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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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9년에 나온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의 후속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책에는 한국의 영화감독 6명을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는데,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등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감독들이었다. ‘부메랑 인터뷰’는 그 형식이 상당히 독특한데, 인터뷰하는 그 감독의 영화 속 대사들에서 끌어낸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중 “이름이 뭐예요?”라는 대사를 빌려 홍상수 감독에게 영화 속 인물들의 작명 방식을 묻는 식이다.

 

내가 이동진의 첫번째 인터뷰집을 본 것이 올해이다.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2015년에 와서야 2009년 당시의 인터뷰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사이의 5년 동안, 6명의 감독들은 어떻게 변모하였나를 따지면서 읽게 되었다는 것.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이지만, 그 사이에 각 감독들의 궤적을 살펴보면 여섯 명의 감독들이 모두 그 사이에 나름대로 진화를 하였다는 점. 다작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경우, 그동안 내가 본 작품으로만 한정해도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등 네 작품이나 되고, 봉준호 감독은 900만 관객을 돌파한 <설국열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류승완 감독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부당거래>를 선보였고, 다시 그의 필로그래피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베를린>으로 700만명 고지를 밟았다. 유하 감독은 <하울링>과 <강남 1970>을 선보였고, 임순례 감독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과 <제보자> 등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 사이를 오가며 꾸준한 작업으로 단연 여성 영화인 중 단연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김태용 감독은 바로 그 영화, <만추>로 평단의 호평과 함께 평생의 동반자까지 얻었다. 

 

그 사이에 모든 감독이 새롭게 영화를 찍었다. 누군가는 감독 경력 최고의 작품성을 평가받는 영화를 그 기간에 내놓기도 했고, 누군가는 감독 경력 최다관객작을 얻기도 했다. 향후 이 감독들이 또 어떻게 진화되어 있을지 생각하면 흐뭇할 일이다.

 

후속 시리즈인 이 책에서는 총 세 명의 한국 감독이 등장한다. 박찬욱, 최동훈, 이명세. 756쪽이었던 첫번째 책보다 100여쪽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루는 감독의 수도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감독 한 명에게 해당된 페이지는 더 늘어난 셈이다. 두번째 인터뷰집인 이 책도 2년 반 전에 나온 책과 동일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상대편에 앉아 있는 바로 그 감독이 만든 영화의 대사에서 질문을 가지고 온다. 감독들의 모든 작품을 순서대로 다시 보고 질문을 한다. 평균 10여 시간 동안 대답을 나눈다. 신작뿐만 아니라 데뷔작, 문제작 등 전작을 다루며 감독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

 

인기리에 방송중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은 초대 손님으로 작가가 나올 경우, 그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따와서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 '적문직답'이라는 코너인데, 예를 들면 소설가 은희경에게 <태연한 인생>에서 나온 문장을 약간 변형하여 최근 젊은 작가들 중 쓸 내용이 고갈되면 여행을 다녀와서 거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식이다. 아마도 순서상으로 이 책의 첫번째 시리즈가 나온 게 <빨간책방> 전일 테니까, 그 영향으로 만든 코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최동훈 감독을 좋아하고, 또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보았기 때문에 이 책이 좀 더 좋았던 이유는 있지만, 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중간에 종종 길을 잃고 멍해지곤 했다. 또한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작가 본인이 지치지 않기 위하여, 영화 대사에서 질문을 따왔다는 방식은, 독자 입장에서는 중간에 갑자기 뚝뚝 맥이 끊기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번째 인터뷰집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책을 보면서 작가에게 느꼈던 그 경외심이, 이 책에서는 더 증폭된다고 할까. 일회적인 일로 그치지 않고,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기획하고 실행하여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첫번째 책과 두번째 책 사이에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첫번째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09년 6월 25일. 이 책의 초판 1쇄 발행날짜가 2013년 1월 10일. 초판 1쇄 인쇄가 2013년 12월 25일. 발행과 인쇄 사이에 1년 가까이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좀 의아한데 프롤로그에 작가가 밝힌 2년 6개월이라는 시간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이 추세라면 세번째 인터뷰 책은 2017년 쯤에야 나올 수 있다는 말인데, 그러기에는 다룰만한 감독의 수가 적어서 성사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온다면 나는 당연히, 반드시 그 압도적인 양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읽을 테지만.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드라마틱한 상황에 휩쓸리게 된 것 자체가 비슷해요. 저는 제가 영화 일을 하게 된 것부터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모진 실패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도 저로서는 참 이상한 일이라고 느꼈죠. 전 무난하게 살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또 큰 성공도 했죠. 참으로 진폭이 큰 삶을 살게 됐는데, 이건 어렸을 때 예상했던 제 인생과 너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느끼는 혼란이 있는 거죠. 뭔가 자꾸 주저하거나 회피하려고 하고, 어떤 일이 닥치면 그냥 자연스럽게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으로 스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러다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나중에 판명이 나면 합리화를 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끌어들여서까지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상현과 저의 공통점이죠. 실제 제 모습과 상현이 가장 비슷하다고 느꼈던 장면은 화장실에서 상반된 이야기로 하나의 결론을 끌어내려고 궤변을 늘어놓을 때예요.

