르의 페르소나라는 점 때문이다.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실제 고다르의 것을 쓰는 치밀함. 콰드리의 아내 안느가 고다르의 아내인 안나와 어감이 유사한 것도 물론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빅엿을 먹인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헐리우드에 팔아 좌파 영화쟁이들로부터 변절자의 월계관까지 득템한다. 이 영화 이후 그의 영상에서 두 축을 이루던 사회적 메시지와 정치적 메시지 중 후자는 허물어지는데 이를 두고 평론가 김영진은 자본주의에 몸을 팔았다며 욕을 욕을 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누벨바그를 극복하는 분기점이라고 본다. (Nouvelle) 물결(vague)이 언제까지 새로울 것인가.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長江後浪推前浪), 애비의 등짝은 찔러야 제 맛(一代新人換舊人)이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고?

 

“1970년 순응자가 파리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날 고다르는 베르톨루치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 그날 밤 생제르맹에 있는 약국 앞에서 베르톨루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고다르를 기다렸다. 야바위꾼과 수상한 사람들로 가득 찬 생제르맹 주위의 인파들 사이에서 이윽고 고다르가 나타났다. 고다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이 한 장을 손에 건네주고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종이에는 모택동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다음과 같은 글씨가 붉은 잉크로 씌어 있었다. ‘이기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라.’ 베르톨루치는 종이를 찢어버렸다.”

 

김영진- 평론가 매혈기

 

그러나 정치성을 스스로 거세하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것이 사실이라손 치더라도 그는 부정할 수 없는 68혁명의 아이였고, 역사와 시간이라는 누벨바그의 테마에서만큼은 유리될 수 없었다. 역사상 최초로 촬영을 위해 중국 정부로부터 자금성을 빌려낸 그다. 그에게는 역사의 현장에서 고고히 흐르는 그 공기, 그 시간을 포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에게 시간이란 크로노스의 진자처럼 벗어날 수 없는 절대성이다. 마르지 않는 샘은 가뭄에 진가를 드러낸다. 그것은 소나기처럼 몰아닥쳤다 사그라지는 선동적 정치보다 숭고하다. 듣고 있나, 지젝! 껍질을 다 벗은 혁명革命을 추종함은, 이미 혁명의 정신을 잃은 구태다.

 

 

#. 3

 

순간이란 정말 짧은 시간일 줄 알았는데

때로는 아주 긴 것이더군요.

그 이는 전에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죠.

이 순간부터 영원히 나를 기억하겠노라고,

그때 전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이젠 난 시계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얘기를 하죠

그를 잊어야 한다고.

 

왕가위 - 아비정전

 

 

 

 

 

 

 

 

 

 

 

 

 

 

반면 왕가위의 시간은 순간을 탐닉한다. 그것은 스쳐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카이로스의 숨결이다. 그래서 왕가위의 배우들은 애잔하다. 금방이라도 은막 저 편으로 잔잔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아비정전(1990)에서 아비와 수리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떠오른다. 포마드 바른 머리로 건들거리며 나타난 아비, 처음 본 미녀에게 작업을 시도한다. “내 시계를 1분만 바라봐줄래? 1960416일 오후 3. 우린 1분간 같이 있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이 중 2병 대사가, 무슨 주문처럼 기억 속에 들러붙어버렸다. 나도 그 대사로 죽은 장국영을 떠올린다.

 

아비정전, 한 편의 영화를 거대한 사진전으로 본다면, 그 장면은 롤랑 바르트가 언급한 푼크툼’(punctum)의 개념으로 수렴하리라. ‘기이한 세부’, ‘찌르는, 상처를 입히는, 자극을 주는, 주사위의 우연성’, 가슴을 후벼 파는 디테일.

 

 

#. 4

 

얼마 전에 어떤 여자가

술을 한 병 주었는데

술 이름이 취생몽사醉生夢死.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고 하더군.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하지.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했어.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자네 주려고 가져온 술인데

함께 마시고 싶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마시지 않았다.

 

왕가위, 동사서독

 

치이익- 치익- 무전은 진작 끊어졌다. 여기는 집채 만 한 파도가 휘몰아쳐 오는 바다 한 가운데. 물속에는 거대한(moby) 고추(dick)처럼 생긴 고래가 도사리고 있다. 지나치리만큼 좆같은 여기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당신은 선장. 폭우는 며칠째 퍼붓고, 가라앉을까봐 식량도 장비도 다 바다에 내 던진 상황이다. 이제 한 70kg만 더 줄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더 이상 던질 거라고는 베르톨루치와 왕가위 뿐. 하긴, 평생 필름만 주물럭거린 영화쟁이들이 노라면 저을 줄 알겠는가. 갑판에 굴비처럼 묶여 무릎 꿇려진 채 오들오들 떠는 두 노인네를 두고 고민은 깊어진다. 문제입니다. 다음 중 누구를 바다에 던져야 할까요?

