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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파티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저는 살인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어요."
조이스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해, 조이스."
교사인 휘태커 양이 말했다.
"정말 봤어요."
조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정말 봤다고? 누군가 살인하는 광경을 진짜 봤단 말이야?"
캐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조이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조이스."
드레이크 부인이 말했다.
사다리 위에 서 있던 열일곱 살 소년이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떤 살인이었는데?"
"난 못 믿겠어."
비어트리스가 말했다.
"물론이지. 저 애는 이야기를 꾸며 내고 있어."
캐시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전 분명히 봤어요."
"그럼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니?"
캐시가 물었다.
"그때는 그게 살인인 줄 몰랐으니까. 나중에야 그게 살인이었다는 걸 알았어. 한두 달 전에 누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거든. 내가 본 건 살인이 분명해."
"이봐, 다 지어낸 이야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앤이 말했다.
"언제 있었던 일인데?"
비어트리스가 물었다.
"몇 년 전에요. 그때 난 정말 어린아이였어요."
조이스가 대답했다.
"누가 누굴 죽였는데?"
비어트리스가 물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예요. 모두 너무해요."
조이스가 말했다.
이 대화 이후 정말 조이스는 아무한테도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살해당했으니까. 당시 핼러윈 파티에 참석했던 아리아드네 올리버는 푸아로를 찾아와 이 사건에 대해 의논하고, 푸아로는 <맥긴티 부인의 죽음>에서 만났던 스펜스 총경이 퇴직 후 이 아이가 살았던 지역에서 현재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도움을 청한다.
"우들레이 커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나요?"
"제 기억으로는 없어요."
드레이크 부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범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정말 희한한 일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푸아로가 말했다.
"음, 화물차 운전사가 친구를 죽인 사건이 있었고, 여기서 24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자갈 채취장에서 작은 여자 아이의 시체가 매장된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지만 오래전 일이에요. 둘 다 야비하지만 시시한 범죄였죠. 아마 술김에 저지른 사고였을 거예요."
"열두세 살짜리 여자 아이가 목격할 만한 건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그리고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푸아로 씨, 조이스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유명 작가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거리는 거예요."
드레이크 부인은 조금 차가운 눈길로 올리버 부인을 쳐다보았다.
"사실 제가 그 파티에 간 게 잘못이었죠."
올리버 부인이 말했다.
"아니, 무슨 말씀을, 부인.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올리버 부인과 함께 그 집을 나오면서 푸아로는 한숨을 쉬었다.
"살인 사건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집이군요. 아무런 정황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낌새도, 살인자로 의심할 만한 인물도 없어요. 그냥 어쩌다 드레이크 부인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있을 것 같지만."
언뜻 보기에 살인 사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지역. 대체 이 아이는 무엇을 본 것일까? 단서가 너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죽은 아이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죽은 아이의 언니나 남동생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아이는 거짓말쟁이였어요."
매케이 부인이 말했다.
"그 아이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뜻입니까?"
엘스페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믿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잘도 꾸며 냈죠. 저는 그 아이 말을 믿은 적이 없어요."
(중략)
"그렇다면 부인은 조이스 레이놀즈가 살인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믿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럴 거예요."
매케이 부인이 대답했다.
"네 생각이 틀린 걸지도 몰라."
스펜스가 말했다.
"그래요. 누구든 틀릴 수 있어요. 그건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과 비슷해요. 그 말을 너무 자주 써먹으면 정말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결국 늑대가 소년을 잡아먹어 버리죠."
(중략)
"그 애 말대로 누군가 살해되는 광경을 본 걸까요?"
푸아로는 오빠에게서 여동생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매케이 부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려면 지난 3년 동안 이 마을에서 누군가 죽었어야 해요."
(중략)
"희생자 명단인가요?"
"그것만큼 힘들었습니다.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두죠."
푸아로가 소리 내어 읽었다.
"루엘린 스마이스 부인, 샬럿 벤필드, 재닛 화이트, 레슬리 페리어."
