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나는 특정 인식론 이론을 옹호하지 않고 우리가 논의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대안의 반응을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중립을 지키려 했다. 그럼에도 이 책 여기저기서 어떤 연구방식에 대한 나의 선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첫째, 시종일관 특정 입장에 찬동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많은 보호막을 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 것처럼 보인다‘, ‘…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라고 주장했다‘ 같은 표현을 너무 많이 쓰게 된다. 둘째, 당신은 이 논쟁들이 현재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쟁들이며,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 P16

우리의 선천적 추론은 오류불가능하지 않으며,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도달한 결론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떤 선천적 주장을 거부하는 쪽으로 이끌릴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선천적 주장이 당신의 다른 선천적 언질들과 부정합하기 때문이거나, 모순적인 경험적 증거 때문이다. - P60

존 로크는 이 결론에 대한 논증을 제시한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본유적 지식을 소유한다면, 모든 사람에 의해 관련된 진리들이 알려질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많은 ‘어린애, 천치, 미개인과 성인 문맹자‘는 덕, 신, 그리고 본유적이라고 말해지는 다양한 다른 선천적 진리들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지식은 - 만일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다면 -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강력한 논증이 아니다. 이성주의자는 많은 사람이 그러한 진리들을 명시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을 승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러한 지식을 무의식적으로 (‘암암리에‘ 라고 할 수도 있다) 소유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적 합의가 없다는 사실은 본유적 지식의 존재를 거부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어떤 사상가들은 그러한 진리를 표현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것들이 실제로 알려진다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 「야생의 아이」 (L‘ Enfant Sauvage, 1969)는 늑대에 의해 길러진 실제 아이의 사례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영화의 한 부분은 그가 본유적인 도덕적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비록 이것이 그가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는 경우에 따라 벽장에 갇히는 처벌을 받는다. 한 번은 잘못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이런 처벌이 행해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는 보통 이상으로 버둥거린다. 이것은 그 아이가 대우가 정당하지 못함을 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이것은 그가 야생에서 배울 수 없었던 어떤 것이다. 본유적 지식은 태어날 때부터 소유되는데, 올바른 종류의 교육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지식의 소유를 의식하게 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가르침은 단지 이미 거기에 있었던 것을 소생시킬 뿐이다‘ (Leibniz, 1981, 76면).
독특한 이성주의자 전략은 사고자들이 어떤 유형의 지식을 획득하려는 본유적 성향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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