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표지에 끌렸다.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이 소설은 뤼팽의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여동생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푸른 눈동자의 영국 여자와 초록 눈동자의 프랑스 여자의 모습이 머리에 환히 그려지며 1920년대 낭만이 느껴지는 듯했다.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는 다분히 시적(詩的)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처음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우연과 숙명의 연결 고리가
중첩되면서, 아득한 과거와 전설 속의 비밀로 수렴되어가는 스토리 전개방식이 모리스 르블랑 특유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비밀의
소재가 밝혀지는 종반의 하이라이트도 감탄할 만하지만, 여성에 대한 완벽한 신사적(紳士的) 이미지와 소위 “불 좀 빌립시다!”라는 명언(名言)으로
대표되는 신출귀몰 뤼팽의 카리스마가 압권이다.「암염소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는 이번에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보석 같은 단편작품으로,
거장(巨匠)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찬미와 존경의 표시로 집필된 것이다. 추리문학에 관한 한 세계 최초의 학술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레지 메삭의
「탐정소설과 과학정신의 영향」(1929)은 바로 이 작품을 두고 “에드거 앨런 포의 집중(concentration)과 점층(gradation)의
법칙을 대단히 훌륭하게 적용”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번 해설에서는 아르센 뤼팽의 적수(敵手)에 대한 마지막 분석으로 천재 소년탐정 이지도르
보트를레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4. 별장을 털다
"내가 항상 철저하게 준수하는 원칙은 말일세......"
그로부터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르센 뤼팽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적절한 때가 되기 전에는 서둘러 어떤 문제 해결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일련의 수수께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연에 의해서든 자신의 솜씨에 의해서든, 먼저 제반 사실들이 충분히 집적(集積)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우선이야. 아무리 진실을 향한 길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사태의 진전에 발맞춰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나아가야만 하는 거라네."
하물며 서로 어떤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이 지리멸렬한 요소들이 제멋대로 얽혀 있는 사안에 관해서는 두말할 것 없이 타당한 원칙이라 하겠다. 어떤 통일성도 찾아보기 어렵고, 일관된 추론조차 불가능한 경우...... 그저 모든 사항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분위기......정말이지 라울은 이런 류의 모험일수록 조급함을 삼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추리와 직관, 분석과 시험 등, 섣불리 발길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함정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는 느낌이었다.
5. 충견
지방 출신이건, 파리 출신이건, 보아하니 더없이 능란한 배우 기질과 담백하면서도 감동적이고, 다정다감하면서 또 쾌활한 매력과 순수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가창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배우로서의 모든 재능과 미모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 매우 뛰어난 순발력과 더불어 실제 무대경험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점 또한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문득 오스망 대로에서의 첫인상이 머리 속에 떠오르자, 어딘가 앳되어 보이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 얼굴로 두 개의 판이한 운명을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6. 재회
'......예쁘장한 그대는 이제부터 이 손 안에 있는 거나 같아. 살인자이자 절도 사기군의 절친한 공범이자, 그대 자신도 매정한 살인마인 데다, 화류계의 아가씨이자 오페레타 가수이며, 수녀원 식구이기도 하다 이거지...... 좋아, 그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는 절대로 못 빠져나갈걸. 소위 신뢰라는 것은 한번 마음 속에 둥지를 틀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법! 지금 그대가 입술을 한번 빼앗긴 걸로 제아무리 내게 앙심을 품었다 해도, 마음 깊숙한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구해주고, 항상 위험 직전에 짠하고 나타나주는 이 듬직한 사나이에게 신뢰감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어쩌다 물렸기로서니 충견(忠犬)을 내치는 경우란 없으니까 말이야...... 오, 세상 모든 귀찮은 것들을 피해 수녀원에 피신한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여!...... 새로운 상황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대는 내게 살인범도 무지막지한 여걸(女傑)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려한 오페레타 가수도 아니라오. 나는 그대를 결코 레오니드 발리로는 부르지 않을 테야. 대신 오렐리라고 부르도록 하지. 왠지 난 그 이름이 맘에 들거든. 고풍스럽고도 단정하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자매이니까 말이야(오렐리[Aurelie], 즉 아우렐리아는 성녀의 이름이기도 하다/역주)...... 아,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여, 그대가 옛 패거리들과의 별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소. 그들은 아마 당신에게서 그 소중한 비밀을 앗아가려고 했겠지. 물론 당신은 고집스레 그것을 지켜왔을 테고. 하지만 이제 그 비밀은 조만간 내 손 안에 들어올 거요. 왜냐하면 비밀하면 곧 나거든! 현재 당신이 숨어 있는 어둠의 베일을 걷어내는 날, 그 비밀 역시 낱낱이 밝혀낼 것이오, 신비스럽고도 열정적인 오렐리여!......'