저 역시 오랜 세월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죠. 단지 흥행이 잘 안 되거나 작품에 대한 비평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영화 자체를 찍지 못하는 세월을 보내왔으니까요. 앞으로도 언제 또 그런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르고요. 언젠가 그런 상황이 오긴 올 텐데 말이죠. 과거에 대한 그런 기억과 미래에 대한 그런 전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분야 종사자로서 뜻이 맞고 일해본 경험에 의해 우정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과 더 친하고 그들과만 교유하고 그러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싶어요. 안 하려고 해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듯하구요. 그게 영화나 쇼 비즈니스 세계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일단은 서로가 워낙 까다로운 사람들이라서 맘에 맞는 상대를 만나 친해질 기회 자체가 적어요. 그러다 보니 맘에 맞고 유능하기까지한 사람을 만나면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작동하는 듯해요. 그렇게 하면 이 좋은 시절이 오래갈 것 같은 마음이라고 할까요. 어떤 불안 같은 것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 말고 다른 그룹에서 내가 통할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 여태까지 이루어진 것들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은 불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위대한 영화의 경우에는 보면서 배우기도 하고 영감도 얻을 수 있는 반면, 보는 사람을 너무 위축시키고 좌절케 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서적으로 꼭 좋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요즘도 저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다니는데, 예를 들어 회고전에서 파졸리니의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같은 놈은 뭐 하러 영화 만드나` 싶어집니다. `저런 영화들이 이미 있었는데 뭘 더 하겠다고 고생하고 있나` 싶은 거죠. 그런데도 자꾸 또 보게 됩니다. 그건 한 명의 창작자로서 충전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관객으로서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동진_재능 없는 예술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찬욱_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동진_그러면 재능이 없어도 충분히 직업적인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찬욱_네, 그래요.
이동진_예술이 가장 평번한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면, 영화라는 예술품을 만드실 때 감독님은 어떤 자세로 출발하십니까.
박찬욱_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입니다. 스스로가 예술가라는 생각보다는 영화감독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면서 촬영 현장이 직장인 만큼 업무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내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는 거죠. 종종 실패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 투자한 사람이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해요. 남의 돈을 받아서 영화를 만들고, 또 돈을 받고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자로서의 초소한의 직업윤리를 늘 생각합니다. 또한 제 사적인 생활이 이 직업과 너무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죠.

처음에는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어요. 감독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고, 제 성격 자체가 카리스마가 없어서 감독에 어울리는 성품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니까요. 그 대신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체호프의 작품을 포함해서 단편 희곡들을 선택해 한국식으로 각색하려고 했죠. 그때부터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도전했는데 전부 다 떨어졌어요. 어쨌든 당시에는 되든 안 되든 두 달에 한 편씩 장편 시나리오를 썼어요. 이후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은 수업료가 공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도 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범죄의 재구성>을 만들기 4년 전, <눈물>에서 임상수 감독님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된 거죠.

이동진_삶에 대해 <범죄의 재구성>에서 창호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십니까.
최동훈_그 대사가 표면적으로 의미하는 바와는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저는 사람이란 살면서 일희일비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어쩌면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견해는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몰라요. 제가 제 인생에서 처음 배웠던 사자성어가 `새옹지마塞翁之馬`였는데, 그 말은 결국 인생이 무섭다는 걸 알라는 거잖아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인생이 무서우니 좋아할 때라도 좋아하면서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살자는 거죠. 그래야 좀더 평탄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창호의 그 대사는 사실 일희일비하자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평탄하게 살고 싶다는 거니까요.

이동진_지금까지 만드신 네 편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고, 동원한 관객 수를 합치면 모두 28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감을 느끼실 때가 있습니까.
최동훈_그럼요. 항상 느껴요. 위기감이 저의 근본적인 힘이거든요. 저는 위기감과 불안감 없이 어떻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성격은 아주 활달하고 긍정주의자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이동진_무엇이 가장 불안하신가요.
최동훈_역사가 화무십일홍이花無十日紅 라는 진리를 알려주잖아요.
이동진_달도 차면 기운다는 건가요?
최동훈_그런 거죠. 내가 이제까지 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걸 쓸 수 있는 작가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저는 유럽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할리우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거든요. 감독으로서 저는 제 취향이 들어간 재미있는 장르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계속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불안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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