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다. 가을이 절룩거리는 계절의 등허리를 걷어찰 시간이다. 그 농장주 새끼가 우리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여름은 어차피 불구가 된 채 잊혀갈 주제에 문턱을 긁어대며 악을 써 대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날이면 그 여자가 생각난다. 1966, 브루클린이었다. 우리는 더럽고 비좁은 호텔방에서 며칠째 널브러져 있었다. 해직된 부두노동자들은 밤새 싸구려 보드카를 마시고, 아침이 되면 그 병을 다 부숴가며 소란을 피워댔다. 알뜰한 새끼들. 한바탕 소란이 끝나면 베트남전 참전을 독려하는 시끌벅적한 캠페인이 악다구니를 쳤다.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너무 더웠고, 어차피 잘 닫히지도 않았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잤는데, 몸이라도 뒤척이면 낡아빠진 목조 마루의 이음새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년 좀 닥치게 해줄래?

 

쿠션이 다 꺼져 스프링이 도드라진 침대에는 텍사스 출신 촌뜨기 여자가 반쯤 동공을 풀고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칡뿌리처럼 엉킨 블론드 헤어. 잠옷이지만 외출복이 되기도 하는 가난한 원피스에 언젠가 뒷골목 파키스탄인의 좌판에서 마리화나 거스름돈 대신 받은 한심한 가죽 팔찌를 차고 있다. 꼬락서니 하고는.

 

-더워.

 

-배고파.

 

-시끄러워.

 

-좆같아.

 

우리는 경쟁하듯 불만을 쏟아냈다. 전날 아침 식빵 한 쪽 이후로 먹은 것도 없었지만, 바깥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더위와 가난, 난장을 벌이는 노동자들과, 무기력증이 방문 앞을 겹겹의 바리케이트로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참 못생겼다.

 

-좆까.

 

-너나 좆까.

 

-씨발새끼.

 

한 채집통에 갇힌 두 마리 모기같은 몰골로 서로를 헐뜯어 허기를 달랬다. Fuck. 그녀는 병 바닥에 말라붙다시피한 싸구려 와인을 짜서 목구멍에 털어넣고는 침대 구석에 묻어 둔 기타를 뽑아냈다. 그녀가 노래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Summer time.

And the livin' is easy

Fish are jumpin'

And the cotton is high

여름이었어.

사는건 뭐 괜찮았어.

물고기들은 팔딱거리고

목화는 높게 자랐지.

 

그녀가 쇠를 짓뭉개는 칼칼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건 내 어린 시절이었다. 문득 저 창문 아래를 내다보면 거지같은 실업자 패거리와 눅눅한 골목 대신 내 고향 뉴올리언즈의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강에 물고기가 뛰고, 목화가 높게 자라고.

 

Your daddy's rich

And your mamma's good lookin’

너네 아빠는 부자.

그리고 너네 엄마는 미인.

 

여기까지 부르고 그녀는 킥킥거리며 재떨이를 뒤적여 찾은 장초에 불을 붙였다. 우리 아버지는 노예 출신에 주정뱅이고, 엄마는 허리도 못 펴는 불구다. 나는 불만의 표시로 침대에 한쪽 팔을 걸쳐 올린 다음 몸을 지탱해 일어났다. 그녀는 마리화나 연기를 내 쪽으로 훅 뱉어낸 다음 다시 코드를 변주해갔다.

 

So hush little baby

Don't you cry

그러니까 빽빽거리지 말거라. 작은 꼬맹아.

울지 말아라.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열렬히 흔들어 댔고, 유일한 팬을 의식했는지 가수는 줒대없이 가사의 기조를 바꿨다.

 

One of these mornings

You're going to rise up singing

Then you'll spread your wings

And you'll take to the sky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노래를 부르면

너는 날개를 쭉 펴고

하늘까지 날아갈 거야.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매캐한 탁성을 쭉쭉 뽑아냈다. 취하는 것은 연기 때문일까 노래 때문일까. 그래서, 그 다음은? 나는 모이 먹는 토끼처럼 그녀 앞에 몸을 옹그리고 귀를 세웠다.

 

But till that morning

There's a'nothing can harm you

With daddy and mamma standing by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너를 해칠 수 없단다.

왜냐하면, 아빠 엄마가 널 지키고 있을테니까.

 

꿈에서도 바랄 수 없었던 일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치 정말 존재했던 일 처럼. 마리화나 연기에 취한 탓일까, 그 말도 안 되는 가사에, 특히 울지 말라는 가사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You‘re my fucking pretty flower.

 

-좆같은 비유 하지마.

 

내심 신이 난 그녀는 몇 곡을 더 부르고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지갑의 돈을 다 털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샌프란시스코로 갈 차비가 되기를 바라. Dear J.J, ‘The Flower'

 

나는 부두로나 가 볼 생각이었다.  

 

2년 후, 나는 용산 캠프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앨범에는 그 때 브루클린의 거지같은 호텔방에서 부르던 그 곡이 실려 있었는데, 어설픈 가사가 바뀌지도 않은채였다는 점이 퍽 감동을 줬다. 그날 잠들기 전에 혼자 그 호텔 방문을 열고 나가서 그 먼 샌프란시스코까지 며칠이나 걸려 도착해 냈을 그녀의 여정을 그려봤다. 

 

2사단에서 6년을 더 복무했고, LA에서 온 신참에게 그녀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호텔이라고 했다. 미국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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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7-08-1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근해야돼.

한수철 2017-08-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 혹시 결말부를 고치셨나요? 어제 차 안에서 동료의 스마트폰을 잠깐 빌려 <그림처럼> 휙 읽었을 때와는 좀 다른 느낌. 그때는 뭐랄까 압도적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설명조로 바뀐 듯.