이런 생각 속에 기분이 좋아진 라울은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로 비롯된 골치 아픈 수수께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붙였다.
7. 지옥의
아가리
"이런 망할 놈이 있나! 그럼 내가 멍청하게 떠들어대는 동안 그 말을 안 하고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 자가 그런 흑심을 품고 있다구? 아, 지저분한 놈...... 이거야 원, 그 아가씨는 어째 안 좋아하는 인간이 없구만그래! 같잖은 놈들이 너무도 많아! 어떻게 그 놈들은 거울도 안 보며 사나? 그중에서도 특히 너 말이야, 너! 포마드 바른 뺀질한 상판대기하며......"
8. 전투 준비
저만치 한 300여 미터 전방에 조도가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등짐 속에는 처음에는 브레작의 호텔 지하를, 그 다음에는 루보 형제의 별장 지하실을 제멋대로 넘나든 공범이 얌전히 숨죽이고 있을 터!
그런가 하면 그 뒤 한 100미터쯤 뒤에 쳐져서 브레작이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며 따라붙고 있었다.
언뜻 눈을 돌려 센 강 쪽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또 줄 낚시를 즐기는 남자 하나가 같은 방향으로 제방을 따라 노를 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마레스칼이었다.
결국 조도는 브레작이 쫓고 있고, 브레작과 조도 모두는 마레스칼한테 미행당하고 있는 셈. 물론 그 셋 모두는 라울일 추적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이 쫓고 쫓기는 게임에서 내걸린 판돈은 유리병 하나!
9. 간절한 기다림
"바로 이것이네, 친구. 어때, 이만하면 알아보겠지? 바로 자네가 그 조도 선생한테서 뺴앗은 것을 내가 다시 가로챘고, 그걸 또다른 녀석이 낚아챘었지. '또다른 녀석'이 누구냐고?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리메지 남작님이시지! 놈의 숙소에서 좀 전에 되찾아 온 거라네. 이걸 다시 손에 넣었을 때 내 기분이 얼마나 신났는지 아마 상상도 못할 거야! 이 병이야말로 진짜 보물 중에 보물이 아니겠나! 잘 보라구, 브레작, 상표하고 성분 표시까지 그대로야...... 자, 보라니까! 여기 이 병마개하고 붉은 밀랍 봉인은 리메지의 작품이라네. 이 안을 잘 들여다봐...... 가느다란종이 두루말이가 보일 거야. 아마도 조도에게서 자네가 빼앗으려 했던 게 바로 이거일 거야. 필경 뭔가 중요한 고백을 적어 넣은 거겠지...... 자네 손으로 직접 쓴 결정적인 증거물 말이야...... 허허, 브레작 자네 참 딱하게 생겼어!......"
압도적인 승리엿다. 밀랍 봉인을 뜯어내고 병마개도 벗겨내면서 그는 저혼자 기분이 들떠 별의별 탄성을 제멋대로 내지르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마레스칼이 제일 유명한 사람이야!...... 특급열차 살인범들도 일망타진했지!......브레작의 어두운 과거도 가차없이 파헤쳤어!......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얼마나 다들 놀랄까!...... 이봐, 소비누, 여기 이 어여쁜 아가씨를 위해 수갑은 가져왔겠지? 라봉스하고 토니도 불러들이게......아, 이겼어......완벽한 승리라구......"
