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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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별 5개짜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표지 그림은 실제로 있는 명화로, 특별히 표지에서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아니라 시녀 중 한 명에게 포커스를 맞추었고, 이 명화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음악에서 작가는 제목을 따왔다.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표지와,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소설 속 문장들, 그리고 가슴이 저릿해 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나는 감탄한 게 어떻게 남자인 작가가, 이렇게나 여성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모지상주의가 심하다는 것은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테고, 심각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라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20대 여성으로서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작가적인 상상력과, 어쨌거나 제 3자로서 여성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이렇게나 촘촘한 심리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나는 감탄했다.

 

여태까지 남자 작가가 쓴 소설의 여성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았던 적이 훨씬 많았다. 마치, 여자 작가들의 소설 속 남자들의 묘사에 여성들은 열광하나 정작 남성들은 코웃음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박민규는 본인이 여성으로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작가의 마지막 말에 이 소설을 쓰게 된 경위가 나온다. 아내와의 대화, 그 부분도 참 아름답다. 수많은 커피 믹스 알갱이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아내는 하얀 셔츠처럼 눈부셨다...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해 줄 것이라는 아내의 질문에 대한 이 책은 답이라는 말. 놀라울 정도의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그리고 마지막, 작가의 컷까지 다 읽고 난 후 내 생각은, 결국 작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고, 남자이구나. 그 생각에 한편으로는 어떤 면에서는 실망스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 아팠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진실된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로구나. 시각적인 것은 눈에 쉽게 띄고, 거기에 이끌리는 것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면 작가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 나약함으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최상의 결말을 썼구나 하는 생각에 또 감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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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은 네가 부끄럽지 않다는 말, 너만 부끄럽지 않다는 말일 수도 있어. 수긍이 가. 하지만 그것이 극복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단지 열등감이 없다는 얘기니까. 이를테면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을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 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혹은 여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처럼 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망가진 모습으로 코미디를 자청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특이한 여자, 웃기는 여자... 설령 여자의 일부를 포기한다 해도 못생긴 여자보다는 낫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야근을 마치고 미쓰 리 이렇게 늦었는데 괜찮겠어? 건성으로 묻는 말에 그럼요, 전 얼굴이 무기잖아요! 대답이라도 해야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대와 나의 영원한 사랑... 이런 노래를 불러봐야 웃음거리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고, 결국 앗싸를 외치거나 웃기는 춤이라도 춰야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여자야... 끊임없이 스스로를 마취한 채 말입니다. 얼굴이 무기인 그녀들에게도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막춤을 추는 그녀들에게도 영원한 사랑의 발라드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남자들은

 

마치 킹콩과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시키지 않아도 엠파이어스테이트를 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 자신의 동공에 새겨진 한 사람의 미녀를 찾아 쿵쾅대며 온 도시를 뛰어다닌다. 어떤 악의(惡意)도 없지만 그 발길에 무수한, 평범한 여자들이 상처를 입거나 밟혀 죽는다. 실제의 삶도 다를 바 없다. 빌딩을 오르고 떨어져 죽는다 한들, 미녀가 어깨를 기대는 남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왜 일을 안 하지?누구도 그 아이의 등을 떠밀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 안 가 여직원들의 구심점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수다를 떠는 중심에도, 어울려 몰려다니는 무리의 중심에도... 언제나 군만두가 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요한이 말한 <빛>이었다. 주변의 부러움이 모이고 모인, 실은 주변 각자의, 조금씩의 빛.

 

결코 낯설지 않은 구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의 세계와 비슷하구나, 힘이 센 놈을 중심으로 질서가 편성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를 나는 떠올렸었다. 우열을 가리고 굴복하는... 또 곁에 붙어 다니면 자신의 힘도 강해지는 듯한 그 착각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몇몇이 모이면 더 대담해지는 효과도 닮아 있었다. 심심찮게 그 무리의 쇼핑담을 들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월급의 대부분을... 혹은 더 많은 돈을 쇼핑에 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볼 땐 그래, 그래서 경제력이 좋은 남자를 만난다거나 그런 일들... 그러니까 일단은 그래서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지. 직업을 본다거나 집안을 따진다거나... 말하자면 그런 배경이 있어야 오우, 케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에 맞는 결혼을 한다거나 그에 따른 윤택한 출발을 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라 영리활동(營利活動)이란 얘기지. 그것이 좋고 나쁘고의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 그런 활동을 통해 어쨌거나 그만큼의 이익을 얻은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사랑해 주지 않는다거나, 생일인데도 그냥 넘어갔다거나... 말했듯이 그 언니가 몸이 아픈데도 바쁘다며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거나... 그런 일들 말이야. 그런 건 그야말로 욕심인 셈이지. 즉 이윤을 추구해 놓고

