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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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인도계 미국인 작가의 9개 단편이 실려 있다. 모든 단편이 다 빼어나다고 생각되지만, 책 전체를 반복해서 다시 읽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작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이 무작정 좋아할 수 밖에 없던 작품이다. 아니, 굳이 설명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질적인 인간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 연민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우아하면서도 침착한 문장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모든 것을 머리로 분석할 틈도 주지 않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렇게까지 온전하게 좋아할 수 있는 소설도 흔치 않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결말을 마무리짓는 부분은 울컥하게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작가의 부모의 이야기라고 추측된다. 줌파 라히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가에게는 인도계라는 정체성이 소설 전체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모든 등장 인물이 인도계 미국인이며, 타인과의 소통, 낯선 것과의 교류가 핵심 소재로 사용된다. 이런 것 때문에 소설을 처음 읽어나가면서는 신선했지만, 계속 읽으면서 또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 개인의 역량도 물론 뛰어났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민을 온 가정에서 자랐다는, 독특한 성장 배경의 덕을 톡톡히 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마지막 소설을 보면서 왜 이 작가가 첫번째 책, 그것도 이례적으로 단편집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지 알았다. 번역도 정말 훌륭하지만, 원서를 구입해서 읽을 계획이다. 작가가 쓴 원문의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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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완벽한 숙녀야!"

이번에는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히 웃었으므로 크로프트 부인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말라는 내 웃음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나는 크로프트 부인의 응접실에서 경험한 그 순간이 말라와 내 사이가 좁혀지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아직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후 몇 달 동안이 허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으며 다른 벵골인들을 만났다. 그때 만난 벵골인 가운데 몇몇은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우리는 빌이라는 남자가 프로스펙트가에서 싱싱한 생선을 팔고, 하버드 스퀘어에 있는 카둘로라는 가게에서는 월꼐수 잎과 정향을 판다는 것을 알아냈다. 저녁에는 찰스 강까지 걸어가서 강물 위를 떠다니는 돛단배를 구경하거나 하버드 야드에서 아이스크림콘을 먹었다. 우리는 인스터매틱 카메라를 사서 우리의 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나는 말라가 그녀의 부모에게 사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녀에게 프루덴셜 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하여 사진을 찍었다. 밤이면 우리는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수줍어했으나 이내 대담해졌고, 서로의 품 안에서 쾌락과 위안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에게 SS로마호에서의 항해 이야기를 해주었으며, 핀스베리 파크와 YMCA에 대해서도, 크로프트 부인과 벤치에 함께 앉아 있었던 저녁 시간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다. 나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저녁에 <보스턴 글로브>를 읽다가 우연히 크로프트 부인의 사망 기사를 발견했을 때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은 말라였다. 나는 그전 몇 달 동안 부인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무렵에는 이미 그 여름의 여섯 주는 나의 과거에 끼어든 오래전의 막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너무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신문을 무릎에 내려놓은 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벽을 쳐다보았다. 말라가 뜨개질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로프트 부인의 죽음은 내가 미국에서 애도한 첫번째 죽음이었는데, 그녀의 삶은 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존경했던 삶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났다. 오래오래 혼자 살다가 영원히 떠난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보스턴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말라와 나는 보스턴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 있다. 크로프트 부인이 살던 곳과 비슷하게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선 동네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마당이 있어서 여름이면 토마토 값을 아낄 수 있으며 손님방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미국 시민이어서 때가 되면 사회보장 연금도 탈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캘커타를 방문하며 돌아오는 길에 끈으로 졸라매는 파자마와 다르질링 차를 챙겨오지만, 여기서 늙어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조그만 대학의 도서관에서 일한다. 우리에겐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한 명 있다. 이제 말라는 사리의 끝단을 머리에 두르지 않으며 밤에 부모님을 생각하며 우는 일도 없다. 대신 아들 생각에 눈물을 짓곤 한다. 우리는 아들을 만나러 케임브리지에 가거나 집에 데려와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집에 오면 아들은 우리와 함께 손으로 밥을 먹고 벵골어로 말을 한다. 우리가 죽으면 아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며 때떄로 걱정을 한다.

차를 몰고 그곳에 갈 때면 나는 교통 상황이 어떻든 반드시 매사추세츠가를 지나서 간다. 이제는 그곳의 건물을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그러나 갈 때마다 나는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그해 여름의 여섯 주로 되돌아간다. 차의 속도를 줄이고는 크로프트 부인이 살던 거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한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살았던 집이 있던 곳이라고. 그 집에서 백세 살 먹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기억나요?" 말라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낯설고 서먹서먹한 사이였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에 서로 놀라곤 한다. 아들은 크로프트 부인의 나이가 아니라 내가 방세로 낸 돈이 그토록 적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놀라움을 표한다. 아들에게는 그게 상상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이다. 달에 깃발을 꽂았다는 게 1866년에 태어난 여자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들의 눈에서 나를 처음으로 드넓은 세상 속으로 내던졌던 야망을 본다. 몇 년 지나면 아들은 졸업을 하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갈 것이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강한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곤 한다. 아들이 좌절할 떄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제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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