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파편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7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대체 왜 뤼팽 전집에 속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출판사 쪽에서도, 모리스 르블랑도 길게 설명을 해 놓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딱 하나다. 뤼팽 전집에 속하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려는 것, 혹은 이 책의 위치를 높여보겠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이때까지 읽은 뤼팽 전집 중에서는 재미도 집중도도 참신함도 가장 낮았다고 본다. 야심차게 준비했을 반전도 김이 빠지고 시시했다.

 

포탄 파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감을 받아 쓴 모리스 르블랑의 대작(大作)이다. 1915르 주르날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이 소설은, 처음에는 뤼팽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었으나, 훗날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합류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례적으로 붙은 작가의 서문(번역서에서는 번역자의 "해설"에 삽입되어 있다)에서 모리스 르블랑은 유독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전쟁 중의 검열을 피해 현실의 지명과 인명을 부득이 변형시켰음을 명시하고 있다. 훗날 시리즈에 편입되었다고는 하나, 그 전체적인 분위기나 탄탄한 추리적 구성, 서스펜스의 묘미는 시리즈의 여타 작품들에 비교해 전혀 손색없는 박진감과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드라마 속에서 전쟁의 의미와 정의의 가치, 사랑과 신념의 위대함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까지 읽을 수 있어, 그 감상의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은 수작(秀作)이다. 그리고 제7권 해설에는, 아르센 뤼팽의 인물탐구 두번째 주제로, 뤼팽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도둑(cambrioleur)’이라는 타이틀을 분석해본다.

 

1

 

 

1. 살인이 일어났었다

 

2. 폐쇄된 방

 

3. 동원령

 

4. 엘리자벳의 편지

 

5. 코르비니의 아낙네

 

6. 오르느캥의 성에 남아 있는 것

 

상처 입은 채 몸부림을 치고 있는 아내의 이미지가 영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엘리자벳이 오르느캥 성을 떠나길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발작적인 거부감이나 원한으로 마음 한구석 켕기는 일 없이, 절절한 심정으로 그녀를 생각해오고 있었다. 이제 더는 끔찍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이 서로 뒤섞이지를 않았다. 가증스런 어미를 생각하는 동안은 그 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 둘은 완전히 서로 다른 종족(種族)에 속해 있었고, 둘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의무를 위해 사지(死地)를 마다 않고 용감하게 버티고 있는 엘리자벳의 모습은 폴에게 더없이 숭고한 여인으로 비쳐졌다. 역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꼈으며, 지금도 여전히 흠모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7. H.E.R.M

 

8. 엘리자벳의 일기

 

9. 황제의 아들

 

10. 75밀리냐 155밀리냐?

 

2

 

1. 이제르...미제르

 

2. 헤르만 소령

 

3. 사공 휴게소

 

, 감히 어찌 그런 망발을! 그럼 내 아내가 자네 부친을 죽였단 말인가? 자네 돌았구만! 신과 이 세상 앞에서 성녀(聖女)나 다름없는 내 아내가? 감히 어떻게! ! 내가 왜 당장 자네 얼굴에 한방 날리지를 않는지 모르겠구만!”

폴은 거칠게 팔을 뿌리쳤다. 가뜩이나 소란스런 전투가 벌어지는 데다 안으로부터 복받치는 분노 역시 주체하기 어려운 판에, 점점 더 흥분할 수밖에 없어진 두 사람은, 총탄과 포탄이 요란스레 퍼붓는 가운데 서로 막 드잡이라도 할 태세였다.

또다시 벽의 한쪽 면이 와르르 무너졌다. 폴은 정신 없이 명령을 외쳐대면서도 머리 한 쪽으로는 그 무너진 벽 근처에 있는 헤르만 소령에 대한 생각와 더불어 당드빌 씨를, 마치 범죄자를 대질시키듯 그 앞에 데려가 세우고 싶은 욕심이 불쑥불쑥 치밀어올랐다.

 

4. '독일식 문명'의 걸작

 

이것 봐요, . 벌써부터 난 정신이 하나도 없는걸요! 그야말로 예언력과 투시력을 죄다 겸비하신 것 같아요! 두말 않고 곧장 파들어가야 할 곳을 지목하지를 않나,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술술 털어놓지를 않나......당최 모르는 것 하나 없이, 죄다 훤하게 내다보잖아요! 정말 그 정도이신 줄은 몰랐어요! 혹시 아르센 뤼팽을 사사(師事)라도 한 거 아니에요?”

