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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완전판) - 비뚤어진 집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그렇단다. 그 사람들은 너나 나, 방금 나간 로저 레오니데스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이지. 살인이란 건 어떻게 보면 미숙한 범죄에 불과해. 물론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살인을 말하는 거다. 갱단이 저지르는 살인이 아니라. 그래서 사람들은 살인을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일이라고 느끼기도 하지. 살인자들은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거나, 돈이든 여자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 순간에 우리 같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자제력이 살인자들에게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지. 너도 알다시피 보통 아이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인단다. 일례로 아이들은 고양이 때문에 화가 나면 '죽여 버릴 거야.'라고 말하면서 고양이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지. 그런 다음 고양이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한단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애정을 뺴앗겼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놀이를 방해한다 싶을 때 아기를 유모차에서 꺼내 '물에 빠뜨리고' 싶어 해.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아주 어려서부처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과 그런 짓을 하게 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배우지. 그 과정을 거치면 그 행동이 정말 잘못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거야.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은 살인이 잘못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느끼지 못해. 내 경험으로 살인자들은 진정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아마 그게 카인의 특징이겠지. 살인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 그들은 '다른' 존재야. 살인은 잘못이지만, 그 사람들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아.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피해자들이 죽음을 '자초'했고 그들에게는 살인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지."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증오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랑이 인생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지."
"살인자들이 보이는 자만심은 십중팔구 그들을 파멸로 이끌지. 어쩌면 그들도 잡힐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범행에 대해 잘난 척하거나 자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해. 보통 살인자들은 자기가 아주 영리하기 때문에 절대로 잡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단다.(중략)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엄청난 고독을 느끼게 된다. 누구에게라도 그 사실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지. 그러니까 더욱더 말하고 싶어지는 거야. 결국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말하지 못하니까, 살인 사건에 대해서 떠들고 토론하고 사건에 관해 이론들을 세우면서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는 거지.(중략) 전쟁 중에 정보부 요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 그들은 적군에 붙잡히더라도 이름, 계급, 소속을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잘못된 정보를 흘려준답시고 입을 열게 되면 대개는 실수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댜. 찰스, 그 집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렴.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누군지 지켜보아라."
어마어마한 갑부가 죽었다. 독살이다. 눈에 넣는 에세린을 매일 주사 맞는 인슐린과 바꾸어 사망한 그 갑부에 대한 살인이 가능한 사람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 가족과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과 하녀들까지, 그러나 살인 동기를 가진 사람, 즉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죽은 부인의 여동생, 10년전 재혼한 젊은 부인, 장남 로저 부부와 차남 필립 부부, 차남의 세 아이들이다. 상속과는 상관없지만 재혼한 부인의 애인이자 손자들의 가정교사 또한 동기는 있다. 그러나 모두가 서명했다는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았고, 진짜 서명이 된 유언장이 발견되는데, 그 유언장에는 재혼한 젊은 부인과 장손녀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기로 되어 있다. 이 유언장에 대해 아무도 몰랐을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살인 동기와 기회를 가진 사람은 장손녀 단 한 명 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이리 저리 사건이 꼬여 있을 때, 의외의 결말이 나타난다.
어리석었던 것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주인공 뿐만이 아니다.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 저렇게 명확하게도 책 중간에 도달하기도 전에 애거서 크리스티가 명확하게 단서를 주고 있는데도 이런 저런 일들에 생각을 빼앗기다니. 어쩌면 여기에서 가장 영리하고도 훌륭했던 사람은 이모님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티 소설의 모든 여자들은 참 매력적이다. 가장 현명하기도 하고, 가장 담대하기도 하고, 가장 간교하기도 하고. 다른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대부분 대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분명히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을 추리 소설에 포함시키기에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결말과 주제는 곰곰히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이지만, 그러기에는 그 부분에 대한 고찰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오히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보다 더 '속임수'에 가깝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