 

1. 베르톨루치

2. 왕가위

 

토실토실한게 무게는 비슷해 보인다. 미모를 보자니, 뭐 우열이랄 것도 없다. 작품을 볼까? 2046을 떠올리면 왕가위를 집어 던지고 싶지만, 그에게는 동사서독이 있다. 그렇다면 베르톨루치? 노인네, 찔끔 하는 게 귀엽다. 그래, 순응자야 말로 불후의 역작이 아닌가. , 어쩔 수 없다. 반반으로 하자. 얘들아 반반이다!

 

그렇게 배의 침몰은 막는다고 하더라도, 베르톨루치의 서사적 빼곡함을 답답해하는 자들과. 왕가위의 빈곤한 스토리를 한심해 하는 자들은 서로 화해할 수 있을까. 만약, 베르톨루치와 왕가위를 동시에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필시, 분열적인 자아를 가졌으리라.

 

나처럼.

 

나는, 그러니까 나의 삶은, 베르톨루치와 왕가위라는 두 평행선의 내측에서, 끝내 수렴하지 않는 파장 같았다. 시처럼 살기 바라면서도 현실은 구구절절한 산문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을 떠나 오롯이 성립될 용기도 없었다.

 

Drug, Mass, Palace. 밤새 춤추고 비틀거리며 맞던 아침. 낮엔 몸 팔고, 밤에 술 팔던 날들. 공부나 해 볼까, 책상머리에 앉았다가 불법 다운로드 영화만 끝없이 보다 쓰러져 잠들던 새벽. 그래도 꿈에서는 장만옥과 연애하고 구양봉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대필로 유흥비를 충당했다. 복싱에 미쳐 살았다. 주먹이 까지고, 팔꿈치가 뭉개지고, 정강이가 작살 날 때까지 휘두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내 삶 내려놓고, 변경을 지키다 조용히 잊히기를 서원했고. 또 어느 날은 다짐을 저버렸다. 외국을 떠돌 때도 잠들지 못하는 밤은 그림자처럼 질척거렸다. 아나키스트로 살기를 소원했던 소년은 재벌의 개가 되었고, 우울과 불면을 벗삼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취해서 살고, 꿈꾸듯 죽고 싶다. 아니, 그 반대인가.

 

아니, 그 반대인가.

 

 

#. 5

    

꿈꾸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는 깨어나야 해.

 

베르톨루치, 몽상가들

 

영화란 무엇인가. 장 뤽 고다르가 ‘1초의 24번의 진실이라고 갈파하자, 로라 멀비는 ‘1초에 24번의 죽음이라고 맞불을 놨다. 아날로그 시대의 필름영화는 지각할 수도 없는 찰나에 스물네 번 암전과 이미지를 반복하며 연결된 사진을 영상화한다. 이 양반들은 하나의 동일한 현상에 상반되는 해석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영사기는 암막에 진실(image)을 투영하는가 혹은 죽음(darkness)을 드리우는가.

 

디지털 시대로 들어오며 논쟁은 자연스럽게 종식되었다. 초당 24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영화사마다 레드원 카메라를 들여오며 끝장나버린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는 암전되지 않으니까. 소비에트 연방이 뜬금없이 무너진 것처럼 디지털의 시대에 고다르와 멀비의 이항대립도 맥없이 해소되었다.

 

  

나도 베르톨루치와 왕가위라는 두 평행선 바깥으로 삶을 자유롭게 놔두고 싶다. 날개를 접은 내 삶은 베르톨루치보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왕가위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이영도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단수單數가 아니다.” 그것이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내 함수의 해였다

 

이제, 인형놀이를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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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딱 두드리고 말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책과 논문들을 참고하게 됐다. 기억에만 의지해서 쓰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우선 책으로는 

 

 

 

 

 

 

호모 시네마쿠스- 68혁명과 누벨바그에 대한 부분을 참고했다. 다소 난해하나 영화의 이론과 비평, 영화의 근대사에 대한 충실한 연구서다.

 

 

 

 

 

 

 

평론가 매혈기- 다른 평론집과 차별되는 점이라면 책상물림이 아니라는 것. 진짜 김기영을 만나고, 이창동을 만나고, 베르톨루치를 만난 얘기가 쓰여있다. 베르톨루치에 대해 쓴 부분을 참고했다.

 

 

 

 

 

 

 

 

 

 

 

 

영화 사전- 공부를 할 때 그 분야의 사전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영화학 분야에는 이 책이 있다.

 

 

 

 

 

 

 

 

 

 

박찬욱의 오마주- 그는 감독이기 전에 평론가였다. 그의 영화에서는 서권기가 막 뿜어져 나오는데, 아크 원자로가 바로 이 책. 왕가위에 대해 쓸 때 참고했다. (그는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비누와 대화하는 장면을 막 비웃는다. 멍청이가.) 하지만 베르톨루치에 대한 빠심만은 인정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 칼 맞는 장면은 '순응자'에서 코트리 칼 맞는 장면의 오마주다.  

 

 

 

 

 

 

 

 

 

 

영화야 미안해- 왕가위 영화평을 참고했다. 그냥 그런 영화 에세이.  

