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1
빌 브라이슨 지음, 김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으로 시작한 빌 브라이슨 책 읽기. 선풍적인 인기로 그 이후에 나오는 책들은 줄줄이 '발칙한~'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데, 원제와 심히 관련이 없어서 볼 때마다 헷갈리곤 한다. 그래서 여기서 정리해보는 빌 브라이슨의 저서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일단 이 사람이 책을 여러 권 썼고, 일부는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으며, 번역된 책들도 순서대로 번역되지 않고 순서가 바뀐 경우가 많은 데다가, 판이 바뀌면서 제목도 바뀐 경우가 많다. 그 제목도 영어로는 멋스러울지 모르나 우리말로 직역하면 다소 눈길을 끌기에 부족하거나 어색해져 버려서 출판사에서는 우리 식으로 번역을 해 놓았는데, 그것이 또 바뀐 경우는 대체 이 책을 내가 전에 읽었었나 헷갈릴 정도이다. 게다가 빌 브라이슨의 특징이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하기 떄문에 장소가 겹치는 경우 더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미국 소도시를 여행한 기록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기록, 그리고 영국에서 거주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오면서 겪은 미국 생활에 대한 세 권은 제목이 계속 헷갈린다.

 

 

여행/회고 (9/8)

 

The Palace Under the Alps and Over 200 Other Unusual, Unspoiled, and Infrequently Visited Spots in 16 European Countries (1985)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2009), 권상미 역 ISBN 89-509-2084-0
The Lost Continent: Travels in Small-Town America (1989)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2008), 권상미 역 ISBN 89-509-1361-5
Neither Here Nor There: Travels in Europe (1991)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2009), 김지현 역 ISBN 89-509-1926-5
Notes from a Small Island (1995)

 

나를 부르는 숲(2008), 홍은택 역 ISBN 89-7090-556-1
A Walk in the Woods: Rediscovering America on the Appalachian Trail (1998)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2009), 박상은 역 ISBN 89-509-1736-X (미국인의 미국적응기)
Notes from a Big Country (UK) (1998) / I'm a Stranger Here Myself (US) (1999)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이미숙 역
Down Under (UK) / In a Sunburned Country (US) (2000)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2008), 김소정 역 ISBN 89-509-1553-7
Bill Bryson's African Diary (2002)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산책(2011) /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2008), 강주헌 역 ISBN 89-92355-28-9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bolt Kid (2006)

 

 

언어/문학 (7/2)

 

The Penguin Dictionary of Troublesome Words (1984)

 

Bryson's Dictionary of Troublesome Words (2002)

 

The Mother Tongue: English and How it Got That Way (1990)

 

Journeys in English (2004) (모국어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북)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2009), 정경옥 역 ISBN 89-522-1106-5
Made in America: An Informal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 in the United States (1994)

 

빌 브라이슨의 세익스피어 순례(2009), 황의방 역, ISBN 89-7291-468-1
Shakespeare: The World as Stage (2007)

 

Bryson's Dictionary for Writers and Editors (2008)

 

 

과학/역사 (4/4)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이덕환 역 ISBN 89-7291-364-2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2003)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9), 이덕환 역
A Really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2008)

 

거인들의 생각과 힘(2010), 이덕환 역
On the Shoulders of Giants (editor - 2009)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2011), 박중서 역
At Home: A Short History of Private Life (2010) Doubleday. ISBN 978-0-385-60827-5

 

 

 