감상: 말미잘 님 글을 읽으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짐. 계속 써 주세연. 뿌뿌~

뷰리풀말미잘 2017-08-12 19:44   좋아요 3 | URL
헉, 예리하시긴. 고쳤습니다. 압도적인거랑 설명적인거 중에서 더 좋은 건 역시 압도적인거겠죠.. ㅠ 뭘 써야 되는지, 왜 써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말복에 제니스 조플린 노래를 듣다가 옛날 생각이 나기라도 해야 쓰게 되네요. 어느덧 칠십줄에 접어들다 보니 귀차니즘만 나날이 더해가는군여..

한수철 2017-08-14 12:22   좋아요 0 | URL
뭐가 더 좋은 건지는 모르겠고, 뭐랄까 저는 제 기억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따른 기억능력의 현저한 저하 탓이겠지만, 실은 내가 기억하는 바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가령 오늘 집에서 나왔을 때 내가 달걀프라이를 해 먹느라 사용했던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오프로 돌려 놓고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기억에 따르면 항상 잠급니다. 신중한 타입의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믿을 수가 없어서 미량의 초조감이 하루 종일 잔존합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영..... 영감靈感님...

뷰리풀말미잘 2017-08-14 17:03   좋아요 1 | URL
님의 기억력에 대한 제 소견입니당. 알코올 중독에 따른 기억능력의 현저한 저하는 문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걸로.. 저는 벤조디아제핀 중독에 따른 현저한 저하가 있는데 이건 레얼임. 근데 가스렌지 밸브(관에 달린거 맞죠?) 그거 꼭 잠궈야 됩니까? 전 평생 안 잠그고 다녔는데 문제 없더라구여.

광복절엔 무슨 책을 읽으실겁니까? 저는 김애란 신간 주문했는데 이놈의 알라딘은 아직도 배송 시작조차 하지 않았군요. 두억시니같은 놈들. 대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읽을까 합니다.

한수철 2017-08-14 22:25   좋아요 0 | URL
찬호께이의 소설과 갑자기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이의 ‘재미가 지배하는 세계‘를 읽거나 말거나 할 듯요.

p.s 근데 이제 당분간 댓글 안 쓸 겁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8-14 22:31   좋아요 1 | URL
왜죠?

한수철 2017-08-14 23:00   좋아요 0 | URL
재충전하고 싶어서여.

AgalmA 2017-09-13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 할란 엘리슨 소설을 봐서 그런가...뷰리풀말미잘님이 원래 그런 성향이 있었지 싶기도 하면서.... 아직 할란 엘리슨 안 읽어 보셨음 읽어 보시길요/ 왜 읽어 보라고 했는지 대번에 알게 되실 듯. 내가 이런 거 쓰려고 했는데! 하실 거 같아서ㅎ 설명적인 거보다 압도적인 거에 더 가까운 작가이기도 하고ㅎㅎ

뷰리풀말미잘 2017-09-13 12:52   좋아요 0 | URL
오, 바로 보관함에 넣었어요. 저는 게으르고, 세상에는 읽을 책이 참 많군요. 하지만 전 소설은 쓰지 않아요. 못써요. ㅠ 글에 관한한 기능공이지 아티스트는 못 되죠. 반면 아갈마님은 아티스트의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학자의 기질도 가지고 있고, 또 구도자이기도 하고요. 장차 저도 아갈마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AgalmA 2017-09-13 12:54   좋아요 0 | URL
어느 나락에 던지려고 절 그렇게 추켜 세우세요-,,-; 전 그냥 저일 뿐;
할란 엘리슨 가독력 짱~ 심심하실 때 읽어보시길요^^/

뷰리풀말미잘 2017-09-13 12:56   좋아요 0 | URL
헤헷- 넹.
 

#. 1

 

눈을 떴을 때 모로 누워 있었다. 새벽인 듯 했으나 정확한 시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왠지 누드였다. 골반에 살짝 걸쳐있는 홑이불 말고는 걸친 것이 없었다. 몽롱한 와중에 끄지 않은 스탠드가 통 유리창에 전신 실루엣을 찍어냈는데, 아 진짜 야해. 핥고 싶어.

 

물이 올랐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지 2년쯤 됐다.

 

 

#. 2

 

인생이 그렇듯, 몸매도 거저 주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생활과 습관의 산물이었다. 그걸 몸이 허물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이별을 하고 사랑을 느꼈다는 바보처럼 몸매를 잃고 그제야 비통했다. 전 직장을 다닐 때였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겠지. 식욕이 떨어졌고, 잠들지 못했다. 일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복서였는데 스르륵 떨어지는 샤워타월에 한 박자 느린 헛손질을 했을 때 속까지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말뚝 박을까 했던 직장을, 살려고 그만뒀다.

 

그때 좀 쉬었어야 했는데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하러 외국에 갔다. 전쟁터 같은 도서관에 First In Last Out을 밥 먹듯 했더니 머리에 지식이 쏙쏙 들어오는 게 아니라 머리칼이 쏙쏙 빠졌다. 매일 방바닥이 머리칼이 수북했다. 먹는 것도 엉망이었다. 매일 얼린 볶음밥을 먹었는데 내 냉동실에 늘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수혈 팩처럼 쌓인 비닐 팩. 1kg에 3달러쯤 하는 조각 야채와 베이컨, 굴소스와 참기름을 넣고 대충 볶은 국적불명의 전투식량이었다. 그걸 아침마다 전자렌지에 하나씩 데워서 백팩에 쑤셔넣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매커너히처럼 비쩍 곯아있었다. 맥없이 푸석했고 힘, 유연성, 스피드, 근지구력, 지구력. 신체의 능률을 나타내는 모든 지표가 엉망진창이었다. 다시 취직을 한 다음엔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게으름에는 관성이 붙더라. 몸을 rebuilding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도 관성을 끊어내는 일이었다.

