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성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아르센 뤼팽의 수많은 활약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내용이다. 다만 그 이유가 뤼팽보다는 소년탐정의 매력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작가는 희노애락의 끝을 경험하는 뤼팽이 어떤 감정적 동요를 겪는지 보여주면서 대도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키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한명의 독자인 나로서는 그 감정의 과잉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기암성은 여러 면에서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이나 뤼팽 대 홈스의 대결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스토리의 다층적인 전개와 복선들이 보다 정교화되고, 주제와 소재 및 시공간적 스케일이 놀랄 만큼 확대되었다. 역시 홈스가 뤼팽의 호적수로 등장하며, 새로운 영웅인 소년탐정도 선을 보인다. 원래 심리소설 작가였던 저자의 섬세한 시각이 더욱 돋보이며, 주변 풍광에 대한 인물의 감정이입도 대단한 수준이다. 뤼팽의 전인적(全人的) 면모가 약여하는 작품이며 그의 페이소스를 한껏 느껴볼 수 있는 수작이다.

 

1. 한 밤의 침입자

 

2. 수사학급 학생 이지도르 보트를레

 

3. 시체

 

4. 정면대결

맹세하지. 내 친구들이 자네 부친과 함께 자동차로 지금 시골 어느 마을에 가 있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그랑 주르날에 내가 주문한 대로 기사가 실린 걸 확인하는 즉시,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풀어드리라고 하겠네.”

좋습니다! 조건에 따르겠습니다.”

보트를레는 자신의 패배를 시인한 마당에 더는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 모자를 쓰고 내게, 그리고 뤼팽에게 차례로 인사를 한 뒤 방을 나갔다.

뤼팽은 그가 나간 뒤, 밖의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딱한 녀석......”

 

다음날 아침 여덟 시, 나는 하인을 시켜 그랑 주르날지를 사오게 했다. 20분 만에야 돌아온 하인 이야기로는 가판대마다 신문이 동이 나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신문을 들춰댔다. 아니나 다를까 보트를레가 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다음에 그대로 옮겨놓은 기사 내용은 곧 전 세계 소식통들에 퍼져나갔다.

 

앙브뤼메지의 참극

 

이 글의 목적은, 앙브뤼메지의 참극, 아니 이중의 참극이라고 해야 할 일대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 그간의 수사 및 추론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분석, 연역, 귀납 등에 의한 모든 추론작업은 극히 상대적이면서도 진부한 흥밋거리밖에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수사과정을 이끈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며, 그것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해 보이는 가운데, 이 희대의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그 추이를 짚어가며 이야기하려고 할 따름이다

아마도 혹자는 사건의 여러 부분들이 미처 증명되지 않았고, 대부분 나의 가설에 의존하고 있음을 간파할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설이 엄청난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따라서 그것을 토대로 상정한 사건들 역시, 비록 하나하나 증명된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신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물은 계속해서 흐르되 그 속에 담기는 푸른 하늘의 이미지는 늘 같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우선 내 관심을 자극한 첫 번째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어떻게 치명상을 입은 뤼팽이, 어두컴컴한 구멍 속에서 음식도, 약도, 이렇다 할 보살핌도 없이, 최소한 40일을 생존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일단 사건의 발단부터 돌아보자. 때는 423일 목요일, 오전 4, 아르센 뤼팽은 엄청난 절도행각을 한창 벌이다가 들키는 바람에 폐허를 따라 난 길로 도망쳤으나, 그만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그는 다시 일어났다 또 쓰러지는 일을 반복하는 가운데 악착같이 예배당 쪽으로 가기 위해서 거의 기다시피 한다. 거기에는 그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 납골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숨어들기만 하면 일단 위기는 모면한 셈. 죽을 힘을 다해 다가간 끝에 불과 몇 미터를 남겨둔 상황에서, 문득 발소리가 들린다. 기진맥진,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끝내는 놓치고 그는 기절하고 만다. 이때 도착한 발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마드모아젤 레이몽드 드 생-베랑. 바로 여기까지가 참극의 제1, 즉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과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추후에 발생한 사건들이 남긴 단서들을 보건대, 그것을 추론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젊은 아가씨의 발치에, 상처입고 신음 중인, 그래서 조만간 비참하게 붙들리고 말 한 남자가 누워 있다. 바로 자신이 쏜 총에 맞은 남자 말이다. 이제 꼼짝 못하게 만들었으니 경찰에 넘겨야 할까?