 

자기최면이라도 하듯 이건 연애야, 그래서 우린 결혼한 거야 라고 다들 믿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러고는 사랑이 식었다는 둥, 환상이 깨졌다는 둥... 애당초 동기가 된 영리활동에 대해선 끝까지 부정하면서 말이야. 즉 세월이 흐를수록 남자 입장에선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거잖아, 난 돈 버는 기계인가... 의 자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 당연한 일을 왜 서운하게 생각하냐는 거지. 즉 매우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착각이나 포장을 버리지 않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는 생각이야. 즉 투명하게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결혼생활에 사랑이 없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착각하고 포장을 일삼는 이유도 마찬가지지.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 걸 느끼고도 싶은 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이건 마치 요한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놀라는 스스로를 발견하던 가을이었다. 돌이켜보면 좀더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좋았을 가을이고, 좀더 밝게 세상을 보았어도 좋았을 가을이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지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고, 어떤 면으로든 나 역시 외로웠거나 지쳐 있었으며

 

 

올드 팝과 치킨과 맥주가 있던 그날 밤을 그러나 잊을 수 없다. 잠깐 실례, 하고 요한이 자리를 드자 다시금 넓어지던 둘 사이의 공간도 떠오른다. 아까의 드넓었던 야구장이 그래도 어느새 소프트 볼... 경기장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살짝 웃었고, 아까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 문 앞이었어요. 하긴... 방으로 가는 길이기도 해요. 저기 시장골목을 지나야 하거든요. 실은 몇 번 두 분을 보기도 했어요. 늘 여기 이 자리에 계셔서... 라고, 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볼링장으로, 또 농구장으로 줄어드는 거리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점점 탁구대만큼이나 줄어들었고, 결국 사실적인... 직육면체의 테이블이 되었다.

 

그랬군요,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린 늘 이 자리에 앉아요. 여기서 저 <희망>을 보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죠. 그리고 <희망>이 꺼질 때쯤, 이 집을 나서곤 해요. 예전엔 저 간판에서 곰도 볼 수 있엇는데 지금은 사라졌죠. 아, 하고 곰의 정체를 안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침에 많이 놀라셨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 했고 곧이어 네, 라고 대답했다. 스스로가 빠뜨린... 테이블 위를 굴러오는 공 하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라고 내가 말하자 아니, 아니에요 라며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제 짐을 들어주셨잖아요, 라며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말 그대로의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속으로야 어떤 생각을 한다 해도 자신의 시각으로 남을 비하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인 사회란 거죠. 사회의 가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동등한 기회를 얻고, 그 대가를 바랄 수 있는... 그리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저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어떤 생각을 하실진 몰라도.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말이죠. 그래서 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적어도 직장에서만은 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이 삶이 좋은 거예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점점 평범한 얼굴에 속해가고 있다... 서서히 그런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사이 제가 예뻐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니지 그래서 서로가 비슷해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세월이 흐르고... 노인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얼굴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네, 이렇게 저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만큼...

 