병을 뒤집자, 안에서 종이 두루말이가 흘러나왔다. 지체 없이 종이를 펼친 마레스칼을 마치 결승선을 초과해 달려드는 달리기 선수라도 되듯 한껏 도취된 기분으로, 무슨 말인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에 밟히는 대로 소리쳐 읽어버렸다. 이렇게......
마레스칼은 얼간이래요.
10. 화려한 등장
"어이, 안녕하신가, 친구? 그나저나 자넨 감쪽같이 날 못 알아보더구만 그래! 아마 지금도 내가 어떻게 소비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엇는지 의아한 모양이야? 엄청 믿었던 부하였을 텐데 말이지! 오, 하느님 맙소사! 소위 이 바닥 거물급에 속한다는 인사가 한낱 소비누라는 인물을 철석같이 믿고 지내오다니! 이보게, 로돌프 군(君), 소지누는 전혀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일세. 한낱 허깨비였을 뿐이야! "
11. 결정타
"고집부리지 말라니까, 마레스칼. 보다시피, 난 지금 놀리는 것도, 장난치는 것도 아니야. 자네의 실수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뿐이라구."
"나의 실수?"
"그래, 여자가 살인한 게 아닐뿐더러, 오히려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이거지."
12. 불어나는 물
하지만 라울은 분명 버티고 있었다. 저렇게 모든 것을 맡기는 입술에 키스를 한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이요, 방금 말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했다. 라울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기질적으로 그는 그러한 나약함과는 상극(相剋)이었다. 그러나 오렐리는 맥을 풀리게 하고 허약한 생각을 품게 만드는 말들을 여전히 애원조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13. 암흑
속에서
조도는 그만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었다. 라울의 대범한 태도, 아직도 오렐리가 위험 중에 신음하고 있다는 스스럼 없는 고백은 그의 정신을 일순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동시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긋지긋한 적이었던 이 인간의 마력적인 위력이 점점 더 크게만 바라보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단 한순간도 이 상황을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반전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가 쏜 두 발의 총성은 그대로 암벽과 바위들을 타고 널리 울려 퍼졌다. 조도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대장이오. 더는 주저할 이유가 내게는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한테 복종하는 수밖에...... 여기 공책들하고 후작의 유언장이 있습니다."
14. 청춘의 샘
그제서야 라울은 여자의 말을 이해했다. 자고로 예술가의 독립적인 삶이란 이런저런 일반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마련이다. 지금 오렐리는 그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사실 마레스칼은 그외에도 여러 다른 얼굴들 너머 그의 존재를 알아보았는데, 언제나 빈정대는 말투와 윙크하는 눈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주었다. 아울러 매번 빠짐 없이 자기 면전에다 대고 그 지긋지긋하고 신랄하면서도 얄밉고 갑작스런 말 한마디를 뱉어내는 것을 꼼짝 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했다.
바로 이 말......
"실례지만, 불 좀 빌립시다!"
라울은 결국 쥐뱅의 영지를 사들였다. 하지만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에 대한 경의의 뜻으로 그는 결코 그 곳에 깃든 엄청난 비밀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쥐뱅의 호수와 청춘의 샘은 프랑스가 아르센 뤼팽으로부터 상속받게 되는 여러 보물들과 신비의 목록에 당당히 오르게 된 것이다.
암염소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
"이보게, 뤼팽...... 이번 사건에 자네가 개입해서 논증해준 내용 말일세...... 솔직히 나는 그 편지에 그리 놀라진 않았었네."
"아하, 그런가? 이유는?"
그는 차분하게 반문했다.