 

 

#. 3

 

계기는 이랬다. 어느 날 워킹데드를 시청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일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시작된다면 나는 릭이나 캐롤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몰려드는 좀비 떼를 밀쳐내고, 뒷통수에 나이프를 쑤셔 박고, 구르고, 달리고 그렇게 일곱 시즌이나.

 

 

그리고 보면, 3분남은 ‘인류 종말시계’는 오늘도 12시에 임박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통해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가능성을 점쳐볼까. 핵 전쟁(메트로 2033), 쓰나미와 해수면 상승(2012), 운석의 충돌(딥 임팩트), 외계인의 침공(우주전쟁), 치명적인 좀비 바이러스의 유포(워킹데드), 빙하기의 도래(설국열차), AI의 역습(매트릭스), 자동차의 반란(트럭), 열려버린 차원의 문(미스트), 사도의 침략(신세기 에반게리온) 생각해보니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닥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이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저께 택시운전사를 보니까 1980년의 광주에는 법도 도덕도 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할 때, 너네들의 돈은 규정으로부터 보호받았는가? 얼마 전 어느 미친놈이 강남 화장실에서 칼부림을 할 때, 공권력은 그가 그래도 될 만큼 충분히 먼 곳에 있었다. 법이란 얼마 전까지는 박근혜의 사적 소유였고, 도덕은 나이가 많거나, 서열이 높거나, 돈이 많은 놈들이 휘두르는 무형의 채찍이다.  
 
몰라몰라. 리즈시절로 돌아가자.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예민한 시기였기 때문에 운동에 할애하는 시간과 몸의 피로가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기를 바랐다. 집 앞에 시설이 잘 갖춰진 무료 피트니스 센터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걸어가기도 싫었다. 시간은 짧아야 했다. 방법은 간단해야 했다.

 

계획은 이랬다. 퇴근 후 하루에 3분. 최소한의 종류로. 핵심은 빅 머슬 위주의 프리웨이트 운동이었다. 기관차가 움직이면 객차는 따라가는 법. 대신 관절 가동 범위를 최대화 하고 근육을 비틀어 몸의 세부로 효과가 충분히 파급되도록 하자. 종류는 가슴(팔굽혀펴기), 배(크런치), 등(턱걸이), 다리(스쿼트), 어깨와 팔(밀리터리 프레스, 암컬)정도. 여기에 3km런닝를 섞어주면 다 해서 일곱 종류. 흔하지만 가장 확실한 운동이었다. 하루에 한 종목을 하면 일주일 단위로 끊어진다.

 

밀리터리 프레스를 위해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덤벨을 창고에서 꺼냈고. 크런치할 때 바닥에 깔려고 폭신폭신한 요가 매트를 하나 장만했다. 운동하러 밖에 나가는 날은 금요일 하루뿐. 연습 없이 풀코스를 뛰던 체력이었는데, 처음에는 3km를 15분 안쪽으로 끊을 수도 없었다. 고작 그걸 뛰면서 여름 강아지처럼 할딱거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 4

 

결론, 효과는 레얼이다. 군살은 쪽 빠지고 근육이 올라붙었다. 섹시해. 기능성 측면에서도 생각이상의 진보가 있었다. 고중량을 다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 프레스를 몸무게의 1.5배로 다루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Navy seal의 체력테스트 기준을 달성했다. 몸은 가볍고 예전만큼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 3km를 고속으로 주파하고 바로 고중량 스쿼트를 해도 가뿐하다. 이 정도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바디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부작용도 있다. 졸라 힘들다는 거다. 비루한 몸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다시 바닥부터 다져야하는 까마득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늘 몸에 한계치의 부하를 걸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날마다 새로운 괴로움이다. 3분은 세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아직도 3km를 뛰기 전에는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파블로프의 개처럼 몸이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게 핵심이다. 나는 버핏의 투자방법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우량주를 쥐고도 돈을 잃는다. 버핏은 기다린다. 투자하는 회사가 성장하며 더 나은 이윤을 창출하기를. 실제로 회사가 이윤을 창출하고, 그 과정이 몇 년이고 반복되어 결국 주가에 반영될 때까지. 평균적으로 한국 개미들은 일주일 쯤 기다린다. 미국 개미들은 한 달 정도 기다린다. 버핏은 코카콜라 주식을 사고 30년을 기다렸다.

 


#. 6

 

‘근육의 성장’은 반복적인 자극으로 파괴된 근육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운동은 근섬유를 손상시키고, 손상된 세포는 수용기에 붙어있는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염증성 분자를 방출해 면역계를 활성화 시켜 회복을 도모한다. 회복된 근섬유는 처음보다 굵어지고, 강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신체는 담금질 된다.(muscular hypertrophy) 이 매커니즘은 ‘개혁改革’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고칠 ‘개’자에 가죽 ‘혁’, 가죽을 벗겨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 7

 

회사 동료가 취미를 물었다. “미잘님은 집에 가면 뭐해요?” 잠만 자고 고대로 다시 출근할 것 같다고. 난 뭘 하지? 나도 궁금하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취미에 대해 써 보기로 했다. 1번,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바디 만들기. 집에 가면 거의 매일 하는 일이다. 어째서 이 고통스러운 것을 즐긴다고 할 수 있냐면, 바울선생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아멘.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며 가학적 쾌감과 피학적 쾌감을 동시에 즐기고, 알몸을 감상하며 희열을 느끼는 변태 성욕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달까. 최소한 매일 3분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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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7-08-1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인물 같네요. 지성적이고 분방하며 부유할 것 같은데...... 환란을 겪게 하고 싶네요.ㅎㅎ 단지, 글로써.^^

...저는 공놀이나, 등산은 매일매일 지쳐도 에너지를 쥐어짜 내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주안점을 <반복>에 두어야 하는 일체의 운동에는 소질이 없네요. 지긋지긋한 걸 염오하는 타입이라 그럴까연?