루엘린 스마이스 부인이 죽고 나서 모든 재산이 오페어 걸에게 넘어갔다. 열여섯 살 샬럿 벤필드의 경우 두 명의 남자 친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레슬리 페리어는 등을 찔려 죽었는데, 집주인 해리 그리핀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다고 했다. 그가 근무하던 법률 사무소는 루엘린 스마이스 부인을 담당했다. 목이 졸려 죽은 재닛 화이트는 1년 전 헤어진 남자가 가끔 협박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룸메이트 교사에게 한 적이 있으나, 그 남자의 이름이나 사는 곳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루엘린 스마이스 부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은 드레이크 부인으로, 바로 그녀의 집에서 열린 핼러윈 파티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살인자는 우선 그곳에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소? 그허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가 없으니까. 그렇죠? 범인은 손님이나 도와주는 사람들 중 한 명이거나 아니면 악의를 품고 계획적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 분명하오. 그 집 잠금잠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겠지. 그곳에 미리 와서 둘러봤을 수도 있소. 아는 사람이나 내 아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합시다. 드문 일은 아니지요. 메드체스터에서 그런 일이 있었소. 6년이나 7년쯤 지나서야 밝혀졌는데, 범인은 열세 살짜리 소년이었소.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그 소년은 아홉 살짜리 아이를 죽인 뒤 훔친 차를 몰고 12킬로미터쯤 떨어진 관목 숲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시체를 태우고 달아났소. 그러고는 스물 한두 살이 될 때까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았다고 하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오. 그건 그 사람 말이고 계속 살인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일이오. 아마 그랬을 거요. 그는 살인을 즐겼으니 말이오. 그렇다고 그가 사람을 여럿 죽였거나 전에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다만 때때로 그런 충동을 느꼈다는 거지. 정신이 이상해졌을 때 살인을 저질렀을 거요. 나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려는 거요. 어쨌든 그런 유의 사건이니까. 다행히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오. 친구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오.그중에는 지각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되레 정신감정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소. 조이스를 죽인 범인은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품행이 정상적이며 외모도 멀쩡한 사람일 거요. 어느 누구도 그가 문제 있는 사람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거요. 붉고 탐스러운 사과를 한입 베어 먹었는데 사과 속 바로 옆에서 보기에도 역겨운 벌레가 튀어나와 눈앞에서 머리를 흔들어 댄 경험이 있소? 많은 인간들이 그와 비슷하오. 예전보다 지금 더 많아졌지요."
죽은 아이를 담당했던 의사의 말이다. 미치광이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이 반응이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것 같기도 하다.
"만나서 반가워요, 푸아로 씨. 푸아로 씨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매우 친절하시군요."
푸아로가 말했다.
"제 죽마고우이자 메도우뱅크의 교장인 불스트로드 선생(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8권, 『비둘기 속의 고양이』에 등장-옮긴이)에게 들었습니다. 불스트로드 양을 기억하시겠죠?"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분이시죠."
"맞아요. 지금의 메도우뱅크를 만든 사람이지요."
에믈린 양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이 소설은 1969년에 나온 소설이다. 크리스티의 후기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앞서 나왔던 크리스티의 소설들과 계속해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비둘기 속의 고양이>는 1959년에 나온 작품으로, 정확히 이 책보다 10년 전의 일이다.
그제서야 푸아로는 비탈 너머에서 황금빛 도는 붉은 잎에 둘러싸여 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젊은이였다. 요즘은 젊은 남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통 젊은 남자에 대해서는 성적 매력이나 열정적인 매력을 말하게 되고, 그렇게 칭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 윤기 흐르는 헝클어진 머리칼, 평범한 외모와는 거리가 먼 그런 남자 말이다. 젊은 남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을 하면 마치 오래전에 사라진 어떤 특징을 칭찬하는 것처럼 미안해하는 투로 말해야 한다. 매력적인 아가씨들은 류트를 뜯는 오르페우스가 아니라, 쉰 목소리에 강렬한 눈빛, 파격적인 머리 모양을 연출한 대중가수를 원한다.