만약 그가 장 다발의 살해범이었다면 그녀는 의당 그가 치러야 할 운명을 부여했으리라.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삼촌인 제스브르 백작이 정당방위로 저지른 살인행위의 전모를 다급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녀는 웬일인지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빅토르는 쪽문 쪽을 감시하고 있으며, 알베르는 살롱의 창가에 있다. 결국 둘 다 여기까지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이야기. 과연 그녀는 자기 때문에 상처입은 남자를 경찰에 넘겼어야 할까?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짐작한 거부할 수 없는 동정심이 여기서 한몫을 한다. 뤼팽의 주문대로, 그녀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동여맴으로써 우선 핏자국이 남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고는 역시 남자가 건넨 열쇠로 예배당 문을 연 다음, 남자를 부축해서 안으로 들여보낸다. 즉시 문을 닫고 여자가 되도록 멀리 떨어진 다음에야 알베르가 헐레벌떡 나타난다.

만약에 그 순간, 혹은 그로부터 수분 이내에 누군가 예배당에 들어섰다면, 기력을 미처 회복하지 못해 바닥 포석을 들어올려 지하 납골당 안으로 피신하지 못했을 뤼팽은 그 자리에서 붙잡혔을 것이다......하지만 정작 예배당에 대한 조사는 그로부터 여섯 시간이나 지난 뒤에, 그나마 건성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뤼팽은 안전하게 피신했고,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을 죽일 뻔한 여자의 도움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후로 마드보아젤 드 생-베랑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뤼팽의 공범이 된 셈이다. 이제는 그를 경찰에 넘길 입장도 아닐뿐더러,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는 아예 그를 보살피기로 한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은신처 안에서 남자는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다. 그려가 계속 공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로서의 모성적 본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종의 사명감마저 가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기꺼이 그러게 된 것이다. 그녀는 워낙에 총명하고 섬세한 여자이다. 그래서 예심판사에게 아르센 뤼팽의 인상착의를 거짓으로 지어낸다(두 사촌자매가 서로 다른 진술을 한 사실을 상기해보라). 아울러 그녀는 틀림없이, 내가 모르는 단서들을 통해, 변장한 마차꾼이 아르센 뤼팽과 한패라는 것을 이미 알아보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가짜 마차꾼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두목의 상태는 물론 한시 바삐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녀가 알려준 것이다. 마차꾼의 챙모자를 슬쩍 바꿔치기 한 것도 물론 그녀이다. 또한 그녀 자신을 목표로 지목한 협박 쪽지 역시 그녀의 작품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그녀를 의심하겠는가?

그녀는, 내가 예심판사에게 소견을 밝히려고 하자, 느닷없이 끼어들어 전날 나를 숲속에서 보았다느니 어쨌다느니 엉뚱한 낭설을 퍼뜨린다. 물론 예심판사 피욜 씨로 하여금 나를 의심케 해서 입을 막으려는 처사였다. 그녀의 그런 행위는 나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의심의 불씨를 지피게 했으므로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일단 내 입을 막고 시간을 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작전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는 무려 40일 동안이나 뤼팽을 먹이고 보살피게 되며(우빌의 약사를 조사해본 결과,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 이름으로 된 여러 약품 주문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에 가서는 환자를 낫게 한다.

이상이 겉으로 드러난 앙브뤼메지의 참극이자, 우리가 해결한 두 가지 문제 중 첫 번째이다. 요컨대, 아르센 뤼팽이 은신하고 희생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수호자는 다름 아닌 성채 안,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현재 아르센 뤼팽은 살아 있다. 따라서 바로 두 번째 문제이자 앙브뤼메지 참극의 제2막이 전개된다. 즉 다시 무리의 두목으로 돌아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막강한 세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그가, 끊임없이 나와 부딪치면서까지 끝끝내 자신이 죽은 것으로 세상이 알고 있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한 가지 상기해야 할 점은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사실이다. 그녀가 실종된 다음 여러 신문에 게재된 바 있는 사진들은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의 극히 일부만을 불완전하게 보여줄 따름이다. 자연히 두 남녀 사이에는 의당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40일 동안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매일같이 보아오면서 뤼팽은 어느덧 없으면 그리워하게 되고, 간호를 하러 몸을 숙여올 때도 그녀의 향긋한 숨결에 먼저 매혹되어버리는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전형적으로 환자가 간호사에게 반하는 케이스라고 할까? 감사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해가고, 찬탄의 시선이 정염의 불꽃으로 화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추이이다. 그에게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은 구원이자 즐거움이고, 꿈이자 희망이며, 빛이자 삶 자체가 되어버린다.