뷰리풀말미잘 2017-08-10 10:13   좋아요 1 | URL
수철님 안녕하세여. 환란은 하루 3분 정도의 작은 규모 이상은 부담스럽습니다. 단지 글로도요. ㅠ 저는 공놀이를 엄청나게 못해요. 왜 못하는가 발이 세모인가 생각해 봤는데, 팀웍이 음슴. 한 번에 두 사람 이상이 머릿속에 안 들어옵니다. 등산도 즐기지를 못하겠더라구요. 목적지향적이라 그런 것 같아요. 빨리 해 치우고 정리해야 되거든요. 그러니 풍경도 뭣도 보이지 않죠.

그건 그렇고 책 읽다가 수철님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마실 한 번 나갈께요.

AgalmA 2017-08-1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뷰리풀말미잘님 글이 있네@@ ‘이별을 하고 사랑을 느꼈다는 바보처럼 몸매를 잃고 비통‘ㅋㅋ 이런 문장은 뷰리풀말미잘님 정말 잘 쓰는 듯~ 근육 키우는 작전에 버핏이 코카콜라 주식 사고 30년 기다린 얘기가 버무려 지는 것도 역시나 ㅋㅋㅋㅋㅋㅋㅋ

매일 3분 근육 운동 얘기에 환란까지 등장ㅋㅋㅋㅋㅋ
오늘 최고 웃긴 글였음요👍🏻

뷰리풀말미잘 2017-08-11 14:18   좋아요 0 | URL
그 문장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막 타이핑 한 건데.. ㅠ 구글에서 개발한 알라디너형 AI로 추정되는 분이 막 그런 말 하고 그러시면 부끄럽단 말입니다.

AgalmA 2017-08-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말여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말미잘님의 글은 앞뒤로 배경이 두루 조성되어 있어서 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 문장이 재밌어지는 것^^
그런데...알라디너형 AI? 저요? 저 정도가 AI면 프로젝트 실패인 거 아녀요ㅋㅋ

뷰리풀말미잘 2017-08-12 00:54   좋아요 0 | URL
일단 튜링테스트는 통과하셨습니다. 요즘 딥러닝중인것도 확인됐구요. 게다가 아갈마님의 두번째 대문자 A가 artificial을 의미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엔 소문자였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가공됐나요?) 금요일 밤이네요. 일주일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인 것 같아요.
 

시, 소설, 희곡, 수필, 역사, 철학, 경제, 사회, 과학, 스포츠, 종교, 음악, 오컬트 등 장르 가리지 않습니다.

 

인당 세 권씩 댓글 달고 가세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ㅠ_ㅠ


※주의 

수학이야말로 진리의 학문이야.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대수학원론을 읽어봐. (랜섬웨어 전송함)

예전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읽어보았는가. 번역이 비단결 같으이. (목각인형 불태움
박상륭 디박. 칠조어론이야말로 한국 소설의 지평을.. (의열단 파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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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5-16 19:23   좋아요 0 | URL
앗, 추천 감사합니다. 히토시 대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아직 일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리 추천해 주시니 꼭 보도록 할게요!

2017-05-16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5-16 19:39   좋아요 0 | URL
아, 기생수 안본 뇌는 저도 매입해야되는 입장이랍니다.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덕력이 상당하시군여.

2017-05-1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5-16 22:40   좋아요 0 | URL
좋은 밤 되세요 : )

한수철 2017-05-1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시니 그런 책이 없는 저로서는 그냥 지나가야 마땅하나
일전에 기차에 오르기 전 근처 헌책방에서 산 수필집이 어쩌자고 떠오른 마당이니 언급이나 해 보겠어요.

박연구, 바보네 가게. (수십 년 전에 씌어진 글들인데, 편편, 한 번씩은 꼭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듭디다. 음... 따듯했어요 걍.)

뷰리풀말미잘 2017-05-17 15:33   좋아요 0 | URL
음.. 안녕하세요. 한수철님 공연히 해찰을 부리시는군요. ㅎㅎ 그간 격조했습니다.
그런 책이 정말 없다고요? 그럼 한국 최고의 소설가라고 생각하시는 작가의 이름 세 명을 적어놓고 가도록 하세요.(전부터 궁금했습니다.) 아, 한 명은 이승우죠? 왜냐면 님이 이승우이니까요. 박연구, 바보네 가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5-17 15:45   좋아요 1 | URL
아 저는 김훈, 이문열, 박민규라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문제적 인물들이로군요. 셋 다 내공이 고갈된 것 같기도 하고요.

한수철 2017-05-17 22:18   좋아요 0 | URL
u-20 월드컵 코리아가 목전이라는 걸 말미잘 님이 상기시켜 주셨네요. 감사.

이승우 파이팅! 득점왕!!

현재... 한국 최고의 소설가라고 생각을 하게 하는 분들은 없습니다. 상향 평준화...

