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 장 뒤자르댕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조지 발렌타인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최고의 스타.

무성영화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당시 유행이 시작된 유성영화의 흐름을 거부하며

“대중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그들은 틀린 적이 없다.”라는 제작자의 말에,

“대중은 날 보러 오지,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라며 응수한다.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 인기를 바탕으로 스스로 무성영화를 제작하게 되지만, 같은 날 개봉한 다른 유성영화에 밀려 실패하고, 그는 파산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개봉한 유성영화의 여주인공은, 한때 조지를 흠모했고 무명 시절 그의 도움을 받았던, 페피 밀러.

 

자살까지 생각하던 그를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영화의 조류로 이끈 페피와의 탭댄스 장면에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2012년 아카데미 최다 부문을 수상했다.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핵심적인 상을 전부 가져간 이 영화가, 프랑스 감독과 배우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무성영화 시대의 이야기를 무성영화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무성영화는 말 그대로 소리가 전혀 없는 영화. 3D는 물론이고 4D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요즘 어찌 보면 관객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100퍼센트 무성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95퍼센트 무성영화? 소리없이 화면으로만 지속되다가, 갑자기 화면에서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때 관객이 느끼는 스릴은 아마 오래도록 각인이 될 것이다.

 

충분히 칭찬받을 영화이며, 좋은 영화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이 영화에 쏟아진 평들은 조금 지나친 감도 있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무성영화의 특성상, 복잡한 구성은 존재하기가 힘들기 떄문에 구성이 단순하고 명료할 수 밖에 없다. 즉, 그 당시 무성영화의 이야기는 대동소이할 것인데, 아마도 여기에서 채플린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성영화라는 한계 안에서도 최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뻗어나갔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1920년대 무성영화를 그대로 답습하였고, 그 이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즉 충실히 재현은 하였지만, 그게 다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마지막 탭댄스 장면과, 조지 발렌타인의 꿈 장면이 포함이 될 것인데, 그 장면들은 제한적으로 소리가 들어간 장면이라는 점도 아이러니이다. 이 영화의 95퍼센트가 무성영화 시대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장면들이 이 영화의 명장면인 것이다.

 

아마도 아카데미를 열광하게 만든 것은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루돌프 발렌티노와 같은 시대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들에 대한 향수와 경의의 표시일 것이다. 주인공 이름이 조지 발렌타인인 것은 루돌프 발렌티노를 연상시키며,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유성영화의 시대로 편입하게 됨을 암시하는 부분에서는 채플린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사랑은 비를 타고>. 195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그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의 내용과 톤은 물론 완전히 다르다. 남자주인공의 고민은 훨씬 더 짧으며, 순조롭게 새로운 조류에 몸을 담고, 결국 성공을 거둔다. 다만 신인 여배우와의 사랑과, 그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이 비슷했다. 내가 가장 연관지을 수 있던 장면은 1929년 10월 25일, 바로 대공황의 시작이었던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다음 날이자 조지 발렌타인이 제작한 영화의 개봉일 아침 신문을 집어 든 조지가 “우린 파산한 것 같군. 영화가 성공한다면 몰라도”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결국 파산한 조지의 모든 물건들이 경매에 붙여지는 장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실패를 예감한 진 켈리가 "영화가 개봉되면 나는 파산할테니, 지금 이 집에 있는 이 물건들을 잘 봐두라고. 곧 없어질테니까"라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졌다. 물론, 위기를 잘 모면하고 유성영화의 흐름에 순조롭게 합류한 진 켈리는 파산하지 않았지만.

 

흥미로웠던 점이, 이 영화의 감독도 배우도 전부 프랑스인이었다는 것. 이 정도로 화제를 모은 작품에 남녀 배우 둘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는데도 왜 이 작품 이후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마도 언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야말로 배우든, 관객이든, 언어의 장벽이 없는 그런 엉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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