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7 (완전판) - 검찰 측의 증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강표.양현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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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Short Story Collection: Agatha Christie Omnibus 1 이다. Short Story Collection: Agatha Christie Omnibus 2는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6권이고 이 책은 77권인데 왜 1, 2가 뒤바뀌어 나왔는지 의문이었다.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계속 궁금한 점은, 이 전집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가 실제로 소설을 출간한 순서도 아니고, 동일한 탐정끼리 묶은 것도 아니다. 좋은 소설부터 먼저 출간했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다 불현듯 든 생각이, 번역이 되는 대로 책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수십 권의 책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번역가가 여러 작품씩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중 먼저 번역이 되어 나오는 순서대로 책을 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76, 77권의 순서가 바뀌었는지도 알만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과 계약을 할 때, Short Story Collection: Agatha Christie Omnibus 1, 2로 두 권을 나누면서 각각에 들어가는 소설을 명시하여 계약하였을 텐데, 2가 1보다 먼저 번역이 되었겠지.

 

어차피 국내에서의 제목은 76권이 <리스터데일 미스터리>, 77권이 <검찰 측의 증인>으로, 각 소설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따왔기 때문에 순서가 뒤집혀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국내에 번역된 순서가 더 낫기도 하다. 77권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스터데일 미스터리>는 제목에 들어간 '미스터리'가 실린 모든 소설들을 관통하는 핵심단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로맨스가 되었건 스릴러가 되었건 범죄물이 되었건 어드벤처가 되었건 간에, 그 밑바닥에는 '미스터리'가 언제나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 <검찰 측의 증인>은, 대부분의 소설이 마치 심령 소설 같아서, 읽다 보면 정말 이 소설들을 크리스티가 쓴 게 맞아?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연구하는 작가로는 좀 믿기 어려운 부분인데, 셜록 홈즈를 쓴 아서코난도일도 말년에 심령술에 빠졌다고 한다. 마지막 세 작품을 제외하면 사실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지막 세 작품이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작품 2편, 할리 퀸이 등장하는 작품 1편인데, 각각 <파커 파인 사건집>과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에 수록되어 출판되었으면 더 나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사냥개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요. 도련님, 벼랑 위에 있는 로즈 선생의 작은 집을 기억하지요? 지난번에 산사태가 나서 집이 쓸려 내려갔어요. 그 바람에 의사 선생과 가엾은 마리 안젤리크 수녀가 죽었어요. 해변에 떨어진 잔해가 정말로 끔찍하대요. 엄청나게 큰 덩어리로 쌓여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사냥개처럼 보여요......."

내 손에서 편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중략)

물론 이건 모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의사가 마리 안젤리크 수녀의 환각을 믿은 것은 단지 그 자신의 정신도 좀 불안정하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한때 인간이 살았으며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달성하고 바다 밑에 가라앉아 버린 대륙에 대한 꿈을 꿀 때가 있다.......

아니면 그런 가능성을 믿는(수녀가 실은 미래를 보았다는 가능성? 원형 도시 전설이 존재했다는 가능성?) 사람의 말처럼 마리 안젤리크 수녀는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만, 이 원형의 도시라는 것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바보 같으니! 당연히 그 모든 것은 그저 환각일 뿐이다!

붉은 신호

"한 가지 예를 들어 주지.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일이었네. 휴전 직후였는데 어느 날 저녁에 내 천막에 들어갔을 때 강렬한 예감이 들었어. 위험하다! 주의해라! 하지만 무엇이 원인인지 전혀 모르겠는 거야. 그래 괜히 야단법석을 떨며 캠프 주위를 둘러보거나 적성 아랍인들에 대한 방어 태세를 점검하거나 했지. 그러고 나서야 다시 내 천막으로 돌아갔는데,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처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들더군. 위험하다! 결국 나는 담요를 들고 나와서 밖에서 둘둘 말고 잠을 잤다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텐트로 들어갔을 때,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건 내가 평소에 잠을 자던 침대에 꽂혀 있는 칼이었네. 거의 50센티미터쯤이나 되더군. 나는 곧 범인을 찾아냈지. 아랍인 하인 중 하나가 범인이엇어. 아들이 스파이 혐의로 총살된 사람이었지. 앨링턴 삼촌, 제가 붉은 시호의 예로 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략)

더못은 입을 다물었다. "네, 오늘 밤까지는 그랬습니다."라는 말이 거의 입에서 튀어나올 뻔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깨닫기도 전에 생각이 말로 나와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붉은 신호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위험하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네 번째 남자

"그 처녀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지요.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그녀를 만나러 갔으니까요. 그녀는 네 개나 되는 전혀 다른 인격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들은 펠리시 1, 펠리시 2, 펠리시 3 등으로 불렸지요."