박민규 작가는 이래저래 고자누룩한 것일 뿐, 반드시 재기(?)하리라는 데 전 재산 30,050,020원 걸겠습니다. (하루키의 영향은 존나게 받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

뷰리풀말미잘 2017-05-17 22:55   좋아요 1 | URL
축구를 잘 몰라서.. 또 월드컵.. 비슷한 걸 하는가보죠?

소설도 사실은 잘 몰라서.. 읽는 사람들의 것만 조금 읽는 정도지 사실 최고의 소설가를 선정할 만큼 견문이 넓지는 못하죠. 제가.

박민규가 표절시비 이후 쭉 고자누룩한 모양입니다. 오래 신간이 없네요. 흠.. 전 재산 삼천만원이라.. 현금성 자산인가요? 현물이나 부동산 무보증 사채는 사양하겠습니다.

박민규가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다라.. 그러고 보니 어이없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닮은 듯 하네요.

한수철 2017-05-17 23:29   좋아요 1 | URL
진짜 월드컵이죠. 자라온 시절(시간)이 비슷한 친구들끼리의 경쟁이므로.^^

...모르겠고 음, 그가 <그답게> 재기하길 바랍니다.^^

국민은행에 있는 전 재산입니다.

입만 열면 ‘야부리‘가 까지는 타입의 인간이지만.

돈, 불려 주실래요?

뷰리풀말미잘 2017-05-18 08:10   좋아요 1 | URL
갈 길은 멀지만 사모펀드를 만들어 운용해 보고 싶긴 합니다. 그 때 운용수수료에서 지인 할인율10%, 알라디너 할인율 10% 적용 가능하세요. 고객님.

한수철 2017-05-18 09:35   좋아요 1 | URL
사모하는 마음으로 임해 주시겠습니까?

이런 얘기하려고 온 건 아니고,

어젯밤 놀아 주셔서 감사함니다...

AgalmA 2017-05-20 0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욱겨ㅋㅋ
뷰리풀말미잘님이랑 한수철님 대화는 알라딘댓글계 재미 갑ㅋㅋ

그나저나(정색) 이렇게 물으실 땐 본인이 재밌게 읽은 레퍼토리를 제공해야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 이어질 거 아닙니까. 빅데이터 몰라요 빅데이터? 아실만한 분이... 싫어하는 책 열거가 수준높아 더 어려우니 이거 어째 신비주의 전략 같기도 하고ㅎㅎ

님 취향 알 바없이 제 기준으로 재밌는 거 뷰리풀말미잘님이 그닥 좋아 안할 것도 같지만...
칼비노, 도스토 선생 소설 중 안 읽은 책 중에 골라 읽어보는 게 안전빵이지 않나요? 저는 이 작가들 책이 실비보험 나오는 책 같더라는ㅎ
비소설계에선 최근 읽은 책 중엔 제임스 글릭 [카오스] 좋았지만 님은 책 던져 버릴까봐 추천 못하겠음.
만화로는 저는 마사루 파ㅎ 미역~ 미역~

뷰리풀말미잘 2017-05-22 11:19   좋아요 0 | URL
칼비노는 한 권도 안 읽어봤고 도스토 선생은 무슨 이탈리아 작가인가했다능.. ㅎㅎ 의미로 가득한 빽빽한 글이 싫어서 ‘※주의‘까지 써 놨건만 추천목록이 뭡니까 이게.. 랜섬웨어 전송해 드렸어요. ‘카오스‘는 흥미가 동하긴 합니다만 백치미 가꾸는 제 형편에는 맞지 않는듯 하군요.

마사루.. ㅋㅋ

AgalmA 2017-05-22 13:59   좋아요 0 | URL
그럴 줄 알았음ㅎㅎ 님한테 권해놓고 제가 도 선생 책을 보고 있는 중인데 역시 미치도록 재밌슴ㅜㅜb
선물로 보냈다가 욕 들으면 곤란하니....도서관 좀 가십니까. 칼비노는 일단 [나무 위의 남작] 한 번 읽어보시죠. 의미 어쩌고 생각할 새도 없이 빠져듬.

뷰리풀말미잘 2017-05-22 14:42   좋아요 0 | URL
도서관은 안 가지만 ‘나무위의 남작‘은 시도해 보겠습니다. 아갈마님 추천이라 걱정이 앞서긴 하는군요. ㅎㅎ 전 최근에 ‘10.67‘이라는 대만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흡입력 있더라고요. 진공청소기인줄. 추천 감사합니다. : )

2017-05-22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2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0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7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수철 2017-06-1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7-06-07 17: 55분‘에 누군가가 쓴 댓글이 아직도 방치돼 있군. 아무리 늦어도 48시간 안에는 댓글을 달아주는 타입이었는데. ...왜지?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있긴 있지.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눈은 그 사람의 심리가 최종 답지하는 곳이니까. 물론 눈을 아무리 바라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생각해 보면 부쩍 늘었지. 하기사, 연기演技의 시대니까.


죽었나요?



뷰리풀말미잘 2017-06-15 17:18   좋아요 0 | URL
演技의 시대에 드물게 눈으로 드러나는 분을 알고 있어요. 저는 그 분의 눈을 보면 행복해짐을 느낍니다. 사슴처럼 순결한 눈의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허경영을 불러봐 넌 웃을 수 있고! 오로히리잇~! 유~후!! 좋아!좋아!좋아!좋아!!

헉, 헉, 리듬 타고 계신가욧?

먼 곳에 있습니다. 곧 돌아갑니다.
 

 


속을 죄 드러내고 껍질만 남은 도시는 차라리 속도 없는 도시만 못하다. 스무살에 혼자 걸었던 태백이 그랬다. 폐광 특유의 황량함을 피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종점이라 방도가 없었다.