또 그만큼, 당신과 저의 거리도 점점 좁혀져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그래서 이 삶이 제게는 하나의 길처럼 느껴질 따름입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점점 비슷해지고, 또 결국엔 같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비행기는 오사카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하루 그곳에서 요한의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는 다시 북해도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곧 한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길고 긴 세월을 지나... 그래서 겨우 저는 당신의 안부를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신이 들을 수 없다 해도, 또 서서히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고, 결국 언젠가는 저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그날은 비가 왔고, 아내와 저는 이런저런 집안일을 끝내고 말 그대로 흰, 와이셔츠 같은 마룻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계절은 초봄이었고 아내가 임신을 하기도 훨씬 전이었으며, 그러니까 십여 년 전의 일요일 오후였고 저는 폴 데스몬드의 판을 골라 <Circles>에 막,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려놓던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혼이었고 아내는 잘 다려진 셔츠의 깃보다도 훨씬 더 눈부셨으며, 저는 매일... 커피믹스 속의 커피 알갱이 수만큼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 붓는 남자였습니다(가진 게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어쨌거나 그때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저기... 미안한데 음악 때문에 앞의 말을 못 들었어, 라고는 했지만 실은 아내의 말을 저는 전부 들었습니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 띄엄띄엄, 그러나 또렷하게 아내는 다시 한번 질문을 되풀이 했습니다. 폴 데스몬드의 곡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저는 아무 말없이 턴테이블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슬프게도 나이를 먹고, 슬프게도 저는 이 소설을 계속 미루고 미뤄 왔습니다. 글을 쓸 용기를 얻은 것은 슬프게도 달이 기울던 지난 여름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날은 무더웠고, 저는 혼자 맥주를 들이켰으며, 음악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은 지루하고 끈적한 밤이었습니다. 지쳐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저는 문득 십여년 전의 그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소설은 가장 못생긴 작가가 쓰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위한 선물일 것입니다.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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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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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접했던 몇 몇 프랑스 소설들은 나에게 난해함과 생뚱맞음과 쓸데없는 허세와 과욕으로 기억되었다. 문학적인 소양이 부끄러울 정도라 함부로 말하기 어렵고, 특히나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이 소설만큼은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프랑스 문학이라고는 레미제라블, 슬픔이여 안녕, 이방인 등 고전문학만 접해 본 게 고작이고, 최근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이상하게 읽을 때마다 알레르기가 나서 많이 읽지 않았다. 역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인 '어린 왕자'는 언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어떤 책과도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정말 좋지만, 요즘 나오는 프랑스 소설들은 꼭 보기에는 엄청 화려하고 예쁜데, 한 입 베어물면 과한 크림으로 속이 메슥거리는 케이크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은 잘 구워진 바게트나 크루아상처럼 담백하면서도 계속 계속 먹고 싶은 느낌이 있다. 물론 불문학쪽으로는 무식에 가까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두 딸을 두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아내를 떠나간 남편, 웬만하면 등장 인물에 감정이입하기 좋아하지만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그 입장에 처한 아내에게, 시아버지, 즉, 남편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 후 가정이 생긴 상황에서, 다가온 사랑 이야기. 즉,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시아버지이고, '그녀'는 시아버지가 결혼한 상태에서 만나고 사랑하게 된 여자인 것이다.

 

읽다 보면 '나'와 '그녀'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에는 반대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저자는 그것을 노리지 않았을까. 시아버지는 결국 가정을 택했고, 아들은 가정을 떠났다. 가정을 택했던 시아버지가 가정을 떠난 아들의 아내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을 택함으로써 저자는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판단은 온전히 독자에게 맡긴다.

 

하지만... 내가 저자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가정을 박차고 나간 남편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사랑만큼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 또 어디 있으며, 찰나에 불과한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 살아보았거나, 프랑스인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취향'이나 '8명의 여인들'등 이때까지 보아온 프랑스 영화에서 혼외 관계에 대해 다루는 관점을 보면 프랑스는 그런 쪽으로 꽤 관대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나라의 사회적 모습일 뿐, 굳이 인정해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릴 수는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결국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잠깐의 감정은 누를 수도 있는 것 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는 것이 옳다면, 책임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다만, 이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목록을 여자가 작성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만큼은 마음에 와닿았다. 알고 보니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에도 등장한 부분이라고.

