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로서 미 대선이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웹 서핑을 했다. 누가 이기길 바랐느냐면 물론 힐러리였다. 하지만 원체 힐러리 지지자였던 건 아니고, 샌더스 지지자였다. 우회경로로 정치헌금을 했다.
대선이 끝나고 세계는 멘붕이었다.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던 힐러리의 패배 때문이었다. 트럼프발 경제 노이즈가 해일처럼 세계를 휩쓸었고, 현지에서는 트럼프 당선 반대 시위까지 일어나는 중이다.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와중에 재미있는 건 힐러리와 트럼프의 선악구도다. 언론은 무슨 프로레슬링 중계하듯 힐러리에게 선역을, 트럼프에게 악역을 맡긴다. 유독 한국 언론이 그랬다. 왜? 그래야 잘 팔리니까. 클릭 수 늘어나니까. 거지같은 포르노 배너라도 하나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가십성 기사에 파묻혀서 제대로 된 그들의 정책분석기사 한 줄을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댓글들은 뭐 당연히 가관도 아니었고.
선거가 끝나고 친구가 무슨 트위터 캡쳐를 보내줬다. “힐러리 클린턴이 진다 아마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하는 여자들 중 가장 대단한 여자일텐데 그런 여자가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강간범 남자한테 진다. 여자들한테는 조국도 없고 이민갈 나라도 없고 정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어이가 없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트위터니 블로그 링크들을 타보면 다 이런 식이다.
세상에, 정말 그렇게 믿는 건가. 선택할 것이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힐러리를 지지했던 거 아니었어? 이런 순박한 감상주의, 덜 떨어진 안목, 대책없는 패배주의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힐러리가 무슨 소수자의 친구고, 빈자들의 언니이며, 세계 평화의 수호자인가. 부정할 수 없는 미 패권주의자이고, 더러운 월가의 자금으로(특히 소로스) 선거를 치렀으며, 이라크와 시리아를 전쟁과 파국으로 몰고 간 원흉이다. 양식적인 페미니스트 코스프레 좋은데, 그와 샌더스 중 누가 진국이었는지는 선거전 양상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현지 페미니스트들은 누구를 지지했는가.
누군가에게 이 선거는 7월 12일에 끝났다. 사실 정의는 그 시점에 종언을 고했고, 그 이후는 차악을 선택하기 위한 싸움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나의 투자성향에 비추어 봤을 때는 샌더스보다 힐러리가 훨씬 나았다. 힐러리 집권기의 미국과 세계경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혼탁하고 더러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편이 투자자들에게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