 

 

 

 

 

 

 

 

 

 

1초에 24번의 죽음-  '영화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한 영화이론서이자,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영화에세이다.' 라고 상품 설명에 써 있는데, 현실문화의 책 답게 전자만 맞고 후자는 구라다. 장담한다.

 

 

 

 

 

 

 

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의 역작. 진중권이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언급해 유명해 진 듯. 하지만 절판된지 오래. 영문판 PDF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 어쩔거냐. 나를 고소해라.    

https://monoskop.org/images/c/c5/Barthes_Roland_Camera_Lucida_Reflections_on_Photography.pdf 

 

 

또 뭐가 있었는데, 까먹었고..

 

 

논문으로는

 

1. 베르톨루치 영화 속의 역사와 혁명

2. 1997년 회귀를 전후한 홍콩 중국인의 문화적 정체성

3. 왕가위 초기 영화 연구- 아비정전과 중경삼림을 중심으로

4. 왕가위의 화양연화 :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5. 홍콩 반환과 왕자웨이의 중경삼림

 

이렇게 다섯편을 참고 했다. 특히 2번 논문은 짧지만 충실하다. 97년 당시의 홍콩의 분위기와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놨다.

 

 

인터넷은

 

몇몇 뉴스와 잡지 글 - 뭐 그냥 펙트 체크 용이라 링크는 하지 않기로

위키백과- 위키피디아의 왕가위와 베르톨루치. 68혁명과 누벨바그 관련.

고신의대 정신과 박시성 선생의 베르톨루치론.

그리고 이름모를 블로거들의 충실한 정리들.

 

 

영화는

 

 

 

 

 

 

 

 

 

 

 아비정전

 

 

 

 

 

 

 

 

 

 

 

 

 동사서독- 어째 오리지널이 나은 듯.

 

 

 

 

 

 

 

 

 

 

 

중경삼림

 

 

 

 

 

 

 

 

 

순응자

 

 

 

 

 

 

 

 

 

몽상가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몇 번을 다시 봤는지 모르겠다.

 

 

 

 

 

 

다시 본 것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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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11-1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외우고 다녀도 좋을 문장이 몇 개 있네요?

문득 언젠가 말미잘 님이 쓴, 어떤 심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페이퍼를 가급적 단출하게 적는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물론 그 기억을 자신할 수는 없어요. 알코올 중독에 따른 기억능력의 현저한 저하 탓이겠지요. ...길게 쓰시니 더 좋네요.ㅎ

아무튼 얼마 전에 동사서독을 다시 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아닌지 어쨌든, 이 페이퍼 유용하게 읽히네요. ^^

제가 선장이라면 왕가위는 못 던질 듯.... 왜냐하면 꼭 던져야 한다면 잘 모르는 사람을 던질 듯...

농담.

뷰리풀말미잘 2016-11-15 14:57   좋아요 0 | URL
잘 쓴 글이랑 좋은 글은 달라요. 제 글은 잘 썼지만, 좋은 글은 아닙니다. 문장이 어설프고 어휘가 모자라도 좋은 글은 빛이 납니다. 제 글은 아니에요. 왜죠?

이 질문은 지금 생각한 게 아니라 언젠가 질문하기 위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죠? 네?

2016-11-15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5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1-16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그러더군요. 장국영은 존재 자체가 낭만이었다고.
왕가위도 몽유병 환자이기에는 현실을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는지. 너무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뿐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군요.

뷰리풀말미잘 2016-11-16 10: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갈마님. 흥.

하얀빤쓰에 하얀난닝구 깔맞춤을 하고 맘보를 춰도 매력이 터지는 사람이었죠. 장국영에게는 뭔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어떤 정서가 집약되어 있는 것 같아요. 끈적한 쿨함, 마쵸적인 낭만 뭐 그런 거. 하지만 어떤 영화를 떠올려도 연애상대로는 좀 이렇다 싶지 않은게 그를 향한 감정은 애정보다는 동경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던가 싶군요.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죠? 뭐 아갈마님이 대단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서 물어보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렇게 엄청나게 궁금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소상히 얘기해 보세요. 흥.

2016-11-16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7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8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1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뇨리따 2016-11-2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미학과 신념을 전부 쏟아부어 애정하는 작가가 언젠가 한말을 인용하면 ˝예쁜건 예쁜거죠˝

파퀴아오는 영웅이었고 소위 말하는 좋은 쪽이었죠. 메이웨더는 괴물이었고 뷴명히 나쁜쪽이었어요. 둘의 자웅은 세기의 관심이었고 팬들은 좋은쪽을 전문가들은 나쁜쪽의 손을 들어줬죠. 승부는 났고 생각보다 허무하게 나쁜쪽이 압도했어요. 영웅은 제 기량과 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했고 악당은 항상 하던대로의 플레이로 영웅을 농락했죠. 이 악질적인 동화의 결말은 동심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재미난건 세간에서는 본래의 스타일대로 플레이한 메이웨더를 창과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파퀴아오보다 맹렬하게 비난했죠. 뭐, 비난은 악당의 숙명이지만요.