이제 뤼팽은 그녀의 헌신을 마냥 이용하기가 꺼려질 만큼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고, 그녀를 공범으로 개입시키는 것을 더 이상은 스스로에게 용인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 그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된 뤼팽은 자신의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처럼 도발적인 사랑에 쉽게 혹할 리가 없는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은 환자가 치유된에 따라 방문 횟수를 줄여갔고, 급기야는 완쾌된 날을 기회로 지하 납골당 출입을 끊는다. 절망으로 괴로워하고 애끓는 연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뤼팽은 마침내 엄청난 결심을 하고만다. 66일 토요일, 그는 드디어 은신처를 나와 수하들이 돕는 가누데, 아가씨를 강제로 납치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납치가 일어난 경위가 알려지면 안 된다. 모든 수사의 길목을 차단해야 하고, 모든 추리와 추리의 희망까지도 그 싹부터 잘라내야만 한다. 그 일환으로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은 죽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낫다. 살인이 연출되고, 증거들이 조작된다. 이렇게 해서 누가 보아도 확실한 범행이 기정사실화된다. 어느 정도는 미리 예견되고, 뤼팽의 패거리들에 의해서 예고까지 되었으며, 결국 두목의 죽음을 되갚기 위해서 무자비한 범죄행위가 발생하는데-,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치밀하게 조작되었는가!-그로 인해서 바로 그 두목의 죽음 역시 보다 확고한 사실로 정착한다.

아니, 단순한 믿음을 부추기는 것만을도 모자라다. 아주 확실한 사실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쯤 뤼팽은 내가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본다. 내가 언젠가는 예배당의 비밀을 눈치채고 그 지하의 납골당을 파헤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서도 만약 납골당이 텅 빈 채로 발견되었다면 그간의 모든 조작과 속임수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따라서 납골당은 비어 있으면 안 된다!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의 죽음 역시 파도가 시신을 해변으로 몰아오지 않았다면 애매모호한 추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시신 역시 조수에 떠밀려와야만 한다!

이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하나도 아닌 두 개의 커다란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뤼팽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는 어려운 숙제였겠지만, 뤼팽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결국 뤼팽이 내다본 것처럼, 나는 예배당의 비밀을 파악하고 지하 납골당을 발굴해서, 뤼팽이 그동안 숨어 있던 은신처로 내려가본다. 그리고 거기에 나뒹굴어 있는 그의 시신을 확인한다!

뤼팽의 죽음을 점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광경에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그가 죽었을 개연성엔 무게를 두지 않았다(우선은 직관적으로, 그리고 추론에 의거해서). 때문에 모든 기만술과 조작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게 된다. 나는 즉시 이런 생각을 한다. 곡괭이질로 떨어진 돌멩이가 하필 그 자리에, 그것도 톡 건드리기만 하면 떨어질 정도로 가볍게 얹혀 있는 데다,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아래의 시체 얼굴 부위를 정확히 가격하도록 되어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나중에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짜 아르센 뤼팽의 머리를 실수 없이 으깨놓도록 말이다.

그밖에도 또 하나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반시간 후, 나는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의 시신이 조수에 떠밀려와 디에프의 해변 바위틈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팔에 평소 차고 다니던 것과 같은 팔찌를 차고 있어서 그녀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어느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시체가 워낙에 알아볼 수 없게 상해 있어서 신원을 암시하는 단서는 오직 그것뿐이었고 말이다.

