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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살인 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이 책은 1923년에 나온 크리스티의 세번째 장편 소설이다.
참고로 첫번째는 1920년에 출판된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두번째는 1922년에 출판된 <비밀 결사>로
푸아로가 등장하는 두번째 소설이자, 역시 그의 친구인 아서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두번째 소설이다.
크리스티 초기 소설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아이디어는 놀랍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상대적으로 원숙함은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
반대로 후기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문장도 아름다우며, 인생의 의미를 깊숙이 찌르는 노련함도 느껴지지만 상대적으로 침착함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조금 더 흥분되어도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
<비밀 결사>의 경우는 나중에 부부가 되는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하며, 톡톡 튀기는 하지만 좀 부산스러운 느낌이었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이나 이 <골프장 살인 사건>의 경우 청년 특유의 활기찬 느낌은 좋지만 크리스티가 노년에 쓴 소설들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부분은 많지 않다. 나중에 나온 소설일 수록 메모하고 싶어지는 구절이 많아지는 이유인 것 같다. 아마 소설책을 여러 권 내고 나서야 세세한 문장이나 표현에 더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젊은 등장 인물 간의 로맨스가 튀지 않게 조합되어 꽤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신데렐라'는 아마도 헤이스팅스와 맺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소설 이후에 헤이스팅스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빅 포>에서 이미 결혼한 상태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여성은 아마도 이 소설 <골프장 살인 사건> 후 결혼하였고, 함께 남미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2남 2녀를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종종 영국으로 헤이스팅스가 건너올 때마다 푸아로와 만나 사건을 해결하였으며, <커튼>에서 알 수 있듯이 헤이스팅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르헨티나에 묻혔다.
<빅포>의 제 1장과 2장에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헤이스팅스를 통해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후 푸아로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정황을 알지 못해 궁금했었는데 이 소설에서 확인하게 되니 속이 시원했다.
이 책의 또다른 재미도 있었는데 프랑스 형사 지로. <구름 속의 죽음>에서 푸아로가 프랑스로 건너가 수사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파리 경시청의 무슈 푸르니에가 무슈 지로로부터 푸아로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푸아로는 '인간 사냥개'라고 불렀던 그의 몇 년 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을지 짐작이 가는 터라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건이 어떤 책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했었다. 차례차례 읽으면 헷갈리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시리즈 간에 시간이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도 마치 퍼즐 맞추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골프장에서 죽은 갑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아들,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을 감추려는 것 같기도 한 갑부의 아내이자 그 아들의 어머니, 과거가 미심쩍은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그녀의 매혹적인 딸, 그리고 매력적인 쌍둥이 자매. 몇 십 년 전의 사건이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되풀이된다는 것, 그리고 두 사건 사이에 눈치채기 힘든 연결고리. 여러 모로 재미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