아마 이런 느낌일까요? 모두가 메이웨더의 복싱을 완벽하다고 평가하지만 좋은 복싱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것 처럼요.
하지만 말미잘, 저는 메이웨더의 복싱을 어어어어어어어어어오어어어어어엄청나게 좋아해요. 말미잘의 글은 그 이상으로 좋아하죠. ˝복싱은 메이웨더, 글은 말미잘 처럼˝ 이 제 좌우명이죠.(아 근래들어서 복싱은 로마첸코로 바뀌었어요. 이 글의 기량으로 볼때 말미잘은 은퇴만 안한다면 한동안 자리를 지키겠네요 : )
네, 말미잘의 글은 굳이 따지자면 결코 좋은 쪽은 아니죠. 솔직히 말하면 악랄한 수준으로 나빠요. 그런데 술이든 담배든 마약이든 뭐 어디에 ˝좋아서˝하는건 아니잖아요. 그저 각자 ˝좋아서˝ 하는 것이지.

어딘가 아주 크게 뒤틀렸잖아요. 대부분 아주 어둡고, 가끔 밝아도 그 빛 뒤편의 음영을 더욱 상상하게 한달까.. 나는 그 일면 일면들이 너무 좋아요. 잡념을 헤집을때, 글로부터 단어의 나열, 문자의 연쇄 이상의 의미를 찾을수 없을때 오로지 말미잘 글만이 몰두하게 만들죠.

감히 평가할수는 없고 대신의 감상을 말하자면 예쁜건 예쁜거죠. 아아 그런데 미잘글은 예쁜건 아니랄까... 그러니까 예쁜건 고상한 아름다움과 귀여움의 혼용같은 느낌인데, 귀여움은 놀라울정도로 완벽하게 배제했달까.. 아름답기는 해요. 근데 그중에서도 아주 진득한 퇴폐미 같은게 묻어나온달까.. 세상 예쁘고 좋고 밝고 발랄한것들을 전부 부정하는 힘이 있달까 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면 확실히 좋은 글은 아니네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보고싶은 글이에요.
가장 사랑하는 글이에요. 제 미학을 확고히 하는 글이에요.
아 나는 이런글이 좋구나 느끼게 하는 글이에요.
프러포즈는 아니에요.
그치만 이런게 punctum 인거죠?

뷰리풀말미잘 2016-12-13 22:34   좋아요 0 | URL
안녕, 세뇨리따님.

복싱이란 완전무결하기 얼마나 어려운 운동입니까. 그러나 드물게 그런 자가 있죠. 천부적 재능과, 영혼까지 짜 내는 노력과, 축적된 노하우가 두루 갖춰져야 10년에 하나쯤 나타나는 그런 자들. 메이웨더처럼요. 이 자의 복싱은 아름답습니다. 대나무처럼 낭창낭창한 탄력은 타고난 것일 테고. 노력이야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아버지와 삼촌이 축적한 테크닉도 물려받았죠.

파퀴아오는 영웅입니다. 인정해요. 그러나 메이웨더를 악마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그 앞에는 ‘영웅 이상의’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는 겁니다. 이기는 복싱이 좋은 복싱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좋은 복싱이죠? 네, 저도 메이웨더 빠이지요! ㅎㅎ (하이파이브 타이밍인 듯.) 로마첸코의 복싱은 저도 관심 갖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엄청난 테크니션이더군요.

제 글이 메이웨더의 복싱과 같은 선상에서 얘기되는 건 넌센스죠. 그게 세뇨리따님의 개인적인 감상이라고 해도 좀 부끄럽습니다. 그와 비견될만한 글쟁이라면 노벨문학상, 맨부커상, 퓰리쳐상 3관왕정도는 해 줘야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글보다는 복싱이 쪼금 나은 것 같아요. 더 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빨이 깨지고, 코가 부러지고, 눈도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그렇습니다. 로이 존스 주니어가 은퇴하기 전에 붙어볼 수 있다면 평생 섹스 따위는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세뇨리따님, 그간 저는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세뇨리따님이 글을 남기신 그 새벽에는 아무도 없는 외국의 첩첩산중에서 몰아닥치는 비바람과, 꼭 그만한 크기의 우울과 이제는 친구같은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 팔자 제가 꼰다는 말이 딱이죠. 네, 저는 꼬였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그걸 풀어가는게 제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여하튼 그런 고로 댓글을 이제야 달고 있습니다. 안부도 늦었네요. 기체후일향만강하신지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아, 제 글을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로포즈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점은 좀 아쉽고요. 그보다, 세뇨리따님은 늘 쓰고 계신가요? 저한테 안 보여주실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쓰기를 멈추신 건 아니겠죠?

2016-12-09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9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투자자로서 미 대선이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웹 서핑을 했다. 누가 이기길 바랐느냐면 물론 힐러리였다. 하지만 원체 힐러리 지지자였던 건 아니고, 샌더스 지지자였다. 우회경로로 정치헌금을 했다.