사실 위의 사체들에 관해서는 나 또한 기억 속에 뭔가 짚이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라 비치 드 디에프지에서 나는 앙베르뫼에 체류하던 어느 젊은 미국인 부부가 음독자살을 했는데, 당일 밤 그 시체 두 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즉시 알베르뫼로 달려갔다. 알고 보니 사체가 사라진 경위만 빼고 모두 진실이었다. 즉 그냥 무턱대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두 부부의 인척이 일정한 확인절차를 거친 다음, 사체를 인수해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인척이라는 사람들은 아르센 뤼팽과 그 패거리들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그런 식으로 명실상부한 죽음의 증거가 확보된 셈이다. 우리는 아르센 뤼팽이 왜 여자를 살해한 것처럼 꾸미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위장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는 사랑에 빠졌고,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말았으면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의향이 있었고, 심지어 남의 시체를 도둑질해다가 자기 자신과 마드모아젤 드 생-베랑의 역할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래야 우선 그 자신이 조용히 지낼 수 있으니까. 누구도 더는 그를 추적하려고 하지 않고, 아무도 진실에 의혹을 던지지 않을 테니까.

글쎄......과연 아무도 그럴 뜻이 없을까? 적어도 세 사람만큼은 뭔가 의심을 포기하지 않을 일이다. 우선 오기로 되어 있던 가니마르가 있고, 셜록 홈스 역시 영불해협을 건널 예정이었으며, 현장에는 또 내가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서 삼중의 위협이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는 이 삼총사의 처단에 즉각 나서는데, 가니마르와 셜록 홈스는 납치를 하고, 나는 브래두를 시켜 습격을 하고 만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한 가지 남는 의문점이 있다. 도대체 뤼팽은 왜 그 에기유 크뢰즈의 문서에 그토록 집착을 했던 걸까? 내게서 그것을 탈취해가면서도 굳이 내 기억 속에서까지 그 쪽지에 적힌 다섯 줄의 암호문을 지워 없애려고는 하지 않은 이유는 또 뭘까? 혹시 종이 자체의 질이라든가 그밖의 다른 단서가 내게 뭔가 특별한 정보를 제공할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어찌 되었든, 이상이 앙브뤼메지 사건의 진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수사에서는 물론, 지금까지 해명한 과정에서도 어디까지나 가설(假說)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지 않고 만약 뤼팽에 대항해서 어떤 확실한 증거나 공고한 사실을 기대한다면, 필경 한도 끝도 없는 기대 속에 시간낭비만 하든지, 뤼팽이 조작한 대로 이끌려가다가 애당초 겨냥한 바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귀착하고야 말 것이다.

물론 나는 여하한 사실도 있는 그대로만 온전히 밝혀진다면 나의 가설이 모든 면에서 적중했다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아버지가 납치되었기 때문에 아르센 뤼팽에게 한순간 무릎을 꿇었던 이지도르 보트를레는 급기야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보였다. 그가 확신하는 사건의 진실이 워낙에 근사하고 흥미로웠기에, 그것을 증명하는 자신의 논리가 너무도 완벽했기에, 그는 그 모든 것을 사장(死藏)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온 세상이 그만 믿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학수고대하는지라, 결국 입을 열고 만 것이다.

한편, 기사가 나간 바로 그 날 저녁, 석간신문들은 일제히 무슈 보트를레 영감의 납치소식을 보도했다. 오후 세 시쯤 되어서 셰르부르로부터 날아온 전보를 통해서 보트를레가 이미 그 사실을 접한 뒤였다.

 

5. 발자취를 따라서

 

6. 역사 속에 숨겨진 비밀

 

7. 에기유 논고

좋습니다. 어차피 이제 책은 불완전한 상태요! 두 장이 찢겨나갔으니......하지만 당신은 그 누락된 부분까지 읽었다고 했소. 그렇죠, 마담?”

.”

그럼 내용도 알고 있겠죠?”

, 알아요.”

그걸 우리 앞에 공개해줄 수 있겠죠?”

물론이죠! 워낙에 호기심을 품고 정독을 한 책이라......게다가 그 두 장의 내용이 저로선 정말 충격적이었거든요!”

, 그럼 어서 말해보십시오. 어서요, 마담! 지금부터 공개하는 내용은 정말로 중요한 겁니다. 자 자, 어서 시간 낭비 그만 하고, 속 시원히 털어놓아보세요! 에기유 크뢰즈가......”

