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이다 - 칼럼니스트 곽정은, 그녀가 만난 남자.여자 색깔 이야기, 개정판
곽정은 지음 / 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그와 나는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무슨 차를 굴리고, 한 달에 얼마씩 저축해 몇 년 뒤에는 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지만, 정작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작가의 글에 열광하며, 어떤 상상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지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채로 결혼했다. 인생의 말랑한 부분에 대한 일치나 교감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인생의 하드웨어에 대해 합의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나는 참으로 많은 수업료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셈이다. 난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열광하고 매료되는, 그러니까 인생의 외적인 것에서 행복의 원천을 찾는 그런 여자였던 셈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젠 좀 알 것 같다. '그는 그냥 그러려고 내게 온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나와의 관계에서 그에게 허락된 역할이란, 내 인생의 한 스테이지를 재빠르게 '클리어'하기 위해 신으로부터 고용된 것이었달까.

 

순식간에 밀물처럼 다가왔다가 정말 썰물처럼 스스로를 정리해버리는 존재들, 곁에 있어줄 줄 알았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관계가 늘어날수록 가슴엔 굳은살이 박히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일에 대해서도 담담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 테고.

 

어떤 직업이든, 어떤 회사에서 일하든 타인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감정노동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인으로서 기대되는 행동이란 늘 그런 것들이니까.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마치 무대 위의 개그맨이라도 된 듯 무조건 웃어야 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이가 내게 기대하는 대로 말하고 대답해야 하는 지점이 늘어날수록 당사자의 영혼은 파괴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주 조금씩,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결국은 선택의 문제일 거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린 영영 어색한 자리에서 자신을 해치는 감정노동의 세계에 붙들려 살 수 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답지 않은 감정노동을 하면서 그 스트레스로 젊음을 보내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미치도록 아깝게 느껴진다. 회사 선배들은 늘 "맘에 없는 소리도 할 줄 알고, 맘에 없는 웃음도 지을 줄 알아야 그게 진정한 사회인이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회인이 되면 그 다음은? 어색한 미소 한 번, 마음에 없는 말 한 번이 쌓이고 쌓이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중량이 디어 내 코앞에 쿵하고 내려앉는 법인데.

일 자체는 흥미진진하지만,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면서 난 이 업계에서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난 지금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지금 나는 200%의 나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토록 비현실적인 주문을 외우면서 버틸 만큼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거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수시로 각인시켜주었죠."

 

물론 세상의 수많은 커리어 전문가들은 말한다.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어디를 가든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은 존재할 것'이라고. 십 년 동안 몇 번의 직장을 옮겨보고, 수없이 많은 선후배와 동료를 경험한 내게도 지극히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억지미소 띤 가면 같은 걸 쓸 만큼의 내공이 내겐 아직 없다. 직장에서 나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고 그 대가로 월급과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그 시간만큼 자신의 영혼과 추억을 반납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영혼과 추억을 반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나의 고통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느껴야 한다면 일상의 고단함이 나를 더 짓누를 것만 같다.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것'이 한 개인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어리석은 행동은 될 수 있어도, 한 사람의 영혼의 문제로 들어선다면 전적으로 어리석기만 한 행동은 아닐 수 있다는 걸 나는 주변의 친구들을 보고 깨닫는다. 뭐, 영혼 나고 커리어 났지, 커리어 나고 영혼 났겠어? 그래서 직장 내에서 누군가와 불편하고 너무 힘든 나머지 그만두고 싶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저질러본 사람이 더 용기 있는 사람 아닐까?

하지만 당장 그만둘 자신도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어서 괴롭기만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조금 덜 괴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밖에 못 되었기에 '에잇, 차라리 제가 사표 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었다. 만약 당신이 나처럼 마음속에 두려움이 한가득인 사람이라면, 당신을 괴롭히는 그 사람을 끌어안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 사람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증오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 오히려 그 증오가 스스로를 덮치고 그 사람의 커리어가 더 먼저 무뎌지곤 하는 장면을 정말 많이 봐왔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내려놓는 일이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벽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는 확실히 어떤 에너지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매일같이 어떤 존재를 싫어하는 데에 내 에너지를 쏟는다면 언젠가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는 확실해지겠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취미로 여가 시간을 보내며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피로감을 해소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일종의 서브 잡 같은 일은 필요하다. 직장에서 맡게 되는 업무가 한 사람이 가진 모든 역량과 재주를 전부 다 펼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위해 한 달에 A4로 몇십 페이지씩 원고를 쓰는 것은 분명 내게 흥미진진하며 행복한 이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가 따로 나만의 글을 쓰고 그것에 욕심을 내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이유이니까.

어쩄든 먹고사는 일은 위대하기에, 삶을 지속시키는 일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기에, 생업은 생업대로 열심히 치열하게 해야 할 거다. 각자의 상황에서, 노력해서 얻어낸 그 자리에서 열심히 달려가는 건 언제나 옳은 일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행복의 지수를 높이고 싶다면 자신의 재능을 좀더 발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정말 필요하다. 그 노력에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한다면 결국 그건 자신의 스펙트럼을 좀 더 아름답고 강렬하게 분화하는 데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업에서도 충분한 능력과 성과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활발히 키워나간 군계일학 같은 존재를 숱하게 만나오면서 내가 발견한 공통점이란 바로 이거다. 시간이 남아돌고 에너지가 남아 돌아서가 아니라,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무조건 천천히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듯, 무조건 치열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거다. 하지만 치열해져야 할 땐 치열해지는 것이 어쨌든 맞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가속도란 참으로 냉정한 것이어서, 우리가 스스로를 얕잡아보고 주저하는 순간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많은 가능성을 앗아가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두 가지의 결론을 내려둔 게 있다. 첫째, '저 남자가 나를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건가'라며 긴장모드로 지내는 건 불쾌한 상황을 피하는 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것,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든 일단은 열린 태도로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는 것. 그리고 둘째, 만약 예기치 않게 섹슈얼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면 무조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일상에선 '누가 날 어쩌지 않을까'라며 초긴장 상태로 지내고, 이성의 호의에는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막상 불쾌한 상황과 만나면 분노하기만 하다 제대로 대응은 하지 못하는 여자가 되는 건 너무 슬프니까.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계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균열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다. 등가교환인 듯했지만 결국 어느 한켠에서 먼저든 양쪽에서 동시이든 불만이 슬슬 자리잡게 되고, 그래서 둘 사이의 균열을 맞이하게 되는 거다.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연인도, 조금만 더 배려했다면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 친구도 순식간에 소원해지는 것은 대부분 그런 이유에서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서운함, 균열, 그리고 불만의 폭발들. 영원해 보이던 관계도 늘상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처음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상대에게서 좋은 것만 보려던 사람도, 좋지 않은 모습도 보이게 되고 상대의 좋지 않은 면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하게 되는 슬픈 패턴이라니.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그 사람이 인생 전반을 대하는 태도와도 참 닮아 있어서,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는 일은 생에 대한 고된 집착을 조금 놓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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