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30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한성희 지음 / 갤리온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나라 청춘에게 서른 살이란 지금까지 누렸던 특혜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무엇이냐?"라는 식의 숙제 검사를 요구받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마치 결혼을 해 본 사람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백과사전을 왜 그녀는 몇 단락만 읽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결혼한 지 30년이 넘은 나도 아직 60대의 결혼, 70대의 결혼에 대해선 다 읽지 못했는데 말이다.

 

결혼에도 춘하추동이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은 20대의 사랑, 30대의 출산, 40대의 생산, 50~60대의 자아로의 환원, 70~80대의 죽음 등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익혀야 할 과목을 알려 주는 인생 수업과 같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법적, 인습적으로 묶어 준다. 위험한 세상에서 한 팀이 되어 살아갈 기본 단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사회학적인 의미의 '금고'라고 생각한다. 친정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가족으로 남아 주는 남편, 나의 길을 뒤에서 봐줄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고 한다면, 그 첫째는 부모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은 배우자다. 그런데 처음부터 완벽한 아내, 품격 있는 남편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원석을 골라내 보석으로 만드는 공정이 필요한데, 좋은 원석을 찾아내는 일부터 만만치가 않다. 결혼이란 서로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상대에게 멋진 보석이 되고자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빛나지 않더라도 내게 헌신할 줄 아는 남자, 평생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남자라면 훌륭한 배우자감이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에 내가 참 싫어하는 말이 있다. '삽질하다.' 가장 빠른 길을 놔두고 한참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거나, 결과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결과를 내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일이 바로 삽질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결과와 상관없다고 해서 삽질을 손해로만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의 성장에도 저해가 된다. N. 보르가 말했다. "전문가란 자기 주제에 관해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이미 저지른 사람이다." 지금은 삽질이 손실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삽질의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성공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없도다 아직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한 청춘일수록 삽질은 꼭 해야 할 신성한 노동이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도 모르겠다면 일단 뭐든 해 봐야 결론이 나올 게 아닌가. 그렇게 경험치가 쌓이면 어느 순간 선택을 하는 데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은퇴를 고민하는 분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만약 그들이 젊은 시절에 어떤 씨앗을 어디에 심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엉뚱한 곳에 삽질이라도 해 봤다면 어땠을까? 씨앗 하나 심을 만한 작은 웅덩이라도 파 놓았다면 어땠을까? 설사 퇴직을 앞두고 있어도 인생 2막에 심어야 할 씨앗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시케타가 말했다.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쉽게 일어선다. 반대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만을 배우면 결국에 일어서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삽질로 각종 유기물이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삽 뜨는 법조차 모른다. 삽질의 부재는 경험의 부재이며, 경험의 부재는 그 사람의 능력과 크기를 제한해서 설사 포크레인이 바로 옆에 있어도 절대로 웅덩이를 팔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 마흔이 되고, 쉰이 넘으면 지킬 것이 많아져 쉽게 삽을 들 수 없게 된다. 많은 것을 시도하면 실수도 많겠지만 그만큼 후회도 적다.

 

서른 살 청춘들은 직업이나 배우자 문제처럼 인생을 좌우할 만한 중대한 선택들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스무 살, 서른 살 때 하는 선택이 최선인지 아닌지를 알아채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모든 선택지를 따지고 계산하겠다고 뛰어드는 것만큼 무모한 일도 없다.

 

거절은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있고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없는지 상대에게 알리는 일이다. 어쩌면 거절당한 상대방이 서운해하거나 뒤에서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소설가 김훈의 말을 기억하렴.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앞으로는 남성적 리더십과 여성적 리더십을 모두 아우르는 인재가 각광받을 거라고 한다. 효율성과 조직적인 사고가 강한 남성적 특성과 소통과 조율에 능한 여성적 특성은 둘 다 필요하고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도 남성적 문화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또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아이를 낳건 낳지 않건 어쨌든 앞으로는 평생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에 있어 프로가 되는 것만큼이나 회사라는 조직을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나 혼자 '똑똑함'으로 승부하려 하지 마라. 회사가 발전하는 것은 똑똑한 개인 때문이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이 하나가 되어 생산적으로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신이 똑똑해도 그것을 내세우기보다 조직 전체가 협업의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기여해야 한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2퍼센트 부족한 듯 허름에 보이나 속으로 단단한 사람이다. 그들은 상대로 하여금 쉽게 마음의 빗장을 풀도록 만든다. 똑똑함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 가는 것은 힘들지만 그럴 때 네가 더 멀리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네게 반하지 않은 남자는 만나지 마라"라고 했었지. 그 말이 네가 좋아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가 너를 좋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라는 말이었다.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만큼 표현하고, 바라는 것을 솔직히 얘기하고 때론 감추고 싶은 모습까지 나눌 수 있어야 사랑의 지평이 펼쳐진다. 사랑이라는 건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면면들을 일깨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연애 비법 같은 것으로 자신을 감추어선 안 된다. 그리고 사랑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곁에 연인이 있음에도 이별을 떠올릴 만큼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혼자 그 사랑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자문해 보기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랑에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만 챙기고 이기적으로 사랑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남자 친구를 사랑하되 자신을 돌보는 일에도 게을러지지 말자는 뜻이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것과 자녀의 정서적 건강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영국 런던 대학 애니 맥먼 박사는 영국 어린이 1만 20000명을 대상으로 엄마의 직업 유무가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엄마가 직업이 있는지 여부는 자녀의 정신 건강에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소아과학회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모두 잘하려 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할 줄 알고 가능한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 슈퍼우먼이 되기 위해 애쓸수록 힘든 것은 자신뿐이다. 그리고 힘든 만큼 당연히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되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 경우 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슈퍼우먼이 되라"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하라.

 

두 번째로 워킹맘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양육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아이가 만 3세까지는 삶에서 육아를 우선으로 하는 스케줄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엄마가 주 양육자가 되어야 하며 양육의 일부를 타인에게 맡기더라도 엄마가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네 번째로 남편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못하는 것은 빨리 못한다고 말하고 주위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들 역시 딸로부터의 독립이 어렵다. 딸의 성장 과정에서 유독 강렬한 정서적 일체감을 경험한 엄마들일수록 딸의 독립은 엄청난 심리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제 성인이 된 딸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내면의 엄마는 지워야 할 과거다. 딸은 자신을 억누르는 엄마의 그늘을 모두 지우고, 엄마가 바뀔 수 있다는 미련조차 버리고 떠나야 한다.

 

맬번 비느니스 스쿨의 교수인 존 암스트롱은 돈과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꼽았다. 그는 돈에 대해 무관심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괴테는 부유한 집 출신이었지만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독립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법조인에서 정부 고문관으로 바꿨다. 그는 일에도 만전을 기했고 모든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렇게 획득한 자유와 안정감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글을 썼다. 그는 돈을 버는 일과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다.

 

명품 가방을 살 때 우리는 가방 자체가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그 브랜드를 매고 있는 자신도 명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젊을수록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나도 공감하고 이해한다. 어찌 보면 명품은 타인의 관심을 사는 시간을 줄여 준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관심은 일회용밖에 되지 못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 박사는 "사랑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사람과 만나 겪는 황홀한 순간을 온몸으로 즐긴다. 이것도 에너지를 쏟는 행위지만 읮를 갖고 노력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에 빠지는 단계를 지나 사랑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사람의 성장에 주목하며, 자신의 선입견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지 않고, 진정으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랑은 특정 대상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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