 

진과스에는 작은 마을에 박물관 하나뿐이었다. 저녁에 미처 닫지 않은 상점들 몇 군데만 소소한 빛을 보태고 있었다.

 

뭐,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10분 거리의 지우펀으로 올라갔다. 노출을 길게 맞춰 빛을 포집했다

 

그거 아세요? 지우펀의 별은 지면으로부터 떠오른다




 

뭐 걍 야경. 멀리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이 인상적이다. 저 곳이 구름이 생겨나는 장소일까? 

 

미아자키 하야오는 지우펀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프를 얻었는데 (지브리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럴듯한 신비함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 유명한 지우펀의 홍등거리.  


 이 사진을 보여줬을 때 루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점 거리는 걍 그랬지만, 야경은!  





우리는 길을 거슬러 다시 진과스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면 스린까지 앉아서 갈 수 있기 때문.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화보'를 찍기로; 했다. 신은 내게 더 나은 미모를 주시고 왜 촬영기술까지 주셨는가. 이딴 잡기술이나마 루리에게 주는 게 공평했을 텐데. 

 

이것이 내 사진이 없는 이유. 

DSLR로는 셀카를 찍지 못해 슬픈 짐승이여. 



 

 

루리는 오로라 공주처럼 찍어내라고 강요했고, 나는 인간이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후환을 만들기 싫어 최선을 다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을 보여줬을 때, 루리는 주먹을 세게 부딪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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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4-09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집니다. 신은 정녕 말미잘 님에게만 전능을 주신 겁니까? ㅎㅎ 지상에서 솟아나는 별무리를 보러 지우펀으로 가고 있는 저를 상상해보며 ^^

뷰리풀말미잘 2017-04-09 18:24   좋아요 1 | URL
정말 신도 참! 히히.

야경 좋다는 곳 제법 가 봤지만 진과스, 지우펀의 야경은 유독 아름다웠어요. 홍등거리가 생각보다 별로라고(너무 관광지라고)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관광책자에 예쁘게 꾸며진 것만 기대하고 가서 그런듯 합니다. 거리에서 살짝 빠져나와서 야경만 감상해도 아쉽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제목따윈 0.5초만에 생각한다.

 

#. 1
 
창작자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 있고, 반대로 감상자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 있다. 글에 관한한 나는 감상이 즐겁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대부분은 이미 세상에 있다. 반면 내가 보고 싶은 말의 대부분은 내 안에 없다.
 
한편으로는 언어의 공해가 짜증스럽다. 악다구니, 동어반복, 논리적 오류가 초당 수만 페이지씩 생성되는 이 세계에 단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보태고 싶지 않다. 세상이 각박해서인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자기 목적에 맞춰 규정하지 않고서는 문장을 맺지 못하는 태도나 정의를 소유물처럼 여기는 태도도 피하고 싶은 요소다.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 침묵으로 가능하다면 기꺼이 침묵하리라.
 
무리에 속하지 않으려는 것은 나의 정치색이나 사회적 포지션보다도 근본적이다. 본능에 가깝다. '홀로 살아남는 것'이 어떤 정치적 옳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이란! 내 안의 불안이란 바다와 같지만 쓰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유별나다. 마치 먹은 것이 적체되고,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오는 것과 같이 꾸준하고 번거로우며 당혹스럽다. 그럴 때면 배설의 욕구를 해소하듯 하얀 공백을 띄워 놓고는 정신없이 두드리고 부끄러워하며 아무 폴더에서 쑤셔 박아 놓는 것이다. 하지만 조악하게 꾸며낸 낱말들의 면을 마주하면 괴로워서 다시 열어보지는 않는다. 배설물에 대한 혐오와 비슷한 종류랄까. (그런데 서재의 몇몇 악당들은 자꾸 쓰라고 괴롭힌다. 수치플인가!?)
 

#. 3

 

 

 

 

 

 

 

 

 

 

 

 

 

 

읽는 것도 지지부진하다. 잠들기 전에만 조금 읽는다. 그제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아직 무명에 가깝던 하루키의 소설이 처음으로 번역되는 대목이었다.

 

또한 서구 각국에서 약진할 수 있었던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다행스럽게도 몇 명의 훌륭한 번역자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우선 1980년대 중반에 엘프리드 번바움이라는 수줍어하는 인상의 미국인 청년이 내게 찾아와,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짧은 것을 몇 개 선정해 번역하고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좋지요, 꼭 번역해주세요“라고 얘기가 되었고 그 번역 원고가 점점 쌓이면서,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몇 년 뒤에 ‘뉴요커’진출의 계기가 됐습니다. ‘양을 둘러싼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를 ‘고단샤 인터네셔널’에서 출간할 때도 앨프리드가 번역해주었습니다. 앨프리드는 대단히 유능하고 의욕이 넘치는 번역자였습니다. 만일 그가 내게로 그런 얘기를 들고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생각은 그 시점에는 아마 못 했을 것입니다. 나로서는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앨프리드 번바움의 ‘양을 둘러싼 모험’은 좋은 평판을 받았고 뉴욕 타임즈에 대서특필 됐다. 존 업다이크는 뉴요커에 호의적인 논평을 실었고, 하루키의 소설은 세계로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지금은 5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나.

 

읽으며, 마르틴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1517년 경의 일이다.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에 격분한 루터가 97개조 반박문을 내걸자, 교황청에서는 회개를 강권했다. 온갖 정치적 정략관계에 따른 권모술수와, 치열한 신학논쟁이 벌어졌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그 결과 루터는 교회의 권유를 거부하고 도망자 신세가 됐고, 결국 행방불명된다.