 

대선이 끝나고 세계는 멘붕이었다.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힐러리의 패배 때문이었다. 트럼프발 경제 노이즈가 해일처럼 세계를 휩쓸었고, 현지에서는 트럼프 당선 반대 시위까지 일어나는 중이다.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와중에 재미있는 건 힐러리와 트럼프의 선악구도다. 언론은 무슨 프로레슬링 중계하듯 힐러리에게 선역을, 트럼프에게 악역을 맡긴다. 유독 한국 언론이 그랬다. ? 그래야 잘 팔리니까. 클릭 수 늘어나니까. 거지같은 포르노 배너라도 하나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가십성 기사에 파묻혀서 제대로 된 그들의 정책분석기사 한 줄을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댓글들은 뭐 당연히 가관도 아니었고.

 

선거가 끝나고 친구가 무슨 트위터 캡쳐를 보내줬다. “힐러리 클린턴이 진다 아마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하는 여자들 중 가장 대단한 여자일텐데 그런 여자가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강간범 남자한테 진다. 여자들한테는 조국도 없고 이민갈 나라도 없고 정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어이가 없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트위터니 블로그 링크들을 타보면 다 이런 식이다.

 

세상에, 정말 그렇게 믿는 건가. 선택할 것이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힐러리를 지지했던 거 아니었어이런 순박한 감상주의덜 떨어진 안목, 대책없는 패배주의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힐러리가 무슨 소수자의 친구고, 빈자들의 언니이며, 세계 평화의 수호자인가. 부정할 수 없는 미 패권주의자이고, 더러운 월가의 자금으로(특히 소로스) 선거를 치렀으며, 이라크와 시리아를 전쟁과 파국으로 몰고 간 원흉이다. 양식적인 페미니스트 코스프레 좋은데, 그와 샌더스 중 누가 진국이었는지는 선거전 양상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현지 페미니스트들은 누구를 지지했는가.

 

누군가에게 이 선거는 712일에 끝났다. 사실 정의는 그 시점에 종언을 고했고, 그 이후는 차악을 선택하기 위한 싸움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나의 투자성향에 비추어 봤을 때는 샌더스보다 힐러리가 훨씬 나았다. 힐러리 집권기의 미국과 세계경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혼탁하고 더러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편이 투자자들에게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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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치즈 2016-11-11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힐러리의 패배에 마음 깊이 슬퍼했던 저로서는 이 글이 무척 공격적으로 느껴지네요. 힐러리가 무결점인 여신이기 때문에 그 패배가 슬펐던 게 아닙니다. 힐러리와 동일한 스펙에, 동일한 정도로 부패한 남자 후보였어도 과연 트럼프와 선거 기간 내내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결국 졌을까 싶은 의심이 들기 때문에 슬픈 거예요. 힐러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진 것은 아닐 겁니다. 분명 다른 이유도 많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덜 득표한 것 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파워풀한 사람을 뽑는 자리에서, 여자라는 요인이 미미할지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런 안타까움을 패배주의와 천박한 감상주의로 매도하는 말미잘님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말미잘님이 샌더스를 지지할 때는 분명한 이유와 정치적 철학이 있었을 것입니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 힐러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말미잘님의 그것보다 천박한 것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뷰리풀말미잘 2016-11-11 17: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누드치즈님.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저도 힐러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득표수가 적어졌을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총 득표수로는 힐러리가 0.2%차이로 트럼프보다 많은 표를 득표했죠. 트럼프가 백인 남자들에게 많은 표를 받았듯, 힐러리도 여성들에게 많은 표를 받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로 쉽게 나타나지 않은 유리장벽이 힐러리의 더욱 유리한 고지 선점을 막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저도 그 부분에 분노합니다. 그러나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있을겁니다. 샌더스에게는 정치와 결탁한 자본주의의 장벽이었죠. 그 흔한 수퍼팩 하나 없었고요. 힐러리는 이게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저는 안타까움을 매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 만든 프레임에 휩쓸리고 놀아나는 세태를 한탄스럽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의 안타까움은 힐러리가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했고, 더욱 새로운 비젼을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짓뭉개지 않았나 하는 점에 있습니다. 글이 뾰족했던 건, 바쁜 와중에 휘갈기느라..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나쁜 애죠. 저 때문에 상처를 받으셨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릴게요.

누드치즈 2016-11-11 17: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마다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샌더스가 마주친 장애물은 샌더스가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적으로 짊어지고 있었으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지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특성이 장애물이 된다는 점이 저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 장애물을 가지고 있으니 성별이 장애물이라는 게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말미잘님의 논조는 핵심을 묘하게 빗나가 있습니다. 말미잘님이 나쁜 애라는 건 아니예요. 상처받은 건 사실이지만요.

