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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살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이 소설의 원제는 They do with mirrors 이다. 대체 거울을 가지고 뭘 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소설을 다 읽다 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직접 살인의 도구로 거울이 쓰인 것은 아니지만, 거울을 보다가 마술을 연상하고 힌트를 얻게 된다.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인 '마술 살인'만 보면, 왠지 마술사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역시 이 또한 살인의 수수께끼를 푸는 힌트인 것이다. 마술사 옆의 한 명의 보조자가, 알고 보니 두 명이었다더라, 보조자 또한 마술사와 한 편으로 관객을 속인다고 생각해 보면, 굉장히 간단하게 사건이 해결된다.
매튜 프리처드에게
크리스티는 늘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특정 인물의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크리스티 소설의 팬일 때도 있고, 때로는 소설을 쓰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지인일 때도 있고, 때로는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일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한 매튜 프리처드는 바로 크리스티의 외손자다.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긴 로잘린드 힉스라는 딸 하나만이 유일한 자녀인 그녀에게, 현재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그녀의 저작권을 행사하고 있는 매튜 프리처드는 아마도 크리스티에게는 귀한 손자였을 것이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크리스티 전집의 모든 책에는 빠짐없이 매튜 프리처드가 정식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한국 독자에게 쓴 글이 실려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의식하여 출판사 쪽에서 재단으로부터 받은 일종의 허가장을 독자들에게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크리스티는 1928년에 로잘린드를 출산하였으며 이 책은 1952년에 출판되었다. 두 사건의 시간차가 24년인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이 책이 나오기 직전 손자가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손자는 크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자신의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과 함께 평생 기록으로 남을 것이 아닌가.
"그래. 그 애 자신 때문이겠지. 캐리 루이즈는 우리완 달리 항상 이상에 젖어 있었어. 물론 우리 젊은 시절엔 다들 이상을 쫒는 게 유행이었지만 말이야. 모든 여자들이 다 그랬지. 특히 젊은 여자들은 더욱 더. 제인 너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싶어했고, 나는 수녀가 되고 싶어 했더랬지.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누구나 그런 어이없는 생각은 관둬 버리는 거야. 누군가는 결혼이 그런 변화의 계기라고 했지. 하긴 나 역시 결혼으로 피해 본 것은 없었어."
우리의 마플 양은 지금 한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는 캐리 루이즈라고 하는 여성의 친언니로, 캐리 루이즈 자매와 마플 양은 소녀 시절 이탈리아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캐리의 언니는 동갑내기인 마플 양과 자주 만나고 있지만, 동생인 캐리와 마플 양이 마지막 만난 것은 20년 전이다.
"이상주의자들 말이지. 캐리 루이즈야 원래 '이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 아니니. 옛날 그 애 모습 기억나? 열일곱 살밖에 안 되었으면서도 그 걸브랜드센이라는 늙은이가 인류를 위한 계획이 어쩌니 큰소리치는 모습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보고 있었잖아. 결국 그 앤 쉰 살도 넘은 데다 다 큰 자식이 딸린 그 홀아비하고 결혼했더랬지. 다 그 영감의 박애주의 때문이었어. 남편 옆에 붙어 앉아 꼭 마법에 홀린 것처럼 얘길 듣던 그 모습을 보면 데스데모나와 오셀로가 따로 없었다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사람 사이를 망쳐 놓는 악당 이아고가 없었다는 정도? 그나마 걸브랜드센이 유색인종이 아니었으니 다행이지. 아마 스웨덴이거나 노르웨이쪽 혈통일 거야."
캐리라는 여성은 이상주의자로, 총 세 번의 결혼을 하며 그 세 번의 결혼은 전부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혹은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결과였다.
"내가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야 물론 돈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캐리 루이즈는 달라. 그 영감이 캐리가 서른두 살이던 해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는 미망인으로선 최적의 나이지. 경험도 쌓였는 데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도 충분한 시기이거든."
첫번째 남편과의 결혼은 그녀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겨주었고, 그 유산으로 인해 두번째 결혼이 가능했다. 정작 캐리 본인은 돈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남편들이 이전 결혼으로 얻은 자식까지 지극히 챙긴다.