 

어떻게 된 걸까? 루터가 실종되기 전, 왕실과 교회와 루터, 그리고 루터의 후견인 격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공개재판을 벌였다. 그 결과로 황제는 루터의 공민권을 박탈한다. 공민권의 박탈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로, 누가 루터를 죽여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중의적 의미다. 마치 러시아가 체포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육지에서 500km떨어진 공해상에 ‘훈방’한 것과 같이 실질적인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그 날, 재판이 열렸던 보름스에서 루터는 몸을 숨긴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복면을 쓴 괴한들이 루터를 납치한다. 퍼져나간 소문은 흉흉했고 모두가 루터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만, 복면 괴한들은 다행스럽게도 프리드리히 3세 수하들이었다.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루터는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를 받으며 바르크부르트성에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었다능.

 

왜 하필 번역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시 라틴어 성경은 교황청과 지식인 사회가 독점하는 신적 권위였다. 이것을 일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라틴어와 라틴어 사용자들의 레짐을 거꾸러뜨리는 사상적 혁명이었다.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은 영어로, 불어로, 스페인어로 번역되었다. 세계 각국으로 파견된 예수회 수도사들은 현지어로 다시 성경을 번역했다. 한자로 번역된 성경은 연경으로 파견된 사신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들은 그것을 구해 호롱불 아래에서 의미를 더듬었다. 1801년에는 신유박해가 터졌다. 형제들은 의금부에 끌려가 장에 얻어터지고 약종은 목이 잘렸고, 약전과 약종은 절룩거리며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97개 반박문이 나붙고 282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번역은 살아남았는데, 그 사실은 내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한 기분이 들게도 만든다. 사실은 사실일 뿐이니까.  
 
그날 오전에 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Hola amigo’ 제목 뒤로는 한 페이지가 빼곡한 스페인어가 적혀있었다. 언젠가 페이퍼에 적어둔 꿈 이야기를 모종의 이유로 스페인어로 번역했다고. (http://blog.aladin.co.kr/Escargo/8869875)

 

 

그 낯모를 문장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나의 독서는 완전해졌다. 굳이 지난한 성경의 번역사를 떠올릴 필요 없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나에 따르면, 글이란 우선 해석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경험과 융합하여 상상 속에서 완전해진다. 간접 경험으로 이해하던 하루키의 감각을 실제 경험을 통해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거다. 그건 쑥스럽게도 퍽 감동적인 느낌이었다.

 

이런 것이었구나.

 

아주 오랜만에 더 읽고, 더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러진 않겠지만.
 


#. 4

 

쓰게 된다면 완전한 글을 쓰고 싶다. 이딴 글, 그러니까 밀려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받아 적는 페이퍼가 아니라, 오래 생각해서 한땀한땀 바느질 하듯 쓰는 글 말이다. 명백한 단어들로 문장을 지어 의미를 만들고, 그런 문장을 엄선해 문단을 만들고, 그런 문단을 조립한 견고한 한 편의 글. 그런 글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쓰는 것에 쫓기지 않게 될까? 하퍼 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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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3-24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뇨. 글은 영원히 쫓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과 죽음에 그러하듯.

<양을 쫓는 모험>으로 제 하루키 쫓기도 시작되었지요. 아, 밤새서 그렇게 하루키 읽을 때 정말 좋았는데...!

뷰리풀말미잘 2017-03-24 14:28   좋아요 2 | URL
음.. 열일곱 살이었는데, 겨울이었고, 엄청 추웠고, 눈발이 조금 날렸어요. 혼자 집에 있었는데, 책이 너무 읽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가난해서 주머니에는 오천 원밖에 없었죠. 새 책 살 돈은 안 되고 헌책이나 사보려고 길을 나섰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이나 되는 길을 달려서. 그날 산 책이 ‘양을 쫓는 모험‘이었어요. 사천 원쯤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책에 눈 맞을까봐 품에 품고 그 길을 돌아왔죠. 언 길에 넘어지고 긁히고, 예티처럼 꽁꽁 얼어서. 그래도 그날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여.

한수철 2017-03-25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움직이라구, 자네는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군.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네, 자네를 그런 입장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자네 자신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뷰리풀말미잘 2017-03-26 11:12   좋아요 0 | URL
어떻게 해볼게. 잘될지 어떨지는 자신이 없지만 말야.

한수철 2017-03-25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 접하지 못한 알라디너는 오해할 수도 있겠군, 싶어 재접속. 니미랄.

양을 쫓는 모험, 신태영 옮김, 문학사상사, p199-200

그럼 전 운동하러 가겠슴니다. 가능한 한 평온한 오후 보내십시용, 뷰리풀말미잘 님.^^

AgalmA 2017-03-25 18:26   좋아요 0 | URL
매우 이해되는 상황ㅎ 댓글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맞춤법부터 글 문맥에 따른 생각정리부터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려하는 것까지. 잘못 전달되고 끝나면 그야말로 헬)))
아 하면 어 받아쳐주는 청자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ㅜ

뷰리풀말미잘 2017-03-26 11:18   좋아요 0 | URL
양을 쫓는 모험, 신태영 옮김, 문학사상사, p224

ㅋㅋ 의외의 소심함!

저는 방금 스팀 다리미의 증기 소리와 옷감에 열이 가해지는 독특한 냄새를 즐기면서 세 벌의 셔츠를 다리고, 주름이 잘 편인걸 확인하고 나서 옷장 안의 옷걸이에 걸었습니다. 머리가 어느정도 상쾌해진 것 같은 주말 오전입니다.

