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8 (완전판) - 버트럼 호텔에서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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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 주십시오, 험프리스 씨, 이 할머니들이 어떻게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겁니까?"

"아, 그게 궁금하셨군요?"

험프리스는 자못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뭐,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지요. 하지만......."

험프리스가 말을 멈췄다.

"하지만 당신이 특별한 가격으로 묵게 해준다, 그겁니까?"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특별한 가격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알게 된다 하더라도 오랜 단골이라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단골이라서 할인해 준 것만은 아니란 건가요?"

"러스컴 대령님, 저는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어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돈이 되겠습니까?"

"분위기 때문이지요....... 이 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특히 미국인들 말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영구겡 대해 묘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수시로 대서양을 넘나드는 비즈니스계의 부유한 거물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보통 사보이나 도체스터에 머물죠.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미국식 식사,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원하니까요. 하지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나온 분들, 이 나라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뭐 디킨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크랜퍼드와 헨리 제임스를 읽은 분들은 이 나라가 고국과 뭔가 다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나중에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겠죠. '런던에 아주 근사한 곳이 있어. 버트럼 호텔이라고. 마치 10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니까. 정말 옛날 영국 모습 그대로야!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하며!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사람들이야. 나이 많은 공작 부인은 얼마나 멋진지 몰라. 영국의 전통 음식에 아주 근사한 옛날식 비프스테이크 푸딩까지! 다른 데서는 절대 맛볼 수 없을 거야. 맛있는 소 등심이며 양고기 등살, 영국 전통 차에 환상적인 영국식 아침 식사 등이 모두 가능하다고. 그리고 물론 다른 것들도 다 근사하지. 게다가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한지. 장작을 쓰는 벽난로도 있어.'"

험프리스는 흉내 내기를 멈추고 씩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러스컴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 사람들, 그러니까 쇠락한 귀족이자 스러진 옛 지방 명문가 사람들이 전부 무대장치였군요?"

 

버트럼 호텔은 에드워드 왕조 시대의 건축물과 같이 오래된 느낌이 나면서 동시에 현대적이고 쾌적한 설비를 갖춘 장소이다. 타깃은 고풍스러운 광경을 느끼고 싶은 외국인이나, 20세기 초의 분위기를 추억할 수 있는 노부인이다. 그렇다면... 역시 그렇다! 마플 양이다. 잘나가는 소설가인 조카 레이먼드 웨스트 부부가 보내 준 곳이다. 20세기 초가 추억의 시대가 되는, 이 소설의 시대는 1965년이다. <열세 가지 수수께끼>에서 레이먼드와 연인 사이였던 젊은 화가 조앤은 이제 쉰이 다 되었다. 1928년에 연재가 시작되어 1932년에 출판되었던 <열세 가지 수수께끼>에서 조앤의 작품은 마플 양의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현대적이었지만, 이 소설에서는 젊고 야심 찬 예술가들로부터 완전히 구세대 취급을 받고 있다. 늘 제인 마플을 좋아했던 이 부부는 이 책의 바로 전해인 1964년에 나온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에서도 기꺼이 그들의 고모를 위해 여행비를 대 준다.

 

이 호텔은 열네 살 때 마플 양이 묵었던 적이 있는 곳이다. 호텔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이 떠올랐다. 물론 둘 사이에는 전혀 상관이 없고, 어떤 유사성도 없다. 다만, 유서 깊은 신비스러운 호텔에 대한 이미지가 이미 영화를 통해 구축된 덕분에 소설에 몰입하기가 한결 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사건이 펼쳐진다. 전쟁에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직접 독일인을 사살하고 여러 번의 결혼을 한 여성, 21살이 되면 엄청난 유산을 받을 수 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상속녀, 갑자기 사라진 성직자, 전직 배우인 지배인... 이 버트럼 호텔을 지난 몇 년 간 악명을 떨친 최고이자 최대 범죄 조직의 본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은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나타난다.

 

크리스티의 후기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국제적인 범죄, 첩보물 등이 또 나오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은 맥거핀에 불과했고, 더 놀라운 사실이 뒤에 있었다. 이 소설에서만큼은 마플 양은 방관자적인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전과는 달리 먼저 경찰을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이거나, 범죄자를 잡기 위한 연극을 하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묻기 전에는 대답하지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서도 그저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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