"캐리 루이즈가 조니 레스태릭과 결혼했을 때 난 진심으로 기뻤어. 하긴 그 남자는 캐리의 돈을 보고 결혼한 게 맞지. 음, 꼭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그 애가 가난했다면 그 남잔 캐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거야. 조니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건달이었단다. 그래도 괴짜보다야 그 편이 훨씬 안전하지. 조니가 바라는 건 오직 인생을 편하게 사는 것뿐이었어. 캐리 루이즈와 함께 최고급 의상실이나 드나들고 요트, 자동차 여행을 즐기며 살길 바란 거야. 이런 종류의 남자는 지극히 안전해.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만 갖춰 주면 고양이처럼 애교를 떨며 여자에게 복종하니까. 나야 그 남자가 한다는 연극 관련 일을 대수롭지 않다고 봤지만, 캐리 루이즈는 그런 것이 멋져 보였나봐. 심지어는 그걸 가리켜 '진짜 예술'이랬던가? 그래서 그쪽 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지원한 거고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그 악독한 유고슬라비아 여자가 나타나 그 남자를 가로채 도망간 거 아니겠어? 사실 조니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지. 캐리 루이즈가 좀 더 느긋이,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 그는 분명 돌아왔을 거야."
마플 양이 말했다.
"캐리가 아주 슬퍼했겠네?"
"그게 참 웃기는 구석이야.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거든. 원래 마음씨가 좋은 애라서 그런 걸까? 조니와 그 계집애가 결혼할 수 있게 이혼을 해 줬는가 하면, 조니와 전처 사이의 아이 둘하고 그 계집애가 같이 살 수 있도록 집까지 사 주다니. 그래야 생활 기반이 잡히지 않겠냐느니 하며 말이야. 덕분에 가엾은 조니는 그 여자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엇어. 결국 반 년의 지옥 같은 결혼 생활 끝에 조니는 차를 몰고 절벽 낭떠러지로 돌진하고 말았지 뭐니. 사고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게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고 믿어."
그녀가 결혼한 세번째 남편과 함께 그녀는 소년 범죄자를 위한 시설을 집 주변에 짓고, 그들을 위한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상담사, 교사까지 고용한다. 그 중 일부는 과거를 딛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정했으나, 일부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청소년시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부와는 달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많은 상태. 얼마 전에 동생인 캐리를 방문한 언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마플 양에게 그 저택에 가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던 중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 캐리 루이스를 독살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그런데 캐리 루이즈는 그 뒤에 정말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현 남편 루이스 새러콜드와 결혼한 일 말이야. 이번에도 괴짜였어! 거기 더해 이상주의자! 아, 그 남자가 캐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냐. 실제로 내 동생을 무척 사랑하는 모양이고. 다만 이 남자 역시 전 인류의 복지를 꾀하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는 게 문제지. 너도 알다시피 자기 삶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건데 말이야."
이 소설은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일단 구성부터가 복잡하다. 주인공인 캐리는 세 번의 결혼을 했다. 첫번째 남편은 전처 소생의 아들 셋이 있었으나 정작 캐리와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어서 딸을 입양해서 키운다. 몇 년 후 캐리는 임신을 하고, 딸을 얻는다. 첫번째 남편과의 사별 후, 두번째 남편이 데리고 온 두 명의 아들들에게도 캐리는 사랑을 베풀며 가족으로 대한다. 이후 그녀의 두 딸은 각각 결혼하였고, 입양한 딸은 딸 하나를 남긴 채 사망하며, 친딸은 자식 없이 남편과 사별한다. 현재 저택에는 캐리와 그녀의 세번째 남편, 친딸, 입양한 딸의 딸, 그러니까 캐리의 손녀와 그녀의 남편, 두번째 남편의 두 아들이 함께 살고 있으며, 그 외에도 캐리의 가정부와 세러콜드의 비서 등이 있다. 여기에 첫번째 남편의 아들이 저택을 급하게 방문하고, 살해당한다.
이른바 족보가 계속 꼬이는 상황. 등장인물들이 늘 보던 익숙한 위치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읽어나가면서 사건이 더 어렵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굉장히 간단한 사건이다. 전체적인 사건도 그렇고, 그 사건에 쓰인 트릭도 그렇다. 다 알고 나면 이 단순한 장치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마치 눈 앞에 안대를 씌워놓은 것 같은 느낌. 꼭 마술의 비밀을 보고 나서, 저렇게 간단한 마술이었구나 하고 한편으로는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느낌이다.
초반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뒤바뀌는 것은 여주인공에 대한 판단도 포함된다. 이상주의자에, 자신이 낳지도 않은 아이들, 남편이 데리고 온 자식이나 입양아까지 전부 사랑으로 품는 캐리. 책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제는 할머니 나이가 된 그녀가 현실을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이 세상은 선하고 좋은 곳이라는, 소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답답하게 된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그녀야말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선량할 뿐만 아니라 겸손했고, 그랬기에 자신의 주변에 대한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은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선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아하면서도 깔끔하고, 그러면서도 핵심을 관통하는, 그야말로 크리스티다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