뷰리풀말미잘 2016-11-11 18:17   좋아요 1 | URL
핵심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수퍼팩과 성차별을 기계적으로 병치시킨 건 사려 깊지 않은 논리였어요. : ) 다만 찌라시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힐러리가 약자라는 건, 힐러리에게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오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 힐러리는 거대한 골리앗입니다. 월가를 옆구리에 낀 미국 정치계의 거물이고, 민주당의 대부죠. 사실 구태 정치의 상징적 존재 중 한명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힐러리의 패배를 상식의 패배와 동일시하는 세태가 이상스럽다는 겁니다.

상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지마켓에서 석고대죄용 멍석도 주문했습니다. 감상주의에 ‘천박한’은 삭제하겠습니다. 사실 천박한 건 제 손가락이었어요.

ㅇㅇ 2016-11-11 21:3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힐러리는 여성인권을 말할자격도 없고 유리천장론을 말할자격도없습니다 자신의 성별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표 확보에만 신경을쓰는 행보를 보였지 약자인 여성에대한 진정성이 전혀없습니다 애초에 성별만 여자지 소수자와 정말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있는 저소득 저학력 여성들의 인권에 전혀관심이없습니다

https://namu.wiki/w/%ED%9E%90%EB%9F%AC%EB%A6%AC%20%ED%81%B4%EB%A6%B0%ED%84%B4

2.4번 항목을 끝까지 읽어보세요 힐러리가 여성인권을 논하는게 구역질나는 헛소리라는걸알수있습니다 차마 쓰기도 더럽네 힐러리가 자신의 고객을 위해 변호했던 재판의 피해자는 12살이였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37&aid=0000044030

뷰리풀말미잘 2016-11-11 23:28   좋아요 0 | URL
가진 것들 중에 최선의 패를 골라야 하는데 그나마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 정치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카드놀이라면 액면 그대로 보이기나 하죠.

선거는 끝났고 이제는 힐러리-트럼프 구도가 은폐하는 디테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국이 끝났으면 복기를 해야죠. 다음번에는 더 멀쩡한 사람들을 그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요.

금요일 밤입니다. 정치 얘기를 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죠. 야참은 드셨습니까. : )

LAYLA 2016-11-1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며 힐러리에겐 좆이 없어 졌다고 분노하던 사람들이 플레이 보이 출신의 누드나 찍던 여자가 영부인이라니 세상 말세라고 할때 아 네..싶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6-11-11 23:26   좋아요 0 | URL
앗, 라일라님 오랜만!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정치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이런 저런 프레임이 덧씌워진 여성상을 만들어 놓고 그게 레얼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인거네요. 여성차별적 사회에서 나쁜남자들이 개념없이 하던 짓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고추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게 한남충이죠. 아오!

LAYLA 2016-11-14 02:1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 아닌게..댓글은 안남겨도 미잘님의 글은 늘 보고 있답니다 호호호

뷰리풀말미잘 2016-11-14 10:52   좋아요 0 | URL
 



I don't need sex! 

Because the government fucks me eve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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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11-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했다.

한수철 2016-11-08 17:01   좋아요 0 | URL
저는 빨리 광대짓 좀 하면서 살고 싶네요. 이런 분위기에서는....

뷰리풀말미잘 2016-11-08 21:38   좋아요 0 | URL
네 어휴 참. 돌려돌려 나라꼴!

컨디션 2016-11-0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욕 식욕 다시(아니 좀더^^) 회복해서 광장으로 가야죠. 저는 지방중에서도 최지방이라, 더구나 생업이 생업인지라(농사일에 치이다보니) 멀리서나마..

뷰리풀말미잘 2016-11-08 21:49   좋아요 0 | URL
정치에 노관심이고 세 사람 이상 모이는데 안 가는 주의지만 이번주에는 한번 나가볼까 해요. 컨디션님 몫까지 힘써볼까 합니다. 그럼 방화와 무장봉기 중에서 하나만 골라주세요.
 

꿈을 꿨다.

 

#. 1

 

수용소였다. 섬인 듯 했다. 그 곳에서 자의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오래된 학교처럼 아무 인상도 없는 무뚝뚝한 시멘트 건물 여러 동이 듬성듬성 있었다. 수용된 자들은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 중 어린아이나 노인이 아닌 자들은 모두 노역에 동원되었다대여섯 명에 한명 씩 감시자가 붙었다. 나는 순응적인 인간이었다. 소처럼 일했다. 구령을 넣어가며 삽을 떴다. 

 

노역이 끝나고, K(잘 아는 사람이다) 수용소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K를 발견하고 뒤따라갔다. 반갑게 인사를 할 요량이었던가. 하지만 나보다 먼저 그를 맞이한 건  불량한 패거리였다. K는 후미진 곳으로 끌려가 잔혹하게 폭행당했다. 나는 숨어 그 모습을 봤지만, 나서지 못했다. 녀석들이 자리를 뜨고, 비척이며 일어선 K는 의무실로 갔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날 때 까지 그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며칠 지났던 것 같다. 내가 의무실로 찾아갔을 때, K는 병상에 앉아있었다. 내 얼굴을 본 K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누나가, 누나가 나쁜 짓을 당하고 있어.”