 

 

........ 소풍가기, 강가에서 낮잠자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 먹기, 새우와 크로와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 사기,
신문 읽기, 가게 진열장을 한참동안 바라보기, 지하철 타기, 열차 시각 확인하기,
둘이 앉는 자리를 당신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투덜대며 옆으로 떼밀기, 빨래 널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 가기, 베이루트와 비엔나에 가기, 시장 보러 가기, 슈퍼마켓에 가기,
바비큐 해 먹기, 당신이 깜박 잊고 숯을 안 가져 왔다고 볼멘소리 하기, 당신과 동시에
양치질 하기, 당신 팬티 사 주기, 잔디 깎기, 당신 어깨 너머로 신문 읽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루아르 지방과 헌터 밸리의 포도주 저장고 견학하기,
바보처럼 굴기, 재잘거리기, 당신에게 마르타와 티노를 소개하기, 오디 따기, 요리하기,
베트남에 가서 아오자이 입어보기, 정원 가꾸기, 당신이 코를 골며 잘 때 시끄럽다고
투덜대며 쿡쿡 찌르기, 동물원과 벼룩시장에 가기, 파리와 런던과 멜로즈에 가기,
런던의 피커딜리 거리에서 돌아다니기, 당신에게 노래 불러주기, 담배끊기, 당신에게
손톱 깎으라고 요구하기, 그릇 사기, 우스꽝스러운 물건들과 아무 쓸모 없는 물건들 사기,
아이스크림 먹기, 사람들 바라보기, 체스에서 당신을 이기기, 재즈와 레게 음악 듣기,
맘보와 차차차 추기, 심심하다고 투정부리기, 변덕 부리기,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깔깔거리며 웃기, 새끼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당신을 놀리기, 소들이 보이는 곳에 있는
집 찾으러 다니기, 점잖치 못한 물건들로 쇼핑 카트를 채우기, 천장에 페인트칠 하기,
커튼 꿰매기, 재미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몇 시간 동안 꼼짝못하게 만들기, 당신 머리
깎아 주기, 잡초 뽑기, 세차하기, 바다 보기, 시시풍덩한 옛날 영화 다시 보기, 공연히
당신 이름 불러보기, 당신에게 야한 농담 하기, 뜨개질 배워서 당신에게 목도리 떠 주기,
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 주인 없는 고양이와 개를 거두어 먹이기,
앵무새와 코끼리에게 먹이 주기, 자전거를 빌려서 타지 않고 그냥 놓아두기, 해먹에
누워 있기, 할머니가 보시던 비코네 식구들의 이야기 다시 읽으며 쉬잔의 드레스 다시 보기,
응달에서 마르가리타 마시기, 게임하면서 속임수 쓰기, 다리미 사용법 배우기, 다리미를
창문 너머로 내 던지기, 빗속에서 노래 부르기, 관광객들 피해 다니기, 술에 취하기,
당신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나서 때로는 거짓말이 약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
당신 말에 귀 기울이기, 당신에게 손 내밀기, 버렸던 다리미 다시 찾아오기, 대중 가요의
가사를 음미하기, 자명종 맞춰 놓기, 우리 여행 가방 챙기는 거 잊어버리기, 조깅 며칠
하다가 그만 두기, 쓰레기통 비우기, 당신이 날 여전히 사랑하는지 물어보기, 이웃집
여자랑 수다떨기, 당신에게 바레인에서 보낸 내 어린 시절 이야기 들려 주기, 내 유모의
반지와 헤나 냄세와 호박으로 된 동글동글한 장신구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계란 반숙
이나 커피 따위에 적셔 먹을 길고 가느다란 빵 조각 만들기, 잼 단지에 붙일 딱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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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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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고 싶은 사람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의 느낌이다.

조울증과 알콜 중독이 있는 아내,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남편.

남자만 사랑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의 아내와, 의사의 동성 애인.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계속 위태위태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관계만 보아서는 어떤 면에서 최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알콜 중독에 조울증이 있는 여자를 평생 감당할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동성애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남편은 최고의 룸메이트이자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을테니까. 그녀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살펴주고 관리해주는 것은 물론, 사소한 일에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이혼하려고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아내도 마찬가지.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사랑, 만 제외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남편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게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중반부를 넘어 결국 남편에게 터트리고야 만 아내의 육성을 읽다보면, 혹시, 이 여자 남편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여자로서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 관계는 그대로 종결 아닌가.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의 시선, 사회적 지위, 부모의 기대, 정신과 치료 병력...

수많은 것들이 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데,

어쩌면 이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들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의 눈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겠다는 결심만 단단히 선다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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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 책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소설 자체의 힘이 아니라 외적인 요소를 자꾸 고민하게 한다.

