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또는 M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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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와 터펜스가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때는 1940년 봄. 이제 마흔 여섯 살이 된 토미는 예전과 같은 일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에게 일자리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 부인 터펜스도 마찬가지. 그들 사이에는 데보라와 데릭이라는 쌍둥이 남매가 있으며, 둘 다 전쟁 중 자국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예전에 그들에게 일을 주었던 이스트햄턴 경, 즉, '카터 씨' 또한 은퇴하여 스코틀랜드에서 낚시나 하고 있는 상황. 그러던 중 이스트햄턴 경의 소개로 방문한 그랜트라는 사람이 방문하여 토미에게 영국 내에 있는 나치 스파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줄 것을 의뢰한다.

 

<비밀 결사>, <부부 탐정>에 이은, 토미와 터펜스 커플이 등장하는 세 번째 소설이다. 1922년, 제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종전 후 겪게 되는 좌충우돌 모험 이후 1929년, 이미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사무소를 차리고 함께 활동을 벌이다 제2차세계대전 가운데의 1941년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비밀 결사>와 <부부 탐정> 사이에는 책의 출판 기준으로는 7년의 차이가 있지만 책 속에서는 6년인 것으로 나오고, 역시 <비밀 결사>와 이 책 사이에는 출판 기준으로는 19년이고 <부부 탐정>과는 12년이지만 이 책의 본문에서 20년도 더 지났다는 문장이 있다. 이래 저래 숫자가 좀 맞지 않기는 하는데, 사실 크리스티의 다른 탐정인 푸아로의 경우, 계산해 보면 나이가 100살이 넘는다는 글도 본 적이 있다. 크리스티가 그런 쪽으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몇십년간 수십 편의 소설을 써 낸 작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명시하고 있는 시기는 1940년으로, 제2차세계대전중인 상황. 암호명 N과 M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모험이다.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는 소설이 다 그렇긴하지만, 열정은 넘치고 눈썰미는 다소 모자라기 때문에 늘 죽음의 위기를 넘기곤 한다. 덕분에 소설이 좀 헐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크리스티의 후기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범인의 정체를 빨리 눈치챌 수 있어서 좀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들의 모험은 늘 거국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규모에 비해 두 명의 프로 정신은 좀 부족한 것 같아 진지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젊었던 <비밀 결사>와 <부부 탐정>에서는 그런 점도 매력이었지만, 장성한 자녀를 둔 중년의 부부가 되어서도 전혀 달라진 점이 없어서 좀 황당하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후함이 엿보이면 더 좋았을텐데. 아직도 이들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명분보다는 재미에 좀 더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40년이고, 출판된 것은 1941년. 크리스티는 한참 전쟁 중에 이 소설을 구상하고 써냈다는 것인데 1939년에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 전쟁의 참혹함이 덜했던 시기여서일까? 아니면, 이미 제1차세계대전에 20대로 전쟁을 겪었던 크리스티 입장에서 좀 더 대범하게 전쟁을 보았고, 비슷한 연배인 토미와 터펜스 부부에게 감정을 주입했던 것일까?

 

이래 저래 아쉬움이 좀 남긴 하지만, 비교적 분량이 많지 않아서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읽을만한 책이다. 너무 단순해서 머리를 쓰는 즐거움이 없긴 하지만.

 

"B 말이에요, 바보같긴. 베레스퍼드도 B, 블렌켄솝도 B. 제 내의에는 B가 수놓아져 있단 말이에요. 패트리샤 블렌켄솝. 프루던스 베레스퍼드와 머리글자가 같죠. 그런데 당신은 왜 메도즈에요? 바보 같은 이름이네요."

"우선 말이야,"

토미가 대답했다.

"나는 내 바지에 B자가 수놓아져 있지도 않고 말이지. 게다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렇게 지시를 받았지. 메도즈 씨는 제법 훌륭한 삶을 살아온 신사라고. 난 그 내용 전부를 외워야 했어."

"좋아요. 당신은 기혼이에요, 미혼이에요?"

터펜스가 말했다.

"상처했지."

토미가 품위있게 말했다.

"10년 전 부인이 싱가폴에서 죽었대."

"왜 하필 싱가폴이에요?"

"어디선가는 죽었어야 하잖아. 싱가폴이 어때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제일 좋은 장소일 수도 있죠. 저도 미망인이에요."

"남편은 어디서 죽은 거야?"

"그게 상관있나요? 아마도 요양원에서 죽었을걸요. 간경변으로 죽었을 거라고 상상하고 있어요."

"그렇군. 가슴 아픈 이야기야. 그럼 아들 더글라스는?"

"더글러스는 해군이에요."

"어제 저녁에 들었어."

"그리고 제겐 아들이 둘이나 더 있어요. 레이먼드는 공군이고, 막내인 시릴은 지방수비군이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 상상의 블렌켄솝 일가를 조사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블렌켄솝이 아니에요. 블렌켄솝은 제 두 번째 남편이거든요. 내 첫 남편은 힐이에요. 전화번호부에는 힐이라는 이름이 세 페이지나 되죠. 그 모든 힐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어요."

토미가 한숨을 쉬었다.

"터펜스, 그게 당신의 고질병이야. 당신은 항상 너무 과해. 남편이 둘에, 아들이 셋이라고. 그건 너무 지나쳐.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결국 스스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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