 

K의 친누나, R(역시 잘 아는 사람이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를 추슬러 앞세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가. K는 나를 멀리 떨어진 구석의 창고로 데리고 갔다. 창고는 오래된 학교의 목공실처럼 생겼다. 쇠사슬로 대충 양쪽 문고리를 감아 놓은 철문 앞에서 전의 그 패거리가 비쭉 열린 틈으로 걸레자루 같은 것을 쑤석거리고 있었다.

 

뭐지. 나는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나체로 개처럼 엎드린 R의 나신이었다. 그녀는 정신이 붕괴된 듯 했다.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혈관이 좁아져 손발이 차가워졌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 녀석이 철문을 기어올라가 위에서 R을 내려다 봤다. 어느새 나는 녀석의 바지춤을 잡고 맨 땅에 내리꽂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처박혀 으깨진 녀석을 걷어차고 짓밟았다. 아무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때 까지.

 

걷어차는 발에 생기가 걸리지 않자, 잊고 있던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어느새 다른 녀석들은 도망가고 없었고, K는 멀찍이서 질려 떨고 있었다. “잘 들어, 너는 이 자리에 없었어. 이쪽으로 걸어가. 넌 그냥 걷고 있었던 거야. 알겠니?” 나는 K의 등을 떠밀어 창고의 반대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가 걸어 간 반대 방향을 따라갔다. 다리가 풀려 걷기가 어려웠다.

 

 

#. 2

 

곧, 지나가던 소녀를 만났다. “, 저기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다리가 불편하구나.”

 

소녀는 그 쪽으로 다다다 뛰어가더니 널브러진 녀석을 먼발치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소녀는 말 할 사람을 찾으러 두리번거렸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오래된 분교처럼 생긴 수용동으로 들어갔다. 그 복도를 뛰어가 직원인듯한 여자에게 사람이 죽어있다고 말 했다.

 

그 순간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인이 아이를 낚아챘다. 여인은 표독스러웠다. 그것은 곤궁한 삶에서 맨 손으로 활로를 헤집어가며 단련된 날카로움이었다. “너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아이는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손가락을 펴 나를 지목할 새도 없이 아이의 엄마는 화를 발칵 냈다. “이 미친년아, 니가 왜 그걸 말하고 다녀!”

 

그녀는 정확하게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내 입으로 말 할 수 없어 소녀를 이용했다. 그게 사실이다. 이제 마음이 급해졌다. 지목당하기 전에 이 복도를 빠져나가야 했다. 복도는 길었고, 소녀는 재빨랐다. 날 찾아 이쪽으로 곧장 달려온 소녀는 놀라운 탄력으로 뛰어올라 멱살을 그러잡고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씹팔새끼가 나를 속여!” 악을 쓰는 소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모로 돌리고 소녀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완력이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작은 손아귀에서도, 허름한 수용동에서도, 알 수 없는 섬과 그 기묘한 세계에서도 나는 도망칠 수 없어 전전긍긍했다.

 

새벽 다섯 시 십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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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악몽처럼 연결된
    from 공음미문 2016-10-31 08:22 
    이 혹독한 2월에 어찌 춥지 않았을까?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얘야, 나 좀 볼래, 착하지. 아저씨가 눈이 안 좋단다. 지독한 근시라서 편지 넣는 구멍을 못 찾을 것 같구나. 저기 있는 우체통에 나 대신 편지 좀 넣어줄래." 쪼그리고 있던 아이가 나를 보더니 일어섰다. 투명하리만치 창백한, 버기 드물게 예쁜 작은 얼굴이었다. 아이는 편지를 받아 들고 긴 속눈썹을 꿈틀하더니 경이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체통으로 달
 
 
컨디션 2016-10-31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놀랍네요. 꿈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무리 선명한 악몽이어도, 꿈이라는 게, 다시 되짚듯이 머릿속으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기록까지.. 그것도 너무나 풍부한 표현을 담아 물 흐르듯이 재생을!..

뷰리풀말미잘 2016-10-31 00:32   좋아요 2 | URL
모든 꿈은 꾸는 이유가 있죠. 저는 꿈을 무의식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보여준 것들을 적어놨다가(안 적으면 금방 휘발되거나 왜곡되어 버리거든요) 시간 날 때 되새겨보면서 생각하고,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가련할 때도 있고 기특할 때도 있고 하고 뭐, 그렇습니다. : )



AgalmA 2016-10-31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뷰티풀말미잘님~ 실례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 글에 떠오르는 소설이 있어 먼댓글을 썼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6-10-31 10:17   좋아요 1 | URL
♥Agalma♥
 
2016.10.12. 의자 마련

#. 1

    

 