(중략)

"네. 그리고 아네트 라벨도요. 아네트 라벨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신 것 같군요? 그런데 펠리시 볼트의 이야기는 아네트 라벨의 이야기입니다.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당신들이 아네트 라벨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펠리시 볼트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겁니다."

(중략)

'정말 난 무서워. 무서워. 그 애 목소리가 들려. 귀에서 들리는 게 아냐. 아냐,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야. 여기, 머리에서.......'

그러면서 이마를 툭툭 두드렸습니다.

'그 애는 나를 몰아낼 거야. 완전히 몰아낼 거야.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어떻게 될까?'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울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겁에 질린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야비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매우 교활한 웃음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에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무슈 라울,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내 손아귀 힘은 아주 세거든. 내 손힘은 아주 세.'

전에는 특히 그녀의 손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손을 살펴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죠. 뭉뚝하고 거친 손가락은 펠리시가 말했던 것처럼 굉장히 힘이 세 보였습니다....... 욕지기가 갑자기 치밀어 올랐는데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지는 못하겠네요. 틀림없이 그런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을 겁니다.......

(중략)

"저쪽에 계신 무슈 르 독퇴르(의사 선생님)가 이게......."

그의 손이 배를 세게 치는 바람에 참사회원은 주춤했다.

"단지 집이라고 했잖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당신 집에 강도가 든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총을 쏘지 않겠습니까?"


집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수술을 받지 말라고 경고했답니다. 간호사였다더군요. 그게 당신이었다고 그는 생각했지요. 사실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게는 간호사로 일하는 사촌이 한 명 있어요. 어둑한 불빛에서 보면 저와 좀 비슷해 보여요. 아마 그녀였을 거예요."

그녀는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누구든 상관있나요?"

(중략)

"재능을 갖고 계실 줄 알았어요. 저긴 옛날에 태양 숭배자들이 산 제물을 바치던 곳이에요. 그 얘기를 듣기 전부터 전 알 수 있었죠. 그들의 느낌을 정확히 알 때도 있어요. 그곳에 제 자신이 있었던 것처럼요....... 여기 황무지에는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주는 뭔가가 있어요....... 물론 제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저는 퍼거슨 집안사람이니까요. 저희 집안은 대대로 예지력을 가지고 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영매셨지요. 성함이 크리스팅이신데 상당히 이름을 날리셨지요."

(중략)

"설마? 땅거미가 지고 나면 황무지에 나타난다는 무시무시한 것들 말인가요? 흰 옷을 입은 여자나 악마의 대장장이, 선원과 집시......."

"뭐라고요? 선원과 집시요?"

"그렇대요. 제가 젊었을 땐 유명한 전설이었죠. 아주 먼 옛날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미 한참 전부터 그 둘의 유령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나타나지 않는다고요? 혹시 그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요......."

"아이고! 맥팔레인 씨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계요! 그런게 그 젊은 여자 분은......."

"어떤 젊은 여자요?"

"당신을 만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응접실에 계신데, 성함이 로즈 양이라고 그러셨어요."

"아!"

레이첼! 원근이 바뀌면서 그는 기묘한 수축감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는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느라 레이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이 세상에만 속하는 여인이기 떄문이다....... 그 기묘한 원근의 변화가 다시 3차원만의 세계로 그를 돌려놓은 것이다.

그는 응접실 문을 열었다. 레이첼....... 정직한 갈색 눈을 가진 레이첼이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끓어오르는 기쁨에 찬 따뜻한 현실이 그를 어루만졌다. 그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인간히 확신할 수 있는 인생은 하나밖에 없어! 바로 이것!'

"레이첼!"

그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맞췄다.


등불

"그런데....... 저어....... 그 아이는 결국 굶어 죽었답니다."

