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2 (완전판) - 죽은 자의 어리석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도 하지요. 사람들이 건물을 세우는 장소 좀 보세요! 예를 들어 여기 이 건물요. 겨우 일 년 전에 세워졌어요. 이런 건물 양식 중에서는 아주 훌륭하고 시대와도 잘 어울려요. 하지만 왜 여기죠? 이런 물건은 드러나 보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사람들 말마따나 '높은 곳에 올려놓도록' 말이죠. 훌륭한 잔디와 수선화가 심어진 자동차 도로 따위와 함께요. 하지만 이 불쌍한 작은 녀석은 나무들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바람에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아요. 강에서 이놈을 바라보려면 나무를 스무 그루나 잘라내야 할 걸요."

"아마 마땅한 장소가 없었겠지요."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마이클 웨이먼이 코웃음을 쳤다.

"저택 옆의 풀이 무성한 강둑 꼭대기라면 자연 배경으로 완벽하죠. 하지만 안 돼요, 이 거물 양반들은 모두 똑같아요. 예술적인 감각이 없어요. '폴리'라는 것에 대한 환상만 갖고 주문을 한다니까요. 마땅한 장소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커다란 오크 나무가 골짜기로 쓰러져서 보기 싫은 흉터를 남겼습니다. 멍청한 당나귀는 이렇게 말합니다. '폴리를 세워서 이곳을 말끔하게 단장하면 되겠군.' 생각하는 게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까요. 돈 많은 도시 촌놈들 같으니. 말끔하게 단장! 집 여기저기에 빨간 제라늄과 칼레올라리아 화단은 안 뒀는지 몰라요! 그런 사람은 이런 장소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요!"

그는 잔뜩 열이 오른 것 같았다.

'이 젊은이는 조지 스터브스 경을 좋아하지 않는 게 확실하군.'

푸아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건물은 콘크리트 위에 세워져 있지만, 그 아래 흙이 물러서 건물이 가라앉습니다. 여기 온통 금이 갔어요. 이곳은 곧 위험해질 겁니다....... 전체를 헐고 집 근처 강둑 꼭대기에 다시 세우는 편이 나아요. 하지만 그 완고한 늙은 바보는 이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총 20장으로 된 소설 중 2장에 나오는 부분으로, 건축가 마이클 웨이먼과 푸아로, 올리버 부인의 대화이다. 단순히 젊은 건축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고, 돈만 많고 교양은 없는 조지 스터브스의 천박함을 암시하는 부분인 줄 알았는데, 후에 이 부분은 엄청난 복선이 된다.

 

"누군가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당신이고요?"

"아뇨, 아뇨, 나 개인이 아닙니다. 이런 시대에는 개인적이 되어선 안 되지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당신이 '이런 시대'라고 부르는 이때도 인간은 여전히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걸린 긴박한 시대에, 별 거 아닌 개인적인 병이나 취미에 몰두할 생각을 하면 안 되지요."

