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완전판) - 0시를 향하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애거서 크리스티는 생전에 66권의 장편과 20권의 단편을 남겼다. 가히 '추리 소설의 여왕' 답다. 수많은 독자들은 각자의 best 소설 목록이 있을 것이다. 모든 소설이 다 훌륭하지만, 특히 이 작품들만은 최고다, 라고 꼽는 것들. 열 손 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정작 그 수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킨 작가도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은 분명히 있지 않을까? 크리스티 자신이 선정한 '베스트 10'에 이 작품 또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예고살인

오리엔트 특급살인

화요일 클럽의 살인

0시를 향하여

끝없는 밤

비뚤어진 집

누명

움직이는 손가락

 

이 열 작품 중 '0시를 향하여'가 포함되며, 독자들이 선정한 베스트 순위에서도 이 소설은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크리스티하면 명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외에 다른 해결사들(베틀 총경, 토미와 터펜스 부부, 할리 퀸, 고트 형사,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작품만 해도 31편이 된다고 한다. 그 중 이 작품에 등장한 베틀 총경은 침니스의 비밀,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위치우드 살인사건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며, 특히 이 '0시를 향하여'는 포와로와 마플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벼랑 위에 우뚝 솟은 트레실리안 부인의 저택으로 테니스 선수 네빌과 아내 케이, 전처 오드리 등 7명이 초대된 파티가 열린다. 나머지 4명은 오드리를 짝사랑하는 먼 친척 토머스, 케이를 짝사랑하는 오랜 친구 테드, 경험 많은 변호사 트레브스, 그리고 초대된 손님은 아니지만 트레실리안 부인의 먼 친척이자 함께 살면서 그녀를 돌보아주는 메리 올딘. 삼각관계가 스트레인지라는 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하나, 그리고 그 삼각형의 여자들을 중심으로 한 각각의 삼각 관계가 하나씩 더 추가 되어 젊은 이들의 기묘한 애정 전선이 복잡하게 펼쳐지고, 트레실리안 부인의 살인에 대해서 참석한 사람들 중 유산 때문에 동기를 가진 사람이 여럿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더 꼬여 간다. 여러 명의 용의자 중 유력한 사람이 먼저 등장하고, 다시 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익숙한 전개가 펼쳐지며,  예사롭게 넘겼던 일들이 결말에 가서 큰 요소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것이, 그것들은 살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에는 충실할 지언정, 사건 자체에 대한 추리를 하는 데에는 사실 큰 도움은 또 되지 않는다. 크리스티 소설의 큰 두 축이 사건 자체에 대한 재미와, 인간들의 심리 변화의 과정이라면, 양쪽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한번은 이쪽에 힘을 실어주고, 또 한 번은 이쪽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프롤로그에서의 트레브스의 말이 이 소설 전체를 압축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온갖 종류에 온갖 형색을 하고 있어.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만,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부류도 있어. 출신 지역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스코틀랜드의 랭커셔 출신이 있어. 그 식당 주인은 이탈리아 출신이고, 그 학교 여선생은 미들 웨스트 어디 출신이라지.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에 휘말려 마침내 11월의 어느 흐린 날 런던의 법정에서 함께 마주치게 된걸세. 여기 휘말린 사람들에겐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네.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살인 사건 공판이라는 정점을 이룬 게야. (중략) 탐정 소설이란 게 대개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어! 살인에서 시작을 한다고. 하지만 살인은 그 결말일세.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있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네. 때로는 수년 전부터 시작되지. 어느 날 몇 시, 어떤 장소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게끔 하는 원인과 사건들에서 시작하는 거란 말일세. 그 하녀 계집애의 증언을 놓고 보자고. 만일 이 부엌데기가 자기 애인을 들들 볶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을 거고 라몬에 갈 필요도 없었을걸세. 그렇다면 피고 측 주요 증인이 될 필요도 없었겠지. 그 쥐세페 안토넬리라는 청년은 한 달 동안 자기 형을 대신하려고 온 것이지? 이 형이란 인물은 앞뒤가 꽉 막힌 답답한 사람이야. 이 사람은 동생이 그 날카로운 눈으로 보았던 것을 보지 못했을걸세. 또한 만일 그 경관이 48번지에 있는 식당의 요리사와 허튼수작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 경관은 자기 순찰 구역에 늦게 도착하는 일이 없었을걸세......(중략) 이 모든 정황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가는 거야. 그리고 정해진 시각이 되었을 때 정점으로 치닫는 거지. 0시라고 해두세. 모든 것이 0시를 향해 모여드는 거야......」

 

아마도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상호관계에 집중하며 비교적 살인은 늦게 나타나고, 그 살인 사건 또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여 보여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크리스티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지. 어떤 드라마가, 살인의 형태로 나타날 어떤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어. 피와 범죄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가 한편 써야 한다면, 나는 늙은 노인이 난로 앞에 앉아서 편지를 열어보는 장면으로 시작할 거야. 그 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모든 것이 0시를 향해 가는 것이지.......> 이런 대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소설, 이 부분은 굉장히 위트있으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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