(출판된 책/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으로 구분하였으며, ISBN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은 혹시라도 나중에 또 책이 계속 판형이 나와 이름이 바뀔 경우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총 14권의 책 중 9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계속 읽다 보면 사실 그 책이 그 책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기 중 유럽을 다녀온 책은 읽으면서 계속 웃을 수 있었고 (물론 여행 정보는 전혀 얻은 것이 없었지만) 아프리카를 다녀온 책은 CARE라는 국제구호단체와의 동행이었으며, 호주를 다녀온 책은 단 한 권으로 호주의 '거의 모든' 것을 훑어 본 느낌이었다. 애팔래치아 기행을 다룬 숲 기행도 재기 발랄했고, 셰익스피어를 다룬 책은 내가 읽은 위인을 다룬 모든 책 중 열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거의 모든 과학에 대한 책도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었고, 어린 시절을 다루었던 썬더볼트 키드의 생애도,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돌아온 미국 생활에 대한 좌충우돌 적응기도 다 재미있었다. 저렇게 묶으면 단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어서 간단해 보이지만, 빌 브라이슨의 모든 책들은 각각 개성이 넘친다. 어떤 책에서는 날카로운 면이 부각되고, 어떤 책에서는 책 읽는 내내 따뜻하다.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세계사나 세계지리에 대한 공부를 좋은 선생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은 느낌이고, 어떤 책은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처럼 가볍게 웃으면서 읽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거기에 딱 맞는 방식으로 책을 쓸 수 있다니. 그는 진정한 글쟁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빌 브라이슨은 청년기에 영국으로 건너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여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그 직장은 계속 바뀔지언정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 동안 여행을 다니고 취재를 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리고나서 다시 미국으로 오기로 결정하고, 그 전에 영국을 한 번 일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이다.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영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기도 하고, 아내를 처음 만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추억에 젖기도 하고, 또 최근과 비교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떤 점은 여전한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여전히 재치 넘치는 글들은 여전하지만,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는 온화하다. 다 읽고 나면 사실 강하게 인상에 남는 문장은 없지만, 예전에 유럽 베낭 여행을 갔을 때 런던과 케임브리지만 찍고 왔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영국의 다른 면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꼭 호주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관광객으로서 호주를 보고 남긴 기록과 수십년간 살아온 나라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두 나라의 특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글은 정말 재미있고, 영국의 수많은 곳에 대한 설명도 유용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장하고 싶다거나 두세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다만, 빌 브라이슨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 면에서 재미있었다.

 

 

1. 다시 영국, 그리고 23년 전 _ 도버를 바라보며
나는 영국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20년간 나의 보금자리였던 이 친절한 녹색 섬에 대한 고별여행이랄까 뭐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거다.

2. 첫 기억 속으로 출발하다 _ 칼레에서 도버로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 어서 다시 도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년 전 하룻밤을 지새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내고는 은밀히 기쁨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3. 런던 찬양 _ 런던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런던이야말로 파리보다 더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며, 뉴욕 다음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4. 그때는 잘 몰랐던 도시, 와핑 _ 런던 옆 와핑
“상태 나쁜 게 겨우 이 정도란 말이지? 어디 그럼 내가 솜씨 한번 발휘해 최악이란 어떤 건지 보여주지!”

5. 왕의 나라 영국 _ 런던에서 윈저로
본능에 가까운 타인을 배려하는 이런 태도는 늘 감탄스럽다. 특히 영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상이어서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은 더욱 감동스럽다.

6. 가족을 만들다 _ 버지니아 워터, 그리고 에그햄
‘저 사람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이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우리는 근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7. 단점을 중얼거리며 산책하다 _ 본머스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계속 이어지는 겨울비를 생각해봐. BBC방송국에서 <캐그니와 레이시>라는 드라마만 줄곧 틀어대는 걸 봐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봐. 생각해보라고….”

8. 모든 것이 너무 많은 나라 _ 솔즈베리
장담하건데 스톤헨지의 배후인물은 아마도 사람들을 부추겨 일을 시키는 데 타고난 재주를 지닌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9. 지도만 들고 간다는 것_ 도싯 해안도로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가장 어려운 대목을 해냈다. 이제 나는 문명세계로 돌아간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10. 걷기 여행 _ 룰워스, 그리고 웨이머스를 지나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성공적인 도보여행의 비결은 언제 멈춰야만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11.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_ 엑서터, 그리고 반스테이플
다른 방에 있으면서도 방금 만든 케이크의 크림을 한 번 찍어먹어 보려는 걸 귀신같이 알아내는 여자들의 재주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거란 말인가?