 

예를 들어서,

명량의 인기는 물론 상업영화로서 꽤 나쁘지 않은 정도의 작품이 나왔지만,

그 정도의 광풍은 개봉 당시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상당히 기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음을 상기한다면

 

이 책 또한, 그렇게까지 독일에서 인기가 많았다는데, 또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나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가 과연 뭘 까, 하고 다른 쪽으로 자꾸 궁금증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범인으로 지목받은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에서 양가 집안의 반대만큼이나 식상할만큼 반복되어 오는 구성인데

이것을 풀어나가는 전개에도 전혀 신선함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정말 표지 하나만큼은 만점을 주고 싶다. 얼굴은 가려서 확인할 수 없으나 나체의 젊은 여성은 눈을 떼기 힘들고, 오히려 얼굴을 가렸기에 궁금증과 함께 신비스러움도 느끼게 한다. 파란색의 바탕과 뾰족한 지붕의 집들, 그리고 꽃의 색깔까지 화려하지 않고 우아한 느낌이 나는데 아마도 여기에서 사람들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게 아닐까. 요금처럼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는 시선을 끌어당겨 일단 책 표지를 열게 만드는 것도 엄청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되니까.

 

미녀, 억울함, 전도 유망하고 잘생긴 청년, 살인 사건, 진범, 아름다운 소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 독자들의 판타지를 많이 자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살인 사건 이야기라도, 똑같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다루더라도, 미야베 미유키처럼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우리 내부의 악마스러운 면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삶의 진실의 폭로라는 점에서 선뜻 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 그리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범죄소설... 정도?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영화화하기에는 어쩌면 딱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연기력이 나쁘지 않은 외모 출중한 남녀 배우만 확보된다면,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접근성 면에서 일정정도 관객은 확보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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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 대한민국 2030 여자들의 직장생활백서
임경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임경선 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일간지의 한 칼럼이었다. 평소에 읽으면서 아~ 톡톡 튀는 저자의 글솜씨에 매력을 느끼던 도중,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각인하게 된 것은 의외의 계기였다. 지금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떤 독자의 고민 상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어 놓은 글이었는데, 다 읽고 난 후 가장 첫번째로 떠오른 느낌은 '불쾌함' 이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그 내용이 얼토당토하지 않아서? 전혀 아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고민이라서? 그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당시 그 독자의 고민은, 그 당시에 나도 가지고 있던 고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독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내가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이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임경선의 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썩 유쾌하지 못했던 내 감정과는 관계없이 임경선의 조언은, 옳았다. 그것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수긍은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왜일까?

 

얼마 전에 유명한 스타 강사가 논문 표절 의혹으로 한동안 홍역을 치룬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전후를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는 한 동안 그 일 때문에 쉴 수 밖에 없었고, 얼마 전 복귀하면서 한 인터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본인 나름대로 억울한 면도, 속상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무심히 읽어나가던 도중, 내 눈이 멈춘 부분이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쉬다 보니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졌는데, 자신이 강연을 한참 하고 다닐 무렵,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SNS에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고. '김미경 강신주 법륜스님 이 세사람은 나에게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어른 흉내를 내며 꾸짖기만 한다고, 나다운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고.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싸잡았구나, 또 다른 숲을 보는 충격에 며칠간 고민했다고. 법정 스님 말대로 글쓰고 말하는 일 모두 업보를 쌓는 일이라며 앞으로 자신은 소수의 생각과 상처를 존중하는 법을 찾겠다고. 그 대목을 보고 알았다. 아, 공감이 실려 있지 않은(혹은, 듣는 이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충고는 마음만 다치게 하는구나. 나 또한 이런 실수를 누군가에게 했을 것이고, 내가 이유도 모르게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 머리로는 그게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반발을 했던 것이 이 때문이로구나.