이 시기에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보면, 젊은이들의 패션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많다. 푸아로나 마플 양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데, 아마도 이미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 당시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한 생각이겠지.
"당신은 이곳을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소. 아름다움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산업에만 쫓겨 파헤쳐진 돌이라는 거친 재료에 미래의 전망과 계획을 덧입혔소. 마음의 눈으로 그려 본 것을 덧입혔고 그것을 실현할 돈도 마련했소. 축하할 일이오. 경의를 표하는 바요. 자신이 하던 일을 접을 때가 가까워 온 한 노인이 보내는 찬사이자 경의를 표하는 거요."
푸아로는 이 청년이 외모 뿐 아니라 열정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찬사를 보내는 경우는, 그것도 상대가 남자일 경우는, 이 소설에서 처음 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뭐든 잘 봅니다.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게 아이들이죠."
푸아로가 말했다.
"하지만 집에 가서 자기가 본 걸 말하겠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본 게 어떤 건지 확실하게 모를 때가 있거든요. 특히 어떤 일을 보고 어렴풋하게나마 무섭게 느껴졌을 때 더욱 그렇죠.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사고나 예기치 않은 폭력 사건을 보고 집에 가서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비밀을 정말 잘 지키거든요. 비밀로 해두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겁니다. 때로는 혼자만의 비밀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래도 엄마한테는 말하겠지요."
풀러턴이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일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한 때 아이었던 우리들도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던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간직했던 기억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뚜렷이 모르면서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러고보면 아이들이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자기도 모르는 채 위험해질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는 새 위협적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다 겪은 일이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잊어버린 일들. 작가들은 예외없이 이런 부분에 대해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 소설 속 사건 또한 바로 그러한 아이의 특성 때문에 비롯된 사건이다. 만약, 주인공이 어른이었다면 바로 경찰에 알렸거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이 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였기에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희생자는 한 명 더 생겼다.
"네. 누가 전화로 알려 줬어요. 조이스의 동생이라고요. 그 애는 어떻게 하다가 이 이에 연루된 거죠?"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얻어 냈죠. 그러다 적당한 때에 냇가에서 죽임을 당했고요."
푸아로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굳이 변한 게 있다면 어조가 더욱 강경해졌다는 것이었다.
"동정심으로 가득 찬 어떤 사람이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까지 동정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죽은그 아이는 어리기는 했지만 우연한 사고로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그의 행동이 그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 아이는 돈을 원했고 모험을 감수했습니다.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만큼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였지만 돈을 원했습니다. 그 아이는 열 살밖에 안 되었지만 삼십대나 오십대, 혹은 구십대라고 해도 원인과 결과는 같습니다. 그런 경우 제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아마 동정심보다는 정의가 중요하다는 거겠죠."
에믈린 양이 말했다.
"제가 볼 때 동정심은 리어폴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도와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에믈린 양도 저와 같은 생각인 듯하니 우리가 정의를 실현한다 해도 그 정의 역시 리어폴드를 구제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리어폴드를 구할 수는 있을 겁니다. 곧바로 정의를 실현한다면 다른 아이들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살인을 한 번 이상 저지른 범인, 살인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 버린 사람은 결코 안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저는 런던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사건만큼은 그들이 저의 확신을 따라야 하니 말입니다."
첫번째 살인과 두번째 살인. 둘 다 아이가 죽었지만 푸아로는 사건의 성격을 다르게 본다. 결국 희생자가 될 뻔한 아이를 구하고 나서, 밝혀진 사건의 전말을 놀랍다. 보통 희생자의 성격을 묘사하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뒤에 가서 어떤 이유로든 뒤집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결국 주변인들이 본 게 사실이었다. 크리스티의 상당수의 소설에서, 범인이 아니라 '희생자의 심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이야말로 정확히 피해자의 심리가 사건의 전말과 딱 맞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