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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의 아픔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토미와 터펜스는 잘 있나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죠?' 라며 내게 안부 편지를 보내온, 영국과 다른 나라의 많은 독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여러분 모두에게 안부를 전하며 토미, 터펜스와 즐거운 해후를 나누길 바란다. 더 늙긴 했지만, 영혼은 조금도 시들지 않은 이 부부와!
애거서 크리스티
1968년에 나온 이 소설은 토미와 터펜스가 나오는 네 번째 책이다. 20대 초반의 친구였던 <비밀 결사>가 1922년, 서른 살 전후였던 <부부 탐정>이 1929년, 장성한 1남 1녀를 둔 중년이었던 <N 또는 M>이 1941년. 정확하지는 않지만 둘 다 확실히 60은 넘었을 이 소설에서는 자식들마저 결혼하고 손주까지 본 것으로 나온다. 아마 크리스티 조차도 이 한 쌍을 자신의 소설에서 오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 부부는 이 소설 이후 <운명의 문>이라는 1973년 소설로 한 번 더 등장한다.
엄지가 쑤시는 걸 보니, 뭔가 불길한 일이 닥치려나 보다.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크리스티는 종종 셰익스피어의 글에서 제목을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슬픈 사이프러스>도 그랬고, <밀물을 타고>도 그랬다.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테니슨의 글에서 인용한 <깨어진 거울>도 있다. 이 제목들은 사실 이 소설의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약간 어거지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다른 소설에 갖다 붙이거나 서로 바꾸어 제목을 붙여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 '엄지손가락'이라는 것이 큰 복선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요양원에 있던 토미의 친척이 사망한다. 친척이 머물던 방에 있던 그림은, 부부가 3주 전에 친척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보지 못했던 그림이다. 친척이 아니라, 같은 요양원에 있던 노부인이 주었다는 그림. 터펜스는 그 노부인과 3주전 방문했을 때 대화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다시 한 번 노부인을 만나려고 하나 얼마 전 친척이 데려갔다는 말을 듣는다.
"우스워요. 전에 여기 왔을 때는 이 그림을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상한 게 이 풍경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 그림 속의 집이 내가 본 어떤 집과 닮았을 수도 있고. 어쨌든 이 집이 생생히 기억나요....... 우스운 건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모른다는 거지만."
그림을 선물했다는 노부인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그녀를 데려갔다는 친척의 주소는 엉터리였다. 3주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이 이상했지만, 단순히 노망으로 여겼던 터펜스는 이상한 것을 감지한다.
"랭커스터 부인도 떠나셨다고 들었어요."
"네, 친척 분이 데려가셨죠.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는데, 안되셨어요."
"그분이 제게 접견실에 있는 벽난로 얘기를 하셨었는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그분은 이야깃거리를 많이 갖고 계세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또 자신만 아는 비밀까지......."
"어떤 아이에 대한 내용도 있엇어요. 납치된 아이인지, 살해된 아이인지......."
"노인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꾸며내세요. 텔레비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런 노인들과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피곤할 것 같은데."
"아뇨, 전 노인들을 좋아해요. 아니면 제가 왜 노인 돌보는 일을 자청했겠어요."
"여기 계신지는 오래 되셨나요?"
"일 년 반 정도요....... 다음 달에 떠나긴 하지만요."
오키프 간호사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대답했다.
"왜죠?"
처음으로 오키프 간호사가 뭔가 감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요, 베레스퍼드 부인, 누구나 변화가 필요한 법이라......."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열정만큼은 청춘인 터펜스는 그림 속의 집을 직접 찾아나선다. 어디서 보았을까, 온 기억을 총동원해내 떠올린 그녀는 3년 전, 대녀의 딸이 다니는 학교로 갔다가 돌아오는 열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그곳을 보았던 사실을 기억해낸다. 주인은 있을 테지만, 아무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집. 터펜스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밖으로 나가 수색을 했어요. 아이의 시체를 금방 찾은 적도 잇고, 몇 주씩 찾지 못한 적도 잇엇죠. 어떨 때는 우리가 이미 수색을 끝낸 아이의 집 근처에서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더랬어요. 미치광이의 짓이 분명해요. 끔찍, 끔찍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있어요. 그런 인간들은 다 쏴 버려야 해요. 그 인간드로 똑같이 목 졸라 죽여야 한다고요. 누가 내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나라도 직접 그런 인간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요. 어린아이를 덮치고 죽이는 더러운 인간이라니. 그런 인간들을 정신 병원에 넣고 가정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치료한다는 게 말이나 돼요? 그 인간들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정신병원에서 기어나오죠. 치료가 되었다면서 집으로 보내는 거예요. 노퍽 어딘 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죠. 거기 사는 여동생이 얘기해 줫는데,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지 이틀 뒤에 똑같은 짓을 저지른 남자가 있었대요. 미친놈들이죠. 의사들도 똑같아요. 치료되지도 않은 사람을 다 나았다고 하니까요."
친절하지만 어딘가 묘한 느낌을 주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마을의 온갖 이야기들을 들으며 다니던 터펜스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다. 그러고 보니, 이 부부는 꼭 번갈아가면서 작품마다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는데, 볼 때마다 기절할 정도로 세게 머리를 맞는데 어떻게 나중에 문제가 전혀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부 중 한쪽이 머리를 맞고 실종되면, 다른 한 쪽이 찾아다니는 구성을 매번 쓰는 작가가 좀 게으르다는 생각도 들고.
돌아오겠다는 아내는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는 가운데, 요양원의 의사가 토미를 찾아온다. 얼마 전에 사망한 요양원의 한 노인의 부검 결과 다량의 모르핀이 검출된 것이다. 원래 모르핀을 투여받는 환자가 아니었기에, 어떤 사건이 있음을 짐작한 의사가 과거 정보부에서 일했던 토미에게 상의한 것이다. 토미는 요양원을 떠나 종적이 묘연한 노부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부부의 활약의 내용은 늘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첩보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1차세계대전부터 제2차세계대전까지의 시간이 겹쳐 있기 때문에, 외국의 스파이, 영국의 고위직이 등장하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뭔가 이야기가 크게 될 것 같다고 주저앉아 버린 느낌이다. 물론 종전후 꽤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두 주인공의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외딴 곳에 있는 주인을 모르는 저택,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변호사의 범죄행위, 이미 사망한 유명 화가의 그림과 미망인, 연속되는 살인과 실종 등 재미있는 요소를 그냥 나열만 하고 끝내버린 느낌이랄까. 사건이 밝혀진 직후, 그 전말은 좀 허무하기도 했다. 단순히 광기로만 모든 범죄의 이유를 설명해 버린다면, 왠지 반칙 같은 느낌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