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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ㅣ 인생학교 1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평점 :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성장과정에서 뜻밖의 사건을 겪었다고 치자. 그로 인해 우리는 불균형한 상태로(어딘가가 과도하거나 취약한 상태로) 성인기에 이르렀다. 마음속의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넘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부족해졌다.걱정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침착할 수도 있고, 너무 독단적이거나 너무 수동적일 수도 있으며, 너무 현학적이거나 너무 실용적일 수도 있고, 너무 남성적이거나 너무 여성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보완적인 특징을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섹시하다'고 느끼고, 우리 자신의 불균형적인 측면을 더 자극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갖게 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오랜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지려고 시도할 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오해와 걱정거리 따위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섹스가 언제나 가능하며 합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쪽만 원하는 성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어떠한 경우든 성생활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평생 성관계가 보장된다는 고무적인 가능성의 이면에는 반대로 어두운 측면도 있다. 상대방에게 잠자리를 거부당할 때 그 충격과 당혹감은 다른 어떤 관계에서 거부당하는 경우보다 근본적으로 더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무이다. 어쨌거나 바bar에서 방금 만난 상대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해봐야 그렇게 크게 당혹스럽거나 마음 아프지는 않다. 그런 퇴짜는 어떻게든 씁쓸함을 털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에게 성관계를 거부당하면 훨씬 더 묘하게 치욕스럽다.
외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궁극적인 '오류'는, 결혼에 대한 특정 관념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다. 언뜻 생각하기에 외도는 비뚤어지고 절망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밀스러운 모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결혼생활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다. 외도를 하면 그 상대방이 자신의 결핍이나 과잉을 마법처럼 조절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떄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조건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혼외'의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지면서 '결혼생활 내부'의 소중한 것들에 타격을 입히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결혼생활을 충실히 지키는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절박한 감각적 쾌락의 기회를 거머쥐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불안한 결혼생활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 '해답'이라는 것이, 양쪽 모두가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는 그런 해결책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사랑, 섹스, 가족은 서로에게 잔인한 영향력과 피해를 입히는 관계다. 한마디로 결혼생활은 침대 시트와 비슷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네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다. 한쪽을 제대로 펴놓으면, 다른 쪽이 더 구겨지거나 흐트러지고 만다. 그러므로 완벽을 추구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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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일부가 실망을 했다면 책 자체보다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이라는 꼬리표를 떼면,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집어든 것이고, 따라서 간혹 실망하는 사람도 있겠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읽다 보면 역시 보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몇몇 구절과 장들은 심도 있는 생각을 요구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더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주제만큼은, 인간의 그 어떤 이성적인 부분보다 본능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되어야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보통은 예의 이 주제에서도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문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 등등 종합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차근차근 해부해 나가는 과정은 과연 보통이라고 감탄할 수는 있겠지만, 호르몬이나 유전자 와 같은 생물학적인 부분,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만 이 책은 완벽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읽고 나면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듯한 그런 느낌이라서 보통의 책을 다 읽고 나면 특유의 그 분명하고 명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