12. 비오는 날의 날벼락 _ 웨스턴 슈퍼메어에서 몬머스, 그리고 시몬스 야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영국에서라면 방문객의 흔적은 단연 낙서나 먹다 버린 맥주캔이 뒹굴어 다니는 것이다.

13.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_ 옥스퍼드
“1264년 이후로 이 고장에는 근사한 건물들만 들어서왔어. 그러니 이번에는 기분전환 삼아 못난이 건물도 세워보지, 뭐.”

 

영국인이거나 나보다 연장자이거나 아니면 이 둘 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스키플 음악(블루스나 포크송 따위에서 나온 1920년대의 재즈음악), 구멍이 하나만 있는 소금그릇, 마마이트(공업용 윤활유처러머 생긴 먹을 수 있는 이스트 농축액), '샐리'라는 노래를 부른 그레이시 필즈, 만능 연예인 조지 폼비, 바자회 등에서 싸게 파는 잡동사니, 직접 자른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진짜 우유가 들어간 홍차, 삶은 양배추, 집안 전기 배선 공사야말로 재미있는 대화 소재라는 믿음, 증기기관차, 가스레인지 아래 달린 그릴에서 만든 토스트, 배우자와 벽지를 고르러가는 일이 즐거운 외출이라는 생각,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로 만든 술, 난방을 하지 않은 침실과 욕실, 해변에서 바람막이를 치는 일(바람막이를 치려면 뭐하러 해변에는 나가는지!), 그리고 크리켓 경기. 그외에도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뭔가 한두 개가 더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따분하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저런 것들의 진정한 가치와 매력을 아직은 내가 알지 못한 다는 말을 하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위의 목록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옥스퍼드 대학교를 꼽을 수 있다.

나는 그 대학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품고 있으며 800여 년의 쉼 없는 지식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그 대학이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영국인들은 라틴어로 빈정거리기를 좋아하는 식민지 통치자를 육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곳에서 후기칸트학파의 미학이나 라이프니츠와클라크의 논쟁 같은 심도 깊은 학문 활동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대단히 인상 깊은 일이군.하지만 실업자가 300만에 육박하고 가장 최근 발명분이 제트기엔진이라는 나라에서 조금 한가한 소리 아닌가?' 바로 전날 나이트뉴스에서 아나운서가 기쁜 낯으로 말하기를 삼성에서 타인사이드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 밝혔다. 그 공장으로 인해 800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그 800명의 사람들은 기꺼이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30분간 태권도를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사상을 고수하는 속물이라 손가락질 받더라도 내가 볼 때는, 그러니까 영국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떄는, 영국의 산업기술이 너무 뒤떨어지다보니 미래의 경제안보마저 한국기업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서 2010년 즈음에는 식탁에 뭔가 먹을 거리를 올려줄 학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인가 <대학의 도전>이라는 특별방송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는 <대학 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미국 대학생들과 영국 대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영국팀이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이겨서 전체 프로그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영국 학생들은 거의 기계적으로 정답을 연속해서 맞혔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인상을 찡그린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생각은 이랬다.(그 눈을 보면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윤회가 무슨 말이야?' 최종 점수는 12000대 2정도였다. 이런 점수는 영국인들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뭔가를 너무나 잘해 도드라지는 걸 내심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생각해야 할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건데 당시 게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을 추적해서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본다면, 미국 대학생들은 모두 채권거래나 기업운영으로 연간 85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반면 영국 대학생들은 폴란드 남서지역 슐레지엔에서 구멍 난 스웨터를 입고 16세기 합창곡의 음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옥스퍼드 대학교는 중세 이후로 발군의 재능을 뽐내어 왔으니, '(소니 영국법인의 하나인)옥스퍼드 대학교 주식회사'가 되어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꼭 집어 해주고 싶은 말은 대학이 보다 상업적인 사고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3억 4천만 파운드의 기금을 5년 안에 조성하자는 운동이 성공리에 완수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깊은 인상을 주는 일이었다. 적어도 기업의 후원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 안내서를 찬찬히 훑어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완전히 새로워진 슈레이드 위트 시리얼(무설탕, 무가염)과 함께하는 동양 철학 강좌, 매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와이페이모어의 해리 카펫이 후원하는 경영전문대학원.

