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은 시상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써야 한다. 소설가 야마다 도모히코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집필 활동을 했다. 그 역시 기계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휴가를 이용하지 않았다. 휴가 기간 중 여유롭게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쉴 대는 푹 쉬고 일상 중에 집필을 위한 시간을 짜냈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대체로 다작을 했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 감흥이 생겨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감흥이 생긴다.

 

이 부분을 보면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기다리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 일하러 간다.' 처음 그 구절을 읽었을 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조금씩 이해가 되어가는 중이다. 나이가 더 들면, 완전히 이해되어 버릴 수도 있겠지. 그것 때문에 가슴을 칠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이 나이에, 영감 나부랭이는 부르짖지도 갈구하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을 나와 작은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내가 컨설팅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회사다. 그 회사는 경영 관련 정보가 많았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MBA 프로그램이 있었고, 여러 교육 과정도 있었다. 경영 관련 책과 강의 테이프가 엄청 많앗다. 각종 리포트와 제안서도 제법 있었다. 경험 부족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었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영 관련 책과 리포트를 보는 데 사용했다. 틈틈이 전문가를 따라다니며 프로젝트 수주 방법, 프리젠테이션 방법도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강연도 열심히 들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렸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그곳에서 2년쯤 근무하면서 나는 미친 듯이 관련 정보를 흡수했다. 내 자신이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1년쯤 지나 그곳에서 운영하는 MBA 과정을 듣고 싶어 알아봤더니 별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거의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컨설턴트들은 아무도 책이나 강연 테이프를 활용하지 않았다. MBA 과정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다들 경영학과를 나와 컨설팅 관련 일을 몇 년 하다 보니 호기심이 사라지고 그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것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비하,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라고. 특정 분야에서 몇 년 간 활동하다 보면 이제 이쪽에 대해서는 내가 알만큼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의 경우, 자기 분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 때문에 그 어떤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진정한 고수는, 완전히 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완전히 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기존에 내가 가진 것을 전부 부정해버리거나,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몽땅 구시대적인 생각으로 치부해버릴 위험이 있기 떄문이다. 업데이트. 마치 어플리케이션을 업데이트 하는 것처럼, 일부는 보존하고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채워가는,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마치 어린 시절 읽은 명심보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수'라는 제목에 쓰인 단어도 그렇고, '절제', '명상' 등의 단어가 여러 번 강조되는 것도 그렇다. 세세한 상황 설정을 하지 않고 큰 틀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최근에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때도 있는데, '스스로 광고하지 말아라'와 같은 부분은, 이미 자기 PR도 하나의 능력으로 자리잡은 시대에서 다소 거리가 동떨어진 말이 아닐까 의아하기도 하다. 미국산 자기계발서보다는, 동양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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