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 ‘성인聖人‘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데, 『도덕경』 전체에서 약 30번 정도 사용되는 중요한 말이다. 어원적으로 귀가 밝은 사람, 귀가 밝아 보통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잘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성인이라고 하면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성인의 본래 뜻은 이런 윤리적 차원을 넘어, 말하자면 ‘특이한 감지 능력의 활성화‘를 통해 만물의 근원, 만물의 ‘참됨‘, 만물의 ‘그러함‘을 꿰뚫어보고 거기에 따라 자유롭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 『도덕경』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 P27

이런 성인은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무위‘ 라는 것은 『도덕경』에서, 그리고 『장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행동 원리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등장한다. 무위란 물론 ‘행위가 없음(non-action)‘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무위 도식하거나 빈둥거린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무위란 보통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 보라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natural)너무 자발적(spontaneous)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함이 없는 함‘ 이라는 것이다. - P27

"말이 많으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도덕경』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훈이다. 일상 생활 중에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하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 많은 것이 좋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도같이 궁극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된다는 뜻이리라. - P41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
자기를 앞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합니다.

나를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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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23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끼는 책 중 하나입니다. ^^

베텔게우스 2021-01-24 00:20   좋아요 0 | URL
우왓, 그러시군요!ㅎㅎ 저도 이 책 많이 아끼게 될 것 같아요. 단편적인 구절들로만 접해보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읽고있네요. 꾸밈없고 담백한 글들이 참 좋습니다 ^^
 

일반적으로 나는 특정 인식론 이론을 옹호하지 않고 우리가 논의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대안의 반응을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중립을 지키려 했다. 그럼에도 이 책 여기저기서 어떤 연구방식에 대한 나의 선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첫째, 시종일관 특정 입장에 찬동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많은 보호막을 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 것처럼 보인다‘, ‘…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라고 주장했다‘ 같은 표현을 너무 많이 쓰게 된다. 둘째, 당신은 이 논쟁들이 현재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쟁들이며,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 P16

우리의 선천적 추론은 오류불가능하지 않으며,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도달한 결론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떤 선천적 주장을 거부하는 쪽으로 이끌릴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선천적 주장이 당신의 다른 선천적 언질들과 부정합하기 때문이거나, 모순적인 경험적 증거 때문이다. - P60

존 로크는 이 결론에 대한 논증을 제시한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본유적 지식을 소유한다면, 모든 사람에 의해 관련된 진리들이 알려질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많은 ‘어린애, 천치, 미개인과 성인 문맹자‘는 덕, 신, 그리고 본유적이라고 말해지는 다양한 다른 선천적 진리들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지식은 - 만일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다면 -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강력한 논증이 아니다. 이성주의자는 많은 사람이 그러한 진리들을 명시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을 승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러한 지식을 무의식적으로 (‘암암리에‘ 라고 할 수도 있다) 소유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적 합의가 없다는 사실은 본유적 지식의 존재를 거부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어떤 사상가들은 그러한 진리를 표현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것들이 실제로 알려진다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 「야생의 아이」 (L‘ Enfant Sauvage, 1969)는 늑대에 의해 길러진 실제 아이의 사례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영화의 한 부분은 그가 본유적인 도덕적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비록 이것이 그가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는 경우에 따라 벽장에 갇히는 처벌을 받는다. 한 번은 잘못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이런 처벌이 행해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는 보통 이상으로 버둥거린다. 이것은 그 아이가 대우가 정당하지 못함을 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이것은 그가 야생에서 배울 수 없었던 어떤 것이다. 본유적 지식은 태어날 때부터 소유되는데, 올바른 종류의 교육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지식의 소유를 의식하게 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가르침은 단지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을 소생시킬 뿐이다‘ (Leibniz, 1981, 76면).
독특한 이성주의자 전략은 사고자들이 어떤 유형의 지식을 획득하려는 본유적 성향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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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인표가 은영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인표가 아니라 은영 스스로가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 P265

너한테 필요한 건 키만 크고 얼굴이 여드름 밭인 농구부 주장이 아니야. 매일 아침 눈빛만 봐도 네가 매점의 서른여섯 가지 간식들 중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아는 나라고. 승권은 농구부 주장보다 먼저 혜현을 찾아야 했다. 농구부 애들이 저 질퍽한 운동장에 하트 모양으로 꽂을 초들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비나 와라. 비나 와 버려라.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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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과 남편, 여동생에 대한 습관적인 걱정과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에밀리 탈리스의 신경을 갈수록 예민하게 만들었다. 또한 편두통과 모성애 덕분에,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침대에 죽은 듯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탓에, 이 예민한 육감이, 자기가 누워 있는 어둠침침한 방에서 빠져나와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는,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촉수가 달린 감각이 생겨났다. 이 육감 덕분에 그녀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카펫이 깔린 바닥을 통해 들려오는 불분명한 소리가 타자로 친 대본보다 더 명료하게 이해되었고, 한두 개의 벽을 지나 들려오는 말소리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감정과 미묘한 뉘앙스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음기(消音器)를 달았다고 느껴질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낡은 라디오의 주파수처럼 불안하게 맞춰져 있는 그녀의 예민한 감각에는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외침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어둠 속에 누워 있었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수록 알게 되는 것은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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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18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 좋네요... ^^

베텔게우스 2021-01-19 13:05   좋아요 1 | URL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눈에 보이듯 묘사했다는 게 참 감탄스럽습니다.^^
 

통상 철학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매번 자기에게는 자기의 관점이 있다고 말하기를 꺼려한다. 그런데 사실은 전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일정한 관점을 근거로 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본래 다른 사람이 반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우리가 자각적으로 자기의 이론 근거를 표현 서술해 낼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 내가 이 관점을 일컬어 "가설"[設準]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 목적이 독단적인 기분을 피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해야할 것은 우리가 비록 독단을 원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一組의 이론적 가설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은 근본적으로 어떤 이론도 제출해 낼 수 없을 것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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