요 근래 이런 식의 기업 후원이 영국인들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고, 이제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캐논배 축구대회' '코카콜라컵 축구대회' '에너자이저 경주대회' '앰버시 담배 후원 세계스누커 당구 챔피언십' 같은 대회도 열린다. 머지않아 '켈로그 후원 왕세자비' '미쓰비시가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리젠트 공원' '삼성 시티(예전에는 뉴캐슬이라 불렸다)'도 보게 될 것 같다. 

14.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 _ 코츠월드 구릉지, 그리고 솔트웨이
영국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져 마치 공원 같은 전원 풍경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분통이 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15. 영국인의 천재적 작명센스 _ 밀턴케이스에서 런던, 캠브리지
매우 매력적인 여운이 남는 그곳의 이름은 ‘악마의 제방’이었다. 한 번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장소였지만, 왠지 뭔가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16. ‘귀족탐구’ 여행을 떠나다_ 렛퍼드와 워크솝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17. 이것은 시네마라다_ 링컨과 브레드포드
브레드포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브레드포드와 비교해보면 세상에 안 좋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18. 집에 들르다 _ 솔테어와 빙리, 해러게이트
산맥 너머에는 우리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저리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정했던 여행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면 부정행위를 한 듯한 느낌이 든다.

19. 판타지 속으로 _ 맨체스터에서 위건
이 책에서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딱 이루어놓은 셈이다. 영국 전체를 돌며 유일하게 본 것인데 그게 찢어지게 가난한 위건이라는 점도 기뻤다.

20. 과음의 규칙_ 리버풀에서 랜디드노까지
가보니 쓰레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이스크림 포장지, 담뱃값, 비닐봉지로 다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변 자연환경을 꾸미고 있었다.

21. 훌륭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 법_ 랜디드노, 블라이나이 페스티니오그, 포스마독
내가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십중팔구 담배를 입에 물고 걸걸한 기침을 해대서 가래침을 좀 뱉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탐욕스러운 남자가 주인일 게 분명하다.

22. 영국에서 기차를 탄다는 것 _ 포스마독에서 루드로우, 다시 맨체스터
포스마독을 출발한 지 무려 14시간 만에 블랙풀에 도착했다. 지치고 배고프고 수염도 다듬지 못했다. 고통과 비탄에 잠긴 상태로 각별히 가보고 싶지도 않았던 곳에 와버렸다.

23. 해변이 하나도 없는 리조트 _ 블랙풀, 모어캠블
넓은 나라에서 살다 영국에 오면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이곳에서는 문밖으로 나가면 좀처럼 혼자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24. 작은 나라 영국 _ 보우니스, 윈더미어 호수
지형이 작은 게 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섬나라에서 조촐하고 아담하면서 동시에 근사하고 멋진 모습을 간직해서 좋다는 것이다.

