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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6 (완전판) - 침니스의 비밀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평점 :
앤터니는 이제 자기 일에 제법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가 맡은 일에는 여행 일정을 책임지는 일 말고도, 체면이 구겨진 노신사들의 언짢은 기분을 달래주고 나이 지긋한 부인들에게 그림엽서 살 시간을 넉넉히 주는 일도 포함되었다. 물론 40대 부인들의 넉넉함에 기대어 온갖 말장난을 섞어가며 시시덕거리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앤커니는 그중에서 마지막 일이 가장 쉬웠다. 별 생각 없이 한 마디 던지면 수많은 여자들이 혹시 그 안에 무슨 은밀한 의도라도 숨어 있지 않나 하고 귀를 쫑긋거리기 때문이었다.
발칸제국의 위대한 노 영웅.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 교수형을 모면한 거물급 악당. 그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오로지 어떤 신문을 구독하느냐에 달려 있지. 하지만 제임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스틸프티치 백작이란 사람은 너나 내가 먼지와 재로 변한 뒤에도 오래 오래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을 인물이라는 점이야.
런던 경시청의 배틀 총경이 등장한다. <0시를 향하여>의 바로 그 사람. 소설 속에서 마플 양이 등장한다는 뜻은 한적한 시골 마을인 세인트 메리 미드의 주민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 유산 상속 등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할리 퀸이 등장한다면 남녀상열지사가 어떻게든 끼어 있을 확률이 높다. 파커 파인이 등장한다면 살인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건일 가능성이 높고, 푸아로의 경우에는 영국의 촌구석으로부터 전세계에 이르기까지 무대는 자유자재이지만, 확률적으로 엮여 있는 사람들이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푸아로에게 사건을 의뢰하려면 상당한 보수가 필요할 테니까. 배틀 총경이 등장한다는 것은 푸아로와 같은 사립 탐정이 종종 맡곤 하는 은밀한 영역의 사건이 절대 아니라는 것. 대대적인 탐문, 공개적인 수사 과정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슬랙 경감이나 멜쳇 경찰 서장보다 더 높은 지위에서 더 강력한 공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가 사건을 지휘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기밀, 외교 극비 사항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만약,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면, 아마도 친분 관계에서 부탁을 받았거나 우연한 기회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0시를 향하여>는 후자에 속할 것이고 <침니스의 비밀>은 명백히 전자다.
이야기가 다소 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사건이 진행될 수록 그런 느낌이 강했다. 결말이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지나치게 꼬여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앤터니의 다소 의문스런 초반의 행동들이 후반에 가서 확실하게 해결은 되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작품의 구성 자체가 좀 아쉽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름 때문에 반전을 눈치 채기가 좀 쉬웠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