그는 막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말을 전하는 것과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그럼 이 집에 나타나는 게 그 아이의 유령인가요?"

랭커스터 부인이 물었다.

래디시 씨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다급히 말했다.

"실제로 아무것도 밝혀진 건 없어요. 뭐가 보이지도 않고요. 아무것도 없어요. 단지 사람들이,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소리가 들린다고,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요."

랭커스터 부인은 현관 쪽으로 가며 말했다.

"집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 임대료로 이보다 더 좋은 집을 얻을 수는 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고서 연락드릴게요."

(중략)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발이 타닥타닥, 타닥타닥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서 문을 지나 함께 밖으로 나갔다.

랭커스터 부인은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가 둘이었어요, 둘이었다고요!"

엄습하는 공포에 납빛이 된 얼굴로 그녀는 방구석에 있는 어린이용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가 조용히 딸을 막아서며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그는 간단히 말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라디오

당연히 외숙모는 유언장을 태우지 않았다! 당연히.......

그의 생각이 갑자기 끊겼다. 눈앞에 떠오르는 이 영상은 무엇일까?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노부인....... 뭔가가 미끄러져 내리고....... 종이 한 장이....... 새빨갛게 단 석탄 위로 떨어진다.......

찰스의 얼굴이 납빛이 되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묻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만약에 유언장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하터 부인이 앞서 작성하신 유언장이 남아 있습니다. 1920년 9월에요. 그것에 따르면 하터 부인은 현재 미리엄 로빈슨이 된 질녀 미리엄 하터 부인에게 전 재산을 남기셨습니다."

이 늙은 바보가 뭐라고 말하는 거야? 미리엄이라고? 근본도 모를 남편에 찡얼대는 애새끼들 넷이 딸린 미리엄? 솜씨 좋게 처리한 일들이 다 미리엄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의 팔꿈치께에서 전화벨이 날카롭게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의사의 쾌활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지웨이 씨?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부검이 막 끝났어요. 사인은 제가 짐작했던 대로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생전에 부인의 심장이 훨씬 심각한 상태였더군요. 최대한 조심했어도 기껏해야 두 달 이상을 넘기시지 못했을 겁니다. 궁금해 하실 것도 같고, 또 위로가 좀 되실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 드렸어요."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찰스가 말했다.

의사가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부인은 두 달 이상 사시지 못했을 거라고요. 그것도 만사가 순조로울 경우에 말입니다, 리지웨이 씨......."

하지만 찰스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변호사의 목소리를 의식했다.

"이봐요, 리지웨이 씨, 어디 아픈가요?"

빌어먹을!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변호사. 불쾌하기 짝이 없는 멍청한 메넬. 그의 앞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오로지 교도소 담벼락의 그림자뿐.......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누군가 틀림없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을 것이다.


검찰 측의 증인

"변호사님, 저는 남편을 구해야 했어요.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증언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거예요.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전 군중 심리에 대해 좀 알거든요. 제가 한 증언이 위증이라는 걸 인정해서 법률상으로 아주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면 당장 피고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대세가 굳어지게 되는 거죠."

"그럼 그 편지 다발은?"

"단 한 장만, 결정적인 편지 한 장만 있으면, 그걸 뭐라고 하죠, 혹시 조작극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답니다."

"그런 그 맥스라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변호사님."

"저는 우리가....... 에에....... 정상적인 항소 절차를 통해서도 남편 분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메이헌 씨는 기분이 상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

"저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어요. 잘 아시다시피, 선생님은 남편이 무죄라고 생각하셨잖아요."

"그럼 당신은 알고 있었군요? 그렇군요."

"메이헌 씨,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유죄라는 것을!"

로메인이 말했다.


푸른색 항아리의 비밀

그의 삼촌은 발작을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는 간신히 소리쳤다.

"그 항아리. 그 푸른색 항아리! 그게 어떻게 됐다고?"

잭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보다가 그 뒤 삼촌의 입에서 홍수처럼 퍼부어진 말들이 마음에 새겨지자 사태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삼촌은 다음과 같은 말을 단숨에 쏟아냈다.