추사가 말년에 은거하며 글 쓰고 그림 그리던 곳이 과지초당이다. ‘과천 땅에 풀로 엮은 집이라는 뜻인데, 풀로 엮긴 뭘 풀로 엮어. 추사 패밀리가 한창 잘 나갈 때 지은 곳으로 정원에 연못이 딸린 럭셔리 별장이다. 그 양반은 영면할 장소로 여기를 택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고양이 빌딩'을 지어 책을 저장한다. 창문에 커다란 고양이 스티커가 붙어있다. 장서가 몇 만권이라던가. 여기서 다카시는 주옥같은 원고를 썼다. 그는 방광암이 재발해서 곧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그와 그의 서재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붉은 돼지님의 서재 이름은 '사의재'다. 다산이 유배생활 하던 주막에 그런 이름을 붙였던 걸로 기억한다. '네 가지를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은데, 역시 서재 이름라면 뭔가 의미심장해야 의미심장한 것 같다

 

    

 

돼지님 페이퍼에 따르면 장석주 시인은 집 한 채 규모의 서재, '수졸재'를 지었다는데 찾아보니, 쩔어! 근데 부부가 시 써서 이런 서재를 지을 수 있나. 얼마 전 친구에게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의 부류로는 흑인, 걸인, 시인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시인은 취소해야 할 것 같다.

 

#. 2

 

  

나도 작은 서재를 가지고 있다. ‘You’re yeah‘. ’유어예游於藝.

 

이 말을 논어 옹야편에서 발견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어도-도에 뜻을 두고(志於道), 거어덕-덕에 의거하고(據於德), 의어인-인에 의지하며(依於仁), 유어예-예에서 노닐어라(游於藝)."

 

여기 흔들의자에 앉아서 흔들흔들 하며 책을 읽는다. 사실은 바닥에 쭉 엎드려서 읽기도 하고, 누워서 읽기도 한다. 솔까말 앉아서 읽다가 엎드려서 읽다가 누워서 읽는 코스다. 추사도 그랬을 거다. 아무리 지체가 높은들 어찌 허리 꼿꼿이 펴고 몇 시간씩 책을 읽을 수 있겠나.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사롭지 않아도 좋다. 그거슨 책과 미모에 모두 치명적이니까.

 

 

#. 3

 

서재는 아니고 책과 잡다한 것들이 같이 쌓여있는 방이 하나 더 있다. 이 반만 서재의 이름은 노동 2. 책은 곧, 노동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노동 2호는 장차 대도서관으로 육성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곳은 은밀한 곳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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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10-2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을 동시에 자극하는 글이네요.

뷰리풀말미잘 2016-10-28 14:00   좋아요 0 | URL
그럼 인슐린은요? 안드로젠은요? 히히. 글고 어디 성장호르몬 팍팍 샘솟는 글 보셨으면 공유좀..

cyrus 2016-10-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달부터 겨울로 들어서면, 전기장판에 배 깔고 책 읽는 시간이 많아져요. 이불 밖으로 나가기 귀찮아집니다. ^^

뷰리풀말미잘 2016-10-28 18:15   좋아요 0 | URL
전기장판, 귤, 책 삼신기만 갖추면 겨울 끄떡없죠. ㅎㅎ

붉은돼지 2016-10-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왠 자주보던 돼지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ㅎㅎㅎㅎㅎ
사진은 장석주 시인의 수졸재가 아니라 수졸재 옆에 한 채 더 지었다는 `호접몽` 같아요. 시인으로서는 드문 재력이라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저서가 60권이 넘는다고 하는군요...

소생이 예전에 알라딘 서재 처음 만들 때 마침 정약용 관련 책을 읽고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서재이름을 `사의재`라고 지었는데 소생에게는 참으로 가당찮은 당호라서 바꾼다 바꾼다 하다가 그냥 지금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말미잘님의 `유어예` 는 이름도 참 멋지고 또 깔끔하군요...어째 말미잘스러운 서재를 예상했었는데....ㅎㅎㅎㅎㅎㅎ `노동2호`가 대포동을 거쳐 대도서관으로 거듭 발전하길 앙망합니다.^^ 노동2호 시험발사라도 한번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만........


뷰리풀말미잘 2016-10-29 00: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그럼 사진은 다시 찾는대로 바꿀까 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정말 책을 많이 냈네요. 저 정도 일하면 시로도 먹고 살만 해야죠.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사의재는 좋은 이름입니다. 그냥 불림으로 효용이 다 하는 이름보다는 자꾸 뭘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 좋아요. 저는 사의재를 지지합니다.

유어예는 정말 멋진 이름이죠. 유어예의 藝는 육예를 말하는데, 각각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의미합니다. 서랍엔 악기도 몇개 들어 있고, 숫자에 관련된 책도 제법 있으니 예, 악, 서, 수의 모양 정도는 갖췄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활쏘기)와 어(말타기)는 文이 아니라 武라서, 그걸 도저히 책으로 충족할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권투 글러브를 한짝 모셔놓은 이유입니다. 상징같은 거죠. 실제로 사용하는 너덜너덜한 장비들은 노동 2호에..

어느날 대도서관이 완성되면, 저는 그 내부를 끊임없이 유랑하다 슬그머니 잊혀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