 

아마도 나는 칼럼을 읽으면서 아무런 애정이나 공감없(다고 내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조언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제는 작가가 아니라 그 당시 나에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여러모로 망설여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쁘게도(?) 작가에 대한 내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칼럼과 이 책 사이,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아마도 작가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었던 걸까. 날카롭게 충고를 하면서도, 그 충고의 사이사이에 따뜻한 조언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비슷한 자기 계발서류에 상처받았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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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다 보면 '괜찮은 워킹우먼+나쁜 아내'의 시기가 있을 수도 있고 '보통 워킹우먼+보통 엄마+불량 아내'로 조합된 시기도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 및 살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일하는 여자들은 '일이냐, 결혼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양쪽의 가치를 다 가질 수 있다. 단, 완벽주의자 기질만 과감히 버린다면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라고 푸념하지만, 가격대비 양질의 호텔을 비교하고 현지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과제처럼 연구하는 그녀들은 이미 아무 생각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을 한다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그 모진 상사의 말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 모두가  '커리어 관리'의 불가결한 일부다. 남이 나를 챙겨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챙겨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는 거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단, 그 상황에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삼키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신의 야속한 장난처럼 보이는 사건에 맞닥뜨릴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이겨낸 뒤 찾아오는 변화된 인생의 항로에는 새로운 발견과 선물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남자들은 선의로든 악의로든 주변의 워킹우먼을 직장에서의 딸, 아내, 누이, 여동생으로 보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여자를 자신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약자로 생각하는 우월적 사고가, 약자인 여자들과의 경쟁을 거부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성성이 가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독립적이고 능력 있는 워킹우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그들에 맞추어 역할설정을 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의 위치를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남녀간 연애처럼 때로는 적당히 둔감해지는 것이 회사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자들은 연애에도 직장일에도 너무 예민하게 올인하는 탓에 스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우를 범한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은 인간성을 평가받는 것과 다르다. 부하직원에게는 인간성 좋은 상사보다 유능한 상사가 필요하다. 상사가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타 부서에 지지 않는 것이 싫은 소리 안 하는 상사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부하직원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지시하기가 계면쩍어서 본인이 그냥 알아서 해치우는 것도 이런 착한 여자 상사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과거 사원 시절에 혼자 일을 다 끌어안고 끙끙대던 습성이 남아 있어서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과감히 맡기는 것이 무척 서툴다. 자신이 맡은 일을 더욱 잘해내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부하직원들이 가진 저마다의 능력을 주저없이 적시에 빌리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협조를 뽑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과감히 일을 맡겨야 한다.

 

피고용자 마인드란 '어차피 내가 노력해봤자 남 잘되게 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습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아껴봤자 잠시 몸만 편할 뿐 긴 안목에서 보면 자기능력을 계발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셈이다. 당장은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이 낸 실적 하나가 회사의 목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더욱 일할 맛이 날 것이고 부과된 업무 외에도 추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효과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민의 근원은 그녀가 자신의 출근복을 '패션'으로 간주한다는 데에 있다. 패션은 자기 표현이며 성인인 이상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 힘든 사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회사가 패션의 독창성과 자유를 독려하는 패션관련 회사가 아닌 바에야 그것은 패션이 아니라 '차림새'의 문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스타일의 80퍼센트는 그 직장과 업종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이 좋다. 80퍼센트는 조직 내 조화를 고려하고 20퍼센트는 그 조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창의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녀 막론하고 옷차림새와 외모는 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즉, '일을 잘할 것처럼 보이는 외모'도 필요한 것이다.

 

조직생활은 이렇게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 말고는 거의 공통점이 없을 법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만 하는 엄청난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첫째,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생각은 애당초 접어라. 눈 질끈 감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 생각도 하지 말고 사랑받을 생각도 하지 말자. 피를 나눈 가족이나 십년지기 친구들과도 오해와 갈등을 겪는데 하물며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여러 사람들과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기가 어디 쉬울까?

둘째, 회사 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도 월급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라. 인간관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고 직급이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 직급과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

셋째, 회사라는 조직체는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이기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그로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이성적인 행동임을 뜻하기도 한다. 고로 권선징악의 단순한 룰에 따라 증오해야 할 대상을 정해놓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소모시키는 것은 괜한 낭비다. 차라리 무관심하자.