"명나라 자기로, 하나밖에 없는 진기한 물건이고, 내 수집품 중 최고이며, 최소 1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데다, 미국의 백만장자 호겐하이머가 팔라고 제안까지 한, 세상에 다시없는 일품인데, 망할 놈, 내 청자를 어떻게 한 거냐?"

잭은 식당에서 달려 나갔다. 그는 라빙턴을 꼭 찾아야 했다. 사무실의 젊은 아가씨는 냉담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라빙턴 박사님은 어젯밤 늦게 떠나셨어요. 자동차로요. 손님께 편지를 남기셨죠."

잭은 편지 겉봉을 찢어서 열었다. 간결하게 요점만이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젊은이,

초자연적인 현상의 시대가 끝났을까? 아직은 아니겠지. 특히 새로운 과학 용어로 속임수를 썼을 때는 말일세. 펠리스와 병자 아버지, 그리고 내가 안부를 전하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해서 우리는 12시간 먼저 떠나네.

언제나 자네의 친구인

영혼의 의사,

앰브로즈 라빙턴


날개가 부르는 소리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아무튼 난 견딜 수가 없어.......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이네......."

다시 버나드 셀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나라면 그 불구의 남자를 만나보겠네."

그가 충고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운하라니....... 놀랍군."

(중략)

그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청년이 균혀을 잃고 선로에 떨어진 것이다.......

수많은 생각이 해머의 머리에 동시에 떠올랐다. 버스에 치어서 축 늘어진 살덩이를 보았던 일과 "댁 탓이 아니야, 선생. 댁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쉰 목소리가 하던 말. 그리고 이 생명은 구할 수 있으며, 만약 구한다면 그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고 전동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전광석화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묘하게도 그는 침착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생각을 할 수 있엇다.

(중략)

해머는 재빨리 청년을 양팔로 들어올렸다. 자연스런 의협심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떨고 있는 육체는 희생을 요구하는 다른 세상의 초자연적 존재의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해서 그는 자신이 뛰어내린 플랫폼 위로 청년을 던졌다.......

그때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졌다. 물질세계는 더 이상 그의 자유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속박에서 해방된 것이다. 잠시 동안 목양신의 기쁨에 찬 피리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점점 더 가까이 더 크게 다른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세차게 몰려오는 반가운 무수한 날개짓 소리가 다가와서...... 그를 에워쌌다.......


마지막 강신술

"내가 왜 영매를 걱정해야 되지? 난 내 아이를 원해."

(중략)

"이리 오렴, 내 딸."

마담 엑스가 큰 소리로 불렀다.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아이를 팔에 안았다. 커튼 뒤에서 몹시 괴로워하는 비명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시몬느! 시몬느!"

라울이 부르짖었다.

그는 마담 엑스가 그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서 자물쇠를 열고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것을 어렴풋이 인식했다.

커튼 뒤에는 아직도 소름끼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라울은 그런 비명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명 소리를 꼴록거리는 섬뜩한 소리로 이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는 몸이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중략)

"이런! 피, 온통 피로 물들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엘리스가 떨리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아씨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무슈, 무슨 일이 있엇던 거예요? 왜 아씨 몸이 오그라든 거죠? 어째서 아씨 키가 절반으로 줄어든 거예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SOS

"맥달란 양, 당신은 과거를 믿지 않지요. 하지만 나는 믿어요. 나는 이 집의 분위기를 믿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어쩌면 그가 꾸민 계획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앞으로 샤를로트 양의 안전을 위해서 이 두 개의 시험관을 보관해 둘 겁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SOS를 쓴 손에 감사하는 뜻으로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폴렌사 만의 사건

"배웅하러 나왔어요, 파커 파인 씨. 베티가 인사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베티와 저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정말 근사하게 해결하셨어요. 베티와 어머니도 사이가 좋아졌고요. 어머니를 속인 건 죄송스런 일이지만 워낙 까다로우셨잖아요. 아무튼 이제는 다 해결됐어요. 눈치채지 못하게 제가 이삼 일 더 괴로워하는 척만 하면 끝이죠.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베티도 저도."

"당신들 모두 행복하길 빌게요."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대다가 바질은 짐짓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저, 드 사라 양은 어디 있나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파커 파인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힐긋 보았다.

"미안하지만 드 사라 양은 자고 있어요."