오늘은 어찌 지내시나요. 등산? 조기축구? 모쪼록 관절에 가해지는 물리적 충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

뷰리풀말미잘 2017-03-26 11:28   좋아요 0 | URL
굿모닝 아갈마님! 저는 최근에 아갈마님에 대한 꿈을 두 차례 꿨는데요. 첫번째 꿈은 아갈마님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세차장을 개업해서 제가 그리로 놀러가는 꿈이었어요. 저는 종종 예지몽을 꾸는데 혹시 정말 개업했다거나 하실 생각이 있는건 아닌가 여쭤보고 싶고여.

두번째 꿈은 저와 아갈마님과 한수철님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팟캐스트를 안 듣는데 최근에 우연히 듣게된 ‘지대넓얕‘(유명 팟캐스트죠)이 인상적이었나봐요. 아무튼 팟캐스트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한수철님은 대체로 나몰라라 하시고 저와 아갈마님이 열띤 대화를 이어가는 꿈이었습니다. 쩔었죠.

SUR 2017-03-2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도저도 잘 안되는 어중간한 이중언어 사용자라 스페인어 번역을 눈여겨 봅니다.
스페인분이 하셨구나 했다가, 외국인이 한국말을 일케까지 잘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일 거라는 둥, 영어를 원본으로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까지. 언어능력의 기준이 본인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링크해주신 꿈 이야기까지 보고 두 언어와 문장의 ˝싱크로˝가 놀라워서 댓글 달려고 로그인했어요.
언젠가 <양을 쫒는 모험>을 읽은 날 꿈에 양사나이 나왔더랬죠. 삿뽀로 맥주를 한잔 하며 작품을 고민하던 하루키의 몽롱한 의식에 펼쳐진 홋카이도의 설원과 맥주캔의 별, 그리고 양사나이... 이런 그림이 파바박 떠오른 건 처음 삿뽀로 맥주를 접했을 때.
의지와 의욕이 바닥일 적에 댓글 달 의욕을 주는 글 감사해요. 시간을 두고 반복해 읽고 싶은 글이 이 서재에 여럿 있다는 사실도 더불어 말이죠.


뷰리풀말미잘 2017-03-26 12:50   좋아요 1 | URL
SUR님, 저는 1.6개 언어 사용자라 (영어가 0.5정도 되고요... 일본어가 0.1정도 되는 듯 하네요..) 검은 건 글이요 흰 건 종이로 보이는군요. 번역한 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이 시대의 참 공부인입니다. 엑셀로 정리한 스페인어 공부 흔적을 보고 왠지 숙연해졌던 기억이 아련하군요.

삿뽀로에서 삿뽀로 맥주를 마시며 이 소설을 떠올리지 못한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덕에 오랜만에 꺼내서 보는데 역시 참 좋네요.

빡치면 하루키의 아무 책이나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읽곤 하는데, 묘하게 기분이 완화되곤 합니다. 두통이 오거나 할 때 욕조에 물 가득 받아서 들어가 앉아있으면 왠지 조금 아픔이 둔감해질 때 있잖아요. 하루키 글의 온도와 포근함이 따듯한 물 같아서 그럴까 싶네요. 의지와 의욕이 바닥이라고 하시니 펴 놓은 책 한 대목 읽어드리죠.

. . .

“이상한 말 같지만 도저히 지금이 지금이라고는 생각되지가 않아. 내가 나라는 것도 어쩐지 딱 와 닿지를 않아. 그리고 여기가 여기라는 것도 말이야. 언제나 그래. 훨씬 뒤에 가서야 겨우 그게 연결되는 거야. 지난 10년 동안 줄곧 그랬어.”

“왜 하필이면 10년이죠?”

“끝이 없기 때문이지. 그뿐이야.”

그녀는 웃으며 고양이를 안아 살짝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아줘요.”

우리는 소파 위에서 서로 끌어안았다. 고가구점에서 사들인 고색 창연한 소파는 천에 얼굴을 가까이 대면 옛날 냄새가 났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그런 냄새와 잘 어울렸다. 그것은 희미한 기억처럼 부드럽고 따듯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뒤로 넘긴 다음 귀에 입술을 댔다. 세계가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작은, 정말로 작은 세계였다. 거기에서는 시간이 온화한 바람처럼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셔츠 단추를 모두 풀고 손바닥을 가슴밑에 놓고 그대로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죠?” 라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 말이야?”

“네, 내 몸과 나 자신 말이에요.”

나는 “그래, 아닌게아니라 살아 있는 것 같군” 하고 대답했다.

나는 정말 고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위는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가을의 첫 번째 일요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있잖아요, 참 좋아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응.”

“어쩐지, 꼭 피크닉 온 것 같아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니까요.”

“피크닉?”

“그래요.”

나는 두 손을 등뒤로 돌려 그녀를 꼭 안았다. 그리고 입술로 이마의 앞머리를 치운 다음 다시 한 번 귀에 입을 맞췄다.

“그 10년은 길었어요?”

그녀가 내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글쎄, 아주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이야. 아주 길었고,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내가 대답했다.

그녀는 소파의 팔걸이에 올려놓은 목을 아주 조금만 구부리고 미소 지었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웃음이었는데, 그것이 어디서 그리고 누가 지었던 웃음인지는 통 생각나지 않았다. 옷을 벗어 버린 여자들에게는 겁이 날 만큼 공통된 부분이 많아 그것이 언제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우리 양을 찾아요, 양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될 테니까요.”

나는 잠깐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나서 두 귀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오후의 햇살이 오래된 정물화처럼 그녀의 몸을 포근히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