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블레의 아이들 - 천재들의 식탁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블레의 아이들.

이게 무슨 뜻일까? 제목만 들어서는 거리의 아이들과 같은 느낌인데?

 

부제: 천재들의 식탁.

동서고금의 천재들이 먹었던 음식이란 말인가?

 

책 표지의 설명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 속에는 먹을 것들이 풍성하다.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대식가로, 그들은 종종 향연을 벌이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요리들을 앞에 놓고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수많은 예술가들이 음식을 탐하는 먹보들이었다. 그건 단순히 식욕의 차원을 넘어 그들이 선천적으로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누구는 훌륭한 레시피집을 남겼고 또 누구는 후세의 전기를 통하여 그 왕성한 식욕 상이 전해졌다. 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라블레의 아이들인 것이다. 이 책은 과거에 쓰여진 책을 읽는 것과 미지의 요리가 눈앞에 있는 것이야말로인생의 기쁨이라고 여기는 한 평론가에 의해 쓰여진 실험보고서이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수아 라블레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먹는 것에 대한 다양한 묘사로 요리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천재들은 직접적으로 라블레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음식에 대한 집착이나 고집, 혹은 숭배나 찬탄으로 한 가지 이상의 일화가 있는 사람들로 그런 면에서 과연 라블레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평론가로, 음식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하는 사람이며, 실험보고서라는 것은 이 책의 예술가들이 그 음식을 즐겼던 바로 그 방식으로 저자 스스로 맛을 보고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한 책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대가인 사람들이라면 특정 부분에 대한 자기만의 뚜렷한 철학이나 방법론이 있기 마련이며, 요리에도 예외는 없다. 그 법칙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호사스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본인만의 취향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다케미쓰 도루의 버섯 파스타 정도가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사이토 모키치의 우유 장어덮밥 정도일 것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가서 저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기 힘들다. 아마도 전문 요리사의 솜씨와 전문 사진 작가의 기술과 전문 편집자의 능력, 삼박자가 모두 맞았다고 생각되는데, 반면에 글은 또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장은 몇 번 읽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어떤 장은 한 번을 읽기에도 쉽지가 않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책이<예술신초>라는 곳에 1년 정도 연재된 글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각 글마다 농밀함의 편차가 들쑥날쑥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저자가 책 뒤편에서 밝혔듯이 전적으로 돼지고기를 좋아했던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여 연재된 음식 중 상당수가 돼지고기 요리였으며, 이 책만 하더라도 절반 정도의 예술가들은 전부 일본 사람이라서, 일본 국민이라면 익숙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 많다는 것. 즉, 상당히 편향되었다는 점은 단점이다. 다행이게도, 이 책을 읽은 바로 직후에 일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번도 와 본 적 없는 고급 음식점이라는 것과, 제한된 예산이라는 두 가지 제한 조건 속에서 효과적으로 메뉴를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 덕분이었다는 사실. 물론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겠지만, 쉽게 오기 힘든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메뉴를 고르는데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미리 읽었던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일본 음식들 덕에 먹고 싶은 요리를 고르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결론적으로는 만족했다는 것.

 

 

사이토 모키치의 우유 장어덮밥,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아오야마 뇌병원의 원장인 모키치는 환자를 봐야 하는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니 자연히 식사는 배달시켜 먹는 일이 많았고 음식은 당연히 '장어요리'였다. 심한 경우엔 내리 나흘을 장어를 시켜 먹은 적도 있다. 업무에서 해방되어 외식을 할 대도 역시 장어를 먹는다. 하지만 고급 요정은 아들의 상견례 자리 말고는 발걸음을 한 적이 없었다. 모키치는 병원 근방에 있는 미야마스자카를 내려가 도겐자카를 오르는 그 중간에 있는 하나비시라는 아주 소박한 장어 집을 즐겨 찾았는데 이 점포는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중략) 이윽고, 일본이 영미 열강과 본격적인 전쟁으로 돌입하게 되면 느긋하게 장어집에서 가바야키(장어 꼬치구이)를 먹기는 힘들 테고 장어가 없으면 시를 지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가인으로서의 자신의 생명은 끝장이다. 그 자리에서 모키치가 즉흥적으로 대량의 통조림을 구입한 이유가 그런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의학자다운 예방 차원에서 한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일기는 아무것도 답해 주지 않는다. 아무튼 신중한 모키치는 시내에서 아직 장어를 사다 먹을 수 있는 동안에는 통조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중략) 모키치는 2년 후에 도쿄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때에도 대량의 통조림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도쿄는 여전히 식량사정이 좋지 않았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장어 통조림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중략) 전자레인지가 없던 시절이니 찬밥과 통조림 속의 장어를 덥히는 일은 꽤나 번거로웠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오차즈케처럼 뭔가 따뜻한 국물을 끼얹는 것이다.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중략) 아마도 차갑게 식은 밥에 장어 통조림만으로 밥을 먹는 건 너무도 비참해 역시 우유를 부어서 먹었나보다. 당연히 이 때의 우유는 따뜻하게 데운 것이어야만 한다. (중략)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늦게까지 진찰실에 틀어박혀 있던 모키치에게는 이 방법은 너무도 간편하면서도 장어를 먹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저런 삽화를 통해 판단해 본 결과 모키치는 결코 미식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장어는 어느 강에서 나는 천연 장어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양식 장어가 나돌 무렵에는 그걸로라도 만족하며 소박하게 기뻐하고 통조림이라고 해서 업신여긴 적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장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만족해하며 그것들을 먹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