"이유아 그와 유사한 사건이 70~80년 전에 이미 일어났었기 때문이지. 그걸 가지고 에드거 앨런 포도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한 편의 주제를 삼았지 않았던가(1841년 발표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을 암시한다. '모르그'라는 거리명과 앞서 나온 모르그 숲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에서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역주)! 사정이 그러하니 이번 수수계끼의 해답이 쉬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해설 : 아르센 뤼팽의 인물 탐구 8
-아르센 뤼팽의 적수(敵手) (下): 이지도르 보트를레
그(이지도르 보트를레)의 말투는 한없이 점잖으면서도 깍듯한 예의가 담겨 있었다. 보아하니 상당히 젊은 친구였는데, 매우 큰 키에다 무척 야윈 체격이었으며, 키에 비해 다소 짧은 바지와 몸에 꼭 끼는 모닝코트로, 전혀 겉멋을 부리지 않은 차림새였다. 얼굴은 마치 여자애처럼 살짝 홍조를 띠었고, 시원스런 이마 위로는 짧게 깎은 머리, 그리고 턱 주위로 제대로 다듬지 않은 황금빛 수염이 듬성듬성했다. 소년은 그렇게 총명한 눈빛을 연신 반짝이면서, 전혀 어색한 기색 없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곳에는 뤼팽 같은 건 없습니다. 도둑이나 탐정에 얽힌 이야기들도 없어요. 반면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역주)라고 하는 엄연한 현실이 버티고 있답니다. 지금이 벌써 5월이고 앞으로 두 달여밖에 안 남았다구요! 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아버지가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듯 시험 때문에 고민하고 아버지의 꾸중을 걱정할 정도로,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이 앳되고 순진한 고등학생 보트를레...... 그러나 그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면서도 인상 깊은 뤼팽의 맞수로 뤼피니앵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등장하는 무대는 「기암성」 단 한 편이면서도 이 풋내기 소년이 그처럼 뚜렷한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보트를레와 뤼팽의 대결구도가 단순히 법의 수호자와 범법자(犯法者)간의 쫓고 쫓기는 차원이 아니라, 두 적수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치열하면서 정정당당한 경쟁관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나이 또래에 어느 한 대상에 대해서 이 정도의 열렬한 관심과 탐구열을 보인다는 것은 그 대상을 향한 일종의 존경심 내지는 존경심을 바탕에 깐 경쟁의식이 은연중에 개입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뤼팽에게는 위와 같은 보트를레의 순수한 입장이 적당히 내칠 필요가 있으면서도, 왠지 가다듬고, 심지어 키워주고픈 선의의 경쟁자로 비쳐졌을 법도 한 것이다.
뤼팽 시리즈를 통틀어 「기암성」만큼 뤼팽의 적수(가니마르, 홈스, 보트를레)가 동시에 많이 등장하는 작품도 없을뿐더러, 쟁쟁한 싸움꾼들을 죄다 제치고 가장 나이 어린 보트를레가 마침내 에기유 크뢰즈의 비밀을 거머쥐고야 만다는 발상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속이 빈 바늘’...... 글자 그대로 ‘에기유(aiguille)’의 속이 텅 ‘비어 있다(creuse)’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쉽게 풀릴 것을, 똑똑하다는 천재 소년조차 ‘에기유’라는 성(城)과 ‘크뢰즈’라는 지명을 찾아다닐 정도로 수수께끼는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쉽다. 문제는 순수한 눈을 가지는 것!
보트를레가 가니마르나 셜록 홈스를 제치고 「기암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같이 순수한 마음의 눈, 좀더 자유로이 살아 숨쉬는 상상력을 가진 ‘소년’이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천신만고 끝에 기암성에 입성한 보트를레를 이미 초대된 손님을 맞이하듯 환영하는 뤼팽의 태도는 마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한 후임자, 입문의례의 고난을 극복한 자랑스런 후계자를 맞이하는 태도에 비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아름다운 모험담 내내 맞수이자 길 안내자로서 소년의 운명을 이끌어온 뤼팽이 마지막에 남긴 작별인사는, 더 이상 천재소년 보트를레가 아니라, 뤼팽의 고뇌와 슬픔, 즉 자신과 동류인 한 인간의 운명을 가슴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어떤 성숙한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