, 그거 간단해요! 에기유 크뢰즈는 말이죠......”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하인이 들어서더니 이러는 거였다.

마담에게 편지입니다.”

 

입 닥치시오......

여차하면 당신 아들은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이오......

 

제발 부탁입니다, 마담, 진정하십시오......우리가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전혀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입을 열까? 적어도 보르를레는 그렇게 믿었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녀의 잇새로 뭔가가 나올 듯했다. 그러나 또다시 문이 활짝 열리며, 이번엔 하녀가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하녀는 완전히 혼비백산한 표정이엇다.

마담! 무슈 조르주가......무슈 조르주가, 그만......”

 

그때였다. 보트를레는 슬그머니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더니 권총 손잡이를 움켜쥐고 손가락은 방아를 손에 단단히 건채, 잔뜩 긴장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어느 한순간 후닥닥 권총을 꺼내서 마시방을 향해서 다짜고짜 발사하는 것이었다!

 

좋아, 이제 꼼짝 마......기껏 방금 전에야 눈치챈 모양이로군......그렇게도 날 못 알아보겠던가? 그러고 보니, 내가 마시방의 얼굴을 너무 잘 흉내낸 모양이지?”

아닌게 아니라, 마시방, 아니 아르센 뤼팽은 좀 전의 꾸부정한 학자와는 전혀 달리 두 다리를 떡 버티고 꼿꼿이 선 채, 세 명의 겁에 질린 하인들과 혼비백산한 표정의 남작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지도르, 자네 또 실수한 거야! 그렇게 내가 뤼팽이라고 소리치지만 않았어도, 저들이 내게 부담 없이 달려들었을 게 아닌가! 저들을 좀 보게......저런 덩치들 앞에서 내가 어찌 되었겠는가? 맙소사, 14라니......”

 

날 용서하시겠습니까, 마담? 워낙에 험한 삶을 살다보니, 때로는 누구보다 나 자신부터 얼굴을 붉힐 흉악한 짓을 종종 저지르게 되는구려......하지만 아드님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자그마한 주사를 한 대 놓았을 뿐이거든요. 아주 작은 거 한 대......아까 어른들이 애 하나 놓고 호들갑을 떨 때 팔에다가 살짝 놔주었죠. 앞으로 길어야 한 시간 후면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어쨌든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입조심만큼은 해주셔야 하겠는걸요......”

그는 다시 한번 깊숙이 인사를 하며 무슈 드 벨린의 호의와 친절에 감사를 표했다. 지팡이를 집어들고 궐련에 불을 붙인 뒤, 남작에게도 한 대 권한 다음, 뤼팽은 모자챙을 멋지게 한번 쓰다듬으면서 보트를레를 향해 잔뜩 어른스런 어조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잘 있게, 애송이!”

그리고는 담배 연기를 하인들 얼굴 위로 훅 뿜으면서 느긋하게 자리를 떴다......

보트를레는 그 상태대로 잠시 기다렸다. 아까보다 많이 안정된 마담 드 빌몽은 아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호소해볼 요량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깐 동안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보트를레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결코,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모성으로 가득 찬 그녀의 머리 속에서 에기유 크뢰즈의 비밀일랑은, 저 아득한 과거의 암흑 속에 빠져버린 가느다란 바늘보다 더욱 찾아내기 힘든 무엇으로 영원히 묻혀버린 셈이었다.

 

어때, 잘 맞아떨어졌지? 자네의 늙은 친구가 그만하면 줄타기 묘기를 제대로 한 것 아닌가? 이제는 정말 단념하겠지? 아 참, 지금쯤은 그 비명 문학 아카데미 회원인가 뭔가 하는 마시방이라는 작자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겠구만......그야 당연히 실존 인물이지! 말만 잘 들으면 직접 대면케 해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네의 권총을 돌려줘야겠지......, 장전이 되어 있냐구?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모두 다섯 발이 남았어......물론 나를 골로 가게 만들기엔 단 한 발로도 충분하겠지......어라, 그대로 호주머니 속에 넣는구만......그래 잘 생각했어......그때처럼 허튼 짓 하느니, 지금이 훨씬 낫군그래......정말 한심한 짓이었다구! 하기야 아직 나이도 한참 어린 데다, 덮어놓고 후딱 이런 생각부터 들었을 테지......저 영험하신 뤼팽한테 또 당했구나! 한데 그가 코앞에 보란 듯이 서 있어......에라 모르겠다, 당기고 보자......안 그런가? 그래 좋아......그 정도쯤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지! 그래서 말이네만 내 100마력짜리 막강한 자동차에 탑승해보지 않겠나?”