"아, 아쉽네요. 그래도 런던에서 이따금 만날 수 있겠지요."

"실은 내 일 때문에 드 사라 양은 곧장 미국으로 갈 거라서."

"그렇군요. 그럼, 전 그만 가 봐야겠네요......."

바질은 멍한 어조로 말했다. 파커 파인은 미소 지었다. 선시로 가는 길에 그는 마들렌의 선실 문을 두드렸다.

"기분은 어때? 괜찮은 거야? 우리의 젊은 친구가 다녀갔어. 예외 없이 가벼운 마들렌 병에 걸렸더군. 그 친구는 하루 이틀이면 회복할 게야. 자네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재주가 있단 말이야." 


레가타 미스터리

"아니, 맞습니다. 그 일당의 세 번째 멤버가 로열 조지에서 임시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어요. 휴일에는 임시 웨이터들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요. 어쩌면 그가 정식 웨이터를 매수해서 쉬게 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무대가 준비된 겁니다. 이제 이브가 포인츠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내기를 거는 거예요. 그는 전날 밤에 했던 대로 다이아몬드를 돌ㄹ립니다. 웨이터들이 방에 들어오자 레던은 그들이 나갈 때까지 보석을 그대로 들고 있어요. 하지만 웨이터들이 나갈 때, 다이아본드도 함께 사라진 거예요. 피에트로가 들고 나간 접시 밑바닥에 약간의 추잉검으로 교묘하게 붙여서 말이에요. 그처럼 간단한 겁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제가 보석을 봤는 걸요."

"아니, 아니에요. 당신은 얼핏 보면 속을 만한 모조품을 본 거지요. 당신 말대로 스타인은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이브는 그것을 떨어뜨리고서 유리잔도 떨어뜨린 뒤에 보석과 유리잔을 함께 힘껏 밟아서 깨뜨려버린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적적으로 다이아몬드가 사라져 버린 거지요. 이제 이브와 레던은 누구라도 만족할 만큼 보석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겁니다."


할리퀸 티세트

마지막으로 퀸을 본 위후로 얼마나 지났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퀸이 '연인들의 길'이라고 불리는 오솔길을 따라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본 바로 그날이었지? 그는 늘 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가능하다면 일 년에 두 번이라도. 하지만 바람뿐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여성이 유전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도 여성을 통해서 유전될 수는 있지. 릴리는 색맹이 아니었지만 릴리의 아들은 어쩌면 색맹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하지만 새터스웨이트, 티머시는 릴리의 아들이 아니잔항요. 롤리가 릴리의 아들이지요. 두 아이가 좀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죠. 동갑에다 머리 색깔도 같고. 하지만...... 뭐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요."

"그랬지, 난 기억하지 못했네. 하지만 이제는 알겠군. 닮은 점이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롤런드는 베릴의 아들일세. 사이몬이 재혼했을 당시에 저 애들은 둘 다 갓난아이였지 않나. 한 부인이 애기 둘을 보살피는 건 부담되는 일은 아닐 거네. 특히 두 아이 모두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이네. 티머시가 릴리의 아들이고 롤런드는 베릴의 아들이네. 베릴과 크리스토퍼 이든의 아들이란 말이네. 그러니 그가 색맹이어야 할 이유가 없엇던거지. 정말이네. 난 확신하네!"

(중략)

그는 릴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할리퀸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궁금해졋다. 그는 돌아서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차탁자와 할리퀸 티세트, 그리고 탁자 너머에 앉아 있는 자신의 오랜 친구 톰 애디슨을 향해 걸어갔다. 베릴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도보톤 킹스본은 다시 안전해졋다.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작은 검정개가 쏜살같이 달려왓다. 검정개는 새터스웨이트에게 다가오서 숨을 헐떡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검정개의 목걸이에 종잇조각이 감겨 잇었다. 새터스웨이트는 몸을 구부리고 그것을 떼어냇다. 종잇조각을 반반하게 펴서 보니 다양한 색갈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적혀 잇었다.

 

축하합니다!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며.

H.Q.

 

"고맙다, 헤르메스."

새터스웨이트가 말햇다. 그는 검정개가 풀밭을 가로질러서, 그곳에 있다는 건 알지만 더 이상 자신이 볼 수 없는 두 사람을 향해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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