 

“‘거기까지만 해두죠. 그 이상 세세한 행동지침까지 조언을 해주다간 오히려 당신 머리만 혼란스러워질 테니까요. 게다가 당신만한 인물에겐 구차하게 이것저것 챙겨줄 필요까진 없을 겁니다. 그럼 이만, 잘 있으시오, 중위! 아참, 그리고 내 이름은 아마 모르고 있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저 군의관이라고만 해두지요......, 하긴 내 이름을 굳이 지금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테니......아르센 뤼팽이라고 하오!’......아무튼 그렇게 대차게 얘기를 늘어놓더니 그는 다정하게 인사를 꾸벅한 다음, 더는 아무 말 없이 나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된 거라구......, 어떻게 생각하나, 베르나르?”

 

5. 콘라트 왕자의 잔치

 

6. 불가능한 싸움

 

7. 승자의 법칙

 

8. 132고지(高地)

 

9. 호엔촐레른

 

10. 두 번의 처형

 

해설: 아르센 뤼팽의 인물 탐구 2

-도둑, 그 매력적인 범죄자

 

포탄 파편에 대한 모리스 르블랑의 서문

전쟁 초기에 조프르 장군(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북동부 전선 최고사령관으로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명장이다/역주)으로 하여금 위대한 승리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가능케 한 기막힌 후퇴작전에 대해서는, 아직 그 전모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중에서도 더없이 심각하고 절박한 원인이 된 사건이 있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국경 근처의 어느 한 요새가 어처구니없이 함락되어 프랑스 군의 거점이 일거에 박탈당함과 동시에, 적에게는 아주 훌륭한 침투로를 열어준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아직까지 전혀 밝혀진 바 없거나, 적어도 군 당국으로서는 그 일단의 진실을 알면서도 공개하기를 무척 꺼렸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저자 자신도 우연히 그 비밀을 엿보게 된 이 사건의 정확한 해명만큼은, 여태껏 그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어둠 속에 남겨두는 것이 현재로서는 옳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당시 사건과 연루된 주요 실존인물의 이름과 관련 지명들을 부득이 변경했음을 밝혀둔다. 하지만 언젠가, 저 야만인들이 안전하게 묻어두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들을 어둠 속에서 과감히 끌어낼 날이 오면, 그때 역사는 저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독자 여러분이 읽을 이 이상하고도 엄청난 모험담의 전모를 제대로 자리매김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일단 도둑으로서 아르센 뤼팽의 가장 독특한 점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공개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도둑질이 발생했을 때, 아르센 뤼팽에게까지 혐의를 두는 경우, 그것은 결코 범죄행위 자체가 서툴렀다거나 증거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완벽하게 처리된 범죄행위는 엉뚱하게도 뤼팽 자신이 그 장본인으로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렇게 뤼팽 자신이 스스로 공개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는 그의 범행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절도행각에는 다음과 같은 일정한 원칙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부당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졸부라든가 사회 기득권 세력인 귀족이나 왕족 등을 범행 대상으로 한다.

둘째, 단순히 재물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피해자를 조롱하고 그 위선을 폭로한다.

셋째, 절도행각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느껴질 정도로 신출귀몰한 방식을 활용한다.

넷째, 여하한 일이 있어도 살인은 피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해치지 않고도 마음대로 법과 질서를 유린하는 괴도(怪盜)의 이미지가 자칫 완벽한 의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것을,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무슨 의도에서인지 여기저기 인간적인 허점을 노정(露呈)함으로써 스스로 허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러한 면면에 유념한다면, 우리는 작가가 진정으로 형상화하고자 한 아르센 뤼팽의 이미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완벽하면서 난공불락의 절대적 영웅보다는, 당대의 일반 대중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고, 그로써 더더욱 질긴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을 친근한(sympathique) 영웅의 초상(肖像)을 그리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뤼팽 이전의 19세기식 낡은 영웅 이미지와는 달리 이러한 아르센 뤼팽의 참신한 이미지는 영웅의 현대적 의미와 좌표를 새로이 설정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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