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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일본 3대 여성 작가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였던 것 같은데, 일본의 서점에는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코너를 따로 분류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갔을 때는 그런 분류 방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서. 아마 여성 독자는 여성 작가의 글을 주로 읽고, 남성 독자는 남성 작가의 글을 주로 읽는 일본의 특징 때문인 것 같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일본 서점가의 특징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말 붙이고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숫자 3에 사람들이 집중하기 쉬워서인지, 정말 정말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본 3대 여성 작가라는 것이 있단다.
에쿠니 가오리,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요시모토 바나나를 꼽는다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가는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가 아닐까 싶다.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중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짧은 분량이었지만, 읽고 나서 한 동안 감동에 젖었던 기억은 있다. 다시 읽는다면 똑같은 감동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똑같은 내용을 보고도 감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독서의 효용성 중 하나가 감동이라고 한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을 수록 그 감동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진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읽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 할머니도 이 책도, 사랑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이의 상실과 그 극복을 다루고 있다. 그 극복 과정에는 타인이 개입하며,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그 타인은 가족, 혹은 가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가까운 존재가 된다. 나이가 어릴 수록 누군가와의 헤어짐이 아픈 법이다. 가족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더라도, 어릴 때의 친구와 멀어지거나, 가깝게 지내던 대학 동기와 사소한 일로 틀어지거나, 마음을 주고 받았던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하거나 하는 경우가 스무 살이 넘으면서 빈번하게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많이 아프겠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다 보면 마음에 굳은 살이 박혀서 웬만한 인간 관계로는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서른이 되면 가족이나,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거나, 10년 넘은 친구 정도가 아니라면, 누군가로 인해 일상이 한동안 마비될 정도로 힘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깝게 지내던 이를 잃어버린다는 것, 그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이 참 투명하게 아름답다. 읽으면서 수많은 스무살들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그래서 나이가 든 것일까, 스무살 때와 같은 감동을 느끼려면 더 큰 자극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씁쓸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