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쉽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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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부인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어.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게 어렵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녀는 내가 틀렸다고 하더군. 살인을 하기는 아주 쉽다는 거야......."

 

이 책의 원제는 <Murder is easy> 혹은 <Easy to kill> 이다. 사실 어느 쪽으로 해도 뜻은 똑같은데, 왜 이런 식으로 구분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각각 소설이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보니 같은 소설로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바로 같은 해인 1939년에 출판된 장편 소설도 비슷한데 <Ten Little Niggers> 혹은 <And then there were none> 혹은 <Ten Little Indians> 이렇게 3가지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이름이 여러 개인 이유는, 처음에 소설이 나왔을 때, 'Niggers'나 'Indians'라는 단어들이 인종차별적이기 때문에 이름이 바뀌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소설은 왜 이름이 두 가지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목록을 죽 살펴보면, 꽤 여러 편의 소설들이 이처럼 여러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저작권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 작가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책 제목을 바꿔서 출판된 경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발표 이후 사람들이 원래 책 제목이 아니라 다르게 부르면서 재판을 찍을 때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자연스럽게 제목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경우도, 첫번째 책은 원래 <해리포터와 철학자의 돌>이었지만,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경우는 마케팅 때문이었는데, 아마 크리스티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루크라는 남자가 있다. 말레이 해협에서 오랫동안 있다가 영국에 귀국한 전직 경찰로, 몀예 퇴직해서 연금과 소소하게 들어오는 수입으로 한가롭게 살아가는 신사이다. 기차에서 만난 한 노부인으로부터 위치우드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여러 건의 의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런던의 친구 집에 도착한 주인공은 신문을 통해 런던 경시청으로 가던 그녀가 차에 치여 숨졌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1주일 후, 또다시 신문에서 그녀가 다음 희생자로 생각된다고 했던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고, 사망한 그 사람의 장소와 직업이 당시 그녀의 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위치우드로 직접 내려가 사건을 조사한다.

 

"살아가면서 직시해야 하는 가장 불쾌한 진실 중 하나는 모든 죽음에는 그 죽음으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단순히 돈 문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침 루크의 친구 지미의 사촌 브리짓이 이 마을에 살고 있기에, 지미가 브리짓에게 잘 말해주어 루크는 지미의 촌으로 그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미신과 관습에 대해 인터뷰를 한다는 명목으로 머무르게 된다.

 

"사람들은 타고난 성정이 그래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게 잔호간 짓을 할 때도 있어요. 어린아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성인이 미치광이 같은 교활함과 야만성을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면모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현재 일어나는 모든 잔혹하고 어리석은 일의 근원에는 바로 그런 성숙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런 유치한 것들을 없애야죠."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손을 폈다.

브리짓이 갑자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목사님 말씀이 옳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요. 어른인데 아이 같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죠......."

루크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누군가 구체적으로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위필드 경이 어떤 면에서 지독히 유치하기는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이 위필드 경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위필드 경은 조금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확실히 무서운 인물은 아니었다. 루크 피츠윌리엄은 브리짓이 누구를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루크가 기차에서 만난 핀커튼 부인은 헤어지기 전 자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을 근거로 삼아 루크는 살인자는 최소한 핀커튼 부인과 같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심되는 사람 중 먼저 의사인 토머스 박사를 찾아간다. 그는 패혈증으로 사망한 험블비 박사와 종종 의학적인 견해가 충돌하였고, 험블비 박사는 자신의 딸에 대한 토머스 박사의 구애를 무시했다. 또한 공식적으로 사인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희생자에게 약물 처방을 할 수 있는 의사이기도 하다.

 

"꽤 쉬워요."

"뭐가요?"

"무사히 빠져나가는 거 말입니다."

그는 다시 매력적이고 소년 같은 미소를 띠었다.

"조심한다면 말이죠. 조심하기만 하면 됩니다! 영리한 사람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죠. 그게 바로 비결입니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루크는 서서 계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의사의 미소에는 짐짓 겸손한 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루크는 자신을 성숙한 어른으로, 토머스 박사는 젊고 순진한 젊은이로 보고 있었다.

한순간 그는 그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의사의 그 미소는 어른이 똑똑한 아이에게 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아마도 런던에서 핀커튼 부인을 차로 친 사람은 살인자일 것이다. 따라서 그 날 위치우드를 비웠던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그러던 도중 한 명이 더 살해되고, 모든 정황상 단 한 명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막판에 가서 또 한번 역전된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루크는 사랑하는 브리짓의 생명을 구하지만, 기존의 탐정들과는 다르게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험블비 박사의 부인의 조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비껴간다. 마지막에 배틀 총경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는 사건을 정리할 뿐이다. 굉장히 복잡한 사건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가능했던 이유는 구식 수법이었기 떄문이다. 즉, 살해 방법이 복잡하지 않고 아주 단순했기 떄문인데, 단 하나 그 사람이 의심받지 않았던 이유는 첫번째는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고, 두번쨰는 눈에 보이는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추리 소설에서 사실 살인광이 등장하면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확실한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 용의자가 되고, 숨겨졌던 뒷이야기가 밝혀지며, 알리바이가 전복되어야 추리의 재미가 있다. 이 소설에서는 자신이 평생동안 원한을 품었던 한 사람에게 혐의를 씌우기 위한 이유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살인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복수라는 동기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직접 그 대상에게 하는 복수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을 죽이면서 복수한다는 것은 사실 맞지 않는다. 그보다도 살인 자체에 대한 즐거움, 스스로의 영리함에 대한 만족, 그러면서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에게 혐의를 덮어씌우는 쾌감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일 것이다. 즉, 이 경우 살인의 동기는 그저 살인자의 감정인 것이다. 이 경우 의외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오는 즐거움은 있지만, 이후에 동기를 알고 나면 다소 김이 빠지기도 한다.

 

살해 수법도 정교하지 않고 즉흥적인 것이 많았으며, 어쩌면 시골 마을, 그것도 아직까지 민간전승이 남아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살인의 몇몇 경우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았고, 어떤 면에서 범죄자의 운이 좋았기 떄문에. 하지만 소설의 구성 면에서는 마지막까지 사건에 대해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던 주인공에게는 딱 맞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초반의 기차 장면도 좋았고, 제목과 완벽히 상응하는 내용이며, 군데 군데 복선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떠올리게 할 만큼 알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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