그리고는 갑자기 입술에 손을 대고 휘파람을 냅다 부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니, 늙은 마시방의 근엄한 외모와 뤼팽의 짐짓 과장하는 장난기 섞인 허세가 한데 뒤섞여 그렇게 코믹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보트를레는 자기도 모르게 허탈한 실소를 내뱉었다.

 

8. 케사르에서 뤼팽까지

 

9. 열려라, 비밀의 문이여!

 

10. 제왕(諸王)의 보물

그래, 그녀는 잊어줄 거야!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한 마당에 그녀는 기꺼이 잊어주고야 말 거라구! 저 난공불락의 기암성도, 그 눈부신 보물도, 모든 권력도, 자존심도 모두모두 희생한 나를......그래, 정녕 나는 모든 걸 버렸다네......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되고 싶지가 않아......오로지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밖에는......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정직한 남자 말이네......, 대체 정직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얼까? 최소한 그 무엇보다도 수치스럽지 않게 사는 걸 거야......”

 

, 보트를레......지금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면서 맛보았던 온갖 강렬한 즐거움들도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 느끼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세......! 마음이 자꾸만 약해지는 것 같아......울고 싶은 기분마저 드는걸......”

정말로 우는 걸까? 아닌게 아니라, 그의 눈망울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보트를레는 느꼈다. 천하의 아르센 뤼팽의 눈에 눈물이라니! 사랑의 눈물이라니......

 

레이몽드!......레이몽드!”

뤼팽은 쓰러진 여인 앞으로 와락 달려들어, 품 안에 우악스럽게 끌어안았다.

죽지 마......”

잠시 끔찍한 적막이 흘렀다.

 

......정말이지 처절한 광경이었다! 레이몽드를 향한 뤼팽의 극진한 사랑을, 그 여인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피워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허물어뜨린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보트를레로서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밤은 어느새 다가와 이 처참한 전쟁터를 어둠의 수의로 덮어주고 있었다. 꽁꽁 묶이고 재갈까지 물려진 세 명의 영국인은 키 큰 잡초더미 속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어디선가 아련한 노래 소리가 초원의 광막한 침묵 한 켠을 어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곳 뇌빌레트의 주민들이었다.

뤼팽은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잠시 가만히 서서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단조로운 가락은, 레이몽드와 함께 평화롭게 살려고 했던 이 마을 농가의 분위기를 더없이 가슴 아프게 와닿게 했다. 그는 사랑 때문에 죽어간 가엾은 연인, 이제는 저 영원한 잠 속으로 기나긴 여행을 떠나고 만 레이몽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벌써 주민들이 방책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뤼팽은 그 강한 팔로 이 세상 가장 사랑했던 여인의 시신을 번쩍 들어 안아 어깨에 들쳐업었다.

가요, 빅투아르......”

그래......그만 가자꾸나, 얘야......”

잘 있게, 보트를레......”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너무도 소중하면서, 또한 끔찍한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말없이 황망하게 뒤를 따르는 노파를 동반한 채, 그렇게 그는 해안 쪽으로 걸어가, 곧장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해설 : 저자의 '추리소설론'

*기암성을 발표한 해인 190971일자 피가로지에 모리스 르블랑 자신이 추리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의 입장을 짤막하게 소개한 내용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의 코난 도일과 자신의 작품세계의 차이점-추리와 논리성에 치중한 영국 소설과 다양한 감성과 상상력의 변덕을 한껏 받아들인 자신의 작품들의 다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이 자리를 빌려서 독자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만약 내가 붉은 쪽지를 네 개가 아닌 여덟 개로 상상을 해서 네 차례의 범행을 더 꾸며댔다면 아마 여러분은 지금까지 위의 이야기를 따라올 때와 같은 호기심과 흥미를, 그 터무니없는 결말에까지 고스란히 가져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뭔가 애매모호해서 여운을 남기는 악당들의 활극이 그토록 우리의 열정을 끌어당기는 것이고,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투성이의 사건들이 우리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는 것이리라.