25. 탄광촌의 기적 _ 더럼과 애싱턴
한 때 애싱턴에는 1년 내내 강연회와 콘서트가 열렸고, 특강 형식의 철학회, 오페라회, 연극회 등등 비스무레한 모임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동시에 그게 영국의 매력이었다. 친근하고 아담한 나라지만 흥미로운 사건사고를 잔뜩 품고 있는 나라였다. 이점에 대해 늘 감탄하고 놀라워했다. 옥스퍼드에서 불과 몇 백 야드 떨어진 장소에는 크리스토퍼 랜의 집이 있고 핼리가 혜성을 발견했고 보일이 자신의 법칙을 처음으로 생각한 건물이 있으며, 로저 배니스터가 마의 4분이라던 1마일(약 1.6km) 코스를 세계 최초로 깬 거리가 있고 루이스 캐럴이 엘리스 아가씨와 산책을 했던 초원이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자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랬다. 윈저의 스노우힐에 서서 윈저성, 이튼의 운동장, 그레이가 그 유명한 《엘레지》를 썼던 교회경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이 초연되었던 장소를 한눈에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수세기밖에 안된 짧은 기간에 걸쳐 부지런히 이뤄낸 풍부한 업적의 결과를 한가득 품고 있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26. 스코틀랜드와 사랑에 빠지다 _ 애든버러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참기 힘든 곳이 될지! 스코틀랜드 인들이여 고맙다. 그리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시라.

27. 어딜 가나 그곳은 영국이다_ 애버딘을 거쳐 인버네스로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28. 북단을 가다 _ 인버네스, 서소, 존 오그로츠
집에서 멀어져 장기간 여행을 해왔던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와버렸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었다. 혼잣말로 대답도 못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대고 있었다.

29.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다 _ 글래스고
이게 바로 글래스고다. 근래에 들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련되게 변했지만, 그 한쪽 끝에는 늘 공갈과 협박이 남아 있다.

30.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_ 집으로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던 나쁘던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내리막길을 반절쯤 갔을 때 아내에게 목초지 입구에 차를 세우게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전경이 거기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서는 맬햄데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녹음이 우거진 아늑하고 포근한 마을이 당당한 구릉지 아래 자리 잡고 있다. 고지식한 자연석 담벼락이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인근의 마을 세 개도 다 보이고 작지만 아름다운 교실 두 개짜리 학교도 보이고 낡은 교회도 보였다.(그 교회는 1490년에 지어졌는데 그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출항하기 2년 전의 일이다. 나는 우리 집에 찾아온 미국인들에게 언제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다들 매우 인상 깊은 일이라 좋아들 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선술집도 보였다. 그 한가운데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집 하나가 있었다. 나의 조국 보다 훨씬 더 오래된 우리 집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작은 나라에는 이곳 못지않은 장소가 너무도 많다.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든 나쁘든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래된 교회도, 시골길도, "불평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죄송한데요"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내가 모르고 팔꿈치로 툭 쳤는데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도, 병우유도, 토스트에 들어간 콩도, 6월에 건초를 만드는 일도, 바닷가 부두도, 왕립지도제작원에서 만든 지도도, 차와 핫케이크도, 여름 소나기도, 안개 자욱한 겨울날도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모두 사랑했다.

영국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장소다. 물론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도 조금은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어떤 나라가 투팅 비(방귀 뀌는 벌)와 팔레이 월롭(팔레이를 흠씬 두들겨 패다) 같은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겠는가? 크리켓 같은 스포츠를 고안해 낸 나라가 이곳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입헌군주제 방식의 정부조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문헌법은 없는 데가 또 있을까? 사립학교를 공립학교라 부르고, 판사들의 머리에 마대자루 같은 걸 올려놓고도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상원의원의 최고 책임자를 양모자루라고 불리는 것 위에 앉히고, 하디라는 이름의 동료에게 키스를 받는 것이 최후의 소원이었던 전쟁 영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하디, 제발 입술에다 해줘. 혓바닥은 살짝만 집어넣고.") 이 나라가 아니었다면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가 납작한 중절모,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윈저 대공원, 솔즈베리 성당, 2층 버스,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을 어디서 만났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근사한 전망을 어디서 또 구경할 수 있을까? 단연코 이런 곳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이 한참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에도 말했고 앞으로도 다시 말할 이야기지만 나는 영국이 좋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드디어 나는 목초지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자동차로 올라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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