넷째, 미운 사람은 잊으려고 애써야 하지만, 반대로 나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결국엔 평생에 걸쳐 나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사내정치는 상사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상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동료나 후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이다. 상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사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자신이 어떤 상사로 비춰질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상사보다 낫다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상사의 한 가지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만으로 상사의 모든 점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약한' 특정 업무에 우연히 내가 '강하면' 자신이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다. 그런 일이 몇 번 생기면 그때부터는 아예 상사를 무능력자로 낙인 찍어버리는 것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여자들 중에는 일이 다 끝나고 나중에 가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뒷북치는 둔감한 이들도 있는데, 일일이 주변 사람들 신경 썼다가는 본인이 못 견딘다. 자신의 행동이 공정하고 떳떳하다면 이제는 유능해서 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목의 집중을 받는 만큼 부담도 커서 괴롭겠지만 앞서 나가는 사람은 늘 외롭고 고된 법이다. 다만 가끔은 자신의 언동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았는지 객관적으로 반추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에 한동안은 괜스레 졌다는 패배의식과 창피함 때문에 고통을 느낄 것이다. 한 가지라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뭐든지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시키는 습관이 들면 곤란하다. 콤플렉스 타령이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진통제처럼 쓰이면 정작 자신이 제대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보다 긴 안목으로 커리어플랜을 바라본다면 자학적인 비교가 의미 없을 뿐만 아니라 이왕 승진했다면 그것이 내가 친하게 지내던 동료인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느덧 당신이 더 높은 직급에 올라 있을 수도 있고 한 때 질투 대상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선택해 경주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더 높은 직급의 명함을 가진 사람이 이겼다거나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수직적인 평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번이라도 윗사람이 돼본 경험이 있으면 알 것이다. 아랫사람이 내게 싫은소리 하는 것을 듣는 심정을.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일수록 더욱 못마땅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윗사람들에게는 일이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의 가르침에 순순히 수긍하는 직원들이 훨씬 예쁜 법이다. 특히 3~5년차 대리쯤 되면 회사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또 회사 어른들의 '구린' 것이 하나둘 눈에 띄는 시기라 '정의감'에 불타오르기 쉽다. 또한 부하직원을 처음 거느린 팀장이 되었을 땐 마찬가지로 내 밑의 직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자칫 이성적이고 전략적으로 팀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소영웅처럼 감정적인 선택과 행동을 함으로써 그 팀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여자 상사는 아직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그만큼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 그러다 보니 여자 상사들의 어깨엔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정면 돌진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일로 부딪치는 기회를 최소화하고 일 얘기만 한다든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포함시켜 일을 진행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싫은 사람과의 교제로 마음고생 하느니 좋아하는 사람, 나를 성장시켜주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책상정리를 잘하는 것처럼 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중간 중간 정리를 해나가며 살아간다. 어차피 포기해야 할 인간관계라면 눈 딱 감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자. 최소한 인간관계에 관한 한 완전한 회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20대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해보아햐 한다고 생각하는데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경험이 있어야 30대에 할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치열했던 경험이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경력이 쌓이면서 훨씬 더 나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쉽게 현재의 일을 포기한 채 바로 전직에 눈을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 비중 있고 치열한 일을 나한테 맡겨줄 때까지 전직하지 않고 일단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30대 전직의 키포인트는 장기적 커리어 목표에 도움이 되는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같은 직종이라도 개개인의 책임과 권한이 더 커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를 선택해서 도전해본다거나, 여태까지 일해온 분야에 좀더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능동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로의 전직이라면 생각해봄직하다. 20대의 전직은 자신을 맹렬하게 하드 트레이닝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일부러 뛰어들어가는 것이어야 하고, 30대의 전직은 장차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비전에 따라 빠진 퍼즐조각을 끼워맞춰 완성해가는 것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작든 크든 성취해낸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혼자서 자축해보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 기쁜 일이 있을 때 귀갓길에 탐스러운 장미 한 다발을 사서 집에 장식해놓곤 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보다 금방 없어지는 물건은 그 순간을 향유하는 정취가 있고, 또 꽃만큼 감정이 사치스러워지는 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우울증은 우리가 일해온 방식이나 살아온 방식을 재검토하고 궤도수정할 기회를 주는 선물과도 같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무리를 해왔다는 증거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사 밑에서 스트레스를 쌓아가면서 소모품처럼 일해왔다면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 이 일인지, 신중히 심사숙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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