이를 두고 과연 건전하지 못한 호기심이라고 타박을 줘야 할까? 물론 일상의 나날에 진짜로 일어나는 범죄행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에서라면 얼마든지 안전하고 바람직한 관심과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거칠고 끔찍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기꺼이 현실처럼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정교한 추리의 유희에 흠뻑 빠져듦으로써 현실의 지난한 삶으로부터 잠시나마 탈피하고자 하는 내면 깊숙한 욕구 때문이다 예컨대 추리소설의 첫 장을 열면서부터 독자는 저자의 공범이 되어야만 하고, 또 사실이 그렇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독자를 아주, 아주 꼬불꼬불한 길을 통해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의 결말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저 천재적인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黃金蟲)이라든지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아니면 위대한 발자크의 보트랭(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등장하는 인물/역주)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범죄의 달인이자, 나폴레옹처럼 무지막지한 인물을 말이다. 분명 거장의 솜씨가 틀림없는 그 책들에 사용된 작가의 기법은 그러나 가보리오나 코난 도일과 같은 대중작가가 사용한 기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다른 것은 재능의 정도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에 대해서 대중은 대단히 너그러운 편이다.

작가에게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쓰는 일은 대단히 고차원적인 오락이자, 자신의 어떤 능력들을 직접 실험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흔히들 사람들이 좋아하는 추리와 분석 능력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유행하는 일부 탐정의 거의 수학적인 추론이라든가 아주 정교하게 도출된 추리의 엄격한 방법들은 소위 논점선취의 오류(논증해야 할 것을 도리어 전제로 삼는 오류/역주)’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진정 현실적인 요인들은 애써 외면한 채 조작되고 취사선택된 몇 가지 사실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추리작가로서의 진정한 오락과 재능은 사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알렉상드르 뒤마와 조르주 상드의 놀랄 만한 작품들 이후, 너무도 푸대접을 받아온 상상력의 아무 거리낌없고 자유분방한 활용에 있는 것이다(19세기 말까지 프랑스 소설의 주류는 철저한 실증주의에 입각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였다. 르블랑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한 그와 같은 흐름과 다시금 낭만주의적 상상력에 눈을 돌리는 풍토를 말하고 있다/역주). 이제 그 고삐 풀린 상상력은 화려한 재기의 용트림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 수많은 소설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살찌우기 위해서 그 매력에 적극 호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해보라, 상상을 한다는 것의 기막힌 즐거움을! 상상력의 변덕스런 흥취에 마음껏 젖어들고, 애매한 꿈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가는 유령들과 맘껏 노니는 즐거움을 말이다!......

다만, 그냥 상상력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의 작품, 즉 문학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려면 단순히 꿈구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독특한 에피소드들을 골라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구조에 신경을 쓰는 등 넘어야 할 관문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약간의 경쾌함을 가미해야 한다는 점이다. 될수록 기발한 이야깃거리를 풍부히 하고, 줄거리의 복잡한 미로 가운데에도 가끔씩 긴장을 완화하고 기분을 풀어줄 아이러니의 숨결을 끊임없이 불어넣어줌으로써 작가이든 독자이든 어디까지나 즐기면서 은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기암성은 물론 지금까지 아르센 뤼팽의 모험담을 써오면서 내가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소설들이 부도덕한 문학이라고 몰아 붙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말씀이다. 세상에 재미나는 도둑 이야기를 읽었다고 해서 실제로 도둑질을 시도할 바보는 없으며, 끔찍한 사건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고 해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를 정신병자는 없다. 오히려 추리 소설의 영웅들은 악행을 부추기기보다는, 활달한 모험심과 박력을 향한 취향, 대범한 기상과 냉철한 지성을 우리에게 심어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 위대한 괴도의 영혼을 좀더 심도 있게 파고들어서, 그가 가진 감정들, 행동의 동기들, 온갖 열망과 고뇌들, 그리고 격렬한 취향과 위대한 꿈들을 낱낱이 독자 여러분에게 풀어 보여줄 예정이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에 대한 작가로서의 소견을 아르센 뤼팽, 박력교수(迫力敎授)라는 제목쯤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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