"그 말씀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최근 있었던 전쟁에서 심한 공습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 새끼발가락에 난 아픈 티눈에 훨씬 몰두했답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놀랐지요.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어요. '생각해 봐. 지금 당장 죽음이 닥칠 수도 있어.' 하지만 여전히 나는 티눈을 의식했어요. 사실 죽음의 공포만큼이나 티눈이 괴롭다는 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죠. 하지만 내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 삶의 소소하고 개인적인 모든 일들이 더 큰 중요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 여자가 교통사고로 쓰러져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그녀는 자기 스타킹에 줄이 간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그건 여자들이 얼마나 바보인지 보여주는 일화에 지나지 않아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일화랍니다. 개인적인 삶에 열중한 덕분에 인류는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소설은 1956년에 나온 소실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0여년이 흘렀고, 이 당시 영국은 전례없는 번영과 안정을 누렸다고 한다. 실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해마다 경제는 성장했으며, 이 때 태어난 아이들은 본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계급 이동이 어렵지 않았으며, 윈스턴 처칠과 해럴드 맥밀런 등 최고의 지도자들이 연이어 영국을 이끌면서 질서 정연하고 예의바르며 생기 있는 사회였다고 한다. 이 당시 영국 최고 지도자 해럴드 맥밀런이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으며, 그 말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이 시기는 1960년대 급진파에 대해 비판을 받는 부분도 있는데, 이민을 혐오하고 신참자를 두려워하며 지나치게 체제 순응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1950년대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커지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 폭발했을 것 같은데, 아마도 푸아로와 대화를 주고 받는 알렉 레게와 같은 젊은이들도 그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그놈의 폴리라는 물건은 진짜 바보짓(폴리)이에요. 새로 유행하는 허튼 소리죠. 옛날 폴리엇 시대에는 폴리 같은 건 절대 없었어요. 그 부인의 생각이죠. 온 지 삼 주도 안 되어서 세워졌는데, 그 부인이 조지 경에게 그 생각을 불어넣은 게 분명해요. 저 나무들 사이에 이교도 사원처럼 삐죽 서 있으니 정말 바보처럼 보이잖습니까? 스테인드 글라스를 넣고 시골풍으로 지은 훌륭한 여름집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에는 아무 불만 없어요."

푸아로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런던의 숙녀들, 그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환상을 지니고 있죠. 폴리엇 시대가 끝난 것이 슬프군요."

"우리는 그런 말 절대로 안 믿습니다, 선생. 나스에는 언제나 폴리엇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집은 조지 스터브스 경의 것이잖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직 폴리엇 사람이 한 명 남아 있어요. 폴리엇 사람들은 참 약삭빠르다니까!"

"무슨 뜻이죠?"

노인은 교활한 눈초리로 푸아로를 곁눈질했다.

"폴리엇 부인이 저 문간채에 살고 있잖습니까, 네?"

그가 물었다.

"그렇죠. 폴리엇 부인은 문간채에 살고 있고, 세상은 아주 악독하고, 그 안의 사람들도 전부 악독하지요."

푸아로가 천천히 말했다. 노인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 뭔가 알아내셨구만요."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발을 질질 끌며 멀어져 갔다.

"하지만 내가 뭘 알았다는 거지?"

푸아로는 천천히 언덕을 올라 저택으로 가면서 화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죽은 자의 어리석음>의 원제는 Dead man's folly 이다. 여기서 folly는 어리석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건축 용어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이 기가 막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세 가지 죽음 중 두 가지는 죽은 자가 어리석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며, 나머지 하나의 경우 바로 건축물 folly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어리석은 것은 푸아로일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되는데, 이미 크리스티는 초반에 복선을 깔아놓았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데다가, 제목에서도 한 번 힌트를 주었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이 정확히 들어맞는 다는 사실에 감탄과 함께,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한 허무함도 동시에 든다. 올리버 부인이 직관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어 푸아로를 이 곳으로 불러들였고, 푸아로 역시 기묘한 느낌을 받지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 지 못한 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푸아로가 모든 것을 깨닫게 된 때는 종말에 다다라서이다.

 

이 소설이 정말 놀라운 것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해티 스터브스에 대한 평가는 책 끝까지 읽고 나면 전부 사실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전형적이지만, 그 전형성을 살짝 비틀었다고 할까? 아내가 없어진 경우, 가장 의심해야 할 사람은 남편이며, 남편이 없어진 경우, 가장 의심해야 할 사람은 아내이다. 이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는 공식처럼 머릿속에 들어맞지 않지만, 결국 다 보고 나면 그 공식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살해된 사람은 어떻게든 범인의 약점을 쥐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도 그렇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랫만에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이 어떤 이유로든 불발된다면, 그것은 어느 한 쪽이 얼굴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도 그렇다. 사건은 교묘하게 뒤틀려 있고, 전형성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다다르면 놀랍게도 너무나 전형적인 사건이 된다. 매력적인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